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꿈속
장목화의 이야기를 들은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거짓말이죠, 그렇죠?”
그는 질문을 마치자마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성건우가 기계 승려 정법과 악수한 뒤 무사히 작별할 수 있었던 만큼, 꿈속에서 괴이한 죽음을 맞게 하는 괴물도 충분히 실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나와 지표면 밖에 이른 후부터, 용여홍은 이 세상이 이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신비롭고 비현실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각성자일까? 아니면 변이된 아류인이나 동물? 그들에게도 비슷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잖아.”
고개를 돌린 장목화가 성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가진 능력을 제외한다면 각성자에 대한 제 이해도는 두 사람보다 한참 뒤떨어져요.”
성건우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리며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애쉬랜드에서의 풍부한 생존 경험을 가진 그녀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백새벽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 역시 이러한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해리스 브라운과 같은 베테랑 유적 사냥꾼이 황급히 사건 현장을 떠났을 리 없겠죠.”
몇 초 더 고민하던 장목화가 성건우를 향해 말했다.
“궁금하네. 대체 어떻게 그 꿈에서 벗어난 거야?
음, 각성자의 능력을 발휘했다고 했지? 하지만 난 조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 어쩌면 그를 통해 어떤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르잖아.
개인적인 비밀이라고 생각한다면 새벽이와 여홍이에게 주위를 순찰하러 가라고 할게.
나는, 음, 나 정도면 믿을 가치가 있지 않아?”
마지막 문장은 적당한 이유를 찾지도 못했고 강압적으로 답을 요구하고 싶지도 않았던 장목화가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조잡한 변명이었다.
“별 것 아니었습니다.”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제가 이용한 능력은 다들 봤던 추리 광대 능력이었어요. 뺨을 때렸는데도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던 전 일단 그 상황이 꿈일 가능성을 배제했어요. 그리고는 차를 훔쳐서 멀리 벗어난 뒤, 날이 밝으면 다시 돌아와 팀장님과 팀원들이 원상태로 회복되었는지 확인하려 했죠.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 백미러에 비친 절 봤습니다.
그 순간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그게 정말 꿈이라면 현실과 거짓을 간파하고 그 방면의 자아 인지를 강화하면서 깨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꿈이 아닐 경우에 대비해 스스로를 위한 힌트를 적어놓기도 했고요.”
그제야 꿈속에서의 계획을 떠올린 성건우는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기록용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그렇게 꺼내든 종이 중 한 장에는 화장실에 표시까지 해둔 철강공장 폐허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텅 비어있었다.
“역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성건우가 말을 이었다.
“힌트를 쓴 뒤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한 전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조건들을 토대로 이건 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제 판단과 인지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었고, 덕분에 전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장목화는 매우 감명받은 듯 입을 열었다.
“정말 잔인하네. 스스로마저 속이다니.”
“⋯⋯.”
용여홍은 안간힘을 다한 끝에야 터져 나오려 했던 웃음을 겨우 억눌렀다.
“⋯⋯.”
그와 마찬가지로 장목화로부터 이런 평가를 들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성건우는 하마터면 하려 했던 이야기를 까먹을 뻔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말했다.
“이전까지는 이런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백미러에 비친 저를 보고 나서야 이런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게다가 추리 광대 능력도 두 종류로 나뉘죠.
하나는 확실한 사실을 이용해 목표로 하여금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저에게는 유리한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조건을 이용해, 목표로 하여금 논리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거고요.”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훌륭해. 보아하니 이번 사건으로 넌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파악하고, 그것의 영역을 넓힌 것 같네.”
성건우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순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장목화가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이상 현상이 사라졌으리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 오늘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날이 밝으면 곧장 역 남쪽으로 가죠. 팀장님과 건우는 잠을 절반밖에 자지 못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요.”
백새벽은 굉장히 침착하고도 신중하게 제안했다.
그러자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검은쥐 마을의 입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기는 어떡하죠?”
“뭘 더 어떻게 해? 일단 우리의 안전부터 보장해야지.”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게다가 꿈속의 이상 현상이 오직 우리만 노리는 것일 리는 없어. 부근에 있는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들도 이런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해. 그들의 괴이한 죽음은 당분간 이곳을 금지 구역으로 만들겠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한동안은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할 거야.
하하, 만약 그런 소문조차 듣지 못한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왔다 한들, 검은쥐 마을의 입구를 찾아내고 그 입구를 막은 바위를 옮기지는 못할걸.
이 영향이 사라질 때쯤 회사 사람도 도착할 거야. 이곳에 도착한 그들이 우리를 찾지 못한다면 신호탄을 쏘아 자신들의 도착을 알릴 테고.”
용여홍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그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들은 동이 트자마자 지프를 몰아 남쪽으로 돌아갔다.
* * *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보조석에 앉은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눈 좀 붙이면서 아직도 꿈속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지 확인해봐.
내가 계속 지켜볼 거니까 걱정 말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곧장 깨울게.”
“저 혼자서도 깰 수 있습니다.”
성건우가 자신 있는 말투로 낮게 중얼거렸다.
“뭐?”
장목화가 재차 고개를 틀었다.
그녀의 웃음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짙어졌을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오른손을 들어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내 그가 눈을 감았다.
* * *
높이 솟은 서늘하고 검은 금속 벽으로 둘러싸인 넓고 공허한 홀.
천장의 위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자리해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한편 느릿하게 회전하는 수많은 별은 꼭 하나하나의 은하를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홀의 중앙에 쏟아져 내린 별빛은 하나의 거대하고 흐릿한 인영으로 응집되었다. 두 팔을 양옆으로 뻗으면서 완벽한 대칭을 이룬 이 인영은 꼭 저울처럼 보였다.
‘하나의 대가, 세 개의 은혜’를 중얼거리는 공허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건우의 귓가에 맴돌았다.
성건우는 이 광경을 10초 정도 가만히 응시하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뭇별 홀⋯⋯.”
입을 다문 채 흐릿한 인영을 지나치면서 홀의 가장 안쪽에 이른 성건우는 묵직한 회백색 돌문 앞에 멈춰 섰다.
금속 벽에 박힌 묵직한 돌문을 마주한 성건우는 소리 없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두 손을 문에 얹었다.
그러자 돌문 위에 자리한 세 개의 홈 안에서는 반짝이는 빛이 나타났다. 고공에 자리한 별이 그곳에 떨어진 듯했다.
세 개의 별 안에서는 허상의 문자가 출렁이듯 떠올랐다가, 각각 「추리 광대」, 「억지쟁이」, 「양손 동작 불능」으로 빠르게 고정되었다.
성건우는 잠시 그것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사이 추리 광대를 대표하는 흰색 빛 덩어리는 전보다 더 밝아지고 찬란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회백색 돌문은 천천히 진동하며 묵직한 소리와 함께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일찍이 성건우를 며칠 동안이나 고생하게 했던 회백색 돌문은 그렇게 단 몇 초 만에 완전히 열려버렸다.
그는 문에 얹었던 두 손을 거둬 주머니에 꽂은 후,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은백색의 금속 계단이 얌전히 자리해 있었다. 위쪽으로 뻗어있는 그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 양옆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어둠으로 차 있었다.
“역시⋯⋯.”
낮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을 꺼낸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문 안쪽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매우 침착하고 힘차게 하나하나의 계단을 올랐다. 꾸물거리지도, 조급하게 굴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의 발소리밖에 없었다.
계단 양옆을 뒤덮은 어둠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하나하나의 계단을 얼마나 올랐을까, 성건우는 마침내 짙은 암흑 속에서 다른 색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뭇별 홀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회백색 돌문이었다. 여전히 위아래와 좌우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검은색 금속 벽에 박혀 있는 돌문에도 세 개의 홈이 나 있었다.
만약 발아래의 상황에 변화가 없었다면, 주위에 뭇별이 있었다면, 성건우는 자신이 아까 전의 그 홀로 다시 돌아온 줄 알았을 것이다.
2초간 고민하다 발걸음을 재촉한 성건우는 거의 뛰다시피 새로운 돌문 앞에 이르렀다.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그는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한 손만 문에 얹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회백색 돌문에 난 세 개의 홈 안에서는 흰색 빛이 피어오르면서 허상의 별로 응집되었다.
별 안에서 출렁이다 고정된 문자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중 추리 광대를 대표하는 흰색 빛은 나머지 두 개의 빛 덩어리보다 훨씬 밝았다.
안타깝게도 이번 회색 돌문은 가볍게 흔들리기만 할 뿐 뒤쪽으로 열리지는 않았다.
한 손으로만 문을 밀던 성건우는 나머지 한 손마저 문에 얹고 안간힘을 다해 밀었다. 온몸의 무게까지 다 실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묵직한 돌문의 진동 폭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그 틈도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손을 거둔 성건우는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밝은 추리 광대와 그에 비해 약간 어두운 억지쟁이, 양손 동작 불능을 한 번씩 바라보며 모종의 생각에 잠긴 양 고개를 끄덕였다.
곧 흰 빛 덩어리 세 개는 속속들이 어두워지면서 자취를 감추었고, 성건우의 인영 역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진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흔들리는 갑작스러운 느낌에 본능적으로 눈을 뜬 성건우는 장목화의 검고 곧은 눈썹과 맑은 두 눈동자를 보게 되었다.
“어떤 일이 있었어?”
장목화는 드디어 깨어난 성건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던 성건우가 답했다.
“아주 잘 잤습니다.”
그 답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리던 장목화는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안정시켰고, 뒷좌석 좌측에 앉은 용여홍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운전을 맡고 있던 백새벽은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속도가 붙은 지프는 널려 있는 쓰레기가 많지 않은 대로에서 거의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휴⋯⋯.”
몇 초 후,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가 말했다.
“보아하니 그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범위에서는 이미 벗어난 것 같네. 백새벽, 이 근방의 구석진 곳에 차를 세워.”
그녀가 뒷좌석의 성건우와 용여홍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우리는 앞으로 며칠 동안 이곳에서 야영할 거야. 점심부터 먹고 여홍이 너는 새벽이랑 같이 잠을 보충해. 나랑 건우는 사주 경계와 순찰을 맡을 테니.
회사 사람이 와서 신호탄을 쏘기 전까지는 이 구역에서 야외 생존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자.”
“네, 팀장님.”
성건우와 용여홍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