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정보 교환 (2)
중간 과정을 생략한 그녀는 곧장 이야기의 결론을 갖다 붙이며 정법에게는 위기 대응 시스템과 여분의 기계 구조가 갖춰져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전기 충격을 받고도 곧장 파괴되지 않고 지프차로부터 도주했다고 했다.
“만약 나였다면 일개 전투팀만 데리고는 자네들만큼 그렇게 훌륭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거야.”
기계 승려와의 싸움에 대해 전해 들은 양범석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전투형 로봇에 진정한 인간의 지혜와 각성자의 능력까지 더해진 존재라면 그 자체로 거대한 살상 무기라고 할 수 있겠군.”
“그냥 사력을 다한 결과죠.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기계 승려에 의해 죽을 때까지 고문받았을 텐데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장목화가 자조하듯 대꾸했다.
“정법에게서 벗어난 뒤에는 검은쥐 마을로 향했어요. 이곳의 무선 통신기를 이용해 회사에 그간 획득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요. 그러던 도중 야영을 하다가 기이한 두 사람을 만났는데 한 명은 골동품 학자이자 역사 연구원을 자칭한 이두형이라는 자였고, 다른 한 명은 퍼스트 시티 출신의 갈루란이라는 자였어요. 그녀는 스스로를 도사라고 칭했죠.”
그녀는 두 사람이 얼마나 기이했는지보다 그들과의 대화로 얻은 각성자에 관한 정보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검은쥐 마을에 도착한 구조팀이 마을 주민들이 학살된 현장을 발견하고 동굴 안을 탐색한 뒤 긴급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장목화는 조사 결과를 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이에나 강도단에게 혐의가 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또한 그녀는 보고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실제적인 악몽에 대해 언급했다. 대신 성건우가 각성자의 능력에 의지해 알아서 깨어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운 좋게도 마침 불침번을 교대하려 했던 용여홍과 백새벽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장목화 자신과 성건우를 깨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장목화는 실제적인 꿈과 웨이루 역 북쪽에서 발생한 이상 상황을 연관지으며 자신의 추측을 공유했다.
“분명 특정 각성자의 능력과 매우 비슷하군⋯⋯.”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만큼 알고 있는 것도, 들은 것도 많은 양범석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난 젊었을 때 행동군을 따라 대형 세력 간의 대량 거래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여명샛별이라는 교파를 만난 적이 있어. 꿈을 두려워하면서도 이용하는 자들이었지. 그때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한 교도는 꿈 수호자를 자칭하는 각성자로, 사람들이 악몽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지. 자네들이 설명한 상황은 그가 묘사한 일종의 악몽과 매우 비슷하군.”
장목화는 성건우를 비롯한 구조팀원들과 함께 서로를 돌아보다가 양범석에게 물었다.
“대장님께 그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으셨나요?”
“안 보여줬어.”
양범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경계심이 강한 사람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캐물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달지기는 누구입니까?”
성건우를 포함한 구조팀의 팀원들이 기계 승려 정법과의 만남을 통해 달지기와 관련된 정보를 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양범석은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여명이었어. 2월을 관장하는 신령이지. 그들은 이 달지기를 꿈을 비추는 빛이라 부르더군.”
여기까지 말을 잇던 양범석은 이미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정보는 없나?”
“없습니다.”
장목화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입이 다 말랐네요.”
양범석이 웃으며 말했다.
“겸손한 말은 넣어두도록 하지. 날이 어두워졌으니 자네들도 야영지를 마련하고 쉬도록 해. 난 최대한 빨리 정찰조를 짜고, 자네들이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하겠네. 낭비할 시간은 없어.
아, 그래, 잠은 최대한 불침번이 지켜볼 수 있는 상황에서 자는 것이 좋겠군. 그럼 이상을 보인 순간 곧장 불침번의 도움을 받아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그런 상황에서 잠들기가 얼마나 불편할지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사실 애쉬랜드에서 그건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치욕과 난감함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경험자니까요.”
손을 흔들며 팀원들과 함께 양범석에게 작별 인사를 한 장목화는 지프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갔다.
* * *
장목화 일행이 적당한 장소를 찾아 텐트까지 세웠을 무렵, 용여홍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외골격 장치에 대해서는 왜 숨긴 겁니까?”
성건우의 비밀을 숨기는 건 이미 합의된 일이었으므로 논외였다.
“그것까지 얘기하려면 해야 할 설명이 너무 많아져. 그럴 필요는 없잖아. 자칫 잘못했다간 해자 마을까지 얽히게 된다니까.”
장목화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해자 마을에 대해서도 보고는 하되, 구체적인 위치까지 밝히지는 말자고 하지 않았나요? 야외에서 그 마을의 사냥팀을 만났다고 둘러대기로 했잖아요.”
감정 변화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은 백새벽도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급할 건 없지. 회사에 돌아간 다음에 보고해도 돼.
양범석 대장한테 말해봤자 그 대대가 뭘 어쩌겠어? 정보가 새어나갈 위험만 커질 뿐이야.”
“새어나가도 문제가 되지는 않잖아요?”
백새벽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살짝 내쉬던 장목화가 웃으며 성건우와 용여홍을 가리켰다.
“황야유랑자들에 대한 회사 내부 직원들의 태도가 어떤지, 너희들이 좀 설명해줄래?”
사주 경계를 맡고 있던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거부감을 좀 느끼죠. 황야유랑자들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들였다가 각 방면의 배급량이 줄어들까 봐요.”
“맞아, 우리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다들 지금과 같은 상태만 유지한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점점 더 많아질 테고, 그럼 대량의 황야유랑자들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테니까.”
용여홍은 백새벽을 힐긋 바라보며 약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장목화는 백새벽을 향해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
“들었지?
산발적으로, 너희 황야유랑자 중 뛰어난 이들만 흡수하면서 너희들의 경험, 식견, 능력을 이용하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아.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반기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한 거점의 모든 황야유랑자를 단번에 흡수하려 한다면, 내부 직원 대부분은 거부감을 느낄 거야.
안전부의 작전팀과 행동 대대는 장기적으로 외부 활동을 해온 덕분에 각 거점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의 삶에 동정심을 느끼기도 해.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야. 그들에게도 회사 내부에 살면서 각종 여론에 영향을 받는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만약 그들이 이사회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해자 마을의 소식을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흘린다면, 그 친구와 친척들은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테고, 그럼 부정적인 영향은 빠르게 퍼져나갈 거야.”
백새벽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일반 직원들이 이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요?”
그녀는 그런 고위층 관료들은 하류층 직원들의 여론에 끄떡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장목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황야유랑자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또 회사 내부의 사정도 잘 몰라서 그래.
반고 바이오는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조직이야. 이사회 직원들에게 일반인 직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없을까? 게다가 회사 입장에서는 내부의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작전팀이나 행동 대대의 태도나 입장과 직결되지.
만약 부정적인 여론이 생긴다면, 이사회에서는 해자 마을의 흡수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한들 계획의 세부 사항을 바꿀 수밖에 없어.
전부 정직원으로 대우하느냐, 아니면 검은쥐 마을처럼 어느 정도 분리된 외부 종속 세력으로 삼아 관리자만 파견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
백새벽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장목화의 말을 되뇌었다.
황야유랑자로 살던 당시 그녀가 기억하는 상급자와 강자는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진 존재였다.
이때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그냥 한 가지 이유에 불과한 것 같은데요.”
그새 귀가 어두운 장목화에게 익숙해진 듯,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작지 않았다.
“혹시 팀장님, 양범석이 우리의 외골격 장치를 가져갈까 봐 겁나십니까?”
의도적으로 장목화를 힐긋 바라본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장목화가 순간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가 그 사람을 겁낸다고?”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이 대꾸를 하기도 전에, 장목화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떠한 종속 관계도 존재하지 않아. 그가 임시적인 전쟁 권한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나보다 계급이 조금 높을 뿐,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근데 내가 왜 그를 겁내겠어?”
“그렇다면 양범석이 행동 대대 대장의 신분으로 우리를 강제적으로 징집시키거나, 앞으로의 작전에 참여시키려 한다 한들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아직 반고 바이오 내부의 세부적인 규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백새벽이 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성건우와 용여홍도 얼마 전에 막 학교를 떠나 안전부에 배치된 직원이니만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맞아.”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제니 부부장님 직속의 특수팀이야. 같은 관리층인 작전반의 총감독이라도, 이사회로부터 임시 전쟁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우리를 지휘할 수는 없지.”
제니는 안전부의 부부장으로, 그 계급은 작전반의 총감독과 같은 M1이었다. 안전부의 작전반 총감독과 부부장은 각자 맡은 역할이 완전히 달라서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었으며, 어느 작전반의 총감독이 부부장을 겸임하는 때도 있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제니라는 이름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제니는 직속상관 중의 직속상관이자,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반고 바이오 내 소수에 불과한 레드리버 인종으로, 이름뿐만 아니라 눈동자 색과 머리카락 색 모두 대부분의 직원들과 달랐다. 또한 안전부의 민간인 직원 제도를 따라 점진적으로 승급하면서 부부장에 등극한 그녀는 특례 중의 특례이기도 했다.
안전부의 민간인 직원 제도는 처음으로 직업 분배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단,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며, 대학 입학 전 육성 대상으로 지정받은 사람에게만은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제니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건우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럼 그 부장은 저희를 지휘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러자 장목화의 웃음이 살짝 어색해졌다.
“당연하지.”
그 답을 들은 후에야 안전부의 직권 구조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백새벽이 화제를 전환했다.
“만약 양범석이 저희를 징집하려고 고집한다면요? 강제적으로라도요.”
“무슨 상관이야?”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러면 곧장 떠나야지. 양범석이 날 막을 수 있을까?”
“무력을 쓰면 어떡해요?”
백새벽이 캐물었다.
장목화의 얼굴에 순간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백새벽의 얼굴을 진지하게 응시하다가 차마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이건 대형 세력의 군대지 황야유랑자들이 조직한 팀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
양범석이 정말 미쳐버리더라도, 그의 수하들은 그러지 못할 테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료를 공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안전부의 모든 직원은 똑똑히 알고 있어. 최소한 십 년 이상 수감된 채 강제 노동을 해야 하고, 심하면 사형을 당하거나 온 가족이 쫓겨나게 될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