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달리기
그 사이 지프는 그늘진 곳을 통과했다. 길 양옆의 높은 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으며 주요 도로 상공을 거의 가린 탓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와 장목화, 용여홍, 그리고 백새벽은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린 굵은 그림자 한 줄기를 보게 되었다. 그 그림자는 출렁이며 지프의 앞 유리를 강타했다.
그것은 새카만 비늘로 덮인 매서운 얼굴이었다. 어두운 노란빛의 두 눈동자는 차가웠고, 쩍 벌어진 입에는 썩은 살점이 낀 희고 날카로운 이빨과 날름거리는 새빨간 혀가 자리해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뱀이었다.
백새벽은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였을 뿐 놀라지는 않았기에. 냉정하게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그러자 녹회색의 지프는 쏜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며, 거대한 뱀의 머리 아래쪽을 훑고 지나갔다.
둘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벌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들고 몸을 틀어 차창에 총을 얹었다.
그는 그제야 거대한 뱀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습격자의 몸통은 일반적인 물통에 비해 두 배나 굵었고, 길이는 10미터가 훌쩍 넘어 보였다. 꼬리로 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뱀의 표면은 두꺼운 검은색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나뭇잎 틈새로 내리쬐는 햇빛에 비친 비늘이 금속처럼 번득였다.
백새벽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꺾으며 지프가 살짝 기울어지게 했다.
덕분에 뒷좌석 오른쪽 자리에 앉아있던 성건우는 거대한 뱀을 겨냥할 수 있었다.
탕탕탕!
성건우는 곧장 방아쇠를 당겨 사격을 시작했다.
쏘아져 나간 하나하나의 총알은 뱀의 비늘을 때리며 불똥을 튀겼다.
하지만 총알들은 그 두꺼운 비늘을 관통하지 못한 채 겉면에만 균열을 일으킬 뿐이었다.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으로는 저 무시무시한 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는 듯했다.
그래도 통증을 느낀 듯 쉭,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린 뱀이 곧 황녹색의 기체 덩어리를 내뱉었다.
연기가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주위는 연둣빛이 노는 연노란색의 안개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 연기에 닿은 잡초들은 빠르게 시들어 바닥에 축 가라앉았다.
“창문 닫아!”
장목화가 냉정하게 명령하며 덧붙였다.
“검은 늪 철갑뱀이야!”
방금 전의 충격에서 가까스로 벗어나자마자 그 말을 들은 용여홍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전까지의 훈련에서 그와 성건우는 백새벽을 통해 검은 늪 황야에 사는 생물 중 위험도가 비교적 높은 괴물에 대해 대략적으로 배운 바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검은 늪 철갑뱀은 구세계 파괴 당시 오염되어 변이되었으나, 안정적으로 유전이 되는 특징을 가진 뱀이었다.
녀석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몸이 한 겹 한 겹의 검은 철갑 같은 매끄러운 비늘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비늘 앞에서 대부분의 무기들은 무력했다.
또한 독샘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강한 부식성의 독을 뱉을 수 있었으며, 동식물에 모두 해를 끼치는 무시무시한 독 안개를 방출할 수도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징 덕분에 검은 늪 철갑뱀은 악몽과도 같은 생물이 되어있었다. 일정 정도의 규모를 갖춘 군대라 해도, 중무기나 특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녀석에게 대적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검은 늪 철갑뱀은 예리한 위험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가 멀찍이 숨어 저격용 소총으로 녀석의 약점인 눈을 노리거나 머리를 날려버리려 할 경우, 미리 반응하여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다.
검은 늪 철갑뱀이 야수가 아니라 괴물로 불리는 건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현재 성건우와 용여홍을 비롯한 이들 앞에 나타난 이 검은 늪 철갑뱀은 백새벽이 설명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 * *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몰래 지프의 뒤를 쫓다가 전방에서 울린 총성을 들은 황야 강도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기쁨에 찬 표정을 드러냈다.
“시작됐군.”
그들의 두목이 웃으며 말했다.
검은색 SUV 앞좌석에 앉아있던, 낡은 면 재킷을 입은 젊은 사내가 고개를 돌리며 간절하게 물었다.
“형님, 지금 바로 쫓을까요?”
오른쪽 눈가에 난 흉터 때문에 더 흉악해 보이는 사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급하게 굴 것 없어. 그 정도의 화력과 경험을 갖춘 놈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검은 늪 철갑뱀은 체형 때문에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지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곳에 너무 일찍 도착한다면, 동시에 양측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몰라. 그럼 너무 위험해지지.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 기회를 틈타 해야 할 준비도 있고. 길선, 차 세워!”
“예, 형님!”
길선이라 불린 이는 가죽을 두른 사내였다. 비교적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두목의 명령에 따라 차를 멈췄다.
검은 SUV가 멈추자, 폭우 기관단총을 든 두목이 문을 열고 내리더니 트렁크로 향했다.
뒤이어 그는 쪼글쪼글한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벗은 후, 그것과 무기를 왼쪽 오토바이에 앉은 동료에게 넘겼다.
옷을 벗은 두목은 트렁크를 열고 허리를 굽히더니 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붉어진 얼굴의 이마에 핏줄이 돋고 두 무릎이 꺾이는 것으로 볼 때, 그는 지금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난 그의 두 손에는 낡아빠진 나무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네모진 상자는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곧 그 상자는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놓였다.
이내 열린 상자 안에 든 것은 금속 골조가 덧대어진 검은색 갑옷과 같은 물건이었다.
“하윤, 길선,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야겠다.”
고개를 돌린 두목은 낡은 면 재킷을 입은 젊은 사내와 방금 전까지 운전을 했던 중년 사내에게 말했다.
양옆으로 가까이 다가온 하윤과 길선은 나무 상자 안에 든 물건을 어렵지 않게 꺼내 들었다.
물건은 중력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알아서 펼쳐지며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같은 형태의 그 물건에는 크리스털 고글이 달린 금속 헬멧이 장착되어 있었다. 헬멧 아래쪽에 붙은 것은 서로 연결된 채 중요한 파이프와 와이어를 보호하는 몇 조각의 장갑판이었다.
이런 장갑판 아래에는 이상하리만치 단단하고 크기가 큰 검은색 배낭이 달려있었다. 이 파워팩은 경추, 흉추, 요골, 상박골, 척골, 주상골, 대퇴골, 슬개골, 경골, 비골 등 각종 뼈를 닮은 금속 골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관절까지 달린 이 골조들에는 금속 버클과 빽빽한 센서가 붙어있었다.
그중 흉추 골조에는 하나하나의 두꺼운 장갑판이 달려있었으며, 양쪽 팔에는 유탄 발사기와 전자파 무기가 각각 하나씩 장착되어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인 이것은 생산량이 극도로 부족한 탓에, 대형 세력 안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만이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살상 무기였다.
이 물건은 복잡하고 정밀한 센서 시스템을 통해 인간이 유려하게 동작할 수 있게끔 해주는데, 착용자의 힘과 속도, 균형능력을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무기 시스템과 정조준 시스템, 격투 보조 시스템, 종합 경보 시스템, 방독 필터 시스템이 더해져 있었으며, 방탄 장갑으로 급소를 지켜주기까지 했다.
화기의 발명이 전투에 인간의 체력이 반영되는 비율을 줄였듯, 외골격 장치는 착용자로 하여금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장비만 있다면 경량형 무기만을 장착한 부대와 홀로 맞서서 승리를 거두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와 종합 경보 시스템에 의지하면, 착용자는 방탄 장갑의 보호 없이도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
두목은 하윤과 길선의 도움 아래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후, 각 부위의 금속 버클을 하나하나 채웠다.
마지막으로 그는 금속 헬멧의 크리스털 고글까지 조정하더니 곧장 장치를 활성화했다.
통합 시스템이 자체 검사를 통과하자, 두목의 입가에 흡족한 웃음이 번졌다.
“남은 배터리는 30퍼센트, 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겠어. 그 정도면 충분하지.”
동시에 그는 검은색의 금속 골격에 싸인 두 팔로 자신의 폭우 기관단총을 가볍게 받아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묵직했던 총에서는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 * *
“어, 어떡하죠?”
검은 늪 철갑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용여홍의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그로서는 장목화와 백새벽에게 답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그는 성건우의 돌격 소총이 거대한 뱀에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것을 똑똑히 목격했었다. 총알은 뱀의 바깥 비늘에 균열만 냈을 뿐이었다.
이전에 파악한 지식과 눈앞의 상황을 결합했을 때, 용여홍은 구경이 큰 연합202 권총과 백새벽의 오렌지 소총도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급소를 명중시키지 않는 이상, 검은 늪 철갑뱀의 두꺼운 비늘을 뚫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유탄 발사기의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유탄은 폭발을 통해 파편을 뿌리고 이를 통해 피해를 입힐 뿐, 철갑을 파고들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백미러를 통해 뒤쪽을 살피며 말했다.
“일단 달리자. 저 녀석은 그렇게 빠르지 않아.
게다가 저 녀석은 언젠가 지치지만, 우리가 탄 지프는 그렇지 않잖아. 지프는 배터리와 엔진, 타이어가 버텨주기만 하면 내일까지라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지.”
장목화가 말을 하는 사이, 백새벽은 차의 속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지프의 각종 부품이 고장 나지 않도록, 엑셀을 꽉 밟은 발의 힘만 살짝 풀었을 뿐이었다.
백새벽 역시 무리하게 검은 늪 철갑뱀에게 맞서니 녀석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지프는 수시로 돌과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히며 마구 요동쳤다. 금방이라도 붕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백새벽의 운전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황야에서의 운전 경험을 토대로 수시로 반응하여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지프는 일찍이 나뒹굴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거대한 검은 늪 철갑뱀은 단단히 화가 난 듯, 성긴 나무와 무성한 잡초 사이를 가로지르며 지프를 쫓았다.
녀석의 속도는 분명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지프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프 역시 지형적 문제로 인해 전속력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시로 속도를 낮춰 장애물과 늪을 피해야 하는 탓에, 지프는 검은 늪 철갑뱀을 따돌리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과의 거리가 조금씩이나마 벌어지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 사이 검은 늪 철갑뱀은 두 차례 입을 벌려 독액을 쏘고 독 안개를 분출했다. 그러나 거리 문제 때문에 녹회색의 지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두 번의 공격 이후 거대한 뱀은 깨달음을 얻은 듯, 더 이상 원거리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지프를 추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