59화. 원인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해치거나,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하지 못한다고요?”
백새벽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다면 죄목이 추가될 뿐이야.”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성건우와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중요한 건 누가 양범석을 따라 그런 미친 짓을 벌이겠느냐는 거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대상은 바로 회사야.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안전한 삶과 기본적인 물자를 제공하는 것도 회사지.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양범석이 과연 보장해줄 수 있을까?
그런 미친 짓에 동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또 뭘까? 기껏해야 승진의 기회와 전리품을 분배받을 기회 정도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진실이 폭로된 후의 끔찍한 결말과 비교했을 때 과연 그 정도로 가치 있을까?
탐욕에 눈이 멀어 흑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 해도, 양범석이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될까? 행동 대대에 속한 백 명 정도의 대원들을 모조리 만족시킬 수 있을까?
만약 이곳에 있는 사람이 양범석이랑 심복 대여섯 명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는 걱정해야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수십 명에서 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그가 어떻게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우리를 해치고, 다른 이들을 죽여 그 입을 다물게 하겠어? 그중 후회하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그들은 몰래 돌아가 이 상황을 신고하고 그 대신 죄를 사면받으려 할 거야. 모든 것이 탄로되었을 때의 죗값은 엄청날 테고.
게다가 이 모든 광기의 원흉은 그저 한 가닥의 의지에 불과한데, 누가 그 광기를 폭발시키려 하겠어?”
그 말에 백새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면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할 수가 없죠.
심복만 남겨놓은 채 다른 모두를 다 죽여 없앨 수도 없고요.”
행동 대대를 끌고 나갔던 사람이 겨우 몇 명만 남겨서 회사로 돌아갔을 때 그를 의심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겨우 몇 사람이 백 명에 달하는 인원으로 구성된 대대에 저항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양측의 무기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면 죽어서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 어느 쪽일지는 불확실해졌다.
“양범석의 심복이라도 상관의 미친 짓에 기꺼이 따르려 할지 역시 미지수지.”
장목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성건우, 용여홍, 만약 내가 너희들에게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양범석과 싸우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어?”
몇 초간 침묵하던 용여홍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상대도 안 될 텐데요⋯⋯.”
“만약 상대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겠어?”
장목화가 웃으며 끈질기게 물었다.
이때 성건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정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회사로 돌아가면 제가 양범석을 치겠습니다!”
장목화는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회사 안에서의 구타는 어떤 것이든 싸움으로 간주 되었다. 쌈박질을 벌인 이들은 보통은 질서 지도자에게 몇 마디 주의를 들은 뒤 귀가 조치 되었지만, 조금 심각한 싸움을 했을 경우에는 열흘에서 보름 동안 수감됨과 동시에 한 달 분량의 공헌 점수를 빼앗겼다. 그래도 이러한 처벌을 받은 자가 굶어 죽지는 않도록 회사에서는 이 한 달 분량의 공헌 점수를 1년에 나눠 조금씩, 인도적으로 차감했다.
싸우면서 상대의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았다면, 기껏해야 나쁜 직무로 전출될 뿐이었다. 하지만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 구조팀과 비교했을 때 더 위험한 직무는 거의 없었다. 위험도가 비슷한 직무도 많지 않았다.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이 빠른 속도로 이어나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백새벽이 불쑥 끼어들었다.
“양범석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데?”
그와 싸우느냐 마느냐를 다루던 토론은 갑자기 그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변해갔다.
“음⋯⋯.”
백새벽의 질문에 장목화는 고민에 빠졌다.
용여홍은 그제야 방금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 양범석의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져 있음을 파악했다. 현재 그가 느끼는 상대의 이미지는 사악한 악당에 가까웠다.
오직 성건우만 진지하게 답할 뿐이었다.
“노래 실력이 형편없어서.”
백새벽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자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짐작이야.”
“⋯⋯.”
백새벽은 성건우와 진지하게 토론을 하려 했던 게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상대의 이러한 모습이 장난인지 고질병적인 행동인지, 그녀로서는 영원히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좋아, 좋아.”
이 대목에서 장목화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야. 아 참, 이따가 건우 네가 먼저 잠을 자도록 해. 또 악몽을 꾸게 될지도 모르니까.”
지시를 마치고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 양범석이 우리에게 군용 외골격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걱정돼. 일반적으로 각 행동 대대가 보유할 수 있는 그런 고급 장비는 몇 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특정 대대, 혹은 특정팀에 집중되어 있거든. 양범석이 이끄는 대대에는 어쩌면 외골격 장치가 단 한 대도 없을지 몰라.”
“겁 안 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용여홍은 갑자기 말을 바꾼 팀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장목화는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그가 강제적으로 외골격 장치를 빼앗아갈 것에 대한 걱정은 전혀 안 돼. 애걸복걸하면서 부탁할까 봐 걱정되는 거지.
앞으로 그들의 작전에는 우리보다 더한 위험이 따를 거야.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그들에게 외골격 장치를 빌려주는 게 맞아. 아, 난 정말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니까.
게다가 회사로 돌아가면 외골격 장치는 어쨌든 상납해야 해. 고위층의 공동 분배 대상이 될테니, 그 물건이 우리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
“그럼 빌려줘도 될 것 같은데요⋯⋯.”
용여홍은 더욱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팀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해.
이번 야영 훈련은 내내 순조롭지 못했어.
맨 처음에 맞닥뜨린 평범해 보였던 강도단은 무려 외골격 장치를 가지고 있었고, 가장 정상적인 길을 따라 이동하던 와중에는 길이 늪에 잠긴 것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검은 늪 철갑뱀의 기습을 받았지.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철강공장의 폐허에서 훈련하려 했을 때는 기계 승려 정법과 마주쳤고, 무선 통신기를 쓰기 위해 찾아갔던 검은쥐 마을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한 현장을 발견했어. 회사 사람들이 현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실제적인 악몽을 꾸게 되기도 했고. 그뿐만 아니라 웨이루 역 북쪽에서는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구세계의 폐허가 발견되었어.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우리는 정말 더럽게 운이 없었던 셈이야. 앞으로 또 다른 뜻밖의 상황이 발생할지 누가 알겠어? 그러니까 외골격 장치를 남겨둔 채 우리 팀의 화력을 보강하는 게 좋아.”
“맞아, 맞아요!”
용여홍은 그 말에 깊이 동조했고, 백새벽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이 가장 귀한 법이었다.
이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던 성건우는 장목화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넌 말할 필요 없어!”
뒤이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말이 아니라면 말이야.”
성건우가 입을 다물자, 목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또한 내가 외골격 장치와 해자 마을에 대해 숨긴 건 건우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어.”
“예?”
용여홍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장목화는 웃으며 설명했다.
“그 두 가지 사건을 오랫동안 숨길 수는 없어. 돌아가서 보고서에 써야 하니까.
지금 당장은 숨겼다고 한들 뭔가를 의심한 양범석이 회사에 돌아가 물어본다면 단번에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사건들이 있었는데 숨겼구나, 그렇게나 자신들을 경계했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그리고 양측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회사에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을 테고.”
“그렇구나⋯⋯.”
용여홍은 장목화의 깊은 생각에 놀라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백새벽과 성건우는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후로 이어진 밤 동안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이상 현상은 이미 이 구역을 벗어난 것 같았다.
* * *
날이 밝은 후 아침 식사를 마친 그들은 양범석 조수의 안내에 따라 검은쥐 마을 밖에 이르렀다.
검은색 베레모를 쓴 양범석이 진지한 얼굴로 목화를 향해 말했다.
“몇몇 정찰반이 이미 소식을 전해왔네. 주요 소식은 두 가지야.
첫째, 하이에나 강도단의 구성원과 그들에게 붙잡혀 있는 종속 구성원 중 열 명이 넘는 이들이 그끄저께 밤에 원인을 할 수 없는 괴이한 죽음을 맞이했다더군. 이에 놀란 하이에나는 그제 오전에 모든 포로를 풀어준 뒤, 열두세 명의 핵심 구성원만 데리고 북쪽으로 올라가 최근 새로 발견된 그 구세계 도시 폐허로 향했다고 해.
둘째, 새로 발견된 그 구세계 도시 폐허와 이곳까지의 거리는 오십 킬로미터가 채 안 돼.”
“그렇게 가깝다고요?”
장목화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양범석은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전까지는 웨이루 역 북쪽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확인된 바에 따르면 정북쪽이 아니라 동북쪽으로 편향되어있다는 거야. 생각보다 이쪽과 가까웠던 거지.”
“어쩐지⋯⋯.”
장목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실제적인 악몽이 검은쥐 마을 부근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그 때문인 듯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출발할 생각이야. 혹시 무슨 도움이라도 필요한가?”
양범석이 물었다.
“없습니다.”
장목화는 진심이 어린 목소리로 상대를 축복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손을 흔들던 양범석은 대대를 소집한 뒤 서북쪽으로 출발했다.
장갑차를 포함한 각종 교통수단을 타고 멀어지는 대대를 바라보던 장목화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도 출발하자.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드디어 구세계 폐허의 1차 자료와 두 신입의 안전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있겠어!”
장목화가 마침내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 원래의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겠다고 말한 그때, 약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장목화는 일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운명의 파란은 그녀를 전혀 다른 길로 떠밀고 있었다⋯⋯.”
놀라 고개를 돌린 장목화가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성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어쩌면 하늘의 뜻을 감지한 것인지도 모르죠.”
장목화가 의심스러워하는 사이,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저 말, 어디에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데⋯⋯.
그래, 이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어봤어!”
성건우는 인물의 이름만 바꿨을 뿐이었다.
반고 바이오 오락부에 속한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정각 뉴스’만이 아니라 ‘베드타임 뮤직’, ‘이야기 잡담’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는 직원들이 누릴 수 있는 많지 않은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순간 진지한 표정을 거둬버린 성건우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 대사, 방금 그 상황에 꽤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까?”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대꾸했다.
“대사도 칠 줄 알아?
음, 아주 훌륭해. 보아하니 다들 마음에 드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