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6화 (16/649)

16화. 무심자

물을 보충한 후, 성건우와 용여홍은 지프차를 어떻게 모는 지 배우기 시작했다.

길이 넓은 데다 다른 차라곤 없는 이곳에서는 고정된 자리에 차를 세워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유전자 개량을 받은 신세대인 두 사람은 집중력, 반응 속도, 손발의 협응력이 모두 우수한 편이어서, 거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운전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나는 것 같은 느낌이야.”

용여홍은 못내 아쉬워하며 운전대를 백새벽에게 넘겼다.

그 말에 성건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늪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이곳의 노면은 어느새 물러져 있어 살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용여홍은 계속 나는 듯 차를 몰 수 있었을 것이다.

“날이 저물고 있으니 조심해야 해.”

용여홍이 뒷좌석으로 돌아가자, 백새벽은 엑셀을 밟으며 입을 열었다.

“전방에 폐허가 된 건물들이 있어. 구세계의 도로 옆에 붙어있던 휴게소라고 하던데……. 어쨌든, 우리는 오늘 그곳에서 야영을 할 거야.”

장목화도 이 틈을 타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말했다.

“해가 진 후에도 계속해서 이동하지 않는 건, 밤에 위험한 생물의 출몰이 잦아지기 때문이 아니야. 기본적으로 그런 생물들은 낮에도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어. 밤에 이동을 중단하는 건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면 가시 범위가 되게 좁아지기 때문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방의 웅덩이와 늪을 미리 발견하기 어려워져. 마찬가지로 위험한 생물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걸 일찍이 알아차릴 수도 없지. 그럼 아주 치명적인 상황이 되어버리는 거야. 모두 잘 기억해둬. 대부분의 야수와 괴물은 사전에 발견할 수만 있다면, 충분한 화력을 가진 인간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아.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동족과 질병이야.”

운전 중인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이전에 변이된 모기떼를 맞닥뜨린 적이 있어. 크기가 무려 손가락만 했고,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 한데 모인 녀석들은 꼭 끝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먹구름 같았어.

녀석들은 피를 빨면서 무시무시한 독을 방출해, 그것에 물린 인간과 동물들의 몸을 마비시키고 사고를 느릿하게 만들었어.

당시 수십 명의 유랑자는 모기떼에 빽빽하게 둘러싸인 채 온몸의 피를 쫙 빨렸지.

권총, 소총, 기관총은 물론 바주카포도 그 모기떼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어.

다행히 우리는 아직 쓸 수 있는 화염방사기를 몇 대 가지고 있었어. 그 화염방사기들 덕분에 3분의 1 정도의 사람만이 겨우 살아남았지.”

그 말에 머리가 저릿해진 용여홍은 황야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성건우는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괴물을 처리할 적합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회사의 제초탄이 가장 좋은 선택지야.”

* * *

네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지프는 크지 않은 폐허 앞에 이르렀다.

기껏해야 3층짜리인 건물의 몇몇 동은 대부분 허물어진 채 담쟁이덩굴로 뒤덮여있어, 원래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녹색 파도에 잠식되어 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건물들 앞쪽의 넓은 공터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쌓여 있었고, 지면 곳곳의 갈라진 틈 사이로는 식물들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차를 세운 백새벽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인간이 남긴 새로운 흔적은 없네요⋯⋯.

오늘 밤은 이곳에서 쉬죠. 부근에 깨끗한 수원지도 있어요.”

차에서 내린 성건우와 용여홍은 장목화의 지시에 따라 땔감을 구해 모닥불을 피운 뒤, 온 종일 햇볕을 쬔 태양열 충전기들로 지프의 고성능 배터리를 충전했다.

황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어느 지역, 어느 거점, 혹은 어느 폐허에 가야 휘발유를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자신의 세력 범위 안에서만 몰 수 있었다. 가득 찬 휘발유 통을 넉넉히 가지고 다닐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반고 바이오에는 석유 자원이 매우 부족했다.

지프에서 잠을 잘 예정이었던 이들에게 텐트는 없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불침번을 서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 교대를 해야 했다.

피워진 모닥불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는 주위를 밝히자, 장목화는 군용 통조림 몇 개를 꺼내 데우기 시작했다.

에너지바를 먼저 먹어치운 성건우는 베르세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회사의 제식 돌격 소총을 가지고 주위를 순찰했다.

그러던 그때, 뭔가를 느끼고 고개를 든 그가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건물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건물의 위쪽 가장자리 부근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휙 움직이더니 장애물 뒤쪽으로 숨어 자취를 감췄다.

성건우는 겁을 먹는 대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양 장목화와 백새벽, 용여홍에게 말했다.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용여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성건우의 말투는 여전히 침착했다.

“뭔가가 있어.”

화들짝 놀란 용여홍은 본능적으로 옆에 놓인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움켜쥐며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가 다른 손에 쥐고 있는 도시락을 내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장목화는 침착하게 주위를 한 번 돌아보았다.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뒤이어 용여홍을 돌아본 그녀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긴장하지 마. 아직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은 아니잖아?

앉아, 앉아. 통조림이 데워지면 바로 먹자고.”

동시에 그녀는 옆에 놓인 폭군 수류탄을 두드렸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백새벽 역시 주위를 자세히 살피다가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팀장님, 뭔가가 있다잖아요! 갑자기 기습당하면 어쩝니까?”

용여홍은 장목화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이미 까놓은 통조림들을 주시하며 대꾸했다.

“그래서 건우가 경계하고 있는 거 아냐?

그 무언가가 코앞으로 다가오지 않은 상황인데, 밥도 안 먹고 내내 기다려야겠어? 그러다 배고파지고 지치는 게 더 위험해.”

그녀의 얼굴에는 점차 웃음이 피어났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반신반의하며 자리에 앉은 용여홍은 수시로 고개를 들어 성건우를 살폈다. 혹여나 성건우의 경계에 빈틈이 생겨, 위험한 적들에 포위될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 * *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위, 통조림의 내용물이 끓어 넘치기 시작하자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냄새가 사방으로 풍겼다.

돼지고기와 콩, 소금, 향신료 등이 섞인 음식 냄새를 맡은 네 사람은 모두 배 속에서 뻗어 나온 손 하나가 제멋대로 목구멍을 뚫고 입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 됐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한 줄기 한 줄기의 녹색 덩굴로 뒤덮인 무너진 건물 꼭대기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모닥불 가의 용여홍에게로 달려들었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그제야 그 검은 그림자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여성인 상대의 남루한 옷 사이로는 부숭부숭한 털에 덮인 더러운 피부가 드러났다. 산발이 되어 곳곳이 엉킨 머리카락은 잔뜩 기름져 있었다.

또한 길면서도 날카로운 손톱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으며, 핏발이 선 두 눈은 야수의 것처럼 혼탁했다.

그녀의 몸은 전체적으로 굽어있었으나, 한 손으로 덩굴에 매달려 이동하는 속도는 꼭 유인원처럼 빨랐다.

탕!

성건우가 돌격 소총을 들어 올린 순간, 한 발의 총성이 먼저 울렸다.

쿵!

돌진하던 검은 그림자는 그대로 힘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얼굴을 위로 하고 쓰러진 그녀의 왼쪽 가슴과 어깨 사이에는 거대하고 끔찍한 상처가 나 있었다.

두어 번 경련하던 인간 여성은 결국 숨을 거뒀다.

장목화가 연합202 권총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무심자야.”

‘무심자⋯⋯.’

충격과 호기심에 휩싸인 용여홍이 시체를 바라보았다.

애쉬랜드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접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단어는 반고 바이오 내부의 교과서에도 아주 강렬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무심자, 즉 마음을 잃은 자는 무심병에 걸린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수화병, 격세유전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에 걸리면 모든 이성과 생각, 감정을 잃고 야수와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되는데, 그러면 사냥 본능과 존속 본능만 남은 채 간단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될 뿐이었다.

소통이 불가능한 그들은 평범한 인간을 사냥감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무심병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구세계가 파괴되었을 때였다. 하나하나의 도시에 거주하던 많은 사람들은 짧은 시간 동안 무심자로 변했으며, 무심자들보다 수가 더 많았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안 되어있었기에 그런 무심자의 손에 숨을 거뒀다.

무심자는 진정한 야수처럼 뭔가를 먹어야만 계속해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인류의 질서가 붕괴하고 대기근이 강림한 이후, 도시의 저장 식량을 모조리 해치운 그들은 대대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 남은 무심자의 수는 당시의 1퍼센트도 안 되었다.

애쉬랜드 내 여러 역사 연구가의 관찰에 따르면, 무심자는 인간은 물론 야수를 사냥하고, 나무의 뿌리를 파먹거나 열매를 채취했으며, 변이되거나 변이되지 않은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극도로 굶주렸을 때는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러한 먹이와 생존 환경 때문에 무심자 중 서른 살을 넘기는 자는 매우 적었다. 다만 그들의 번식력은 굉장히 강했다.

게다가 1세대 이후의 무심자는 전 세대에 비해 약간 더 똑똑해서 더욱 강한 사냥 능력을 자랑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인류가 어느 정도의 질서를 회복하고 충분한 화력을 갖춘 이때, 야수에 가까운 무심자를 처리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단 무심자는 무기를 해체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몰랐지만 사용할 수는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런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후세대 무심자일수록 이런 본능이 더 강했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인간과 같은 무심자는 오염되기도 하고, 변이되기도 했다. 이는 대량의 무심자에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그중 일부를 최고급 사냥꾼으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무기 사용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무심자라 한들, 그들은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지도 못했으며, 무기를 생산하거나 보존할 줄도 몰랐다. 그러니 최고급 사냥꾼이라도 충분한 화력을 갖춘 인간 군대 앞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못했다.

현재 인간은 돌연변이를 유도해 유전자를 개량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아직 미숙한 기술인지라 성공률은 비교적 낮았지만, 그래도 오로지 그날그날의 운에 따라 먹이를 구하는 무심자 정도는 충분히 짓밟을 수 있었다.

무심자를 처리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무심병의 발병 메커니즘과 전파방식이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며, 이 병의 예방법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무심자가 모여있는 곳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고, 각 대형 세력 역시 주변의 무심자만 제거할 뿐 구세계 폐허 속에 자리를 잡은 다른 무심자들까지 건드리려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무심병은 여전히 인류의 머리 위에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무심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거점 안에서 잘 살던 사람도,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자마자 이성과 생각을 잃은 야수로 변할 수 있었다. 이런 감염자가 나와도 그의 친구나 가족은 전염된 기색 없이 멀쩡했다. 이는 장기적인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이었다.

반면 일찍이 무심병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느 대형 세력의 고위 관계자는 격리된 방에서만 잠을 자고, 밖에 나설 때는 언제나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무심자로 변한 바 있었다.

다행히 신력 이후부터 무심병의 평균 발병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벌써 궤멸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