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수주대토
꾸물거리지 않고 아영지에서 나온 성건우와 장목화는 야산 아래로 향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각자 두 자루의 권총을 찬 그들 중 한 명은 돌격 소총을 멨고, 다른 한 명은 유탄발사기를 들었다.
검은쥐 마을이 자리한 야산에서 나와 각종 식물이 우거진 구릉 지대에 이르렀을 무렵,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팀장님, 왜 회사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그냥 우리가 나서서 습격자를 추적하면 안 되는 겁니까?”
걸음을 늦춘 장목화가 몸을 반쯤 틀더니 상당히 직접적으로 말했다.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지.”
“우리에게는 외골격 장치도 있고, 화력도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그 습격자 팀에 충분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성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목화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답했다.
“네가 화난 건 알아.”
이내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빠르게 숨을 뱉어내었다.
“나도 그래.
하지만 총알에는 눈이 없어. 잘생겼다는 이유로, 신입이라는 이유로 널 봐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더 노리지.
게다가 습격자들에게도 군용 외골격 장치가 있을지 또 어떻게 알아? 열압력탄도 가지고 있는 자들이야. 다른 강력한 장비를 더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지.”
“일단 그들을 쫓고, 정탐하고, 상황을 확인한 후에 공격할지 말지를 결정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정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면 일단 물러나서 회사 사람을 기다리면 되죠.”
성건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홱 돌아선 장목화가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추적과 정탐을 그렇게 간단한 일로 여겨서는 안 돼.
안전부 내 정탐 담당자는 해당 팀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몇 사람 중 한 명이야.
만약 너랑 여홍이가 모두 풍부한 경험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한 번 시도해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정탐 중에 들키지 않을 거라고, 그로 인한 전투가 발발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어?
설립된 지 오래된 팀에서도 모든 팀원이 실수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못 해. 그중 누군가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나머지 팀원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뿐이지.
우리 구조팀이 이런 일에 주저하지 않고 나서기 위해서는, 나와 새벽이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너와 여홍이가 빠르게 그 실수를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해.”
장목화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을 쫓는 성건우를 홱 노려보며 덧붙였다.
“넌 아까도 여홍이를 구조팀에서 내보내려고 그 애의 자존심을 건드렸잖아.
그 습격자들을 추적하는 일이 여홍이한테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
아, 알겠다. 그런 상황에 봉착하면 네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습격자들을 처리하는 동안, 여홍이는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게 하려고?”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모든 인류를 구하는 게 목표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런 위험에 무턱대고 뛰어들려고 그래? 만약 네가 그 현장에서 죽어버리면, 누구더러 그 신성한 사명을 부담하라고?”
“⋯⋯팀장님,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그렇게 허울 좋게 포장하지 마세요.”
하마터면 상대에게 말릴 뻔한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후임자는 자연히 나타나게 마련이죠.”
“⋯⋯농담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난 너희들의 책임자야. 너와 여홍이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잖아. 이대로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하하, 회사의 입장에서도 손해고.”
“그럼 팀장님은 애가 있으십니까? 팀장님도 수시로 위험에 뛰어드시잖습니까.”
장목화는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없어.
처음으로 공동 결혼에 참가했을 때 난 병원에 누워있었거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지. 그러다가 지원자가 되어 유전자 개조를 받으면서 겨우 살아난 거야. 하하, 지원을 안 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니 한 번 도박을 해 보자는 마음이었지. 운이 좋았어.
그 후로는 유전자 개조 결과가 불분명한 까닭에 어떤 잠재적인 문제가 있을지 몰라서 조금 더 관찰해보기로 했어. 각종 실험을 통해 유전적 안전성 등의 설득력이 있는 데이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여태까지 줄곧 공동 결혼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너랑 나랑 같냐? 난 위험에 뛰어들더라도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움직인단 말이야.”
그녀는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다는 듯 재차 화제를 전환했다.
“너는⋯⋯.”
장목화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거 때문에 공동 결혼을 포기한 거야?”
성건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확실히 그런 방면으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 장목화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너도 알고는 있구나?”
성건우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평소에 보이는 비정상적인 모습은 대부분 의도한 겁니다.”
“왜?”
장목화가 물었다.
성건우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내다보았다.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고, 한 여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거든요.”
본능적으로 아, 하고 입을 벌렸던 장목화는 빠르게 입을 다문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거침없는 걸음으로 관목 숲을 빙 돌며 여유롭게 웃음을 흘렸다.
“내게 숨겨진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친근하고 편한 느낌을 줘서, 마음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걱정을 내뱉고 싶게 하는 재능 말이야.”
“반드시 지켜야 하는 비밀 같은 것도 아닌데요, 뭐.”
성건우는 장목화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그녀 덕분에 방금 전의 대화로 형성된 분위기에서 빠져나왔다.
“하하, 농담이야.”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린 다 같이 두 차례의 위험한 상황을 겪었잖아. 넌 각성자라는 비밀까지 밝혔고. 그래서 서로에게 꽤 두터운 믿음이 쌓인 거야.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빠르게 좁히는 방법은 비밀을 공유하는 거라는 말 못 들어봤어? 게다가 우리는 고난을 같이한 친구이기도 하지.”
방금 전까지 내내 진지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성건우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믿음이 제가 각성자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
자세히 회상해보던 장목화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건우가 기계 승려 정법과 악수를 하며 작별을 하던 그 광경은 기억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그의 말에 따르면 순환 증명을 해줄 주위의 사람이나 상황이 존재할 경우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는 스스로 이상을 알아차릴 방법이 거의 없다고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빠져나온 후에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하, 농담입니다.”
성건우가 장목화를 흉내 내며 말했다.
장목화는 그런 그를 팩 노려보았다.
“하마터면 총을 뽑을 뻔한 거 알아?”
이내 시선을 거둔 그녀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정말 농담이었다고 해도 난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야겠어. 스스로 몇 가지 논리적인 검증을 해보면 되나?”
“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매일 종이에, 혹은 칩에 중요한 정보를 기록해두고 잠들기 전에 확인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전후에 모순이 생기면 곧장 깨어나게 되거든요. 일기를 쓰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죠.
각성자의 능력은 만능이 아니니까요.”
성건우가 답했다.
장목화는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대신 건우와 함께 구릉 지대에서 단서를 탐색했다.
* * *
그렇게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위 구역은 지나치게 넓고 복잡해. 우리 둘이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면서 탐색하려 했다가는, 꼬박 보름은 들여야 조금이라도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성건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팀장의 얼굴에 걸린 웃음기를 통해, 그녀에게 이미 방법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건우가 예상했던 것처럼, 장목화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전에 긴급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그 구릉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말에 뭔가를 어렴풋이 파악한 성건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그곳에서는 분명 적잖은 유적 사냥꾼 및 황야유랑자들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들에게 정보를 구하면서 최근 이 주변에서 대형 강도단이나 위험한 녀석들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지.”
그녀는 정법에게 중상을 입혔을 때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약 네가 그 습격자 팀의 수장이라고 생각해봐. 엄청난 일을 벌여놓고 자신들의 흔적을 싹 치웠던 그곳에 무슨 이상이 생겼단 말이야. 그럼 자기 팀과는 상관없는 사람 몇몇을 긴급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구역으로 보내 구체적인 상황을 조사하게 하지 않겠어? 수많은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들이 오가는 이곳에 그런 사람들 몇몇을 보내더라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 아냐.
그런 이들을 통해 조사를 진행한다면, 검은쥐 마을을 관장하고 있던 배후 세력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리 준비를 할 수도 있잖아.”
깨달음을 얻은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핵심 구성원을 보내지도, 포로로 붙잡혀 있는 이들을 이용하지도 않을 거예요. 정말로 이 부근에서 활동하는 황야유랑자를 직접 고용하려 할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래야만 긴급신호탄이 함정이었다고 한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드넓은 호수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물 한 방울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한 법이었다.
장목화가 그런 제안을 한 이유를 파악한 성건우는 약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팀장님, 이런 생각은 일찍부터 하셨을 텐데 왜 바로 그곳을 지키려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들이 그렇게 빨리 도착할 리 없잖아? 그곳에 못 박힌 채 가만히 기다리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야. 그보다는 너희들에게 단서 탐색 훈련을 시키는 게 낫지.”
장목화는 손목을 돌려 검은 전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그쪽으로 가보자.”
* * *
긴급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구릉으로 돌아가는 동안, 성건우는 이전까지 그들이 탐색을 진행했던 곳도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방향을 살짝 튼 두 사람이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십 분에 불과했다.
이는 목화가 처음부터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는 뜻이었으며, 심지어는 어떤 길로 움직일지도 다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몇 분간 주위를 관찰하다 가장 좋은 장소를 찾은 성건우와 장목화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이 구릉으로 통하는 몇 갈래의 길을 감시했다.
그로부터 약 십오 분이 더 지났을 무렵, 유적 사냥꾼들과 황야유랑자들이 속속 이 구릉의 꼭대기로 올라왔다.
그들은 모두 매우 조심하고 있었다. 서로 간의 경계를 뚜렷하게 유지하는 한편 상대의 경계선을 침범하려 하지도 않았다. 주위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주먹다짐부터 하는 건 너무나 바보 같은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