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5화 (55/649)

55화. 의심

서늘한 달빛 아래, 장목화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봄 죽순처럼 한 가닥 한 가닥의 굵고 거친 검은 털이 자라났다.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것을 느낀 성건우는 저도 모르게 과잉 반응을 보였다.

온 힘을 다해 뒤쪽으로 몸을 날린 그는 두 바퀴를 연거푸 구르며 지프차 머리 쪽에 이르렀다.

뒤이어 등을 말면서 반대편으로 뛰어오른 성건우는 백미러 뒤쪽에 웅크리고 앉았다.

덕분에 그는 차의 머리를 방어막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언제든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탈 수도 있었다.

“큰일 났어!”

성건우는 용여홍과 백새벽을 깨우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연달아 세 번을 외친 후 앞으로 두 걸음 나온 성건우는 상반신을 세우며 차 문을 열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차 열쇠가 없음을 깨달았다.

방금 전 교대를 할 때 새벽으로부터 차 열쇠를 건네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장목화였다.

성건우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먼 곳에서 시작된 장목화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무슨 일이야?”

다음 순간, 텐트 쪽에서 용여홍과 백새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그들의 목소리는 높낮이에서 차이가 났지만, 말투는 장목화와 완전히 똑같았다.

성건우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이마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스스로를 억지로 안정시킨 그는 자신이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으로부터 대략 몇 미터씩 떨어져 있을지를 계산해보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 자신조차 억누를 수 없는 웃음이었다.

성건우는 곧장 몸을 세우려 했다. 일어나서 각성자의 능력을 사용할 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시야에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른쪽 뺨은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얼굴에는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모종의 충동을 느낀 성건우는 다시 허리와 등을 굽히더니 주머니 안에서 펜과 기록용 종이를 꺼냈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허벅지 위에 종이를 올렸다. 굴러떨어지는 펜 뚜껑에도 신경 쓰지 않고 황급히 쓴 글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꿈이 아니라는 뜻.」

성건우가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무슨 일이야?”

성건우의 펜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고 글씨체는 점점 더 뭉개졌다. 하지만 어쨌든 그 글을 다 작성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후 종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성건우는 상반신을 세우면서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그의 눈동자는 순간 어둡고 깊게 변했다.

갈수록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빠른 속도로 할 말을 떠올린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어제 이 시간은 밤이었다. 오늘 이 시간도 밤이다.

어제 이 시간에 우리는 야영을 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는 야영을 하고 있다.

어제 이 시간에 난 꿈을 꿨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도⋯⋯.”

거울 속 자신과의 대화를 멈춘 성건우의 멍한 표정은 점차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장목화가 지프차 머리의 반대편에 이른 그때, 큰 깨달음을 얻은 그가 외쳤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도 난 꿈을 꾸고 있는 거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머릿속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폭발하는 듯했다. 강렬한 자아 인지는 그의 의식으로 하여금 환각과 같은 갖가지 화면을 관통하게 했다.

“헉!”

벌떡 일어나 앉은 성건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 그는 자신이 여전히 텐트 안의 침낭 속에 자리해 있음을 확인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표범처럼 민첩하게 침낭에서 빠져나온 성건우는 텐트의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장목화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미약한 빛만 존재하는 어두운 환경 속, 성건우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장목화의 깊고 빠르고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그 소리에 의지하여 장목화의 어깨를 잡은 성건우가 상대를 흔들며 외쳤다.

이러한 소란은 백새벽과 용여홍의 주의를 끌었다. 이들 중 한 명은 밖에 남아 경계를 계속해나갔고, 다른 한 명은 텐트 근처로 다가와 큰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성건우는 그 질문에 답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장목화를 흔들었다.

마침내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그만, 그만! 어지러워!”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성건우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때 백새벽은 이미 텐트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 덕분에 그녀는 장목화의 침낭 옆쪽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성건우와 침낭 안에 웅크려 있다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앉은 장목화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이상이라도 발견한 거야?”

백새벽이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내뱉듯 답했다.

“악몽을 꿨어⋯⋯.”

고작 악몽을 꿨다는 이유로 팀장의 잠을 방해하다니,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그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하지만 장목화도 백새벽도 그를 비웃거나 그의 말을 끊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응에 안정을 찾은 성건우가 말을 이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악몽이었어. 꿈속에서 내 싸대기를 후려쳤는데도 안 깨어나더라니까. 통증은 또렷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깨어날 수가 없었어.

각성자의 능력을 이용해서 꿈속의 판단과 인지 능력을 강화하고 나서야 겨우 깨어날 수 있었지.

꿈속에서 검은쥐 마을의 주민들은 좀비로 변했고, 팀장님과 너희들의 얼굴에서도 검은색의 거친 털이 자라났어.”

좀비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온 개념이었다.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도 악몽을 꿨어.

꿈속의 난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너희들은 모두 내 조수였지⋯⋯.”

여기까지 말을 잇던 목화는 돌연 입을 다물더니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꿈이었어. 나 역시 몇몇 디테일 때문에 꿈일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서 얼른 주사기로 날 찔렀지만, 그 통증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어.

그래서 의심을 거두고 나니 옆 실험실에서 난 사고로 인해 유독 가스가 유출됐고, 그게 온 층에 퍼지기 시작한 거야.

난 너희들을 데리고 출구로 돌진했어. 유독 가스에 노출되기 전 회사에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건우 때문에 깼고.”

말을 하는 사이 왼손을 든 그녀는 그 손을 달빛에 비춰보았다.

성건우와 근처로 다가온 백새벽은 그녀의 손아귀에 난 바늘구멍만 한 붉은 상처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상처는 약간 부어있었다.

장목화는 뒤이어 성건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처럼 성건우의 오른쪽 뺨에도 붉게 부어오른 손자국이 나 있었다.

“난 바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어⋯⋯.”

장목화가 고민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몽유병 때문에 생긴 흔적이 아냐.”

동시에 그녀는 성건우의 얼굴을 향해 왼손을 뻗으면서, 그의 오른쪽 뺨에 난 손자국과 자신의 손을 비교해보았다.

“내가 때린 것도 아니고.”

백새벽은 장목화의 손바닥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완전히 부정할 순 없어요. 지금은 지나치게 부어오른 상태라 손자국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팀장님과 건우의 손가락 길이는 거의 비슷하기도 하고요.”

“정말 내 왼손에 맞은 거라면, 건우의 오른쪽 치아는 남아나지 않았을걸?”

장목화가 왼손 손가락 끝으로 전류를 살짝 흘리며 대꾸했다.

그녀의 왼팔과 왼손은 모두 전기뱀장어형 생체 공학 의수로 이루어져 있어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했다.

백새벽은 팀장의 말에 동의했지만, 성건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려던 그때였다. 장목화가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연상되는 게 없어?”

장목화의 질문을 들은 성건우와 백새벽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혼란뿐이었다.

장목화는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해 더욱 꼿꼿한 자세를 취했다.

“이전에 그 유적 사냥꾼, 해리스 브라운, 그 대머리로부터 들은 이야기 기억해?”

장목화의 기억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당사자였던 성건우도 순간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웨이루 역 북쪽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죽어있었다는 그 이야기요?”

“그래.”

장목화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해리스 브라운이 발견한,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에 표면적인 치명상은 없었지만 얼굴에는 고통과 두려움, 혹은 괴이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고 했지.”

백새벽은 깨달음을 얻은 듯 말을 받았다.

“팀장님 말은 그들이 전부 꿈속에서, 아니, 실제적인 꿈속에서 죽었다는 말씀이세요?”

장목화는 응, 하고 답했다.

“생각해 봐, 난 꿈속에서 날 주사기로 찔렀을 뿐인데 현실에도 그 위치에 작은 상처가 나 있잖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늘구멍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꿈속에서 스스로의 뺨을 때린 건우의 얼굴에는 실제로도 또렷한 손자국이 나 있지.

만약,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야, 이런 꿈속에서 치명적인 총상을 입거나 표정을 괴이하게 만드는 유독 가스를 흡입했다면, 혹은 극도로 즐거운 상황에서 갑자기 뭔가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 현실에서도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까?”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치명상도 없는 죽음⋯⋯.”

성건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난 손자국은 일종의 스트레스성 반응이니 금방 가라앉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 멈춘 심장은 영원히 회복될 리 없었다.

말을 맺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건우가 자신의 침낭 쪽으로 다가가 외투를 걸치고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둘러멨다.

뒤이어 총의 안전장치를 푼 그는 텐트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무슨 일이야?”

경계를 맡고 있던 용여홍이 얼른 물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들어 뒤쪽의 암벽을 바라보다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어? 미심쩍은 현상이 일어났다거나?”

기억을 되돌려 보던 용여홍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없어.

근처를 지나다니는 야생 동물들이 극히 드물게 보이기는 하는데, 이건 아주 정상적인 상황이지.”

그러는 사이 그는 밝고 맑은 달빛 아래 손 모양대로 붉게 부어올라 있는 성건우의 오른쪽 뺨을 보게 되었다.

“어⋯⋯.”

어떻게 물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용여홍의 표정은 약간 괴이하게 변했다.

그때 옷차림과 장비를 갖춘 장목화가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 뒤로 백새벽도 따라 나왔다.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장목화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없습니다.”

성건우가 엄숙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용여홍의 불안한 눈빛을 무시한 채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근처의 각종 전기 신호를 감지했다.

“확실히 아무런 이상도 없군.”

잠시 후, 성건우와 백새벽의 곁으로 돌아온 그녀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잠에 들지만 않는다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아.”

용여홍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본 장목화가 자신과 성건우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용여홍은 라디오 프로그램 속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두려워하면서도 선뜻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솔직히 팀장이 아니라 성건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농담하지 마, 그런 이야기 따위, 하나도 안 웃겨!

가서 질서 지도자에게 말씀해보시지! 그들이 네 이야기를 믿을지 보자고!’

질서 지도자는 반고 바이오 내부의 질서를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몸싸움이나 범죄 등의 처리는 모두 그들의 소관이었다.

내부 생태 구역의 각 층에는 질서감독 주관자가 한 명씩 존재했고, 그에게는 질서감독 팀장 세 명이 딸렸으며, 각 팀장 아래로는 몇몇의 질서 지도자가 존재했다.

그런가 하면 십수 개에서 스무 개 층은 하나의 지구로 묶였으며, 각 지구에는 질서감독국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질서감독국 위에 자리한 것이 바로 이사회에 종속된 질서감독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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