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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40화 (40/649)

40화. 손 흔들어 작별하다

2초간 망설이던 정법은 마침내 백새벽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왼손을 풀었다.

방금 전의 기이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장목화가 의혹과 충격이 어린 눈으로 성건우와 정법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슬금슬금 뻗은 손으로 유탄발사기를 쥐며, 자신들이 여파에 휩쓸리든 어쩌든 정법을 공격하려 한 그때였다. 성건우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두 번 저었다.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장목화가 유탄발사기로부터 두 손을 뗐다.

동시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며, 정법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리지 않으려 애썼다.

대신 오른손 검지를 입 앞에 댄 장목화가 백새벽에게도 꼼짝하지 말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성건우는 정법을 빤히 바라보며 이상하리만치 진실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사님, 선사님의 호의에 정말 감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천 리까지 배웅해도 마침내는 헤어져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곳에서 이만 헤어지는 게 어떻습니까?”

정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지.”

단번에 몸을 움직인 성건우가 차 문을 열고 먼저 내리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정법도 꾸물대지 않고 곧바로 지프 밖으로 나왔다.

용여홍은 믿을 수 없는 이러한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차에서 내린 정법은 합장하려 했지만, 성건우가 그에 앞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던 정법도 결국 오른손을 뻗었다.

인간의 손과 금속 골조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은 그렇게 악수를 했다.

정법과 맞잡은 손을 두어 번 흔들던 성건우가 곧 손을 거뒀다.

그러고는 얼른 지프의 뒷좌석으로 돌아가 차 문을 닫았다.

로봇 승려 정법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내 성건우가 열린 창문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며, 들어 올린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안녕히!”

진심 어린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승복을 입고 가사를 걸친 정법도 호응하듯 들어 올린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성건우가 따로 신호를 주지도 않았지만, 운전석의 백새벽은 엑셀을 밟으며 지프를 몰았다.

장목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새벽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백미러를 통해 누런 승복과 붉은 가사를 걸친 로봇 승려 정법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더 이상 그 무시무시한 승려 교단의 로봇 승려가 보이지 않게 되자, 묵묵히 거리를 계산하던 장목화가 잔뜩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그 효과, 얼마나 유지돼?”

성건우는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주위 사람이나 상황, 환경이 끊임없이 정법에게 같은 답을 주입한다면, 정법은 이상한 점을 영원히 알아차리지 못해요. 반대되는 논증이나 결과를 발견할 때까지는요.

하지만 현재 정법의 주위엔 우리가 그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려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상황이 없어서 순환 증명이 불가능해요. 그러니 5분,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깨어날지도 몰라요. 그 시간이 지나면 정법은 분명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릴 거예요. 그는 우리 팀에 여자 두 명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여자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용여홍은 여태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성건우의 설명도 그에게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들려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장목화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대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백새벽, 차 세워. 내가 운전할게.”

“팀장님, 검은 늪 황야에 대해서는 제가 더 잘 알아요.”

백새벽은 논리적으로 따지면서도 장목화에게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상황 설명부터 하는 대신 곧장 문을 열고 내린 장목화가 운전석으로 가서 백새벽과 자리를 바꿨다.

지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목화가 전방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난 유전자 개조를 통해 독특한 능력들을 얻었어.”

그녀의 말에 백새벽은 물론, 용여홍과 성건우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반고 바이오에서도 유전자 개조 기술은 아직 성숙한 기술이 아니라 실패율이 상당히 높았다. 다른 방법이 없는 지원자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시도하려 하지 않을 정도였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어. 생체 공학 의수 이식도 그때 같이 한 거고.”

장목화는 얼른 설명을 이어나갔다.

“체내에 존재하는 일종의 특수한 세포 덕분에 난 일정 범위 내의 전기장 신호를 감지할 수 있어. 그리고 인간과 야수가 움직일 때 일어나는 근육의 수축과 모종의 반응은 미약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지. 그러니 적이 일정 범위 안에 진입하기만 하면, 난 그가 숨어있든 조심했든 그의 위치와 상태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어.”

“어쩐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유적 사냥꾼의 접근을 저보다 훨씬 일찍 알아차리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백새벽이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건우와 용여홍 역시 그간 느꼈던 의혹을 해소할 수 있었다.

땅 밖으로 나온 첫날 밤, 성건우는 분명 인간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장목화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호기심도 느끼지 않았으며 대대적으로 주변을 탐색하지도 않았다. 이제 보니 그녀는 일찍이 상대의 특징과 상태를 파악하고 그를 토대로 판단을 내렸던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운전을 하면서 빠르게 덧붙였다.

“검은 늪 철갑뱀은 동면 상태였던 터라 전기 신호가 매우 미약해서 그냥 일반적인 동물인 줄 알았어. 그래서 미리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하지만 정법은 로봇 승려라 움직일 때 굉장히 강한 전기 신호를 일으키지. 덕분에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판단할 수 있었어.

사실 난 그가 습격해오기 전부터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어. 새벽이에게 차의 속도를 늦추게 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었지. 정법의 공격을 유도하며 기회를 노려 그를 처리하거나, 그에게 중상을 입히려고 한 거야.

이전까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정법은 아주 끈질긴 로봇 승려야. 한 번 포착한 목표는 끝까지 쫓는, 굉장히 위험한 녀석이지.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망가뜨려 당분간 추격하지 못하게 하는 거였는데, 정법 역시 각성자일 줄은 몰랐어. 로봇 승려이면서 각성자라니, 하마터면 우리는 다 같이 죽을 뻔했지.

이 점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이제 곧 정법이 다시 우리를 쫓아올 거야. 이번에는 원거리 공격을 시도할 텐데, 여기에서 그의 접근을 미리 알아차리고 때맞춰 차를 움직일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말로 지시해서는 늦을 테니까.”

백새벽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전방과 좌우 상황을 살피면서, 어느 방향으로 가면 안 되는지 알려드릴게요.

시계 방향으로 알려드리는 건 어떨까요?”

백새벽의 목덜미에는 손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흔적이었다.

“좋아.”

장목화는 차의 속도를 늦추며 전방의 장애물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백미러를 힐끔 살핀 그녀가 말했다.

“성건우, 용여홍, 너희는 얼른 외골격 장치를 착용할 사람을 정해.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사람은 정법에게 주로 대항하게 될 거야.”

용여홍이 입을 열기도 전, 성건우가 아주 단호하게 대꾸했다.

“제가 할게요.”

뒤이어 그는 논쟁을 하려 하는 용여홍을 돌아보면서 간단히 설명했다.

“정법은 각성자야. 넌 그자의 상대가 될 수 없어. 그리고 난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외골격 장치가 필요해.”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살짝 굽힌 용여홍이 성건우와 함께 트렁크에 실린 외골격 장치를 끌어냈다.

그러고는 성건우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트렁크에 있는 고성능 배터리로 교체하는 거 잊지 마.”

장목화가 성건우를 보며 일러줬다.

고성능 배터리를 생산하는 대형 세력은 오렌지 컴퍼니와 퓨쳐인텔리 두 곳밖에 없었다. 그 외의 다른 곳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기껏해야 성능이 떨어지는 모조품에 불과해, 해당 세력이 아닌 곳에서 민간용으로만 쓰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군용 설비에 들어가는 고성능 배터리는 50퍼센트의 확률로 서로 호환이 가능했다. 운 좋게도 이번 구조팀의 지프차에 들어가는 고성능 배터리와 군용 외골격 장치에 들어가는 고성능 배터리는 모두 퓨쳐인텔리에서 생산된 표준 제품이었다.

“네.”

성건우는 이런 방면에서는 거침없이 답했다.

배터리를 교체한 성건우는 파워팩과 금속 골조를 짊어진 후, 허리를 굽혀 보조 관절 부위의 버클을 채우면서 물었다.

“팀장님, 조금 전에 정법의 내부 시스템에 침투했을 때 왜 갑자기 실패하신 거예요?”

그는 그것이 각성자인 정법이 가진 또 하나의 능력 때문이리라 의심했다.

현재 그는 이미 상대의 두 가지 능력을 알고 있었다.

아귀도와 타심통(他心通)이었다.

장목화는 지금 아주 바빴다. 지프가 늪에 빠지거나 돌이나 나무뿌리 등의 장애물 때문에 뒤집히지 않도록 전방을 주시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각종 전기 신호에 집중하며 로봇 승려 정법이 쫓아오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떤지 살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녀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녀의 뇌 역시 유전자 개량으로 인해 강화된 듯했다.

“그때⋯⋯.”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일반인보다 몇 배는 더 컸다.

“내 상태는 아주 기이했어. 내가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 기억 방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야. 당시의 난 이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을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기억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순 없었어.”

그녀는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비판하며 말을 이었다.

“난 정법의 육신에 영향을 미쳐서, 그가 각성자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판단 착오였던 거야.

이게 바로 로봇 승려와 일반인의 차이인 걸까?”

그녀의 말을 듣던 백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판단 착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었어요. 곤경에 처한 상태에서의 반격이었잖아요. 많은 것을 따질 수 없는 때였다고요.”

성건우는 다리 관절의 버클까지 잘 채운 뒤 고개를 들며 말했다.

“각성자의 능력은 대부분 의식과 신체의 각 방면에서 일어나는 영향에 의존하죠. 예컨대 신체에 타격을 입혀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각성자로 하여금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게 하거나 집중하지 못하게끔 한다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능력을 사용할 수는⋯⋯.”

이는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은 성건우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장목화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입을 열기 전, 그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주먹질 한 번에 각성자를 기절시킬 수 있다면, 그는 절대 특수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을 거예요.”

예시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마친 성건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장목화의 판단에 동의했다.

“이런 방면에서 보자면, 로봇 승려와 인간은 확실히 다를 수 있겠네요.”

그 말에 장목화가 자조하듯 웃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황금손가락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아. 만약 빠르게 정법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 침투해 전원을 꺼버린다면, 각성자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겠지. 문제는 영생자의 의식이 바이오닉 칩을 떠난 뒤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거야.

하, 너희들도 조심해. 지나치게 자신해서는 안 돼. 확실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판단을 조금 더 의심하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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