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이상한 곳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한 채 밖을 주시하던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저희의 귀를 아프게 하는데, 총을 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어.”
장목화는 성건우를 돌아보며 답한 뒤 마찬가지로 목청을 높였다.
“우리에게는 군용 통조림과 에너지바, 압축 비스킷이 있어. 너희가 제시해봐!”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사내가 말했다.
“군용 통조림 여섯 개!”
“집어치워!”
장목화는 처음부터 흥정할 생각이 없었던 듯했다.
이때 지프는 이미 검은 SUV가 있는 곳을 지나친 상태였고, 양측의 거리는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코트 차림의 사내는 고집을 부리는 대신 큰 소리로 답했다.
“다음에 다시 거래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그는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점점 멀어지며 사격 범위 밖으로 벗어난 지프를 주시했다.
“형님, 왜 안 쏩니까?”
이때 그의 옆쪽, 오래된 면 재킷 차림의 비쩍 마른 젊은 사내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황급히 물었다.
“맞아요, 형님. 화력은 좀 갖춘 녀석들인 것 같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있잖습니까!”
대형 오토바이 위에 엎어진,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검은 SUV의 트렁크를 가리켰다.
“저들은 분명 적잖은 물자를 가지고 있을 텐데요!”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하든 우리도 적잖이 손실을 입었을 거다. 수지 타산이 안 맞아, 수지 타산이.”
오래된 면 재킷을 입고 연합202 권총을 쥔 젊은 사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형님, 사람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게다가 황야에서는 가장 거칠고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거 아닙니까?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데, 오늘에 모든 것을 걸어야죠!”
형님이라 불린 사내는 그런 상대를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황야에서 마냥 거칠게 구는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
이곳에 순수한 사냥감은 없어. 대부분은 사냥꾼이자 사냥감이지.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곧 다른 사람의 먹잇감이 될 정도로 약해지기 마련이야.
맹수들을 봐라. 녀석들은 배가 부르거나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를 마주쳤을 때는 억지로 공격에 나서지 않아. 자신이 부상을 당한 순간 다른 존재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그러니 불필요한 사냥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너희들은 그런 맹수보다도 못한 놈들인 거냐?”
가죽을 두르고 구세계의 소총을 쥔 또 다른 사내가 조악한 담배를 문 채 동조했다.
“형님 말씀이 맞아. 아직도 모르겠어? 방금 그자들이 가지고 있던 건 군용 통조림과 에너지바, 압축 비스킷뿐이었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일반적인 유적 사냥꾼은 각 대형 세력의 도시나 변방 마을에서 출발할 때만 그런 식량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부근에 우리가 아는 대형 세력의 마을이나 도시는 없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다른 사내가 중얼거렸다.
“구세계의 군용 창고를 찾았나?”
이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코트 차림의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다들 그만 싸워.”
이내 미소를 짓던 그가 말을 이었다.
“저들이 어디를 거칠지 짐작이 안 가냐? 이 구역에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아. 그곳에 무슨 이상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적고.
차에 타. 이 정도 거리면 됐다. 조용히 뒤를 밟으면서, 그들이 골치 아픈 상황을 맞닥뜨려 한계에 봉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번에 해치우는 거야!”
나머지 사내들은 순간 희색을 드러냈다.
“예, 형님!”
동시에 그들은 힘차게 SUV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 * *
지프 안, 장목화가 백미러를 바라보며 웃었다.
“뭐라도 발견한 게 있어?”
“그 황야 강도들은 굉장히 냉정했어요. 나름 교양도 있었고요.”
용여홍은 최대한 적합한 설명을 위해, 책에서 보았던 각종 표현들까지 끌어다 썼다.
성건우는 차창 위에 얹어놓았던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거두며 답했다.
“하지만 두목과 다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격욕이 강해 보였습니다. 언제든 총을 쏠 태세였죠.”
“훌륭해!”
장목화가 놀란 듯 칭찬했다.
“전투를 해본 적도, 위험을 겪은 적도 없으면서, 적대심과 공격욕 같은 추상적인 느낌을 예리하게 파악했네.”
“천부적인 재능이죠.”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전자 개량 과정 중에 일정한 질적 변화가 나타나는 건 정상적인 일이지.”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너희들이 관찰한 그들의 모습이 의미하는 건 뭘까?”
성건우는 미소를 띤 채 용여홍을 돌아보며 재촉했다.
“널 시험하시잖아.”
“의미, 의미라⋯⋯. 그들은⋯⋯.”
용여홍은 정답을 알 듯 말 듯 했지만,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과 긴장감에 입을 제대로 떼지 못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다는 뜻이지!”
성건우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놀리냐?”
그 말에 용여홍은 못 참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상대의 말을 토대로 상황의 요점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알겠다!
우리가 강한 화력을 드러내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는데도 그렇게 강한 공격욕을 드러낸 건, 그 사람들에게 우리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들의 머릿수나 무기, 그 외의 다른 장비로 볼 때 그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확인할 순 없었죠.
그 사람들의 차에 비밀 무기가 있었던 걸까요? 그들 중에, 예컨대 유전자 개량 실험을 거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을 갖게 된 사람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 주위에 동료가 숨어있었다던가.”
장목화는 음, 소리를 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번에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준비할 시간을 주지 말자고.”
“예, 팀장님!”
성건우와 용여홍이 동시에 답했다.
* * *
지프는 검은 진창과 기형적으로 자라난 나무, 그리고 무성한 잡초를 피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뒷좌석 오른쪽 자리에 앉아있던 성건우가 불쑥 허리를 세우더니, 허리띠에 채워진 아이스모스 권총을 꺼냈다.
전체적으로 은백색을 띠고 있는 권총의 손잡이 부분에는 미끄럼방지 패턴이 들어가 있었다.
햇빛 아래 금속성의 광택을 번득이는 권총은 하나의 정교한 예술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건우는 두 손으로 그 총을 능숙하게 해체하며 부품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그러곤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누르스름한 마지막 총알 한 발까지 탄창에 다시 넣으며 아이스모스의 조립을 마쳤다.
탄창까지 장착한 후, 아이스모스를 허리띠에 건 건우는 이번에는 연합202 권총을 뽑아 들었다.
마찬가지로 은백색이지만 손잡이에 검은색 미끄럼방지 재질이 덧붙은 이 총은 아이스모스에 비해 총신도 두꺼웠으며, 더욱 거친 느낌을 주었다.
성건우는 아까 전처럼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더니, 이번에는 새카만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반고 바이오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이 무기는 매우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어, 미래적이면서도 공학적인 느낌이 풍겼다.
검사를 마친 성건우는 금속성의 광택을 번득이는 이 새카만 무기를 차창에 얹어놓은 채 몸을 숙여 바깥의 여러 목표를 겨냥해보았다.
옆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여홍은 성건우가 마침내 얌전해진 듯 하자 그제야 질문을 던졌다.
“뭐해?”
성건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준비, 그리고 연습.”
이에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네가 뭐라도 발견한 줄 알았어. 다른 사람까지 긴장하게 하지 말라고.”
“정말로 뭔가를 발견했다면 곧장 알려줬겠지.”
성건우는 돌격 소총을 거둔 뒤 똑바로 앉았다.
“팀장님, 얘 좀 봐요⋯⋯.”
용여홍은 도움을 청하려는 듯 장목화를 불렀다.
그러자 장목화는 왼쪽 귀에 꽂은 금속 장치를 만지작거리는 한편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뒤이어 그녀는 여홍이 했던 말을 반복하기 전 음, 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너희들한테 알려주는 걸 깜빡했네.
황야에서는 말이야, 언제나 경계해야 하지만 과하게 그럴 필요는 없어. 지나치게 긴장된 상태가 유지되면 금방 피곤해지니까.
좋아, 이제 점심을 먹자. 압축 비스킷, 에너지바, 그리고 물로 때울 거니까 차를 멈출 필요는 없어.”
용여홍과 성건우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음식과 물 부대를 꺼내 한 끼를 해결했다.
그 후 용여홍과 교대를 한 백새벽은 남들보다 늦게 식사를 시작했다.
* * *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더 달렸을 때렸다. 뒷좌석 왼쪽 자리에 앉은 백새벽이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다가 돌연 입을 열었다.
“여기 좀 이상해요.”
그 말에 용여홍은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그는 황급히 좌우를 두리번 거렸지만, 이전과 다른 것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왼쪽 지대의 늪지 화가 심화되었다는 점뿐이었다. 기형적으로 자라난 나무는 검은 늪 속에서 자라난 듯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장목화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나치게 조용하네.”
그 말을 들은 성건우도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동물이 안 보였어요.”
용여홍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맞아! 정말 이상하긴 해.”
검은 늪 황야에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에서 이틀 정도 인간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동물은 이야기가 달랐다. 야생 생물의 낙원과도 같은 이곳에서는 겨우내 먹을 음식을 모으느라 바쁜 다람쥐, 성긴 숲속을 날아다니는 새, 몰래 숨어 지프를 관찰하고 있는 늑대 등 정상이거나 정상이 아닌 동물을 수시로 마주치기 마련이었다.
시선을 거둔 백새벽이 장목화에게 말했다.
“팀장님, 제가 운전할게요. 이 구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스러워요.”
“그래, 넌 우리보다 이 지역에 대해 잘 아니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겠지.”
장목화는 곧장 용여홍에게 차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다시 운전석에 오른 백새벽이 빠르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모양이었다.
길 양옆의 나무들은 여전히 성기게 자라있었고, 검은 늪은 햇빛을 미약하게 반사했으며, 잡초들은 비교적 넓은 곳에 제멋대로 자라나 있었다.
아주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은 움직임을 잃은 상태였다. 마치 이 주위가 하나의 거대한 유화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람마저 멈췄음을 알아차린 용여홍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왜 갈수록 심각해지는 거죠?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는 건 어때요?”
백새벽은 용여홍의 제안을 비웃는 대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2분 더 가보다가,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곧장 돌아가는 게 좋겠어.”
말을 마친 그녀는 의견을 구하듯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그래.”
장목화도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