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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42화 (42/649)

42화. 계획

새벽아, 이 부근에서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니?”

백새벽은 사방을 관찰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이 부근의 랜드마크는 폐허가 된 그 철강공장밖에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도착한 뒤 이대로 쭉 올라가다 보면 웨이루 역이 나와요.”

“웨이루 역?”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대충 얼마나 걸려?”

“지금 속도를 유지한다고 했을 때 하루 반 정도?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내내 이렇게 빨리 달릴 순 없을 거예요.”

백새벽이 대략적으로 답했다.

해리스 브라운이라는 유적 사냥꾼과 그의 동료는 자전거를 타고 좁은 길을 통해 이동했는데도, 웨이루 역 북쪽에서 출발해 폐허 철강공장에 도착하는 데 하루 이상이 걸렸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로는 그 거리를 그렇게나 빨리 주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목화와 성건우를 비롯한 구조팀의 지프는 정법의 추격 아래 엄청난 속도를 발휘해, 웨이루 역 쪽으로 이미 한참을 달려온 상태였다. 게다가 지프는 당연하게도 자전거보다 더 빨랐으며, 이들의 목적지는 웨이루 역 북쪽이 아니라 웨이루 역이었다.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웨이루 역을 합류 장소로 정한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한 듯한 흔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어.

그 전에 정법을 순조롭게 따돌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지만 설령 그러지 못한다 한들, 거기서 그를 북쪽으로 유도하면서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알 수 없는 위험에 휘말리게 할 수는 있어.

그가 그 위험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있다 해도 더 이상 우리를 쫓지는 못할 거야.”

처음엔 작았던 장목화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갔다. 정법을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한 모양이었다.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건우가 학교에서처럼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장목화는 자신의 설명에 흠이라곤 없다고 생각했기에 약간 놀란 듯 대꾸했다.

성건우가 약간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전 웨이루 역이 어딘지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라요.”

“⋯⋯.”

장목화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몇 초 후에야 그녀가 자조하듯 입을 열었다.

“네가 땅 위로 처음 올라온 신참이라는 걸 깜빡했네.

이건 네가 여태까지 굉장히 잘해왔다는 뜻이야!

만약 내가 운전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너한테 엄지를 치켜세워줬을걸!”

애써 한참을 변명하던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구세계가 파괴되기 전, 하늘에는 사용할 수 있는 위성이 아주 많았대. 사람들은 그 위성들을 통해 이전에는 가본 적 없는 목적지의 위치도 쉽게 파악하고, 그곳으로 가는 데 가장 적합한 노선도 척척 골랐다더라고.

음, 아무래도 내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는 게 좋겠어. 내가 계속해서 운전하다가 정법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한 뒤, 차에서 내려 그를 유인하는 거야. 그럼 그 사이에 새벽이가 운전석으로 이동해 차를 모는 거지.”

“팀장님이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는 동안 정법이 원거리 공격을 해오면요?”

백새벽이 계획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장목화의 말문은 그대로 막혀버렸다.

백미러를 통해 뒤쪽의 상황을 살피던 백새벽이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차에서 내려서 성건우의 길잡이 역할을 할게요.

저는 왜소한 편이니까, 외골격 장치의 이동이나 반응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넌 왜소한 게 아니라 귀여운 거라니까. 네 키는 황야유랑자 사이에서 딱 평균이야. 내가 본 황야유랑자 중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장목화는 대수롭지 않게 백새벽의 말을 정정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는 않을게. 애쉬랜드에 태어나 땅 위로 올라온 이상, 언젠가 이런 위험을 부담하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만약 내가 짊어져야 하는 위험이었다면 그 책임을 너희들에게 떠넘기지는 않았을 거야.”

한숨을 푹 내쉬던 그녀가 덧붙였다.

“식량을 좀 챙겨가는 걸 잊지 마.”

그러더니 돌연 입을 딱 다문 그녀가 핸들에서 오른손을 떼었다.

장목화는 그 손으로 콘솔박스 안의 압축 비스킷과 에너지바를 가리킨 뒤 자신의 입을 가리키더니 뺨을 불룩 부풀렸다.

의아해진 성건우와 용여홍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다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틀면서 눈짓을 해 보이는 백새벽을 발견했다.

이에 그들은 목젖까지 차오른 질문을 동시에 꿀꺽 삼켜버렸다.

백새벽 역시 장목화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팀장이 이러한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다시 핸들을 쥔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성건우, 너도 정법의 아귀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둬야 할 거야.

만약 그가 더 이상 숨바꼭질을 하려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너에게 접근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진입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테니까.”

“잘⋯⋯.”

잠시 뜸을 들이던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맺었다.

“생각해볼게요!”

뒤이어 그가 백새벽에게 말했다.

“허비할 시간 없으니, 식량을 챙겨서 차에서 내릴 준비해.

지금 좀 먹어두는 것도 좋겠어. 한동안 멈춰서 뭘 먹을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백새벽은 콘솔박스 안의 식량을 꺼내 성건우에게 절반을 나눠주었다.

성건우는 압축 비스킷 한 봉지를 뜯어 그 내용물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장목화가 돌연 핸들을 홱 꺾으며 정법이 쏜 레이저를 피했다.

성건우는 그녀가 따로 지시해주지도 않았는데 차 문을 벌컥 열고 지프 밖으로 나가더니, 이번에는 몸을 굴리는 대신 온 힘을 다해 훌쩍 뛰어올랐다.

치직, 소리와 함께 날아든 레이저 한 줄기가 또 한 번 지표면을 관통했다.

만약 성건우가 이전처럼 몸을 굴렸다면 그 레이저에 이미 명중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외골격 장치의 장갑판이 있다 한들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무릎에 힘을 주며 보조 관절의 도움을 받아 단번에 이십 미터 높이로 뛰어오른 그가 곧장 먼 곳에 있는 정법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봇 승려 정법은 이전처럼 즉시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더니 성건우를 우회하여 피했다.

장목화는 이 틈을 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의 속도를 늦췄다. 덕분에 백새벽은 무사히 보조석에서 지면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었다.

차 문을 닫으며 몸을 굴린 백새벽이 서둘러 낮은 관목 덤불에 몸을 숨겼다.

지프는 순간 엄청난 속도를 발휘해, 검은 늪 황야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대로로 돌진했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정법을 쫓던 성건우가 근처로 돌아왔다.

검은색 금속 골조와 소량의 장갑으로 몸을 감싼 그가 백새벽에게 앉으라는 듯 뒤쪽의 파워팩을 가리켰다.

덤불에서 튀어나온 백새벽은 외골격 장치의 보조 관절을 사다리와 손잡이 삼아 파워팩 위로 기어올랐다.

덕분에 그녀의 머리는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건우보다 훨씬 더 위쪽으로 올라와 있었다.

이는 성건우가 한 손으로 그녀를 안는 것보다 외골격 장치의 동작과 조준에 영향이 덜 미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내 그들은 그대로 정법을 추격하며 그를 더 먼 곳으로 내몰려 했다. 이 구역 안에서 상대와 숨바꼭질을 하면서, 장목화와 용여홍이 정법의 추격 범위에서 벗어날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금속 헬멧을 착용한 성건우가 두세 걸음을 내달리더니 누구의 습격도 없는 상황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몸을 굴렸다.

백새벽 역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외골격 장치의 어깨 부분에 달린 금속 골조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녀는 성건우가 이러한 동작을 취하는 것은 정법의 반격이 가해지기 전, 외골격 장치에 최대한 적응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채 몇 바퀴를 구른 성건우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종합 경보 시스템이 지원하는 원거리 시야에 기대어 붉은 가사를 걸친 정법을 쫓기 시작했다.

정법은 두 눈으로 붉은빛을 번득였다. 불안정한 상태인지라 여인의 존재에 자극을 받기라도 한 것 같았다. 금속 관절을 구부린 그가 곧 측면을 향해 훌쩍 튀어 올랐다.

다만 완전히 미쳐버리지 않은 그는 여전히 미리 세워두었던 책략에 따라 움직였다. 여성에 대한 적대감은 신체에서 조성된 정신 왜곡에서 기인한 것일 뿐, 각성자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하나의 유탄을 달고 있는 성건우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전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정법을 쫓으며 거리를 좁히려 했다.

* * *

그렇게 시작된 추격전이 몇 분간 이어지던 그때, 파워팩 위에 앉은 백새벽이 돌연 허리를 굽히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해.

정법은 지프를 향해 우회하고 있어!

우리를 피해 계속해서 팀장님 쪽을 쫓을 생각인 거야!”

구조팀에서 정법의 이런 대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정법이 단번에 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외골격 장치를 피해 계속해서 지프를 추격하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적어도 숨바꼭질을 몇 번 더 한 후에야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법은 곧장 그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타심통이라는 능력에는 범위 제한이 없는 것 같았다.

성건우는 백새벽에게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묻지 않고,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에 대처했다.

그는 차의 바퀴 자국이 남은 범위 안쪽을 맴돌면서 정법을 그 밖으로 내몰아, 지프가 검은 늪 황야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구역에 진입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줄 심산이었다. 범위 안쪽의 활동 범위는 외부에 비해 좁기 때문에 외골격 장치로도 진정한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 승려에게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검은색 금속 골조로 몸을 감싼 성건우와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정법은 황야와 숲, 늪의 가장자리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배터리를 아낄 생각 따위 없는 듯 거침없이 달리고, 튀어 오르고, 쫓았다.

그러는 동안 성건우는 몇 번이나 유탄과 전자파 무기의 탄환을 발사하려 했지만, 정법은 그럴 때마다 방향을 홱 틀며 거리를 벌렸다. 아직은 폭발적인 전투에 돌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전력을 다해 사용한 외골격 장치의 배터리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지프의 현재 위치로 짐작되는 곳과 정법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조금씩 좁혀졌다. 이를 확인한 성건우의 마음은 초조해졌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만약 정법이 거리를 좁혀 자신과 싸우려 한다면, 성건우도 그때는 임기응변이나마 하면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꼭 약도 듣지 않는 만성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조급해하지 마.”

성건우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높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백새벽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상대의 심경 변화만은 빠르게 알아차렸다.

장목화가 자신에게 유탄발사기를 주지 않았으나, 백새벽은 개의치 않았다. 팀장이 유탄발사기를 넘기지 않은 것은 정법이 외골격 장치를 피해 지프로 돌진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백새벽의 역할은 길잡이지, 전투 보조가 아니었다.

성건우는 그녀의 말에 답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애써 다잡은 것 같았다. 그가 차의 흔적이 남은 범위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편 이 구역에 남은 지프의 바퀴 자국은 마구 뒤틀려 있었다. 방향을 몇 번이고 튼 모양이었다. 이로 인해 흔적에 의지해 지프의 방향을 판단하기 어려워졌기에, 정법은 마지막 바퀴 자국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위 안쪽으로 접근해야 했다.

이는 곧 성건우에게 찾아온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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