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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45화 (45/649)

45화. 다음 목적지

다시금 안정을 찾은 용여홍이 배를 문질렀다.

“배가 좀 고픈 것 같아요.”

점심 식사 시간을 한참 지난 이때, 그가 먹은 것이라고는 아귀도의 영향 아래 입에 욱여넣었던 압축 비스킷 반 조각이 전부였다.

“우리가 정법에게 어떻게 중상을 입혔는지는 안 물어봐?”

“팀장님이 도중에 내리셨잖아요. 실제 계획이 따로 있으니까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했죠.”

용여홍이 허리와 등을 꼿꼿하게 펴며 답했다.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점심부터 먹고 물어볼게요.”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네.”

장목화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같은 말투로 용여홍을 칭찬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똑똑한데.”

기분이 좋아진 용여홍은 겸손하게 대꾸하려 했다.

그런데 성건우가 그보다 앞서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은 여태까지 여홍이를 멍청하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

용여홍의 표정이 무너졌다.

장목화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렇다기보다는, 여홍이는 무경험자니까. 때맞춰 잘 반응한 것만 해도 상당히 훌륭하다는 거지.

어찌 되었든 여홍이도 유전자 개량을 받았으니 머리가 나쁠 리는 없잖아.”

“내 성적은 중간 정도에 불과한데⋯⋯.”

용여홍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몇 초 후, 그녀가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똑똑한 것도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어. 중간 정도 가는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지.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명령을 들을 줄 아니까.

게다가 모두에게는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는 법이고.”

용여홍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위치의 파악을 마친 백새벽이 지도 위를 가리키며 장목화에게 보여주었다.

“하, 가장 가까운 거점도 북쪽에 있네. 저녁 무렵이나 내일쯤에는 도착할 수 있겠어.”

장목화가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웨이루 역과는 꽤 떨어져 있는 데다가 방향도 살짝 빗나가 있다는 거야. 그쪽에서 발생한 사건에 휘말릴 리는 없겠어.”

그녀는 지도를 접어 백새벽에게 건넸다.

“출발하자. 검은쥐 마을로!”

검은 늪 황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성건우와 용여홍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새벽아, 너는 차를 점검해. 여홍이 너는 트렁크에서 에너지바를 더 꺼내고.”

장목화는 지시를 내린 후에 지프를 향해 다가갔다.

백새벽과 용여홍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걸음을 늦춘 장목화가 전방의 작은 늪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옆에 있는 성건우에게 말했다.

“왜 여홍이의 자신감을 깎은 거야?

솔직하게, 진심을 말해봐.”

성건우 역시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여홍이가 구조팀에서 나가게 하려고요. 너무 거치적거려서.”

장목화는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지프 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2초 후, 그녀는 성건우의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홍이 녀석한테 이 팀은 너무 위험해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장목화가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뭐라고 하는지 못 들을 뻔했네.”

그러나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지프의 운전석에 올랐다.

* * *

지프는 북쪽의 검은쥐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교대 순번에 따라 점심 식사를 마친 성건우가 물었다.

“위드 시티는 어떤 곳이야? 어디에 있지?”

보조석에 탄 백새벽이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퍼스트 시티 변방의 도시야. 승려황원 가장자리에 있어.”

“승려황원?”

여홍은 기괴한 지역명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반고 바이오에서 평생을 통틀어 땅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반고 바이오에서 쓰는 지리 교과서의 내용 역시 상당히 간단했다. 각 대형 세력을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주요 지형을 표기해두었을 뿐이었다.

“로봇 승려들이 가장 빈번하게 활동하는 구역이지.”

운전 중인 장목화도 설명을 보탰다.

“소문에 따르면 승려 교단의 본부, 그러니까 영생인 기술과 그에 대응하는 설비가 숨겨진 유리 정토도 그 황원의 어딘가에 있대.”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그 황원은 검은 늪 황야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어. 퍼스트 시티에 가려고 한다면 빙 둘러 우회하지 않는 이상 지나칠 수밖에 없지.”

승려황원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마친 그녀가 이전의 화제를 이어나갔다.

“위드 시티는 원래 승려황원의 소형 세력이었어. 퍼스트 시티는 그 안의 주민 모두를 노예로 삼기 위해 그쪽으로 세력을 확장했지.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는 몇 차례의 전투가 발발했고, 당연히 사상자가 발생했어. 당시 다른 대형 세력과도 충돌 중이어서 그쪽에 노예 포획대를 지원할 수 없었던 퍼스트 시티는 결국 위드 시티와 담판을 지어 그들을 정식 시민 신분으로 받아들였지.

그 덕에 위드 시티의 자치도는 굉장히 높고, 유적 사냥꾼들도 그곳에서 매우 활발히 활동해. 그곳에 자리한 사냥꾼 길드 지부도 꽤나 유명한 편이고.”

백새벽의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마친 용여홍은 팀원들에게 정법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물으며 간접 경험을 쌓으면서 정보를 파악했다.

대화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 무렵, 용여홍이 성건우를 돌아보며 호기심과 망설임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법한테 썼던 능력의 이름은 뭐야? 그 능력을 쓰니까 정법이 갑자기 친절해졌잖아.”

그가 얼른 덧붙였다.

“대답하기 불편하면 안 해줘도 돼.”

성건우는 차의 앞유리를 바라보며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추리 광대.”

* * *

점차 서쪽으로 기우는 해가 하늘 가장자리를 불그스름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흑회색 황야 위에 꼿꼿하게 자라난 나무들은 가끔씩 나타났다.

용여홍은 저 멀리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몇몇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걸어서 이동하려는 유적 사냥꾼이 있을 수 있지?

그래서는 남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텐데.”

오수혁과 헤어진 후 검은쥐 마을로 향하는 동안, 웨이루 역 북쪽으로 향하는 유적 사냥꾼을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개조한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이들도 있었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탄 이들도 있었으며,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고, 잘 길들인 말을 타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교통수단은 매우 다양했지만, 적어도 맨몸으로 이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운전 중이던 백새벽이 그들을 힐긋 바라보며 간단히 답했다.

“저들은 애초부터 주워 먹기를 하러 가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용여홍이 캐물었다.

보조석에 앉아있던 장목화가 자신의 권총을 손질하면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일부러 걸어가는 거라고. 그 폐허에 될 수 있는 한 늦게 가고 싶은 거지.

그럼 그들보다 빨리 간 유적 사냥꾼들이 그들 대신 지뢰를 밟거나 대부분의 위험 요소를 제거한 뒤에 도착할 수 있잖아.

물론 이래서는 1차 자료를 얻지도 못하고, 진귀한 물자를 쟁취할 기회도 잃게 되겠지만, 훨씬 안전하긴 하지. 도시 중심지로 파고들지 않는 이상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걸? 그렇게 큰 도시라면 그들보다 앞서서 도착한 대형 세력의 팀이라 한들, 도시 가장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물자를 모조리 쓸어가거나 모든 길목을 다 지킬 수는 없으니까.”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용여홍은 이내 또 다시 의혹이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저렇게 맨몸으로 가면 많은 물건을 챙겨 나올 수 없잖아요. 어깨에 짊어지거나 손으로 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런 상태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고개를 든 장목화가 코웃음을 쳤다.

“폐허 도시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네.

그곳에 버려진 차와 부품이 얼마나 많은데. 수리할 능력이 있기만 하다면 그곳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교통수단을 준비할 수 있어. 하하, 이것도 그렇게 얻은 수확 중 하나야.

그런 면에서 보면 자기 차를 몰고 간 사람보다 그들의 수확량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용여홍은 장목화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만났던 오수혁을 비롯한 유적 사냥꾼 팀의 인원수는 총 네 명이었다. 그들은 회색 SUV 한 대로 움직였으니, 도시 유적에 도착한 뒤 각종 위험을 피하거나 해결한다면 최대 세 대 또는 네 대의 차에 실을 수 있는 물자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반면 똑같이 네 명으로 이루어진 유적 사냥꾼 팀이라도 텐트와 무기만 가지고 걸어서 도시 폐허가 도착한다면, 그들은 최대 네 대의 차와 그 차에 실을 수 있는 물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성건우가 자문자답을 하듯 말했다.

“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의 최대 장점은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맞아, 그러니 저들은 아마 웨이루 역에서 하루 이상 푹 쉴 거야. 어쨌든 저들의 목적은 도시 폐허에 일찍 도착하는 게 아니니까.”

연합202 권총을 벨트에 다시 찬 장목화가 먼 곳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답했다.

뒤이어 그녀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곧 저녁이야. 보아하니 오늘은 검은쥐 마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네.

경사진 곳을 찾아서 야영하고, 날이 밝으면 다시 움직이자.”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이 속속들이 답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흑회색의 황야 위에서 작은 언덕을 발견한 그들은 그곳을 바람막이 삼아 텐트를 쳤다.

장목화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다 손뼉을 치더니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말했다.

“성건우, 용여홍, 너희는 아직 낮에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어!”

“예?”

놀란 용여홍이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철강공장에서 완수하지 못한 임무를 떠올리기 까지는 몇 초가 더 걸렸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식량을 구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철강공장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색은 정법 때문에 중단되었고, 검은쥐 마을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걸요.”

용여홍은 얼른 스스로를 변호했다.

옆쪽의 성건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장목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이 일부러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장목화는 좌우를 둘러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 완수할 수 있는 임무로 교체해줄게.”

그녀는 고개를 숙여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에 사냥을 한 차례 할 것. 사냥감의 크기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어.”

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어 성건우와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지도는 그린 부분까지만 제출해. 한 번 보자.”

성건우는 곧장 병원과 방송국 구역만 그려진 지도를 꺼냈다.

건네받은 지도를 슥 살피던 장목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장실은 왜 표시했어? 쓸 수도 없는 곳인데.”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지도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는, 상세하고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라서요.”

“이전에도 지도를 만들어본 적 있어?”

장목화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뇨.”

성건우는 솔직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왜⋯⋯.”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켜버린 장목화가 손을 휘휘 휘둘렀다.

“얼른 가서 사냥이나 해.”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각자의 돌격 소총을 멘 채 언덕 위로 올라간 성건우와 용여홍은 곧 사방을 둘러보았다.

황야 위의 잡초들은 저녁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고, 흑회색의 흙과 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위에 있는 나무는 수백 그루에 불과했고, 짐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성건우와 용여홍이 목표물로 삼을 것조차 찾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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