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3화 (43/649)

43화. 사기꾼

왼손을 쳐든 성건우가 정조준 시스템의 십자 표시에 근거해 특정 방향을 향해 유탄 한 발을 쐈다.

방금 막 방향을 튼 정법에게 그 유탄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정법은 두 눈으로 마구 붉은빛을 발하다가, 발목과 무릎 등의 금속 관절을 인간으로서는 꺾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었다. 그러면서 억지로 또 한 번 방향을 바꾸더니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콰광!

유탄이 폭발하자 붉은 화염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하지만 정법보다 한 박자 느리게 폭발한 그 유탄을 가지고는 정법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상건우가 자신이 이 기회를 잡지 못했단 사실에 아쉬워하고 있던 그때였다. 근처의 어느 나무 위에서 유탄 한 발이 쏘아져 나왔다.

그 유탄이 노리는 목표는 모든 추진력을 다 써버린 채 허공에 떠오른 정법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정법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긴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고, 회색 바탕에 카무플라주 패턴이 들어간 제복을 입은 채 유탄발사기를 들고있는 장목화였다.

지프와 함께 먼 곳으로 내달리는 대신 나무 위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유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정법은 등과 발아래에 자리한 금속 덮개를 열어 시커멓고 깊으며, 크기가 주먹만 한 구멍들을 드러냈다.

치직!

각각의 구멍에서 흰색 연기가 분출되면서, 허공에 떠 있던 정법이 옆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콰과광!

장목화가 쏜 유탄은 정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했다. 그 거친 충격파에 몸이 살짝 기운 정법은 평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성건우는 팀장이 어떻게 여기에서 나타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기회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성건우가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당분간은 재차 연기를 분사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정법을 향해, 정조준 시스템에 기대어 외골격 장치의 전자파 무기를 겨냥했다.

성건우가 방아쇠를 당기려 한 그때였다. 그와 백새벽의 시야에 배가 불룩하게 부푼 채 미친 듯이 흙을 긁어먹는 허상의 인영들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그들 역시 극심한 굶주림을 느끼게 되었다.

아귀도였다.

방금 전 정법은 허공으로 떠오른 채 옆으로 이동하면서, 외골격 장치와의 거리를 이십여 미터 안으로 좁힌 것이다.

백새벽은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압축 비스킷과 에너지바를 꺼냈다.

그러느라 외골격 장치로부터 손을 떼면서 균형을 잃은 그녀는 곧 파워팩에서 벗어나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장을 벗겨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성건우의 행동은 달랐다.

턱이 가려지지 않는 금속 헬멧을 착용한 그는 입을 쩍 벌리며 그 안의 내용물을 드러냈다.

그의 입안은 침에 젖어 잔뜩 불은 압축 비스킷 한 조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건우는 끊임없이 그 비스킷을 씹어 삼키며 배고픔을 달랬다.

덕분에 그는 계속 음식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지프에서 내리기 전, 한동안 뭘 먹기 힘들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는 미리 비스킷을 입에 넣은 후 삼키지 않고 내내 물고 있었다. 아귀도의 영향을 받게 되는 한이 있다 한들 시간을 1, 2초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 틈을 이용해 그는 입안에 든 비스킷을 미친 듯이 씹어 삼키며 일그러진 웃음을 드러내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지직, 하는 전류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은백색 아크에 휩싸인 탄환 하나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십여 미터의 거리를 가로질러 정법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쾅, 소리와 탕,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지면서, 정법의 몸에 주먹만 한 크기의 또렷한 홈이 하나 파였다.

움푹 팬 금속판이 쩌적, 하고 갈라지면서 떨어져 내려. 그 안쪽에 숨겨져 있던 회로와 부품이 드러났다.

그 주위로 한 줄기 한 줄기의 균열이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이러한 균열과 함께 전달된 전자파 무기의 운동 에너지에 떠밀린 정법이 끈 떨어진 연처럼 비틀거렸다.

이때 나무 위에 있던 장목화는 유탄발사기를 내려놓은 다음, 뒤로 당겼던 왼팔로 셀 수 없이 많은 은백색의 전광에 휩싸인 금속 막대 하나를 내던졌다.

쾅!

뇌룡(雷龍)같은 금속 막대는 정법의 가슴팍에 난 홈에 정확히 박히면서, 허공에서 추락한 그를 지면에 꽂았다.

한 줄기 한 줄기의 아크가 수많은 꽃잎처럼 펼쳐진 채 홈 안쪽의 부품과 회로를 따라 정법의 체내에서 만개했다.

그 공격으로 정법의 몸은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붉은빛을 잃은 눈동자는 돌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이에 따라 주변을 뒤덮은 아귀도의 효과가 사라졌다.

상황을 확인하고 황급히 방향을 튼 성건우는 전자파 무기로 정법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조준을 하기도 전, 정법의 눈에서 또 한 번 붉은빛이 발산되었다.

금속 골조로 이루어진 몸을 튕기듯 일으킨 그가 아직 은백색의 전류에 휩싸인 채, 가슴팍에 박힌 금속 막대를 뽑을 여유도 없이 먼 곳으로 달아났다.

정법은 몇 차례나 방향을 바꿔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장목화는 어느새 유탄발사기를 다시 들고 있었다.

그녀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저 녀석, 역시 위기 대응 시스템과 여분의 신체 구조를 갖추고 있었어!”

성건우는 곧장 팀장에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 안 곳곳에 남은 압축 비스킷이 목을 막아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반면 에너지바를 통째로 입에 욱여넣지 않은 백새벽은 입에 물고 있던 것만 얼른 삼킨 뒤 큰소리로 물었다.

“쫓아갈까요?”

성건우 대신 한 질문이었다.

백새벽은 정법의 뒷모습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늦었어. 게다가 저 땡중, 이번에는 도주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외골격 장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일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백새벽과 성건우를 향해 다가오며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그자는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까.

위기 대응 시스템과 여분의 신체 구조는 기본적인 기능밖에 못 할 거야. 그 외에 다른 기능이 있는 거였다면 장착조차 불가했을 테니까.

이제 정법은 본인 몸을 제대로 고치기 전까지 더는 우리를 쫓지 못해. 무기 시스템과 감청 시스템도 사용하지 못할걸.”

그 말에 백새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자와의 거리를 벌릴 시간은 충분하겠네요.”

그제야 압축 비스킷을 모조리 삼킨 성건우가 물었다.

“팀장님, 어떻게 여기에 계셨어요?

웨이루 역에서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프는요?”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전의 계획은 너희들을 속이기 위한 거였어.

너희를 속이지 않고서 어떻게 정법을 속이겠어?”

“⋯⋯.”

성건우와 백새벽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장목화가 유탄발사기를 받쳐 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강공장의 용광로에 있던 정법이 대문 쪽에서 울려 퍼진 여자 목소리를 감지한 순간부터, 난 그자의 감청 시스템이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어.

이런 의심은 그 후로 이어진 몇 가지 상황을 통해 더욱 깊어졌지.

정법은 숨바꼭질을 이어나가면서 장기적인 소모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만약 우리한테 예비용 배터리가 차고 넘쳤다면 어쩌게?

또 처음으로 우리를 습격했을 때 그는 왜 더 중요한 운전석이 아니라 보조석을 노렸을까? 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내가 팀장이며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랑 새벽이는 사전에 정법이 운전석을 기습할 때의 대처 방법을 상의했었어. 내가 유탄발사기를 들면 새벽이가 몸을 숙이면서 유탄이 새벽이의 위를 지나쳐 창문 밖에 있는 정법에게 명중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지. 그런데 뜻밖에도 이 방법은 실현되지 못했어.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너희들의 토론을 유도해 웨이루 역에서 만나자는 계획을 세웠어. 정법이 그에 따라 움직일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지. 사실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한들, 정법은 너희들의 행동을 보고 언젠가는 너희들의 목적이 바로 자신을 붙잡아 놓음으로써 지프가 자신의 추격 범위에서 벗어날 시간을 벌려는 거란 걸 알아차렸을 거야.

그래서 난 이곳에서 차의 방향을 연달아 바꾼 뒤에, 근처에 있는 나무에 숨으면서 여홍이한테 계속해서 차를 몰라고 했지. 한 십 분 정도 더 가다가 멈춰서 우리를 기다리라고.”

장목화의 설명에 성건우와 백새벽은 그제야 천천히 깨달음을 얻었다.

대부분의 징조는 사실 그들도 알아차린 것들이었다. 그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목화가 성건우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이 맞잖아?

너도 이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을 거 아냐. 내가 말없이 동작으로만 압축 비스킷을 입 안에 머금어 아귀도에 대항하라고 암시했을 때, 넌 그 뜻을 꽤 빨리 알아차린 것 같던데?

그 전에 계획을 세울 때는 큰 소리로 떠들어대던 사람이, 그렇게 중요한 상황에 굳이 소리 내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심지어 그 전에 이야기 했던 것들이 다 진심이 아닐 수 있겠다고 짐작할 수도 있었잖아?”

성건우는 고민하지도 않고 곧장 답했다.

“저는 그때 팀장님이 말로 지시를 내리면 제가 그 내용을 떠올릴 때 정법의 타심통에 의해 다 들통날 걸 걱정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능력의 유효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동작과 행동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때는 해독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니까, 정법이 제 마음을 들여다 본다고 해도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잖아요.”

“⋯⋯아주 복잡하게도 생각했구나.”

장목화가 말했다.

백새벽도 성건우에게 동조했다.

“저도 팀장님이 그때 소리를 내지 않은 건 각성자에 대한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각성자의 능력이나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의논했을 때 그 내용을 포착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능력의 존재 가능성까지 배제할 순 없으니까요. 이쪽 방면에 대한 제 이해도는 대형 세력들에 비해 낮기도 하고요.”

“⋯⋯새벽이 네 생각은 건우보다 더 복잡했고.”

장목화는 피식 웃으며 자화자찬했다.

“내 연기가 그렇게나 완벽했나?”

“팀장님이 저희를 속일 리는 없다는 생각에, 그런 쪽으로의 가능성을 고려해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건우가 즉시 대꾸했다.

백새벽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장목화는 웃음을 머금은 채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이렇게 야외 훈련을 하는 거잖아. 여러 경험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고.

아무튼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절대 너희들을 망하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만 믿고 있으면 돼.

가자, 가. 여홍이랑 합류해야지.”

“예.”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한 성건우와 백새벽은 이를 통해 적잖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로봇 승려 정법이 달아난 쪽을 한 번 더 돌아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타깝네. 정법 그 땡중의 몸을 확실히 망가뜨려, 바이오닉 칩을 손에 넣었어야 하는 건데.

그 기술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상당히 높으니까, 회사가 여러 난관을 돌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게다가 승려 교단은 구세계 파괴 원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 영생인은 구세계 파괴 전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니까. 그 유산을 이어받기란 결코 쉽지 않지.”

성건우가 지적하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하하, 그래, 달콤한 상상일 뿐이지.

사실 정법의 몸을 확실히 망가뜨렸다 한들, 녀석의 바이오닉 칩을 손에 넣지는 못했을 거야. 괴이하고도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의 의식이 실린 바이오닉 칩에 손을 대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깝거든.

이만하면 잘 된 거야, 이만하면.”

고개를 돌린 그녀가 성건우를 향해 말했다.

“가자.”

성건우는 차의 바퀴 자국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돌아서더니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세심하기도 해라. 혼자 달려 나가지 않겠다 이거지? 우리로서는 외골격 장치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장목화가 백새벽이 앉을 자리를 남겨둔 채 파워팩 위에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파워팩 위에 앉아 외골격 장치의 어깨 부분에 달린 금속 골조를 붙잡자, 성건우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금속이 마찰하는 미약한 소리를 내며 지프의 바퀴 자국을 따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전속력을 발휘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 소리는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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