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6화 (36/649)

36화. 괴이한 죽음

해리스 브라운과 성건우의 대화는 사실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한담에 더 가까웠다.

성건우는 해리스 브라운의 동료를 힐끔 살폈다. 상대는 16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여자였는데, 외모는 평균 수준이었다.

자연스레 늘어진 린넨색 머리카락은 어깨에 살짝 닿았으며, 비교적 깨끗한 베이지색 베레모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아무런 수확도 없어 보이는데?”

성건우는 다시금 해리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해리스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답했다.

“그저 이 근처를 지나며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었으니, 아무런 수확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

이 폐허에서 적당한 장비 없이 물자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너희는 첫 방문이냐?”

“맞아.”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너희도 그 임무를 받았어? 검은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녀석을 찾는 임무 말이야.”

해리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충고 하나 할까. 이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할 거야.

그 임무는 포기해. 최근에 웨이루 역 북쪽의 동정이 심상치 않아.”

“늪 깊은 곳에서 일어났던 이상 현상과 관련된 문제인가? 그날 밤의 포효, 너희들도 들었지?”

성건우가 캐물었다.

해리스의 표정은 점차 심각해졌다.

“맞아, 그때 우리는 마침 웨이루 역 북쪽에 있었어.

날이 밝은 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우리는 그곳에서 몇 구의 시체를 발견했지. 죽은 지 몇 시간 안 된 시체였다.

그 시체들에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다 일그러져 있었어. 고통과 두려움에 잠식된 표정이었어. 그중엔 끔찍한 웃음을 짓고 있던 녀석도 있었고.”

용여홍은 그 말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 느낌은 이어진 성건우의 질문에 의해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그럼 옷은? 옷은 입고 있었나?”

‘이게 무슨 이상한 질문이람.’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해리스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안 입고 있었어.

우리보다 먼저 시체를 발견한 자들이 모든 것을 싹 가져간 거겠지.”

“전문적이군.”

성건우의 칭찬에, 해리스는 상대의 대화를 쫓아가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 없이 숨을 들이마시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조차 남겨놓지 않았어. 그거라도 남아 있었다면 가발 하나를 장만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그 시체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임무를 포기하고 곧장 돌아오기 시작했어. 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달린 끝에 한 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했지.”

“상당히 빠른데.”

성건우가 여유롭게 중얼거렸다.

해리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나 오토바이로는 지날 수 없는 늪의 좁은 길을 이용할 수 있었어.”

성건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지막 질문이야.

이쪽에 다른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가 있어?”

“몇 명 정도. 하지만 너희들에겐 그 정도의 무기가 있으니, 먼저 나서서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그들 역시 너희들을 건드리려 하지 않을 거야.”

해리스의 머리가 햇빛 아래 약간 반짝거렸다.

“이런 무기가 없었다면?”

성건우의 질문에, 해리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애쉬랜드에서 허약하다는 건 곧 죄야.”

동시에 약간 거칠어진 해리스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증오가 어려있었다.

성건우가 또다른 질문을 잇기 전, 숨을 토해내며 원래의 표정을 되찾은 해리스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야.

이건 방금 전 내가 해준 충고에 대한 대가이기도 해.”

사실 그는 성건우가 반드시 답을 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했던 충고에 담긴 정보는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수상쩍은 상황을 감지하여 철수하고 돌아오는 유적 사냥꾼은 그들 말고도 많았다.

게다가 그 일이 일어난 지는 벌써 하루도 더 지나 있었고, 이곳에서 웨이루 역 북쪽까지는 아무리 빨리 이동해봤자 하루가 넘게 걸렸다. 해리스는 자신이 따로 충고해주지 않았더라도, 마주한 두 사람이 때맞춰 웨이루 역에 도착하지는 못했으리라고 확신했다.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지불 해도 되나?”

성건우는 돌격 소총의 탄창 부분을 쥐고 있던 왼손을 풀어 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봐야겠는데.”

해리스 브라운과 그의 동료는 경계심을 더욱 높였다. 성건우의 옷 안주머니에서 어떤 위험한 물건이 나올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건우는 빠르게 두 개의 압축 비스킷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가 폐허에서 먹을 점심의 일부였다.

“⋯⋯훌륭해. 아주 관대한 처사로군.”

상대가 식량으로 대가를 지불할 줄은 몰랐던 해리스 브라운이 말했다.

압축 비스킷 두 봉지라면, 힘겹기는 해도 두 사람의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었다.

성건우가 두 개의 봉지를 상대에게 던져 주었다.

해리스 브라운과 그의 동료는 그것을 받는 대신, 압축 비스킷 봉지가 바닥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들을 받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상대가 방아쇠를 당길까 염려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또 보자고.”

성건우는 웃음을 지으며 마치 친구를 대하듯 작별 인사를 했다.

이내 그는 용여홍과 함께 해리스와 그의 동료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지 않은 채, 한 걸음 한 걸음씩 철강공장의 대문 쪽으로 향했다.

상대측도 마찬가지였다.

명사수가 아닌 이상 명중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충분히 벌어지자, 해리스 브라운은 그제야 동료에게 압축 비스킷을 챙기라고 한 뒤 자전거를 가져왔다.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이 폐허 저쪽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성건우와 용여홍은 돌격 소총을 든 채 대문 밖의 광장을 한 번 돌아보았다.

“밖은 주거 구역인 것 같은데 일단 이곳부터 탐색할래, 아니면 안쪽부터 탐색할래?”

잠시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물었다.

성건우는 광장 양쪽의 무너지거나 망가진 채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건물은 살피지도 않은 채 대문을 가리켰다.

“일단 안쪽부터 살피면서 기본적인 구조를 파악하자.”

“좋아.”

용여홍은 반대하지 않았다.

* * *

두 사람은 곧장 여러 대의 차가 나란히 달려도 될 정도로 폭이 넓은 검은색 대문을 통과했다.

“보아하니 유적 사냥꾼들에게도 한계는 있는 모양이야. 이 대문은 떼어가지 않았네.”

용여홍이 뒤를 힐긋 돌아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성건우가 역시 거대한 대문을 훑어보았다.

“수지 타산에 안 맞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그들은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대신, 넓지만 낡은 길을 따라 철강공장 안쪽으로 진입했다.

오른편에는 매우 높고 넓으면서 문이 없는 단층 건물이 한 줄 자리해 있었다. 그 안에는 병원의 외래진료실이 딸려 있던 그 단층 건물처럼 하나하나의 방을 나누는 벽이 아니라 기둥만 세워져 있었다.

좌우의 벽이 없는 일부 방 안에는 사람이 서 있거나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홈들이 하나씩 나 있었다.

“이건 뭘까?”

용여홍이 물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 홈에 서면 자동차의 바닥 부분을 수리하기에 상당히 편할 것 같지 않아?”

“그럼 여긴 수리 구역인가? 옆에는 차고고?”

용여홍이 깨달음을 얻은 듯 말했다.

“이따가 표시해두자.”

한편 길 왼편으로는 악취를 풍기는 연못과 간헐적으로 자리한 크지 않은 나무들, 그리고 녹색 식물에 뒤덮인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일단은 그것들에 신경을 쓰는 대신 계속해서 공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높이 솟은 몇 개의 굴뚝이 자리한 곳 부근에 이르렀다. 주위에는 여러 개의 강철 골조와 조악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거대한 용 같은 검은색 대형 파이프들은 굴뚝의 모처로부터 아래쪽으로 뻗어진 채 각기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각도를 봤을 때 전부 그렇게 가파른 편은 아니었다.

또한 이 파이프들은 수직으로 잘라 한쪽 부분만 쓴 것처럼 개방되어 있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이 구역에 진입한 뒤 길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얼룩덜룩하게 녹이 슨 강철 숲 안을 지나다녔다.

곧 길의 가장자리에는 망가진 난간이 나타났다. 그 바깥쪽에는 빗물이 고인 수조가 하나 있었는데, 원래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파악할 순 없었다.

수조의 위쪽에 자리한 구조물이 햇빛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수조 주위는 유난히 음산하고 어두워 보였다.

거기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적막한 분위기에 용여홍은 점점 더 큰 불안함을 느꼈다.

결국 참다 못한 그가 입을 열었다.

“다른 유적 사냥꾼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왜 한 명도 못 마주쳤지?”

성건우가 용여홍을 힐긋 노려보며 물었다.

“이런 때에 그런 플래그는 왜 세우는 거냐?”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저 높은 곳에서 돌연 덜컹덜컹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철제 골조와 건축물 일부에 쿵, 쿵, 몇 번 부딪친 그것은 건우와 여홍으로부터 멀지 않은 전방에 떨어졌다.

그건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추락할 때 여기저기 부딪히며 찢어지고 까진 곳곳에서 피가 마구 흘러나왔다.

덜컹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지며, 좀처럼 잠잠해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용여홍과 성건우가 이러한 상황에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 전방의 길모퉁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건우보다 조금 키가 더 큰 상대의 온몸은 검은색 금속 골조로 이루어져 있었고 왼팔에는 유탄발사기가, 오른팔에는 화염방사기와 레이저 발사구가 장착되어있었다.

상대는 낡아 빠진 누런색 승복을 입은 채, 그 위에는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달린 두 눈에서는 붉은빛이 번득였다.

그 거대하고 기이한 로봇을 본 순간, 성건우와 용여홍의 심장은 동시에 덜컥 내려앉았다. 온몸의 모공이 제멋대로 닫히며 솜털이 쭈뼛 섰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승려 교단의 승려!

애쉬랜드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 중 하나인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은 영생인(永生人)이었다.

반고 바이오에서 보급하는 교과서의 설명에 따르면, 구세계 파괴 전 인류는 이미 특정 과학 기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척을 이루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걸출하고 가장 많은 칭찬과 동경을 자아냈던 것은 의식 업로드였다.

의식 업로드는 특수한 설비를 이용해 인간의 의식을 전문적으로 설계된 로봇의 바이오닉 칩에 이식하는 기술이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나약한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 이상 늙지도, 병을 앓지도, 굶주리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어가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저 정기적으로 수리와 부품 교체만 진행한다면 의식상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구세계 파괴 전까지 이러한 기술에는 많은 결함이 존재해, 정식으로 이용되지는 않고 그저 실험실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다 구세계가 파괴되고 혼란의 시대가 도래하자, 스스로를 영생인이라고 칭하는 로봇 무리가 돌연 지상에 나타났다.

그들은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상상력, 사고방식, 그 외의 유력한 증거들을 이용해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분명 이전에는 인간이었으며 의식상의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믿게 했다.

영생인의 말에 따르면, 의식 업로드의 모든 기술은 대재난 속에서 유실되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설비는 단 몇 대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인간의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는 바이오닉 칩과 그에 대응하는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그 원리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그저 그것을 이용할 줄만 아는 그들로서는 영생인을 제조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지 위를 돌아다니는 그들의 목표는 인류의 연합을 호소하고, 장치의 원리를 파악하여 의식 업로드 기술을 재현한 뒤, 이를 통해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하며 이 암흑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