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0화 (30/649)

30화. 확신

성건우와 용여홍, 장목화를 비롯한 이들이 이야기에 잔뜩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전두하는 불가로 손을 뻗어 열기를 쬐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 폭발로 인한 기류에 쓸린 거겠지. 다행히 깨어났을 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정신을 차린 후 난 계속해서 달려갔어. 하지만 할아버지 집은 이미 폭삭 무너져 있었고, 두 분은 밖으로 나오시지 못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보다 더 젊으셨어. 닭도 키우고, 푸성귀도 기르고, 못하시는 일이 없었지.

크흠,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당시 그 촌락의 생존자는 적지 않았어. 난 아저씨와 아줌마, 다른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따라 마을로 갔다. 마을에는 온전한 집들이 적잖게 남아있었지만, 우리는 그 집을 선택하지 않고 탁 트인 이곳을 선택했어. 임시 천막을 세우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깔려 죽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통신망도 끊어지고, 잡히는 신호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이곳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렇게 지원과 도움을 기다렸지만 그중 어떤 것도 오지 않았지⋯⋯.”

전두하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졌다. 아직까지 당시의 두려움과 절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몇몇 아저씨와 아줌마는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릴 수 없다며 슈퍼나 다른 사람의 집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기도 하고, 해자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려고 하기도 했어. 나도 그들과 함께했지. 그렇게 한다면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웃지 마, 그건 어린아이의 아주 본능적인 선택이었으니까.

우리는 차를 타고 끊어진 길을 달렸어.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끝에 도시에 도착했지.

그러나 그곳은, 그곳은 더욱 끔찍했다⋯⋯.”

전두하의 눈에서 점차 초점이 사라졌다.

마치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에 빠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를 비롯한 구조팀은 전두하를 재촉하지 않고 화로 주위에 얌전히 앉아 음식이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십여 초가 흘렀을 무렵, 눈의 초점이 돌아온 전두하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시 안의 도처에는 시체와 이성을 잃은 무심자가 널려 있었어. 거리도 그랬고, 주거 구역도 그랬고, 상점도 그랬지.

입가에 피를 흥건히 묻힌 채 시체를 먹는 무심자는 가장 흉악한 야수와 다를 바가 없었어. 그들은 원숭이처럼 높은 건물을 기어오르다가 10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며 어느새 뒤에 나타나기도 했고, 총기를 사용할 줄도 알았지.

8, 9명 정도에 불과했던 우리의 숫자는 그러한 상황에 봉착하자마자 반으로 줄었다.

난 아무래도 어리기도 하고 키도 작았으니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첫 번째 공격 대상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지.

당황한 우리는 길을 가릴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달려 근처의 경찰서에 뛰어들었어.

다행히 무심자는 총을 쏠 줄도 알고, 탄창을 교체할 줄도 알았지만 자발적으로 무기를 찾지는 못했어. 우리는 경찰서 안의 시체들을 뒤져 적잖은 총과 총알을 챙길 수 있었지.”

이 대목에서 피식 웃던 전두하가 백새벽과 장목화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그 무기들을 가지고 무심자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데 성공했을까?

전혀. 아저씨와 아줌마를 포함한 우리 중 총을 쏠 줄 아는 사람은 없었고, 총소리는 더 많은 무심자를 자극해 끌어들였지.

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렸어.

다행히 몇몇 아저씨와 아줌마는 살고자 안간힘을 썼고, 나를 포기하지도 않았어. 그대로 달아난 우리는 한 주차장에 이르렀지.

그곳에서 우리는 문도 열려 있고 열쇠도 꽂혀 있는 SUV를 발견했어. 주인은 없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주인은 이미 무심자가 되어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다른 곳으로 갔던 것 같아.

그 SUV에 오른 우리는 여러 명의 무심자를 받아버리고 대로로 나갔지.

그 구역의 무심자들은 많지 않았고,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 곧장 도시 밖으로 나갔어. 교외로 나오자 비로소 조금 안전해지더군.”

전두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해자마을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분들과는 결국 만나지도 못했어.”

그는 점차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냄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동안 약간의 음식과 옷을 챙겼지.

그 후 SUV를 버리고 물건들만 챙겨 끊어진 길을 건넌 우리는 마을에서 나올 때 탔던 두 대의 차를 되찾았어.

그렇게 해자마을로 돌아온 거야.

그때는 이미 겨울이었고, 지원이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다들 더 이상 지진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을에 남아있던 그나마 온전한 건물을 이용하기로 했지. 얼어 죽을 때까지 천막생활을 고집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새해가 얼마 안 남은 때라서 그런지 집집마다 미리 준비한 선물들이 잔뜩 쌓여있었고, 슈퍼에도 물건들이 가득했어. 그해 겨울 동안 먹을 음식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

하지만 몇몇 아저씨와 아줌마는 그렇게 쌓인 음식을 그냥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어. 버릇이 될 수도 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될 수도 있으니 노동을 통해 음식을 교환해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했어. 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곳에 있던 건물들을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고, 외벽을 보수하고, 마을 밖의 논과 밭에 수로를 만들고, 급수탑에 정수장을 세우고, 총기의 사용법을 익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들이었는지 실제로 깨달은 건 꽤 나중이었어. 기근에 대응할 때도, 야수와 강도, 무심자에 맞설 때도 그런 준비들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지.”

집단 노동을 하던 당시를 떠올리던 노인의 눈은 재차 초점을 잃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많이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되었을 때에서야 우리는 확신하게 되었어.

지원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뒤이어 고개를 든 그는 애써 웃음을 짜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너희들도 대충 짐작하겠지.

겨울, 그러니까 대량의 무심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때를 틈타 주위에 있는 폐허 도시를 탐색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식량과 옷, 총, 총알, 배터리와 연료 등의 물자를 모았지. 그 사이 생산을 관리하고, 사냥을 시도하고, 먼 곳으로 사람을 보내 혹시 살아남은 도시가 있는지 살피기도 했고.

어때? 더 듣고 싶냐?”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듣고 싶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먹으면서 말씀하셔도 돼요. 저희도 먹으면서 들을게요.”

냄비 안의 소고기 조림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올게요.”

“저도요.”

용여홍이 따라서 일어났다.

“그래, 올 때까지 기다릴게.”

장목화는 땅 밖으로 처음 나온 두 팀원을 십분 이해했다.

그녀 역시 처음으로 회사에서 나와 검은 늪 황야에 진입했을 때 용변 처리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못 참을 정도가 아니라면 나무나 덤불 뒤에 쪼그려 앉고 싶지 않았다.

작은 일이야 그나마 나았지만, 큰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건우와 용여홍은 회사에서 나온 이래 아직 큰일을 본 적이 없었다.

* * *

성건우와 용여홍은 전두하의 안내에 따라 난잡한 집들이 가득한 구역을 지나친 뒤, 옆쪽의 외벽과 수평을 이루듯 세워진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각양각색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마구 뒤섞여서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끔찍하다는 것만은 확실한 냄새였다. 토하고 싶지 않다면 될 수 있는 한 숨을 참아야 했다.

동시에 성건우는 목탄을 아끼기 위해 여러 집이 한데 모여 공용 화로를 가지고 밥을 짓는 광경도 보았고, 진흙이 가득 묻은 옷을 벗을 생각도 않고 문가에 쪼그려 앉은 사람이 내용물이 거의 없는 희멀건한 죽을 마시는 광경도 보았다.

어느 집의 반쯤 열린 문 사이로는 병에 걸린 채 침대에 누워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타구(唾具)를 찾는 사람이 보였고,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한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는 때맞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노상에서 그냥 오줌을 싸버렸다.

또한 각 집에서는 열 살이 안 된 어린아이들도 전부 부모를 도와 바삐 불을 피우고 밥을 짓거나 옷을 털고 있었다.

경계심과 호기심이 어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계속해서 걸어 나간 성건우와 용여홍은 마침내 공용 화장실에 도착했다.

왼편에는 치마를 입은 여자가, 오른편에는 남자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표시에 따라 곧장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순간, 두 사람의 눈은 휘둥그렇게 변했다.

이 공용 화장실의 모습이 그들의 상상과는 달랐으며, 반고 바이오 내부의 공용 화장실과도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앞쪽 벽에는 소변기가 길게 자리해 있었고, 뒤쪽 벽에는 마찬가지로 긴, 하지만 더 넓은 대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소변기와 대변기의 물은 여자 화장실과 연결된 장치에 의해 정시에 내려졌다. 그 사이사이에 칸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물이 내려질 때마다 그 안에 차 있던 내용물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갔다.

말하자면 소변기와 대변기는 두 줄기의 시냇물인 셈이었다.

유일하게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위로가 되는 점은 해자마을은 공용 화장실의 위생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청소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는 것이었다.

“할까?”

용여홍이 약간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자.”

앞장선 성건우가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린 뒤 쪼그려 앉았다.

용여홍은 그로부터 비교적 먼 자리를 고른 뒤 성건우를 살짝 피해 벨트를 풀었다.

“이거, 느낌이 좀 이상하네⋯⋯.”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본 그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 사이에 가림막이라고는 없었다.

이윽고 성건우가 코를 움켜쥐며 말했다.

“너 최근에 뭐 먹었냐.”

“⋯⋯.”

용여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였다. 밖에서 한 무리의 해자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주민들은 성건우와 용여홍을 몇 번 살피다가 그중 더러는 소변기로 향했고, 더러는 대변기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았다.

“더 이상해졌네.”

용여홍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중얼거리던 성건우의 생각은 잠시 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만약 촌장님이 이곳에 쪼그려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오면 인사를 하려나?”

성건우의 옆에 앉아있던 해자마을 주민이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촌장님의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어.”

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하자, 용여홍은 완전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침내 개인적인 용무를 다 해결한 용여홍은 서둘러 옷을 추스른 뒤 바깥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용여홍은 상대적으로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외부의 유랑자 거점에 비하면 반고 바이오의 지하 빌딩은 말 그대로 천국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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