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보충수업
용여홍은 방독면을 쓴 성건우의 도움 아래 15분 동안 바쁘게 움직인 끝에 변이된 뱀의 가죽을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착착 접힌 가죽은 밧줄과 태양열 충전기의 고정 장치에 의해, 지프의 지붕 위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좋아, 잘 묶였어.”
장목화는 손을 툭툭 털며, 외골격 장치를 보조석에 싣는 용여홍과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그녀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세 구의 시체를 가리켰다.
“옷을 벗길까?”
옷은 음식과 무기에 비해 그 가치는 약간 떨이지지만, 애쉬랜드에서는 화폐로 쓰였다.
백새벽과 용여홍이 의견을 제시하기 전, 누구보다 먼저 입을 연 성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늪에 던져 버리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한 구의 시체가 아주 높이, 아주 멀리 던져져 전방의 늪에 떨어졌다. 그러자 사방으로 진흙이 마구 튀었다.
검고 질척한 늪의 표면에 박힌 시체가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옆쪽에도 비슷한 처지의 시체가 자리해 있었다. 다만 늪에 좀 더 깊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쪽을 잠시 응시하다가 시선을 거둔 성건우와 용여홍은 곧 지프 쪽으로 돌아갔다.
장목화는 누가 먼저 오토바이를 몰 것인지 묻지도 않고 헬멧을 쓴 뒤 그 위에 바로 올라탔다.
소형 기관단총을 등에 멘 그녀가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바라보며 웃음기가 어린 얼굴로 말했다.
“이전부터 한 대 갖고 싶었는데, 줄곧 그럴 기회가 없었어.”
말을 마친 장목화가 엑셀을 잡아 돌리자, 대형 오토바이는 묵직하고 격렬한 소리를 냈다.
장목화는 이내 그 위에 엎드렸다. 처음 타보는 거라고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능숙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더 커지는 엔진 소리와 함께 쏜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간 대형 오토바이는 늪의 가장자리를 따라 먼 곳으로 향했다.
“강철과 연료의 로맨스⋯⋯.”
용여홍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유와 바람.”
그때였다. 부릉, 하는 소리와 함께 홱 돌아온 오토바이가 지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멈춰섰다.
발로 땅을 디디고 선 장목화가 헬멧의 실드를 밀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저, 새벽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백새벽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스카프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답했다.
“지프를 따라오세요.”
“어? 뭐라고?”
장목화는 소리를 더 잘 들어보려는 듯 귀 뒤에 손을 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이미 헬멧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고 웃으며 실드를 다시 내린 그녀는 오토바이를 지프 옆쪽으로 몰았다.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이 순서대로 차에 오르자, 백새벽은 운전석에 앉으며 지프에 시동을 걸었다.
이어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검은 늪 황야 안을 달렸다.
그 사이 오토바이에 탄 장목화는 정탐을 이유로 몇 차례나 대열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돌아다녔다.
* * *
약 2시간이 흘렀을 무렵, 백새벽은 약간 힘겹게 달리고 있던 지프를 멈춰 세웠다.
이내 차문을 연 그녀가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또 정탐을 나갔다가 막 돌아온 장목화에게 말했다.
“팀장님, 곧 그 거점이에요.”
장목화는 한쪽 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실드를 올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어?”
백새벽은 거칠한 얼굴 피부를 만지작거렸다.
“이대로 가면 거점 안 황야유랑자들의 신경을 건드릴까 봐 걱정스러워요. 이쪽 방면으로는 상당한 경계심을 가진 자들이니까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팀장님이랑 팀원들은 여기 남아 계시고, 저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거래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그곳으로 함께 가는 거죠. 만약 그들이 우리를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한다면, 외부에서라도 거래를 시도해 볼게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화력을 꺼릴 수밖에 없지.”
지프의 지붕에 실은 검은 늪 철갑뱀의 가죽도 남들을 두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곧장 오토바이에서 내린 장목화가 오토바이를 잘 세워놓고 헬멧을 벗어 백새벽에게 건넸다.
백새벽의 뒷모습이 전방의 성긴 숲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가 지프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한 대 피울래?”
장목화가 웃으며 콘솔 박스 안에 넣어두었던 조악한 담배를 꺼낸 후에 물었다.
그것도 아까 전 강도들을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노르스름하게 구운 담뱃잎에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괜찮습니다.”
용여홍과 성건우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너희 둘도 참, 이건 사치품이라고!”
장목화는 조악한 담배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본 사람들은 담배에 아주 환장을 해. 담배를 피우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도 있고, 과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도 있거든. 술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괴로운 기억을 잊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야. 하, 아주 많은 이들은 술에 취하고 나서야 행복해지지.”
그러자 성건우가 돌연 노래 한 자락을 흥얼거렸다.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야.”
장목화는 입을 살짝 벌리며 비웃었다.
“오, 노래도 해?”
성건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음악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사는 썩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장목화가 귀에 낀 금속 장치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성건우는 마치 학술적인 토론을 하듯 대꾸했다.
“가사는 상황에 맞춰서 언제든 바꿀 수 있어요. 그럼 더 좋은 표현을 하는 데 도움이 되죠.”
“⋯⋯.”
장목화가 손을 휘휘 흔들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잖아!”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했다.
“내가 담배 얘기를 꺼낸 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어.
너희가 방금 전에 겪은 전투는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의해야 해. 사실 담배도, 술도, 진정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도, 전투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그리 썩 좋은 대응 방법이 아니야. 의존하기 쉽고, 몸에도 좋지 않지.
지나친 긴장감, 과도한 스트레스, 초조함, 조급함이 느껴지거나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언제든 나한테 찾아와 이야기하자고 그래. 난 심리학 공부도 하고 있거든.”
“네, 팀장님!”
용여홍이 큰소리로 답했다.
“방금,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사실 새벽이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기분이 훨씬 나아졌죠.”
“잘했네.”
장목화가 칭찬했다.
“상부에서 우리 구조팀의 결성을 허락해 준 이후, 내가 내린 가장 정확한 선택은 새벽이의 신청을 받아준 거였어. 어때, 내 안목 끝내주지?”
성건우와 용여홍이 뭐라 답하기 전, 운전석에 비스듬히 기댄 그녀가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새벽이가 언제쯤 돌아올지 모르겠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너희들한테 이야기나 더 해줄까 봐. 이전까지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성건우와 용여홍은 학교에서처럼 허리를 세워 꼿꼿하게 앉았다.
그 모습에 장목화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집중하면 안 돼! 밖에도 살펴야지. 어디에서 로켓탄이 날아와 우리를 날려버릴지 어떻게 알아?
좋아,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가 이전에 그랬지? 애쉬랜드에서는 극소수의 생물을 제외한다면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은 다른 인간이라고.
그럼 어떤 위험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일까?
용여홍, 네 생각은 어때?”
용여홍이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사람이요.”
그는 방금 전 군용 외골격 장치의 위력으로부터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그것 때문에 나중에 악몽이라도 꾸게 되진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 인공지능 갑옷을 입은 사람도 그렇고. 이런 자들은 혼자서도 하나의 부대와도 맞설 수 있지. 심지어 작은 황야유랑자 거점을 쓸어버릴 수도 있어.”
장목화는 이번엔 성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중무기를 장착한 부대, 출중한 화력을 갖춘 팀, 특정한 유형의 생체 공학 의수나 의족을 장착했거나, 그런 전자 및 기계적인 개조를 거친 사람들이요.”
성건우가 단숨에 세 개의 답을 내놓았다.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그녀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팔을 쓰다듬었다.
“이것 덕분에 난 상당히 강해졌어. 그래도 원래의 팔이 더 좋으니까 소중히들 여기라고!”
장목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승려 교단의 승려와 유전자 개량자도 위험해. 너희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여러 세력 안에서 너희 같은 사람은 선택받은 자라고 불려.”
“왜요?”
놀란 용여홍이 물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너희야 평소에 수많은 유전자 개량자를 본 데다가, 너희 본인도 유전자 개량자니까 그게 얼마나 진귀한 기술인지 몰라.
모든 세력 중 현재까지는 오직 우리 회사와 화이트 기사단만이 유전자 개량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그에 상응하는 원액을 생산할 수 있어.
상상해봐. 일반인에게 키가 크고, 덩치가 좋고, 속도가 빠르고, 반응이 민첩하고, 협응력과 균형 능력이 뛰어나고, 면역력과 자가 회복력이 강하고, 정력이 충만하고, 시력도 좋고, 총기를 다루는 천부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야말로 하늘의 사랑을 받은 자처럼 보이지 않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만해져서는 안 돼. 특정 세력은 유전자 개량 기술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거든. 그들은 이 기술이 자연과 하늘, 신령에 대한 모독이며, 구세계 파괴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장목화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유전자 개량자보다 더 강한 건 유전자가 개조된 사람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인간에겐 없는 능력이 있어. 이런 면에서 보자면 오염으로 인해 변이된 아류인(亞流人)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난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석 달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아류인도 본 적이 있어.
하지만 유전자 개조 기술은 아직 실패율과 사망률이 상당히 높아. 너희들도 쉽게 시도하지 마.”
아류인은 원래는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나 구세계 파괴 당시의 재난으로 오염을 당해 변이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오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자신의 변이를 후대에게 물려주었다.
정상인들은 그런 이들을 경시하며 거점에서 쫓아냈고, 급기야는 아류인이라는 멸칭을 붙이기도 했다.
아류인은 신체적인 변이와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정상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골은 더는 해소하기 어려운 원한으로 무르익었으며, 둘은 점차 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류인이라는 호칭은 애쉬랜드에까지 전해 내려와, 이제는 학명으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구세계의 파괴로부터 몇 년이 지나 신력의 시대가 열렸을 때도,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극심한 오염이 남아 있었다. 그로 인한 변이 역시 사라지지 않아 새로운 아류인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물론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아류인은 전부 자연적인 번식의 결과였다.
“그런 아류인도 있다니⋯⋯.”
아류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장목화가 설명한 것과 같은 아류인이 있을 줄은 몰랐던 용여홍이 작게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성건우와 용여홍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방금 설명했던 이들 말고, 위험한 인간 유형이 하나 더 있어. 심지어 굉장히 위험한 편이지.”
“어떤 이들인데요?”
용여홍은 굉장히 궁금해했으며, 성건우도 마찬가지였다.
장목화가 이전까지 설명했던 존재들은 전부 교과서나 훈련을 통해 접해본 적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위험한 인간이라는 제목 아래 하나로 묶어 나열된 적은 없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각성자.”
“각성자⋯⋯.”
용여홍과 성건우는 그녀의 답을 반복해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