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9화 (49/649)

49화. 현장

“⋯⋯알겠다.”

장목화가 자조했다.

“내 모습을 보고 더 무서워졌구나.”

소리 없이 작은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말했다.

“네가 말한 것 중 하나는 사실이야. 그 지원자들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못했어.”

지프 안의 분위기는 순간 묵직하게 가라앉았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몇 초 후,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바라본 장목화가 원망하듯 말했다.

“이런 타이밍에는 왜 농담도 안 해?”

성건우는 정색하며 답했다.

“전 인류를 구제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화제로는 절대 농담하지 않습니다.”

“⋯⋯하긴.”

장목화는 다시 똑바로 앉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녀가 전방을 가리켰다.

“왼쪽으로 꺾어서 산으로 들어가야 해.”

* * *

그곳에 이르자 검은 늪 황야에는 이어진 여러 개의 구릉이 나타났다. 개중 더러는 야산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도였는데, 검은쥐 마을은 그 야산에 자리해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는 사이, 장목화는 못 참겠다는 듯 차창을 내렸다.

“정말이지, 무지하게 울퉁불퉁하네.

이래서는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섀시를 대대적으로 수리해야겠어.”

불만을 늘어놓던 장목화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고개를 살짝 돌린 그녀는 감지된 신호에 집중하더니 미간을 구겼다.

“검은쥐 마을의 전기 신호가 안타까울 정도로 적어.”

이는 검은쥐 마을이 그녀의 감지 범위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자, 그곳과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차창에 얹었다.

“웨이루 역 북쪽의 이상 현상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요?”

이곳은 웨이루 역으로부터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한나절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투는 전보다 훨씬 묵직했다.

“팀장님, 외골격 장치가 필요할까요?”

용여홍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대신 비교적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

장목화는 알 수 없는 상황에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네가 착용해.”

“건우가 아니라요?”

용여홍이 물었다.

“건우는 나랑 같이 검은쥐 마을로 들어간다. 외골격 장치는 들어갈 수 없어. 음,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테니까.”

장목화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의도 표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성건우는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고도로 경계했다.

용여홍이 외골격 장치의 착용을 마치자, 지프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로부터 2, 3분 후, 장목화가 명령했다.

“멈춰.”

그녀는 전방의 숲과 관목을 가리켰다.

“검은쥐 마을은 저쪽에 있다. 용여홍, 앞장서.”

“예, 팀장님!”

용여홍이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다.

* * *

상대적으로 빽빽한 숲에 진입한 구조팀 전원이 몇 분 정도 전진했을 때였다. 그들의 코끝에 돌연 익숙한 냄새가 닿았다.

피 냄새였다.

“골치 아프게 됐군⋯⋯.”

장목화는 상황을 짐작한 듯 중얼거렸다.

유탄발사기를 든 그녀는 숲의 반대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자리한 것은 회색빛이 도는 노란색 절벽이었다. 나무와 잡초에 가려진 그 절벽 어딘가에는 시커먼 동굴이 하나 있었으며, 동굴 안쪽에서는 더 짙은 피 냄새가 풍겼다.

“저기가 검은쥐 마을이야.”

장목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을 슬쩍 살핀 용여홍은 외골격 장치가 검은쥐 마을 안에서 소용이 없을 거라는 장목화의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동굴 입구의 높이는 14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었다. 외골격 장치를 아무리 조정한다 한들 그 높이에 맞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높이는 더 낮아질 것이 분명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사람은 본질적으로는 동굴인 검은쥐 마을에 들어간 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투력 역시 자연히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동굴 근처에 이르기도 전, 성건우와 장목화는 동시에 왼쪽을 돌아보았다. 그쪽의 나무 아래에는 시체 두 구가 쓰러져 있었다.

아주 왜소하고 굽은 몸을 가진 그들의 옷은 싹 벗겨져 있었다.

그들의 누런 손톱은 날카롭고도 단단했으며 몸은 검은 털로 덮여 있어, 언뜻 보면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거대해진 쥐 같았다.

하지만 빽빽하게 나 있지는 않은 털 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피부는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두 시체의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적개심이 느껴졌다. 그들의 몸과 주위에 흩뿌려져 있는 건 정상인의 것과 다를 바 없는 피였다.

성건우는 수북한 털과 왜소한 몸, 기이한 손톱,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를 제외한다면 이 검은쥐 마을 주민과 자신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용여홍은 시체를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역겨움에 감히 그것을 똑바로 볼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마음을 잘 다스렸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전부 다 죽은 건 아니겠지⋯⋯.”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튼 장목화는 시커먼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당장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아무래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안에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을지 이미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쪼그려 앉아 시체를 살피던 백새벽이 고개를 들었다.

“총에 맞아 죽었네요.”

눈을 가늘게 뜬 장목화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뒤이어 그녀는 숨을 작게 들이마시며 검은쥐 마을 입구로 향했다.

따로 분부하지도 않았지만 성건우는 그런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 * *

동굴 입구 앞에 이르렀을 때 걸음을 멈춘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용여홍에게 말했다.

“넌 여기에서 경계를 맡아.”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이렇게 덧붙였다.

“숲 밖을 수시로 살펴야 해. 지프를 잃으면 나나 새벽이는 괜찮지만 너희들은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인간은 점진적인 변화는 나름 잘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갑작스럽게 지옥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쉽게 무너져 내리고 말거든.”

“예, 팀장님!”

검은쥐 마을 밖에 남아있으라는 지시에 용여홍은 실망하기는커녕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에서 죽어있는 두 주민을 통해 동굴 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한 용여홍은 그 광경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에 치료가 필요한 트라우마를 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용여홍에게 지시를 내린 뒤 곧장 돌아선 장목화가 허리를 굽히며 140센티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성건우와 백새벽도 각자의 무기를 쥔 채 장목화의 뒤를 따랐다. 허리는 물론 무릎까지 살짝 굽힌 탓에 걷는 것조차 어려운 성건우와 달리, 백새벽은 비교적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훈련 가이드에 따르면 일단 외부 관찰부터 진행하면서 대략적인 상황을 확인한 후 진입해야 했다. 하지만 이 팀의 팀장에게는 미약한 전기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장목화가 그간 보여준 여러 모습 덕분에 해당 능력에 대한 팀원들의 신뢰도도 상당히 높았다.

바깥의 자연광이 들어오는 동굴 입구에서는 어렵사리 주위를 살필 수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앞으로 뻗은 자신의 손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이때 장목화는 은백색의 오돌토돌한 외각으로 덮인 손전등을 꺼내 스위치를 켰다.

손전등에서 발산된 노란빛은 전방의 어딘가를 비추었다.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합쳐진 그 빛 아래, 성건우는 눈앞의 광경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 안은 나름 넓은 편이었다. 저 안쪽은 여전히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곳을 지탱하고 있었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하나하나의 석주는 이미 부러져 있었다. 지면을 뒤덮고 있는 것은 동굴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대량의 돌과 이끼, 먼지였다.

장목화가 손전등으로 비춘 바닥 주위로는 화염에 그을린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의 중심은 움푹 팬 바닥이었는데, 움푹 팬 자국 안에 있는 것 중 시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새카맣게 탄 불그스름한 살점과 피가 돌과 진흙에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 바깥쪽에는 한 구 한 구의 왜소한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토막 난 채 검게 그을린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장목화가 손전등의 방향을 돌림에 따라 성건우의 시야에는 그보다 더 바깥쪽, 그러니까 동굴 벽 쪽의 광경까지 들어왔다.

그곳에도 검은쥐 마을 주민들의 시체 한 구 한 구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상태는 그나마 온전한 편이었다. 불에 그슬린 흔적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검은 털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들 중 더러는 또렷한 외상이 없어 보였지만 더러는 등과 가슴에 끔찍한 총상이 나 있었고, 대부분은 옷이 싹 벗겨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동굴 안에 남은 것이라고는 깨진 그릇과 사발 조각들 뿐이었다.

누군가의 설명 없이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확신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검은쥐 마을의 주민들은 누군가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다.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견착식 개인 화기로 열압력탄을 쐈을 거야⋯⋯.

즉시 목숨을 잃지 않은 이들은 총으로 죽였겠지.

엄청난 프로네.”

고폭탄과 기화폭탄의 결합물인 열압력탄은 주로 동굴과 지하 벙커 등 한정된 공간 안에 있는 적들을 처리할 때 쓰였다.

열압력탄은 폭발 이후 주위의 산소를 소진하면서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여,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오르는 화염 덩어리를 형성했다. 이 화염 덩어리는 고압 충격파와 함께 한정된 공간을 휩쓸며 그 안의 적들을 죽이고 설비를 파괴했다.

입구 높이가 140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검은쥐 마을 안으로 달려들어 그런 환경에 적응된 주민들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동굴 안쪽에 열압력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을 던져넣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런 폭탄을 가지고 있는 팀은 많지 않아요. 심지어는 대형 세력이라고 꼭 열압력탄을 보유한 것도 아니죠.”

백새벽은 침착하려 애쓰며 말했다.

경험이 풍부한 황야유랑자 출신인 그녀는 전투와 살육에 제법 익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마을 하나가, 거점 하나가 이렇게 박살이 난 것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닥에 널린 시체와 살점은 아무리 아류인의 것이라 해도, 믿을 수 없는 충격과 공포심을 안겼다.

어찌 되었든 검은쥐 마을의 주민들은 키와 손톱, 체모를 제외한다면 보통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백새벽은 학살을 당한 거점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참사가 일어난 지 한참 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소량의 시체와 아무도 살지 않는 망가진 집을 제외한다면 그 외의 다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전등을 꺼내. 흩어져서 단서를 찾아보자.

어쩌면, 어쩌면 혹시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곧장 벨트에 달려 있던 손전등과 아이스모스 권총을 꺼낸 성건우는 한 손으로는 전방을 비추고, 다른 한 손으로는 권총을 쥔 채 가장자리로 향했다.

설령 생존자가 있더라도 폭발 중심지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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