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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18화 (18/649)

18화. 길 위에서 (2)

그로부터 몇 분 후, 허물어진 건물 뒤쪽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온 검은 인영 하나가 꺼진 모닥불 근처로 향했다.

그는 이따금씩 멈춰서면서 식물과 무너진 벽에 몸을 숨기더니, 이따금씩 몸을 웅크린 채 두 팔꿈치로 지면을 살살 기어갔다.

그는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던 네 사람이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모닥불 근처로 달려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빈 깡통을 주웠다.

검은색 천을 두른 그의 등에는 소총 한 자루가 메여있었다. 또한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인 그의 피부와 살점이 없는 얼굴은 실버블랙 색상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몸을 이루는 금속의 표면에는 금이 잔뜩 가 있었다. 그 안쪽에 자리한 여러 색상의 회로와 부품이 살짝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그의 두 눈 중 하나는 붉은빛을 번득이고 있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뼈대처럼 보이는 두 손 역시 오로지 실버블랙 색상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주웠다, 주웠다⋯⋯.”

기복 없는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빈 깡통들을 주워 담은 그는 쿵, 쿵, 쿵, 뛰어 폐허 뒤쪽으로 돌아갔다.

몇 번이나 방향을 틀어가며 이동한 끝에 그가 이른 곳은 어지럽게 뒤섞인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는 낡은 솜옷을 입고 동물의 털을 두른 남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겨우 열두세 살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은 꾀죄죄했으며, 두 손에는 검은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리고 손톱에는 잔뜩 때가 끼어있었다. 소년의 옆쪽에 놓인 것은 각종 잡다한 물건과 쓰레기로 가득한, 낡은 삼륜차였다.

로봇으로부터 빈 깡통들을 받아든 소년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것들을 셋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쓰레기더미에 넣으며 인공지능 로봇에게 말했다.

“리틀세븐, 이건 거의 다 찼어. 곧 너한테 새 눈을 달아줄 수 있을 거야.

저건 조금 더 모아야 할 것 같아. 곧 겨울이잖아. 최대한 많은 식량과 석탄, 그리고 네 배터리를 구해둬야 해.

나중에 돌아와서 교환해야지⋯⋯.”

말을 잇던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먹을 것도 거의 동났어.

최근에 너무 많이 먹었거든⋯⋯.”

리틀세븐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기복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훌륭한 계획이다.”

“얼른 타. 거점으로 돌아가야 해.”

삼륜차의 운전석에 앉은 소년은 삐삐삐, 소리와 함께 삼륜차를 몰기 시작했다. 폐허와 식물 사이의 비좁고 울퉁불퉁한 공간은 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내 소년과 로봇을 실은 삼륜차가 그 길을 따라 먼 곳으로 향했다.

소년은 차를 모는 한편 뒤에 앉은 인공지능 로봇을 향해 말했다.

“리틀세븐, 겨울이 지나면 엄마와 아빠가 돌아올 것 같아?”

* * *

지프는 빠르지 않은 속도를 유지한 채, 검은 늪 황야 위를 계속해서 달렸다.

그러다 정오가 되었을 때쯤, 차를 몰던 백새벽이 돌연 미간을 팩 구기며 방향을 틀었다.

“전방에 사람들이 있어요⋯⋯.”

그녀는 장목화와 성건우, 용여홍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묵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를 봤습니다.”

몸을 반쯤 틀어 성건우, 용여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장목화가 백새벽의 말에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른 길 양옆의 숲은 이상하리만치 성겼다. 늪답게 어두운 왼편은 흙이 질척한데다 모기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나 있었으며, 탁 트인 저 너머에는 진흙이 잔뜩 묻은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식견이 넓은 장목화는 어렵지 않게 SUV인 그 자동차가 여러 차례 개조된 상태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곳곳의 색이 얼룩덜룩했다.

SUV 밖에 선 사람은 세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오래된 면 재킷을, 다른 한 명은 무두질한 가죽을,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쪼글쪼글하고 지나치게 짧은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갈색 담뱃잎을 직접 말아 만든 조악한 담배를 문 그들의 무기 역시 각기 달랐다. 하나는 연합202 권총이었고, 다른 하나는 폭우라는 이름을 가진 기관단총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구세계에서 사용하던 소총이었다.

세 사람의 옆쪽으로는 대형 오토바이가 두 대 세워져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 도안이 그려진 그 오토바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대담하고 거만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두 대의 오토바이 위에는 각각 남자가 한 명씩 앉아있었다. 쉴드를 내리지 않은 헬멧을 쓴 그들은 각자 소형 기관단총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뭐가 보여?”

장목화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채 이 기회를 틈타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퀴즈를 냈다.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전방을 살피던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다들 영양 상태가 좋네요.”

“⋯⋯.”

유리창 너머를 내다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려 했던 용여홍은 성건우의 말을 듣고 하려고 했던 말을 잠시 까먹고 말았다.

장목화는 성건우의 말을 듣고 핀잔을 주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썰미가 좋은데.”

전방에 자리한 다섯 명의 얼굴 피부는 매우 거칠었지만, 누렇게 뜨거나 수척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는 그들이 적어도 평소에 잘 먹고 따뜻하게 지냈다는 뜻이었다.

또한 이는 일반적인 황야유랑자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때, 마침내 생각을 이어나간 용여홍이 얼른 입을 열었다.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개조된 SUV도, 대형 오토바이도, 입고 있는 옷도, 손에 들린 무기도 그들이 일반적인 황야유랑자가 아님을 의미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것들로 봤을 때 저들이 꽤 잘 사는 유적 사냥꾼이거나, 꽤 잘 사는 황야 강도일 거라 판단할 수 있지. 그 둘은 때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도 해.”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백새벽이 덧붙였다.

“저 SUV의 개조 방식을 보면, 내연기관 자동차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즉, 저들은 이 지역에 아주 익숙하며 어디에서 휘발유를 보충할 수 있는지 알고 있거나, 휘발유가 떨어지기 전 황야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자신하고 있다는 의미죠.”

상대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때, 장목화가 유탄 발사기를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너희는 베르세르크를 꺼내 창문 밖으로 내밀어. 저들이 볼 수 있도록.”

바짝 긴장한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싸움이 일어날까요?”

“누가 알겠어?”

장목화가 웃었다.

“아 그래, 이걸 기억해. 황야에서 자신의 근육을 내보이는 것은 호의를 표현하는 행위야. 정의와 공평, 교류는 오직 총구 아래에서만 존재하지.”

백새벽도 거들었다.

“우리는 ‘존중은 강자들 사이에만 존재한다’고 말하곤 했어.

여러 황야유랑자는 강자가 인자하고 선량하기를, 애정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며, 그들이 약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고 자신들을 도와주었으면 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든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지. 그들에게 기대하느니, 차라리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편이 훨씬 나았어.”

“이전까지만 해도 구세군은 그런 존재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장목화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져갔다.

“우리가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저들도 조금은 친절하게 나온다는 거군요⋯⋯.”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이던 용여홍은 알겠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새로운 의문을 제시했다.

“그런데 왜 저까지 그래야 하죠? 저쪽에서는 건우만 보일 텐데.”

장목화가 답을 하기도 전에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너 숨바꼭질 안 해봤어?

안 보인다고 해서 숨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 답을 들은 장목화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건 별로 좋은 비유가 아닌 것 같은데.

용여홍, 네가 베르세르크를 들고 쏠 준비를 해야 하는 건, 늪 쪽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적을 위협하고,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백새벽을 보호하기 위함이야.

만약 네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늪 쪽에 숨은 적이 없다 한들 상대는 이 차에 탄 우리를 경험이 부족한, 한번 덤벼볼 만한 사냥감으로 여기겠지.”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이 답했다.

“알겠어요!”

그는 곧장 돌격 소총을 들어 올린 후, 완전히 내리지 않은 창문에 총을 얹었다.

이미 창문 위에 베르세르크를 얹어놓고 있던 성건우가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 알아서 판단해서 쏴도 됩니까?”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대담하네. 저 앞에 있는 이들은 쉬운 상대가 아닐 텐데.

음⋯⋯ 네가 방아쇠를 당겨도 되는 상황은 세 가지야. 첫째, 내 명령이 있을 때. 둘째, 저들이 우리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접근할 때. 셋째, 저들이 우리를 겨냥하려는 조짐을 보일 때.”

이때 녹회색 지프차와 검은색 SUV, 그리고 대형 오토바이 사이의 직선거리는 어느새 10미터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쪽에 선 다섯 사람 중 조악한 담배를 문 세 사람은 손에 쥔 총을 들고 있었으며, 나머지 둘은 대형 오토바이 위에 엎어진 채 한 손으로는 엑셀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형 돌격 소총을 들고 있었다.

만약 지프차의 창문 밖으로 유탄 발사기와 돌격 소총의 총구가 비죽 나와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이미 달려들었을 것이다.

검은색 SUV와 대형 오토바이가 서 있는 곳은 주요 도로가 아니라 성긴 숲 안쪽으로, 비교적 트여있는 곳이었다. 양측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서로 충돌할 위험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 사이 백새벽은 공연히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차의 속도를 늦춰 지프를 조금씩 이동시켰다.

그러던 그때였다. 장목화가 돌연 크게 외쳤다.

“어젯밤 늪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있어?”

쪼글쪼글한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입고 폭우 기관단총을 든 삼십 대 사내가 입에 물고 있던 조악한 담배를 뱉어버리며 큰 소리로 응했다.

“너무 먼 곳이라 잘 몰라!”

장목화가 재차 외쳤다.

“너희는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데?”

“곧 겨울이 오잖아. 야수를 사냥해서 겨울에 대비해야지!”

답을 하는 사내의 눈썹은 덥수룩했고, 오른쪽 눈가에는 오래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흉악한 인상인 그는 꼭 사람 옷을 입은 불곰처럼 보였다.

장목화가 다시 소리치기 전, 그 사내가 되물었다.

“너희는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장목화가 답했다.

“우리는 유적 사냥꾼이야!”

“유적 사냥꾼이라⋯⋯.”

낮게 중얼거리던 사내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몇 달 전 늪 깊은 곳에서 소식을 전해왔어. 그곳에서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다더군. 하, 어쩌면 어젯밤 늪 깊은 곳에서 벌어진 사건도 그곳과 관련이 있을지 몰라! 비록 몇 달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일이라지만, 누가 알겠어? 이봐 사냥꾼들, 그 도시 유적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싶지 않아? 우리한테 음식을 준다면 알려줄 수 있어.”

큰 목소리로 얘기해준 덕분에, 지프차 안의 네 사람은 그 내용을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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