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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32화 (32/649)

32화. 복기

국방색 코트를 단단히 여민 전두하가 묻자, 장목화는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신가 하고요.

남자이고, 머리칼은 검고 눈은 금색이랬어요. 그리고 키는 180센티미터고, 잘생긴 편이래요. 아마 쟤보다 더 잘생겼을 거예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건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트렌치코트와 장갑을 즐겨 착용하고, 머리는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다녀요. 또 가죽 부츠를 잘 신고 다니고요.”

기억을 더듬던 전두하가 입을 열었다.

“해자마을에 들어오는 외부인은 매우 적고, 나도 마을 밖으로 나가본 지 한참 됐어. 네가 말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발바리, 네가 최근에 사냥을 나갔던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보고 이들에게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촌장님.”

또 한 번 멋진 모습을 뽐낼 기회를 포착한 경비대원 발바리가 곧장 어디론가 달려갔다.

국방색 코트를 입고 털모자를 쓴 전두하는 이내 헛간에서 나가 각양각색의 집이 난잡하게 세워진 구역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그로부터 시선을 돌린 백새벽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경비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뒤이어 자리에 앉은 그녀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촌장님은 왜 해자마을 내부의 갈등을 우리에게 알려줬지?”

장목화는 화로 안의 불빛을 바라보며 웃었다.

“당연한 거 아냐? 우리의 배후에 존재하는 대형 세력이 해자마을을 거둬줬으면 하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를 손님으로 초대했겠어?

아무리 너를 믿는다고 해도 우리까지 초대할 필요는 전혀 없었잖아. 너에 대한 관심과 호의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 테니까.”

고개를 돌린 그녀가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용여홍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해자마을 내부의 갈등은 촌장에게 아주 오랫동안 고민거리였던 것 같아. 촌장은 자신이 죽고나면 해자마을의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다 결국 분열되어 버릴까 봐 걱정하는 거야.

이러한 걱정을 하고 있던 와중, 그는 그가 알고 있고 믿을만한 황야유랑자를 만나게 되었어. 그리고 그 황야유랑자는 꽤 큰 세력에 의탁해 상당히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너희들이라면 그 관계를 이용해 해자마을을 황야유랑자에 대해 큰 악의를 품은 것 같지는 않은 대형 세력에 들여보내고 싶지 않겠어?

그런 대형 세력에게 보호와 통치를 받으며 그들의 계획에 따르게 된다면, 해자마을 내부의 갈등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테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용여홍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팀장님, 회사에서 저들을 받아줄까요?”

이는 백새벽이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면, 조금 전 의도적으로 혼잣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새벽의 시선을 느끼며 전방의 화로로 다시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웃음을 머금은 채 답했다.

“회사로 돌아가면 내가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부에 보고할게. 해자마을을 받아들일지 어쩔지는 이사회의 결정에 달린 문제지. 이런 일에 있어서는 안전부와 전략위원회도 그저 제안만 할 수 있을 뿐이야.

하지만 난 해자마을의 구체적인 위치까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야. 황야에서 그 마을의 사냥팀을 우연히 만났다고만 이야기하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백새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좋겠네요.”

용여홍은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왜 해자마을의 구체적인 위치를 숨겨야 하죠?”

보고 대상은 바로 그들이 속한 회사였다.

웃음기가 어린 눈으로 그를 슥 훑어보던 장목화는 답을 하지도,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봐, 건우는 묻지도 않는다.”

성건우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팀장을 바라보았다.

“어, 뭐라고요?”

장목화는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잘생겼다고.”

“괜찮은 편이죠.”

성건우는 퍽 겸손하게 대꾸했다.

사방은 순간 고요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바리라고 불렸던 경비대원이 달려와 장목화 옆에 이르렀다.

“말씀하셨던 그자를 봤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웨이루 역 북쪽에서 아주 기이한 사람을 봤답니다. 당시 사냥팀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상당한 매력을 느낀 탓에 자기도 모르게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서 그에게 접근했지만, 그는 매우 냉담하게 굴며 억지로 거리를 벌리더니 결국 황야 어딘가로 사라졌다는군요.”

“이상하네⋯⋯.”

그 이야기를 들은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듯 작게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들더니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아뇨, 별말씀을!”

발바리라는 경비대원은 감격한 듯 답했다.

하지만 장목화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경비대원 발바리는 결국 헛간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내 성건우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캄캄한 하늘과 묵직한 먹구름 아래 온 마을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화력 발전기가 웅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역삼각형 대형의 건물들 안 적잖은 방에는 불이 켜졌다. 그리고 마을의 외벽 위에 설치된 하나하나의 전구도 빛을 발하며 경계 중인 경비대원들의 주위를 밝혀주었다. 주거 구역과 황야유랑민들의 집이 난잡하게 세워진 광장 안, 드문드문 밝혀져 있던 촛불이 일렁이다가 금세 꺼져버리자 그곳은 곧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쏴아아.

오랫동안 무르익었던 비가 마침내 어두운 밤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밤은 깊었고, 싸늘한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해자마을은 이미 어둠에 완전히 잠식된 것 같았다. 드문드문 밝혀진 등불만이 캄캄한 허공을 관통할 뿐이었다.

떠들썩했던 분위기와 온갖 것이 뒤섞인 냄새는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덕분에 성건우는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적막을 느꼈다.

헛간 주위의 몇몇 경비대원은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는 구역을 순찰했고, 다른 몇몇은 미리 준비해둔 어두운 색의 우비와 대형 가마니를 뒤집어쓴 채 벽 근처의 나무 골조 위를 어슬렁거렸다.

여러 전구에서 발산되는 빛에 비쳐 빗줄기가 반짝거렸다.

“이곳에는 원래 화력 발전기가 두 대 있었어요. 나중에 그중 한 대가 망가졌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고칠 수가 없었죠. 음, 하지만 황야유랑자의 거점에서 전기가 없다는 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식량, 옷, 무기, 그리고 깨끗한 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원이죠.”

백새벽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으며 덧붙였다.

“좀 크게 말해주면 안 될까? 음, 식량과 깨끗한 물은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자원이고, 옷은 동사나 추위로 인한 질병을 막아주지. 그리고 무기는 다른 누군가가 내 식량이나 옷, 깨끗한 물을 빼앗아갈 수 없도록 해주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거센 빗줄기를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지프는 내일 아침에 다시 고치고, 오늘 저녁에는 이번 야외 야영 훈련의 첫 번째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자.

오늘 있었던 전투를 복기하고 경험과 교훈을 총괄하는 거야.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당시의 선택과 경험을 설명해 봐. 백새벽, 너부터.”

반고 바이오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이런 야외 야영 훈련을 경험해본 적도 없는 까닭에, 황야유랑자 출신 백새벽은 전투 후 복기 과정이 있는 줄 전혀 예상치 못해 한동안 머뭇거렸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팀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가 황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어느 정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시로 반성하고 자신의 실수를 되짚어 본 덕분이었다.

잠시 할 말을 고르던 그녀가 그 강도 겸 유적 사냥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부터 시작해, 자신이 기억하는 하나하나의 세부 사항들을 이야기해나갔다.

그녀 다음에는 성건우가, 성건우 다음에는 용여홍이, 마지막으로는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복기를 마친 장목화가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자발적으로 공격에 나서서 오토바이 운전수 두 명을 죽인 건 아주 단호한 결정이었지만, 실은 아주 무모한 짓이기도 했어.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은 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분명 너였을 거야.”

뒤이어 그녀는 엷게 웃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의 일부지. 넌 운과 실력의 균형을 잘 맞춰서, 최대한 그걸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약간 놀란 듯 멍한 표정을 드러냈던 성건우가 곧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의 마지막 말을 농담으로 여기며 별생각 않던 용여홍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가장 큰 의혹을 표했다.

“팀장님, 아까 전에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던 강도 두목이 판단 실수와 무모함 때문에, 우리한테 목숨을 잃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사람이 큰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가요?”

장목화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어째서 처리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건,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그 사람의 경험이 풍부하고 체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람이 외골격 장치까지 착용했다면 진정한 전장에서도 대량살상 무기로 쓰일 수 있는 정예 중의 정예라는 거지.

우리는 머릿수도 적고, 중무기도 없어. 유탄발사기라고는 한 대밖에 없는데 그것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적을 처리해? 너, 군용 외골격 장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그, 그렇다면⋯⋯.”

그제야 용여홍은 자신이 지옥 가장자리에서 겨우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목화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 적에 대적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상대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기 전이야.

만약 그럴 기회가 없다면 그가 가까이 오기 전 그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수밖에 없지. 군용 등급의 외골격 장치는 지프차만큼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해. 어떤 모델은 심지어 그것보다 더 느리고, 항속 능력도 더 떨어지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우리는 전방 지형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검은 늪 철갑뱀과의 전투로 인해, 각 방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 말하자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었던 셈이지. 만약 그 녀석이 몸을 사리지 않으려는 듯 처음부터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전리품을 마구 파괴하는 대신 보다 신중하게 굴었더라면, 우리는 그의 첫 번째 공격으로 거의 전멸했을 거야.”

장목화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애쉬랜드의 위험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용여홍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변해갔다. 성건우와 백새벽은 장목화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건우가 오토바이 운전수를 죽이며 그 두목 녀석을 격노하게 하기 전, 나에게는 두 가지 방안이 있었어.

하나는 그 자리에서 즉시 투항해 거리를 벌리다가, 일정한 범위에 진입하자마자 그들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반격하는 거였지.”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이 방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랑 새벽이는 살아남아 적어도 짧은 시간 동안은 포로가 되었겠지만, 너희 둘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야. 그들 중 남자를 더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녀석이 없는 이상에는 말이지.”

용건우와 성여홍의 표정은 순간 복잡해졌지만, 장목화는 그들의 반응에 퍽 즐거워진 듯 웃음을 지었다.

“두 번째 방안은 두려움에 찬 녀석의 심리 상태를 이용해 일종의 함정을 설치하면서, 그가 미리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거였어. 녀석이 미리 도망치지 못하기만 한다면, 내가 외골격 장치로 보호되지 않는 그의 신체 부위를 명중시킬 수가 있었거든.”

“어떤 함정인데요?”

용여홍이 물었다.

장목화는 그를 2초간 가만히 바라보다가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아직 생각은 안 해봤어.”

“⋯⋯.”

용여홍과 성건우의 얼굴 근육이 약간 경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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