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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53화 (53/649)

53화. 하이에나 (1)

잠시 후, 장목화가 성건우의 어깨를 살짝 치며 왼편의 길을 가리켰다.

귀가 좋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클지 알 수 없는 까닭에, 말을 하는 대신 작은 동작으로 의사를 표현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린 성건우는 의뭉스러워하면서도 위축된 남자 황야유랑자 두 명을 볼 수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구체적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피부는 거칠고 갈라진 데다가 새카맣게 타 있었고, 잔뜩 기름진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뻗쳐 있었다. 얼굴에 난 수염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깎지 않은 건지, 내력이 불분명한 각종 오염 물질이 묻어있었다.

그중 한 명은 구멍 난 짙은 파란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안에 입은 셔츠는 뻣뻣해질 정도로 기름에 절어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검은색 외투는 지나치게 작아 허리에도 미치지 않았고, 신발은 국방색 고무장화였다. 그의 허리에는 금속광택이 번득이는 검은색 권총이 꽂혀 있었으며, 손에는 길고 납작한 칼이 들려 있었다.

성건우가 보기에 상대가 쥔 칼은 교과서에서 보았던 마체테와 비슷한 것 같았다.

다른 한 명은 몸에 꼭 맞는 오래된 검은색 솜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 역시 곳곳에 큰 구멍이 나 있어, 안쪽의 뭉쳐진 새카만 솜이 다 들여다보였다. 총기가 없는 듯 보이는 그는 허리춤에 아주 예리하게 갈린 단도를 꽂은 채, 두 손으로는 야구 방망이를 하나 쥐고 있었다. 또한 그의 어깨에는 꾀죄죄하고 쪼글쪼글한 부대가 걸려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성건우가 잔뜩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구릉 위로 올라온 이들은 이전까지 보았던 황야유랑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저 조금 더 볼썽사나울 뿐이었다.

“나⋯⋯.”

장목화가 짧게 소리를 내었다. 그 말투에는 질문을 하려는 듯한 의도가 어려 있었다.

빠르게 팀장의 의도를 알아차린 성건우가 얼른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낮게요.”

두 차례의 조정을 거친 장목화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두 황야유랑자들의 장비,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되지 않아?”

“황야유랑자들의 장비가 형편없는 건 정상적인 일 아닙니까?”

성건우가 반문했다.

“맞아.”

장목화는 부인하지 않고 두 유랑자를 바라보는 한편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중요한 건 저들의 행위와 장비가 모순된다는 거야. 일반적인 상황에서 권총 한 자루랑 냉병기 몇 개만을 가지고 있는 황야유랑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곳에 절대 먼저 나서지 않아. 전투가 발발하면 그 정도의 장비로는 본인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할 테니까.

저런 황야유랑자들은 보통 한나절, 심지어는 하루가 지난 후에야 이상 상황이 벌어진 곳에 다가와 남아 있는 찌꺼기를 탐하지. 시간이 좀 지난 상태라면 경쟁자도 얼마 없고, 어느 정도 저항할 수도 있으니까.”

성건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부분의 동물이 맹수가 사냥한 뒤 남긴 썩은 시체를 먹이로 삼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저 두 황야유랑자가 누군가의 협박으로 이곳에 파견된 이들이라는 말씀이시죠?”

아무런 능력도 없는 황야유랑자를 이곳으로 보내 상황을 조사하게 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전 속에서도 지도를 게을리하지 않는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저들의 태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게 할 수 있겠어?”

성건우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황야유랑자 두 명을 바라보며 솔직하게 답했다.

“한 명이라면 문제없어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에 추리에 실패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둘을 분리해야 해요. 일단 한 명에게만 능력을 발휘하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나머지 한 명에게 마저 능력을 발휘하면 됩니다.”

장목화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해보였다.

“그거야 간단해. 총을 바꾸자.”

말을 마친 그녀가 유탄발사기를 성건우의 돌격 소총으로 바꾸었다.

다음 순간,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장목화가 두 황야유랑자의 앞쪽에 착지했다.

착지한 그녀는 빠르게 돌격 소총을 들어 올리더니, 그 총구를 구멍 난 스웨터를 입고 허리에 권총을 찬 사내에게 겨눴다.

그와 거의 동시에 허리를 돌린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날렸다. 그녀의 다리는 마치 채찍처럼 세차게 휘둘러졌다.

이 발차기에 맞은 사람은 없었지만, 야구 방망이를 쥐고 있던 사내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장목화의 손에 들린 돌격 소총을 본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료를 버리더니, 데굴데굴 구르고 기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먼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편 권총과 마체테를 가지고 있는 사내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돌격 소총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때,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악의는 없으니까.”

장목화에게 총을 내리라는 신호를 준 그는 맞은편의 상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말을 이었다.

“봐, 너희는 정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고, 우리도 정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어.

너희는 인간이고 우리도 인간이야.

그러니까⋯⋯.”

점차 표정의 변화를 보이던 사내가 끝내 웃으며 외쳤다.

“형제야!”

그 말을 외치면서 무의식적으로 장목화를 돌아본 그는 이미 돌격 소총을 거두고 어떠한 적대심도 어리지 않은 표정을 드러낸 상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추리와 판단을 더욱 신뢰했다.

“형제야!”

상대를 따라 열정적으로 외친 성건우가 물었다.

“누가 너희들을 이곳에 보낸 거야?”

마체테를 쥔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 늙은 박쥐 때문에 억지로 떠밀려 온 거라니까! 하루만 더 기다리자고, 하루만 더 기다렸다 가겠다고 그렇게나 말했는데도 듣지를 않아!”

무의식적으로 늙은 박쥐가 누구냐고 물으려 했던 장목화는 이내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사실 성건우 역시 그 질문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추리 능력은 그래서는 상대와의 형제 관계가 깨지게 될 것이며, 상대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상대의 형제라면 늙은 박쥐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 박쥐도 참⋯⋯ 왜 그렇게 급하게 구는 거야?”

“늙은 박쥐라고 별수 있겠어? 그도 누군가한테 닦달을 당한 거지!”

마체테를 쥐고 검은 권총을 찬 사내는 본인의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울상을 지었다.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녀석들인데, 누가 감히 저항하겠어⋯⋯.”

“녀석들?”

성건우는 의도적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돌아가지 못한 지 꽤 되어서 그런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녀석들이라는 게 누구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마체테를 쥔 사내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걸렸다. 맞은편에 자리한 형제가 돌아오지 못한 지 꽤 되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몇 초 후, 그가 또 한 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말로 하자면 길어. 하이에나를 비롯한 그 녀석들이 온 이래, 우리는 잠을 청할 땅굴조차 잃었어. 밤중에 얼어 죽은 노인만 해도 여럿이야.”

하이에나라는 이름을 언급한 그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들었을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이에나라⋯⋯.’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경험 많은 팀장이 들어본 별명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장목화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낯빛으로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에나 그 개 같은 새끼! 그런 놈을 누가 낳았는지 그 얼굴이 궁금하네!”

성건우는 일부러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마체테를 쥔 사내는 그를 따라 욕을 하려다가, 끝내 그럴 용기는 나지 않는다는 듯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하이에나에게는 엄마가 없어.”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사내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나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고, 하이에나도 강도가 되기 전이었지.

소문에 따르면 그의 엄마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아류인 한 무리에게 잡아먹혔다고 하더라고.”

눈썹을 살짝 찌푸린 성건우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쥐인간들의 짓이었어?”

그는 장목화를 통해 검은쥐 마을의 주민들이 주위의 인간들에게 ‘쥐인간’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다.

이 역시 악의가 가득 어린 멸칭이었다.

“아니.”

마체테를 쥔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쥐인간들은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이나 살아왔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은 이곳에 있었는데, 채집과 구멍 파기에 능하고 못 찾는 것도, 못 먹는 것도 없지. 곳곳에 몰려다니는 그런 아류인들은 아냐.”

몇 초간 침묵하던 성건우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하이에나가 온 이유는 뭐야?”

“웨, 웨이루 역에서 뭔가를 발견했대. 늙은 박쥐가 물었지만, 하이에나의 사람들 역시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사람을 보내 조사 중이라고 답했어.”

마체테를 쥔 사내는 ‘조사’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자신의 임무를 떠올린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무런 결과도 보고하지 못한다면 하이에나의 사람들은 날 개먹이로 던져버릴지도 몰라.”

“개?”

성건우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마체테를 쥔 사내는 가래를 뱉어내며 답했다.

“하이에나가 아들처럼 키우는 그 험악한 개 말이야!

그는 언제나 우리더러 쓸모없다고, 일대일로 싸우는 상황에서는 그 개조차 이기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까 차라리 그 개의 먹이가 되는 편이 낫다고 해.”

원망을 마친 그가 기대감이 어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형제, 혹시 이곳에서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

“아무것도 없어.”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이전에 불꽃을 터뜨렸던 그들은 일찍이 철수했어. 남은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렇구나. 그럼 그들은 왜 불꽃을 터뜨린 거지? 음⋯⋯ 늙은 박쥐의 말에 의하면 그건 무슨 신호탄이라고 하던데?”

마체테를 쥔 사내는 곧장 돌아가고 싶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건우는 아까 전 야구 방망이를 쥐고 있던 사내가 도망친 쪽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누가 알겠어?

그냥 돌아가. 하이에나가 못 믿겠다고 한다면, 그에게 직접 가서 조사해보라고 하면 되잖아.

아 참, 아까 나 때문에 놀라서 도망친 그 형제를 따라잡으면 잘 좀 설명해줘.”

“알겠어.”

마체테를 쥔 사내가 가슴팍을 두드렸다.

“너희는 언제 돌아오려고?”

“곧 갈 거야, 곧.”

성건우의 입꼬리가 조금씩 말려 올라갔다.

“돌아가서 꼭 하이에나를 방문하러 가겠다고 늙은 박쥐한테 전하는 것도 잊지 말고.”

“방문⋯⋯?”

마체테를 쥔 사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으나, 성건우가 들어 올린 유탄발사기와 장목화가 쥔 돌격 소총을 보고 영리하게 생각을 포기했다.

황급히 돌아선 그가 손을 흔들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성건우도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호응했다.

마체테를 쥔 사내가 길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를 눈으로 배웅하던 장목화가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길 가운데 떡하고 버티고 서서 뭐해? 다른 사람들한테 아예 자랑을 하시게?”

구릉과 작은 언덕 사이에 제대로 닦인 길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며 자연스레 형성된 큰길은 존재했다.

장목화는 말을 하는 사이 구릉 옆쪽의 비교적 은밀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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