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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9화 (29/649)

29화. 과거 회상

백새벽의 안내에 따라 늪 깊은 곳으로 들어간 그들은 거의 분간이 불가능한 길을 통해 미궁 안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해자마을에 도착했다.

문을 지키는 경비대원들은 전두하가 명령했던 대로 무장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대문 안으로 들어온 구조팀을 곧장 오른쪽으로 안내하며, 외벽 구석의 나무로 만들어진 헛간 밖에 차를 대게 했을 뿐이었다.

“오늘 밤에는 이 헛간에서 자면 돼. 차야 비를 좀 맞아도 상관없으니까.”

전두하가 짧게 설명했다.

“모닥불은 피우지 마. 사람을 시켜서 화로와 목탄을 갖다 줄 테니. 이번 거래의 증정품인 셈 치자고. 경비대원들이 주위에서 순찰과 경계를 할 텐데 그건 이해해주었으면 좋겠군.”

성건우와 용여홍은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으로 해자마을 내부를 살폈지만. 장목화는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해합니다. 촌장님, 저희 저녁 식사에 촌장님을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동시에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소고기 조림 통조림 하나와 누르스름한 잎담배 하나를 꺼내 보였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전두하가 쪼글쪼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아주 끝내주는 것들이로군!

왜? 뭐지? 뭘 교환하고 싶어서?”

장목화는 웃으며 말했다.

“구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아시겠지만, 지식은 곧 재물이잖아요.”

“거래 성사!”

전두하는 아주 기쁜 듯 웃었다.

뒤이어 고개를 홱 돌린 그가 옆에 있는 경비대원에게 지시했다.

“발바리, 빨리, 내 집에 있는 화로를 가지고 와, 빨리!”

발바리라고 불린 경비대원은 촌장에게 감히 투덜거리지도 못하고, 얼른 역삼각형 대형으로 자리한 건물을 향해 내달렸다.

* * *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가운데, 해자마을 뒤쪽의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속속들이 돌아왔다. 가까운 곳으로 사냥을 나갔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지 않은 마을은 곧 떠들썩해지기 시작했고, 호기심이 가득 어린 여러 시선이 구석에 세워진 지프에 쏠렸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성건우와 용여홍이 해자마을의 주민들에게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주민들의 옷은 전부 각기 다른 곳에서 가져온 듯 가지각색인 데다가 곳곳에 기운 흔적들이 가득했다. 또한 손도, 얼굴도, 머리카락도, 옷도 모두 더러웠다.

피곤해 보이고 수척하며 키가 작은 편이라는 것도 대부분의 주민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외부인들을 몇 차례 힐끔거리던 주민들은 전두하 역시 그쪽에 있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의 관심도, 걱정도 느끼지 않는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화로를 가지고 나와 밥을 지었다. 더러는 겨가 많이 섞인 곡물을 조심스레 한 사발 퍼서 냄비에 부었고, 더러는 차가운 물과 함께 점심에 먹고 남은 듯한 옥수수빵 반 덩어리를 먹었다. 그러자 해자마을 곳곳에서 밥 짓는 연기와 함께 음식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전두하는 마을 주민들을 관찰하는 성건우와 용여홍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어때? 무슨 생각이 드냐?”

용여홍은 자신이 느낀 점을 그대로 내뱉으면 너무 예의 없어 보일 것 같아서 벌렸던 입을 다문 뒤 말을 골랐다.

그에 반해 성건우는 주민들로부터 시선을 거둔 뒤 솔직하게 답했다.

“지저분합니다.”

“지저분하다라⋯⋯ 하.”

전두하는 낮게 웃었다.

“너희들에 비하면 분명 지저분하지.”

성건우와 장목화를 비롯한 팀원들의 몸은 이전의 전투에서 이리저리 구른 탓에 진흙과 각종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만 도중에 물을 보충하면서 습관적으로 씻은 얼굴만은 깨끗한 편이었다.

장목화와 백새벽이 대화에 끼어들기 전, 전두하가 턱짓으로 광장 중앙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 해자마을에는 깨끗한 수원지는 있지만, 목탄은 아껴 써야 해. 내가 본 책에 따르면, 나무를 과도하게 베어내면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진다더군.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는 꼭 멀리 나가서 벌목을 하게 되어있어.

가끔씩은 밀수 상인들이 빼돌린 석탄을 살 수도 있지. 새해 같은 때 말이야.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화이트 기사단에는 석탄이 많이 나잖아.

하,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지. 찬물로 그냥 씻으면 되니까. 하지만 가을 이후부터는 최대한 참아야해.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는 조금 더러운 게 낫거든. 정 못 참겠을 때만 주전자에 끓인 물을 천에 적셔 몸을 닦고.”

이쯤에서 잠시 뜸을 들이던 전두하가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웃음을 흘렸다.

“게다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을 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쉬는 시간에는 쉬는 것만으로도 바빠. 그렇게 복잡한 준비를 해가며 씻을 여유가 없는 게야.”

용여홍은 지난 두 달 동안 받았던 훈련을 떠올렸다. 성건우와 함께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장목화에게 훈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반고 바이오 내부에는 직원 식당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건우는 도시락통만 들고 가거나 그마저도 들고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곳에 이미 준비된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되지, 뭘 먹기 위해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네요.”

그가 이해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건우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는 웃음기가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혈액 순환과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찬물 샤워는 왜 안 하느냐고 물을 줄 알았더니.”

“체질에 맞지 않을 테니까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이때 발바리라고 불렸던 경비대원이 전두하의 집에 있던 화로를 가지고 뛰어왔다. 그는 등에 목탄 한 부대를 메고 있었다.

경비대원은 매우 의욕적으로 나서서 불을 피우더니 자발적으로 주변 순찰을 맡았다. 이곳에서 떨어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소고기 조림 통조림을 조금이라도 얻어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을 안의 아가씨들에 비해 머리카락과 얼굴이 모두 깨끗한 백새벽과 장목화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태아였을 때부터 유전자 개량을 받아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장목화는 어린 경비대원들의 눈에는 꼭 천사처럼 예뻐 보였다.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싶었다.

애쉬랜드에서 남녀의 관계는 완전히 오픈되어 있었다. 설령 알게 된 지 몇 분밖에 안 되었다고 해도, 서로 눈이 맞기만 하면 곧장 함께 침대로 직행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을 순찰 및 경계 중인 경비대원들은 가슴을 잔뜩 부풀린 채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그들을 슥 훑어보던 장목화는 하마터면 그 우스운 모습에 피식 웃을 뻔했다.

이내 그들을 무시한 채 지프의 트렁크로 향한 그녀가 군용 통조림 네 개를 꺼냈다.

전두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냄비도 필요하냐, 냄비? 그릇과 젓가락은 안 필요해?”

장목화는 거리낌 없이 답했다.

“있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가져온 도시락통보다는 그게 더 편하겠어요.”

전두하가 곧장 목청을 높였다.

“발바리야, 빨리, 내 집에 있는 냄비와 그릇, 수저를 가지고 와! 몇 명분인지는 네가 알아서 세고!”

“네!”

경비대원 발바리는 빠르게 답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카만 냄비 하나를 들고 달려왔다. 냄비 안에는 다섯 명 분의 그릇과 젓가락이 들어있었다.

화로 위에 냄비를 얹은 그는 장목화를 힐끔 훔쳐보더니 촌장 전두하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촌장님, 제 어렸을 때 별명은 그만 부르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이제 스무 살인데⋯⋯.”

“뭐? 난 네 아빠가 꼬맹이였을 시절부터 봐온 사람이다. 네 아빠도 별명으로 부른다고!”

전두하는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며 말하더니 손을 휘휘 휘둘렀다.

“가, 가, 가. 우리의 식사를, 아니, 대화를 방해하지 말고.”

줄곧 냄비만 응시하고 있던 성건우는 어느 순간 옅은 파란색을 띤 그릇에 매우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상아처럼 흰 젓가락에는 흠 한 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고 바이오 내 대부분의 직원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릇과 젓가락이었다.

전두하는 그런 그를 쓱 훑어보더니 소리내어 웃었다.

“왜? 그릇이 생각보다 안 크냐?”

“너무 좋고 예뻐서 그러는 거예요.”

성건우 대신 답을 한 것은 바로 장목화였다. 그가 또 예의 없는 답을 할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성건우는 이에 개의치 않은 채 고개를 끄덕여 자신의 뜻을 밝혔다.

뒤이어 장목화를 바라보던 그가 입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으으음, 소리를 냈다.

이에 모두가 놀란 가운데, 성건우가 장목화를 향해 물었다.

“제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건지 맞혀보실래요?”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냈던 장목화가 애써 웃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성건우가 서운하다는 듯 되물었다.

“방금 전에는 정확하게 맞히셨잖아요?”

장목화는 들이마셨던 숨을 느릿하게 내뱉었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난 분명 방금 전의 일로 화가 났다고 생각했을 거야.”

말을 하는 사이 그녀는 건우의 눈이 아니라 머리를 노려보았다. 마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직접 머리를 열어 확인하고 싶다는 것처럼.

전두하는 약간 기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 팀의 분위기는 뭐랄까, 정말 편안하고 팔팔하군.”

“저 녀석 머리가 가끔 이상해져서 그래요.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어요.”

장목화가 진지한 얼굴로 강조하자,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에 성건우가 곧장 반박에 나섰다.

“제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그래, 계속 노력해줘.”

장목화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웃음을 흘리던 전두하가 그릇과 젓가락을 들며 입을 열었다.

“이것들은 전부 구세계 도시의 폐허로부터 찾아낸 거야. 그곳에는 이런 물건들이 아주 많지. 게다가 이런 물건들은 가치도 높지 않아.

고생스럽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온 유적 사냥꾼 중 무거운 그릇과 젓가락만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장목화가 감상에 젖은 채 대꾸했다.

“확실히 구세계의 도시 유적에는 아주 많은 물건이 묻혀 있죠. 음⋯⋯ 하지만 지금 쓸모가 없다고 해서 가치가 아예 없는 물건이라고 볼 순 없어요.”

말을 마친 그녀가 다섯 개의 통조림을 냄비 안에 쏟아 넣었다.

“촌장님, 통조림이 데워지기 전에 구세계 이야기나 좀 해주세요. 그때 어떤 일들을 겪으셨나요?”

빈 깡통을 옆에 던져놓던 장목화는 누르스름한 잎담배를 전두하에게 건넸다.

전두하가 화로 안의 숯불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곤 그 연기를 빨아들이며 음미하더니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말했다.

“지금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매년 세 번이라도 담배를 피우는 거야. 이건 올해 두 번째 담배지.”

감탄을 마친 그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추억에 젖은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구세계가 파괴된 건 내가 겨우 열 살이 넘었을 무렵이었어. 그 당시 난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했지.

어머니는 시내 중학교의 교사셨고, 아버지는 관청의 공무원이셨어. 그때는 막 겨울방학을 했을 때라 날씨가 지금보다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더 추웠지.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중학교의 방학은 조금 더 늦게 시작하고, 아버지는 연말이 될수록 더 바빠지기 때문이었을 게야 집에 날 봐줄 사람이 없어서, 두 분은 주말을 이용해 날 할아버지 댁에 데려다주셨어. 할아버지 댁은 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촌락이었지.

똑똑히 기억나. 부모님은 여덟 밤만 자면 다시 돌아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도시에 있는 집에서 새해를 맞이할 거라고 그러셨거든.

하, 곳곳을 마구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밤만 되면 집에 가고 싶어지더라고. 난 매일 밤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며칠 밤이 더 남았는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부모님이 돌아올 날이 되는지 세어보곤 했지.

부모님이 약속한 날로부터 이틀 전 오전, 나와 친구 녀석들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려고 했어. 하지만 어른들이 안 된다고 그래서 결국 얕은 개울 근처에서 놀았지.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나는가 싶더니 지면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하더군.

난 깜짝 놀랐어. 얼른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가 다시는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갈수록 격렬해졌어. 콜록, 콜록. 심지어 엄청난 지진도 함께 온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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