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길 위에서 (1)
끔찍한 시체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한 용여홍은 구토감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1세대인 것 같네요.”
백새벽이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하며 말했다.
“옷이 해진 정도로 봤을 때, 발병한 지 1년도 안 된 것 같아.”
장목화는 성건우와 용여홍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무심자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번 해줄까?”
성건우는 답을 하는 대신 불쑥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방금 봤던 그 인영이 아니에요.
제가 봤던 것은 더 작았습니다.”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희 둘은 시체를 뒤져서 가치 있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저쪽으로 옮겨놔. 불빛이 닿는 곳으로부터 너무 멀지는 않게.”
뒤이어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지프로 다가가 검은 물건 네 개를 꺼내더니, 그것들을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하나씩 던져주었다.
“무전기야. 유효 범위는 2킬로미터인데, 탁 트인 곳에서는 더 먼 거리에서도 수신이 가능해.
무슨 상황이 생기면 곧장 내게 보고해.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겠지?”
“고치는 방법은 압니다.”
용여홍과 함께 전자과를 졸업한 성건우가 동문서답을 했다.
무전기를 잘 맨 용여홍은 머뭇거리며 무심자의 시체 가까이 다가갔다.
감히 시체를 쳐다보지도 못하던 그는 피비린내와 섞인 끔찍한 악취에 구역질을 했다.
성큼성큼 다가와 적극적으로 탐색을 시작하던 성건우는 시체의 머리 쪽에 섰다.
“내가 업어야겠어?”
그가 용여홍에게 물었다.
“어⋯⋯.”
용여홍은 성건우에게 시체를 업어서 옮기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은, 너를 업어야겠냐고.”
성건우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풀어서 설명했다.
그러자 용여홍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괜찮아.”
이내 허리를 굽힌 그가 시체의 두 다리를 움켜쥐자, 성건우는 무심자의 겨드랑이에 두 팔을 끼웠다.
피를 뚝뚝 흘리는 무심자의 시체를 들어 공터로 향한 그들은 불빛이 닿는 범위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었다.
* * *
시체를 묻은 일로 식욕이 싹 달아난 용여홍은 압축 비스킷 하나와 통조림 반 개만 겨우 먹고 말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 장목화가 오늘 밤의 불침번 순서를 정하려던 그때,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돌연 무언가가 울부짖는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구름을 관통하는 듯한 거친 소리는 깊은 밤의 악몽을 방불케 했다.
뒤이어 늪 주위의 각기 다른 곳에서도 그와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 끔찍한 소리에 겁을 먹은 용여홍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늑대 무리인가요?”
“어떤 늑대 무리가 이렇게 흩어져서 분포해 있겠어?”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거대 늪 주위 곳곳에서 야수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건 흔한 일입니까?”
불안해진 용여홍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흔하지 않지.”
“그, 그럼 어떻게 해요?”
장목화는 웃음기가 어린 눈으로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상한 일이야. 거대 늪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는 뜻이지.
하지만 소리가 난 곳의 대략적인 구역과 방향은 우리의 노선이나 목적지와 전혀 겹치지 않아.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요?”
용여홍은 옆에 선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 역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주 경계를 맡고 있던 백새벽이 이 광경을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
“검은 늪 황야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이상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지. 어떻게 그 모든 것에 어떻게 일일이 신경을 쓰겠어?
이렇게 드넓은 황야에서 일어난 일이 네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주 아주 적어.”
그러나 용여홍은 계속 캐물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모닥불을 응시하고 있던 성건우가 말했다.
“그건 네 이름이 좋지 않다는 뜻이겠지.”
여홍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운이 나쁘면 뭘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을 거고, 운이 좋으면 뭘 어떻게 해도 맞닥뜨리지 않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도, 무슨 이야기냐고 물을 수도 없었던 장목화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우리는 사건 발생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쪽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없고, 미리 준비할 수도 없어.
철수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제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바로 저쪽 길을 피해서 더 멀리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노선은 원래 그런 노선이었고.”
“조금 전에 했던 말씀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네요⋯⋯.”
곰곰이 고민하던 용여홍은 같은 의미임에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두 말이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목화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러니까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는 법을 배워야 해.
이 점에 대해서는 건우가 너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다. 봐봐, 쟤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잖아.”
성건우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전 그저 참여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뿐이에요.”
“뭐?”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의 얼굴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성건우가 입을 벌리더니 늑대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넋이 나간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은 한참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참여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던 게 야수들과의 합창이었던 거냐⋯⋯.’
겨우 정신을 차린 여홍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성건우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이 곧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초 후,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백새벽, 사주 경계를 잊으면 안 되지!
성건우, 황야 강도가 수십 명씩 몰려들어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지만, 넌 혼자서 내부 방어 체계를 와해시키고 있어!”
성건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고민했던 겁니다. 게다가 전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요.”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경계 태세를 늦추지는 않았습니다.”
백새벽은 방금 전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억지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황야에서 오랫동안 유랑했던 그녀는 많은 경험을 해본 편이었다. 그간 정신이 무너지거나 상태가 이상해진 유랑자들을 마주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이들의 언행은 건우보다 훨씬 더 이상했다.
문제는 성건우가 평소에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란 점이었다. 백새벽이 보기에는 가끔씩 나타나는 상대의 이상한 언행이 농담이나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상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성건우가 이렇게 창의적이고 괴상한 짓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잘했어. 언제든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돼.”
백새벽의 거짓말을 파고드는 대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이번 야영 훈련이 끝나면, 정말 전 팀원을 대상으로 정신 상태 평가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성건우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꼭 만점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리낌 없이 정신 상태 평가를 언급하는 장목화의 모습에 백새벽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는 대놓고 성건우를 겨냥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정신 상태 평가를 제안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성건우의 언행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기에 힘겹게나마 정상 범주에 들 수 있었다. 기껏해야 썰렁한 농담을 즐겨 하는 사람이리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당시의 제안엔 그렇게까지 강한 공격성이 담겨있지 않았다.
성건우가 그런 장목화의 말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도 백새벽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아마 방금 본인이 했던 행동을 그저 약간 과한 장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 그래서 이에 대해 조금의 열등감도 갖지 않고, 조금도 민감하게 굴지 않는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백새벽은 다른 사람이 어쩌든 신경 쓰지 않고 맡은 일이나 잘하자고 다짐했다.
이때, 장목화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전자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좋아, 휴식 시간이다.
원래대로라면 나랑 새벽이가 한 조를 이루고, 건우와 여홍이가 한 조를 이루어 번갈아 가며 쉬어야겠지만, 너희 둘은 경험이 전무해서 위험의 징조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 게다가 외근을 나왔을 때는 위험하기도 하고 조건에도 한계가 따르기 때문에, 억지로 남녀를 구분할 수는 없어. 그보다는 서로를 솔직하게 대하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래서 나와 건우가 한 조, 새벽이와 여홍이가 한 조를 이룬다.”
장목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정도 조건이면 감사하지. 우리한텐 지프가 있으니까. 한 명은 앞좌석에서, 다른 한 명은 뒷좌석에서 자면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남자 둘, 여자 둘, 돼지 한 마리, 닭 두 마리와 한 텐트에서 잔 적도 있는걸요.”
장목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너희는 이제 가서 쉬어. 내가 건우랑 불침번을 설 테니까,.”
동시에 그녀는 다시 한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6시간 후에 깨울게.”
“팀장님, 그건 너무 길지 않을까요?”
백새벽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처음 자는 6시간은 인체 생물학적으로 가장 피곤하고 가장 졸린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주위의 기척이나 동정을 놓치게 될 수도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셋은 모두 유전자 개량을 거친 사람이야. 힘이 넘친다는 공통점이 있지.
그리고 이쪽 방면에서는 내가 쟤들보다 더 강해. 하루 이틀 정도 안 자도 충분히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
“저도요⋯⋯.”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장목화가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고? 내 뒤에서 험담한 거 아냐?”
“아닙니다!”
성건우가 가로채듯 답했다.
“앞에서 했습니다!”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한 용여홍이 켁켁거리며 기침을 내뱉었다.
그에 장목화가 손을 흔들며 건우에게 말했다.
“이럴 때는 완전 멀쩡해 보인단 말이지. 좋아, 너희 둘은 가서 얼른 자.”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백새벽과 용여홍을 향해 있었다.
이날 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 * *
하늘 끄트머리에서 해가 떠올라 구름을 불그스름한 금빛으로 물들였을 무렵, 구조팀의 네 사람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따뜻한 물과 함께 에너지바를 먹었다.
“정말 아름답네. 장관이야⋯⋯.”
여홍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표현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웅장하면서도 무한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처음으로 땅 위에 올라온 용여홍과 성건우는 그러한 광경 덕에 세례를 받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 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희망을 느꼈다.
“내가 이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너희들보다 더 넋이 나가 있었어.”
장목화가 동조했다.
백새벽 역시 일출을 감상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황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에게 일출은 그리 신기한 게 아니었다. 다만 볼 때마다 여전히 즐거움과 흥분이 느껴지는 광경이기는 했다.
“자, 이만 정리하고 출발 준비하자. 여홍이 너는 새벽이랑 뒤에 앉아서 좀 더 자. 나는 건우랑 돌아가면서 운전할 테니.”
“예, 팀장님!”
하늘로부터 시선을 거둔 용여홍이 큰 소리로 답했다.
뒤이어 모닥불을 꺼뜨린 그는 어젯밤 먹은 통조림의 빈 깡통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팀장님, 이건 회수 안 합니까?”
지하에 자리를 잡은 반고 바이오에는 광물 자원과 금속 자원이 극도로 부족했다. 그 때문에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양식과 유전자 개량 원액, 생물 약제, 지하의 소금물과 암석표면에서 채취한 소금 등을 다른 대형 세력의 광물 및 금속 자원으로 바꿔야만 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빈 깡통을 보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필요 없어. 자리만 차지해.”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랐다.
용여홍은 팀장의 말에 빈 깡통을 회수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아낸 후, 총을 쥔 채 얼른 차로 돌아갔다.
태양열 충전기를 덕지덕지 붙인 녹회색 지프는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이 작은 폐허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