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추격
백새벽은 약간 놀란 듯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팀장님, 상태가 굉장히 좋아 보이네요. 기분도 전혀 저조하지 않은 것 같고요.”
그들은 지금 무시무시한 로봇 승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긴장감과 스트레스, 분노, 불안감 등에 휩싸여 있어야 옳았다.
“정법에게 따라잡힌 상황에 비하면 훨씬 낫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게 맞는 거 아냐?”
장목화는 시종일관 주위 상황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만약 건우가 없었더라면 방금 전의 상황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지금쯤 그 뒤틀린 정신을 가진 변태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았겠지. 정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여자의 시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본 적은 있거든⋯⋯.”
이 말을 하자 여태까지 내내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장목화의 표정도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시체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하진 않았다. 백새벽과 성건우, 용여홍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미 군용 외골격 장치의 착용을 마친 성건우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 목소리를 내었다.
“일반적으로 한 명의 각성자는 세 가지 능력만을 가지죠.”
핸들을 돌려 도로 한가운데에서 자라난 나무를 피한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세 가지라, 정법에게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만드는 능력과 아귀도라는 능력이 있었지⋯⋯. 그럼 다른 하나는 뭐지?”
옆에서 듣고 있던 용여홍이 순간 그에 대한 답을 떠올렸다.
“타심통이요!
정법이 그랬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속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그럼 그렇게 해서 세 가지 능력이 채워지네. 어쩌면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정법에게 대항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몰라. 아 참, 각성자의 능력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는 제한이 따르지. 그것도 고려해야겠네.”
장목화는 차를 모는 한편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혼잣말이라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에, 팀원들은 전부 그녀의 이야기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성건우가 답했다.
“그는 타심통과 자아 인지를 방해하는 능력을 발휘했을 때 목표로부터 1미터 안에 들어와 있었어요. 최대 범위가 얼마 정도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웃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판단은 해볼 수 있지.
그가 멀리 떨어진 나무에서 우리를 덮쳤을 때 선택한 건 ‘아귀도’라는 능력이었어.
이 선택에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자아 인지를 방해하는 능력의 유효 범위는 아귀도의 유효 범위보다 훨씬 좁거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에 반해 아귀도는 특정 범위 안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백새벽도 기억을 떠올리며 끼어들었다.
“기억나요. 주위에 아사한 귀신들이 나타났을 때는, 정법이 저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서 몸을 날린 지 얼마 안 되는 때였어요. 우리로부터 이십 미터 정도, 혹은 그보다 더 먼 곳에 자리해 있었죠.”
그녀는 승려 교단의 교리와 각종 이야기, 전설에 대해 장목화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기억해두자. 아귀도의 유효 범위는 적어도 이십 미터인 거야.”
장목화가 약간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저보다 더 강해요.”
“그리고 너보다 몇 배는 더 오래 산 존재일지도 몰라. 각성자가 된 것도 꽤 오래 전 일이었을 테고.”
장목화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녀는 정법이 언제 각성자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상대가 이전에 했던 말을 통해, 각성자가 된 후 의식을 로봇의 체내에 업로드해 영생인이 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로봇 승려가 된 정법은 신력이 시작되기 전, 혼란한 시대 후기부터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한편 용여홍은 자신의 친한 친구,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성건우가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라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인 듯했다.
동시에 그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방금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굳은 의지를 발했던 로봇 승려 정법이 성건우의 말 한마디에 돌연 극도로 친절해지더니, 그와 악수까지 하며 아쉽게 작별하던 그 광경 말이다.
그 순간 용여홍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성건우를 바라보던 그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너, 언제 각성자가 된 거야?”
성건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얼마 안 됐어.”
용여홍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밀을 캐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못했다.
지프 안에는 짧은 적막이 맴돌았다.
장목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전방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줘야겠지?”
“고맙습니다.”
성건우가 느릿하게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백새벽과 용여홍 역시 비밀에 부쳐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려던 성건우는 장목화의 낯빛이 살짝 바뀐 것을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장목화가 핸들을 확 꺾자, 지프가 크게 회전했다.
차 안에 있던 백새벽과 성건우, 용여홍은 모두 안전벨트를 메고 있었음에도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홱 기울어졌다.
이때 유탄 하나가 휙 날아와 지프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곳에 쿵 떨어졌다.
콰광!
작열하는 불꽃과 함께 발산된 매서운 충격파에 대지가 미약하게 진동했다.
지프의 방향을 전환한 장목화가 엑셀을 끝까지 밟자, 차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지면에 달라붙은 붉은 레이저 한 줄기가 칙, 소리를 내며 그곳을 녹여버렸다. 녹은 지면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하나가 형성되었다.
“열한 시 방향!”
이 기회를 틈타 백새벽이 장목화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녀가 방향을 제대로 일러주지 않는다면 차는 늪에 빠져 천천히 가라앉게 될 것이었다.
장목화는 이러한 방향 알림에 아주 익숙한 듯, 계산조차 하지 않은 채 핸들을 꺾었다.
뒤이어 그녀가 낮게 외쳤다.
“성건우!”
성건우는 소리 없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달리는 지프의 문을 벌컥 열고 몸을 기울이며 밖으로 굴러나갔다.
지프의 속도를 감안할 때,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런 짓을 했다면 그는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팔로 몸을 가뿐히 지탱하며 튕기듯 일어난 그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날아드는 유탄과 레이저를 피했다.
이때 그는 돌격 소총도 기관단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로봇 승려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외골격 장치 자체에 달려 있는 유탄발사기와 전자파 무기였다.
쿵쿵쿵.
배터리를 아끼지 않고 질주하기 시작한 성건우는 금속 헬멧과 크리스털 고글을 통해 남루한 승복과 붉은 가사를 걸친 정법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방향을 틀어 달리면서 성건우를 빙 두르듯 우회한 정법이 로봇만 못한 반응 속도와 민첩성을 가진 외골격 장치의 결함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이대로 간다면 성건우는 정법의 종적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외골격 장치의 종합 경보 시스템도 아무런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대에게는 경보를 무효화 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성건우는 상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지프의 흔적을 따라 장목화를 비롯한 이들을 찾았다. 그러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지프를 따라잡아 그 안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의도적으로 차의 바퀴 자국을 지우는 한편 다른 방향으로 거짓 흔적을 남겨뒀다. 이를 통해 정법을 방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절 피했어요.”
차에 오른 뒤 문을 닫은 성건우가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자가 널 무서워해? 네 능력으로 그를 제압한 거야?”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바람을 입 밖에 냈다.
“아니, 정법의 능력이 유효한 범위는 상당히 넓어.”
성건우는 거리낌 없이 사실을 밝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열려 했던 장목화가 갑작스럽게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콰광!
또 다시 정법의 원거리 공격이 날아든 것이었다.
곧이어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성건우가 차에서 내려 달려가자, 정법은 이번에도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며 그에게 싸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비슷한 상황은 간헐적으로,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용여홍 역시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중얼거렸다.
장목화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아마 우리가 가진 외골격 장치의 배터리가 다 닳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소문대로 상당히 끈질기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유탄을 가지고 있을 순 없잖아요.”
용여홍이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백새벽은 백미러를 힐끔 바라보며 답했다.
“유탄은 처음 몇 번만 사용했고, 지금은 레이저 무기만 사용하고 있잖아.”
순간 밀려드는 걱정을 느낀 용여홍이 물었다.
“팀장님, 그럼 이제 어떡해요?”
장목화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듯, 웃으며 짐짓 여유로운 척했다.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아냐.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장치에 있는 종합 경보 시스템과 나 자신의 전기 신호 감지 능력을 이용해 정법에게 서프라이즈를 선물해줘야지.
기습에 성공하면 중상을 입히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
“그는 각성자예요.”
성건우가 문제를 지적하자, 장목화는 혀를 쯧쯧 차며 웃었다.
“나도 바보는 아니거든. 고생도 할 대로 했고. 설마 그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봐?
난 최대한 그와의 거리를 계속 오십 미터 이상 유지할 거야. 아귀도의 유효 범위가 아무리 넓어봤자,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오십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도 그 능력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아까 전 그는 나무에서 몸을 날리기 전에 능력을 발휘했겠지. 그리고 그 정도 거리에서의 내 명중률은, 유탄발사기를 사용해도 절대 낮지 않아.”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장목화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백새벽이 곧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팀장님과 건우가 역할을 바꾸면, 운전은 누가 하죠? 정법의 원거리 공격을 미리 알아채고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장목화가 씁,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도 문제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2초간 침묵하고 있던 성건우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제가 할게요.”
장목화가 그 제안에 자문자답을 하듯 대꾸했다.
“네가 나서려고 한다면 계획을 바꿔야 해.
정법이라는 땡중에 비하면, 넌 아무런 경험도 없는 초짜야. 그러니 정법에게 서프라이즈와 중상을 선사하는 임무를 너한테 맡겨야 한다면, 난 네가 그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 때문에 중요한 순간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쩌나 걱정할 수밖에 없어.
음, 이렇게 하자. 정법이 너랑 숨바꼭질을 하려 하니까, 넌 최대한 장단을 맞춰주면서 그를 더욱 먼 곳으로 따돌리는 거야. 우리는 그 틈에 검은 늪 황야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곳으로 차를 모는 거지. 그곳에는 차 바퀴 자국도, 사람 발자국도 많으니까 우리의 흔적을 충분히 가릴 수 있어. 그럼 정법은 더 이상 우리를 찾거나 쫓아오지 못할 거야.
그래, 말 안 해도 알아. 이 방법에도 정법을 따돌리는 역할을 맡은 네가 우리를 찾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지. 그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무전기로 연락을 할 수도 없을 테고.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그래, 황야에서 비교적 유명한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