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조 짜기
성건우는 밖으로 나와 대략적인 상황을 용여홍에게 전달한 뒤 나서서 물었다.
“팀장님, 이제 뭘 해야 하죠? 주변을 탐색하면서 사람을 죽인 흔적이 있는지 살피는 것 말고요.”
장목화는 동굴을 돌아보며 답했다.
“이건 아주 중대한 사건이야. 차에 긴급신호탄 있지? 그걸 쏴서 회사에 이쪽의 상황을 알려야 해. 음, 좀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 그래야 한참 멀리 있는 회사 외부의 초소에서 신호를 확인하지는 못하더라도 곳곳에 있는 종속 세력이 보고 전보를 때리겠지.”
“하지만 그러면 여러 황야유랑자와 강도단, 유적 사냥꾼들까지 끌어들이게 될 텐데요⋯⋯.”
백새벽이 걱정스럽다는 듯 검은쥐 마을 입구를 살피며 말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겠지. 겨우내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하는 녀석들에게 저들은 좋은 고기니까. 깨끗이 씻어서 포를 뜨고 잘 말리면, 거뜬히 겨울을 날 수 있을걸.”
“팀장님, 말씀 좀⋯⋯.”
용여홍은 못 참겠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장목화는 그런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일부러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너랑 건우가 최대한 빨리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도록. 참혹한 현장을 보더라도 강한 충격을 받지 않고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하, 애쉬랜드에서는 이런 사건의 발생 빈도가 결코 낮지 않거든.”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이렇게 하자. 근처의 야산이나 언덕 꼭대기에서 신호탄을 쏴서,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들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거야.
회사에서는 이 구역의 협력자라고는 검은쥐 마을 하나뿐이니까, 여기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어디에서 긴급신호탄을 쏘든 가장 먼저 검은쥐 마을을 떠올리겠지.”
말을 잇던 장목화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용여홍에게 지시했다.
“넌 주위에서 좀 큰 바위를 찾아서 동굴 입구를 막아. 아, 대피용 통로의 입구들도 막아야겠다. 그래야 냄새를 맡고 찾아와 현장을 파괴할 야생 동물들을 막고, 근처를 수색하던 유적 사냥꾼 및 황야유랑자들이 저 동굴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 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라면 설령 동굴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한들, 입구를 막은 바위를 옮기기는 상당히 힘들 거야. 회사 사람들은 전문가들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고.”
어렵지 않게 팀장의 말을 이해한 용여홍은 인간으로서는 들 수 없는, 반드시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상태에서만 옮길 수 있는 거대한 바위를 찾기 시작했다.
외부에 있던 시체까지 검은쥐 마을 안으로 옮겨놓은 장목화와 성건우, 그리고 백새벽은 핏자국을 처리했다. 뒤이어 검은 금속 골조에 싸인 용여홍이 바위를 옮겨와 일단 대피용 통로의 입구를 막고 동굴의 입구까지 봉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좋아, 이제 지프로 돌아가서 다른 곳에서 신호탄을 터뜨리자.”
장목화는 동굴의 입구를 막은 바위를 몇 초간 응시하다가 돌아섰다.
그러다 차에 오르기 직전 돌연 우뚝 멈춰선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신호탄을 쏜 후에는 야영을 할 주위 은신처를 찾아야 해.
그리고 뜻밖의 상황을 방지하고 현장의 훼손을 막기 위해 회사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무를 거야. 그 김에 도시 폐허와 승려교단의 정보도 보고하고.”
이러한 계획에 대해 팀원들은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며칠, 혹은 보름이 지연되더라도 상관없는 정수 장치 필터칩 배달보다 이쪽의 상황이 훨씬 더 중요했다.
“이삼일은 기다려야 할 거야.”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잘됐어. 그 사이에 너희들의 야외 생존 능력을 단련시키면 되니까.”
성건우와 용여홍이 뭐라도 답을 하기도 전 차문을 연 그녀가 운전석에 올랐다.
* * *
십여 분 후, 구조팀은 서남쪽에 위치한 언덕 꼭대기에 이르렀다.
장목화는 곧장 유탄발사기를 이용해 구조팀이 가지고 있는 긴급신호탄을 쏘는 대신, 지나가던 구름이 해를 가릴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다 사방이 약간 어둑해지고 나서야 방아쇠를 당겼다.
펑, 소리와 함께 눈부신 붉은색 빛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피에 굶주린 듯 보이는, 만개한 꽃 한 송이 같았다.
긴급신호탄을 쏜 구조팀은 지프를 타고 검은쥐 마을이 자리한 야산으로 돌아간 뒤, 산허리에 자리한 으슥한 곳에다 야영지를 마련했다. 지대가 높은 이곳에서는 작은 숲이 내려다보였기 때문에,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들이 다가와 동굴 입구에 접근하는지 살필 수 있었다.
외골격 장치를 벗은 용여홍이 텐트를 다 친 후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뭔데?”
장목화는 신입의 질문에 기꺼이 응했다.
용여홍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 사람들, 왜 굳이 검은쥐 마을을 습격했을까요? 최근에 발견된 구세계 도시 폐허에서는 더 쉽고 더 많이 자원을 얻을 수 있으니까, 충분한 무기를 가진 검은쥐 마을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단 말이죠. 팀장님도 그러셨잖아요? 지금은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가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맹까지 맺을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폐허 속의 잠재된 위험에 대항할 도우미 한 명 한 명이 간절한 때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대전제는 그렇다 해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분석이 필요해. 내가 전에 구세계의 책을 한 권 본 적이 있어. 그 책에 따르면 현존하는 원칙, 개념, 상황을 뻣뻣하게 모방할 뿐 사물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그에 따르는 특수성을 분석하지 않는 경향을 교조주의라고 하더라.
검은쥐 마을 사건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야.
첫째, 우리는 방금 분석을 통해 습격자 팀은 적어도 서른 명 이상, 혹은 대량의 부속 구성원을 거느린 일고여덟 명의 핵심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예측했어. 어느 쪽이든 꽤 강한 자들이겠지. 그리고 현장에서 확인 가능한 무기 및 탄약 보유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무장은 일반적인 유적 사냥꾼 팀이나 황야유랑자들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될 정도야.
둘째, 검은쥐 마을은 아류인의 거점이야. 수많은 사람이 새로 발견된 도시 폐허로 몰려드는 이때 그곳을 탐색하려 할 리 없지. 기껏해야 외곽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데 그칠 뿐, 습격자 팀이 원하는 총알받이가 될 수는 없어.
이런 상황에서 그 습격자 팀이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손해만 보고도 검은쥐 마을의 주민들을 처리해 그곳에 있는 적잖은 자원을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면, 이러한 참사를 일으킬 이유로는 충분하지.
그러면 너무나 위험해서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 도시 폐허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만족할만한 수확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용여홍을 본 장목화가 덧붙였다.
“그 외에 다른 가능성도 아주 많아. 예컨대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모든 아류인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게 된 이들이었다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그들을 죽이려 했겠지. 새로운 도시 폐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한 채, 웨이루 역 북쪽에서 울려 퍼진 기이한 포효를 따라 이동하던 중에 이곳에 이르게 되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웨이루 역 북쪽 구역에 가까운 탓에 가장 먼저 이상 현상을 감지한 검은쥐 마을에서 조사 차 파견한 몇몇 주민이, 습격자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갖기를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지.”
장목화의 이야기에 용여홍은 급기야 현기증까지 느꼈지만, 팀장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각 방면의 상황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존재했다.
더 이상 설명을 이어나가는 대신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두 명씩 한 조를 이루어 교대로 움직이자.
야영지를 담당하는 조는 지프를 지키는 한편 동굴 구역을 감시하고, 외부 활동 조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살인 흔적이나 다른 단서를 찾는 거야.
음, 이번에는 나랑 여홍이, 새벽이랑 건우, 이렇게 조를 짜도록 하자고.”
그 말에 용여홍이 물었다.
“왜요?”
곁에 있던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약하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 아냐?”
“⋯⋯.”
용여홍은 한 방 맞고도 반격할 수 없는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조를 새롭게 짠 이유는 명백했다.
각성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상당히 침착한 성건우는 유전자 개량자의 체력, 에너지, 신체 능력, 거기다 천부적인 재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목표 대상이 근거리에 있는 상황에서는 백새벽보다도 훨씬 강했지만, 일정 범위를 벗어난 목표 대상 앞에서는 저격에 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백새벽이 그보다 더 강한 편이었으므로 실력으로 따지자면 구조팀 내 2, 3위를 다투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팀에서 가장 강한 장목화가 가장 약한 용여홍과 한 조를 이룬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야 용여홍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으며, 두 조의 실력도 비슷해졌다.
용여홍을 비웃는 성건우를 노려보던 장목화가 곧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때, 사주 경계를 맡고 있던 백새벽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팀장님, 사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분간은 지프를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니, 태양열 충전기로 예비용 배터리를 충전하면 돼요. 그렇게 충전한 예비용 배터리가 있는 한, 외골격 장치의 배터리가 떨어져서 필요할 때 쓰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네.”
장목화가 웃으며 용여홍에게 말했다.
“그럼 넌 계속해서 새벽이랑 한 조를 이뤄.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외골격 장치를 꼭 착용하고. 하하, 그걸 착용한 상태에서는 네가 우리 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잖아. 역시 장비가 제일 중요해. ‘군자는 태어날 때 특별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사물을 잘 사용할 따름이다’라는 고문(古文)도 있잖아.”
빠르게 기력을 회복한 용여홍은 팀장의 말에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성건우는 남들과는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저는 왜 그런 고문을 배운 적이 없죠?”
백새벽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던 장목화가 답했다.
“참고 서적, 참고 서적에서 봤다.”
장목화의 말대로 그녀의 아버지가 생물학자였다면, 최소한 관리층에서 한 단계 낮은 D9급 직원이었을 것이다. 용여홍은 팀장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으리라 짐작했다.
성건우 역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해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새벽이랑 여홍이는 야영지에 남아 검은쥐 마을을 감시해. 나랑 건우는 외부 수색을 하고 올 테니까.”
“예, 팀장님!”
용여홍과 백새벽이 동시에 큰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