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5화 (15/649)

15화. 검은 늪 황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방의 흙은 점차 검게 변했고 주위의 나무들도 드물게 보였으며, 길은 더 이상 울퉁불퉁하지 않았다.

변화하는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던 용여홍이 돌연 미간을 팩 구기며 말했다.

“바깥의 모습이 뭔가 좀 이상한데.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이미 똑바로 앉아있던 성건우는 가라앉기는 했지만 낮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사람이 없어.”

‘사람이 없다라⋯⋯. 그래, 맞아!’

용여홍은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치며 대꾸했다.

“그래, 길 위에 설치된 초소 안의 몇몇을 제외하면 여태까지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네!”

초소 안에 있던 이들은 당연하게도 전부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이 부근의 사람들은 회사에 영입되었거나,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겠지⋯⋯.”

장목화는 돌연 화제를 전환했다.

“전방의 저 초소를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검은 늪 황야야.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을 마주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지도⋯⋯.”

백새벽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장목화가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팀장님, 운전에 집중하셔야죠!”

백새벽은 감정을 억누르는 한편 웃으며 외쳤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침묵한 채 점점 훤히 트이고 있는 창밖의 광경을 살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여홍이 갑작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저 가족들한테 야외 야영 훈련을 나가서 당분간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얘기도 못했는데, 어쩌죠?”

“상부에서 사람을 보내 통지할 거야.”

장목화는 전방의 길을 주시하며 핸들을 살짝 돌렸다.

그러자 용여홍은 입을 다물었다.

이내 지프 차 안에는 또 다시 오랜 침묵이 맴돌았다.

* * *

반고 바이오의 변방 초소를 지나자, 전방의 지형은 평탄해졌다.

비교적 부드러운 이곳의 흑회색 흙 위에는 가로세로로 뒤엉킨 온갖 흔적이 남아 있었다. 더러는 차 바퀴의 흔적이었고, 더러는 동물의 흔적이었으며, 더러는 인간의 발자국이었다.

도로 주위의 나무는 전보다 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저 멀리 자리한 검은 늪도 볼 수 있었다.

나무의 줄기는 검은색에 가까웠으며, 잎은 짙은 녹색이었다. 개중 일부는 2, 30미터로 굉장히 컸고, 또 다른 일부는 겨우 사람 키 정도로 작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꼭 죽은 괴물처럼 형태가 기이하게 왜곡되어 있으며, 햇빛 아래에서도 매우 어두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늪 가장자리에서는 그렇게까지 조심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깊은 곳으로 들어간 후에는 차의 속도를 늦추고, 전방의 길이 늪에 잠겼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지. 잘못해서 늪에 들어가게 되면 곧장 차를 버리고 철수해야 하고.”

백새벽은 이 틈을 타 두 동료에게 설명한 후, 장목화를 바라봤다.

“팀장님, 저쪽에 깨끗한 수원지가 있어요.”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저기에서 좀 쉬고 물도 보충하자.

저기부터는 탁 트인 공간이라 위험하지 않으니까, 건우랑 여홍이 너희가 운전해봐.

오늘 안에 운전 교습을 마쳤으면 좋겠다.”

핸들을 돌린 장목화가 지프를 황야 위 성긴 숲으로 몰았다.

이곳에선 지하 하류 하나가 지면 위로 드러나 수백 미터를 흐르다가 다시 지하로 돌아가고 있었다.

장목화는 지프차의 지붕에 실려있던 태양열 충전기와 용량이 꽤 큰 전기 포트를 가지고 강가로 걸어가더니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말했다.

“이렇게 흐르는 지하수에는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어.

첫째로는 근처의 식물에 또렷한 변이 흔적이 있는지 관찰해야 하고, 둘째로는 수중 생물을 동족과 비교한 후 기이한지 아닌지 봐야 해.

다음으로는 가능하다면 물을 부대에 채우기 전에 끓이는 게 좋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바이오 클렌징 캡슐을 넣고.”

주위를 관찰하던 장목화가 강가에 쪼그려 앉아 주전자 안에 물을 가득 채웠다.

뒤이어 그녀는 전기 포트를 이미 잘 설치해둔 태양열 충전기에 꽂았다.

그 사이 유백색의 플라스틱병을 하나 꺼낸 장목화는 그 안에 들어있던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흰색 캡슐 하나를 물에 넣었다.

그것이 바로 반고 바이오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오 클렌징 캡슐이었다.

옆에 자리한 용여홍은 매우 흥미롭다는 듯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직접 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매일 물자 공급 시장에 가야만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는 그의 입장에서 이건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의 가족은 비교적 많은 편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배급되는 에너지는 제한적이었으며 전기 포트는 그리 값싼 물건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용여홍은 매번 보온병을 가지고 물자 공급 시장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한창 바삐 움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목화는가 용여홍을 바라보며 꾸짖듯 웃었다.

“이런 때 네가 해야 할 일은 아이스모스를 꺼내, 우리를 습격하거나 우리의 물자를 빼앗으려 할 생명체에 대비하는 거야.

경험이 많은 새벽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봐, 건우도 벌써 사주 경계를 하고 있잖아.”

아이스모스 권총을 뽑아 든 채 강의 발원지 쪽을 바라보던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저기에 뭔가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목화는 곧장 건우가 가리킨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빠르게 9밀리미터 총알을 사용하는 아이스모스를 뽑아 쥔 후,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봤다는 게 어떻게 생겼지?”

성건우는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질문에 답했다.

“옷은 매우 남루하면서도 두꺼웠습니다. 꼭 타르바간 같았어요.”

장목화는 긴장하지 않고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네가 어떻게 타르바간을 알아?”

그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성건우가 회사 밖으로 나와 땅 위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회사 내부에서 타르바간은 오직 연구 구역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성건우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믿기가 힘들었다.

목화가 떠올릴 수 있는, 그럴 듯 하면서도 유일한 이유는 교과서에서 타르바간의 사진을 봤다는 것밖에 없었다. 다만 실제로 타르바간을 본 경험이 없다면 어떤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그 동물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성건우는 총을 쥐고 있지 않은 손으로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기에 한 마리가 있네요.

교과서에 나온 사진 속 모습과 똑같아요.”

성건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장목화는 잔뜩 긴장한 타르바간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내 타르바간은 한 번 울더니 황급히 땅굴 속으로 파고들었다.

“관찰력이 좋네.”

장목화가 성건우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은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백새벽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계절, 이 시간에 그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서 혼자 있었다면 분명 황야의 유랑자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쪽이 머릿수도 많고 무기도 있으니,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겁니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그가 만약 강도단과 연계되어 있다면 약간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는 건데, 우리도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으니까요.”

“정말로 강도단이 있다면, 너희들을 훈련 시킬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

말을 마친 장목화가 시선을 돌려 성건우와 용여홍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에 용여홍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팀장님, 강도단의 규모가 크거나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지고 있을까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용여홍의 말에 장목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여긴 회사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야. 그리고 안전부에서 수시로 사람을 보내 훈련과 연습을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지. 규모가 크고 어마어마한 화력을 자랑하는 강도단이 있었다면 진즉에 청산되었을걸.

게다가 애쉬랜드의 강도단은 네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라. 서로 단단히 붙어서 체온을 주고받으며 생존하기 위해 모인 유랑자들에 불과하지. 충분한 물자를 모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총을 가지고 있을 수도, 규모를 키울 수도 없어. 강도단 내에서 비교적 약하고 마른 녀석은 다른 사람들의 예비 식량이 되기도 하고.

물론 유명한 강도단은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지. 그들은 보다 오랫동안 생존할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예비 식량이라니⋯⋯.’

설명을 들은 용여홍은 짙은 두려움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팀장님, 이렇게 잔인한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평온한 말투로 하세요?”

“너도 애쉬랜드 위에서 오랫동안 구르고, 많은 것을 보다 보면 이런 이야기에 익숙해질 거야.”

장목화는 고개를 숙여 태양열 충전기 위의 포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성건우가 물었다.

“거점 안에 모인 사람들을 황야유랑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뭡니까? 방금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황야유랑자 같던데요.”

백새벽은 목에 두른 스카프를 당기며 약간 무거워진 표정으로 답했다.

“거점은 언제나 불안정하거든.

수원지의 변화, 토지의 질, 날씨, 괴물들의 이주 상황은 한 지역이 거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환경이 변하면 그 안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다시 유랑자가 되어 새로운 거점을 찾으러 떠나지.

그리고 모든 요인 중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그들을 더욱 빈번하게 이동하게 하는 것은 사실 대형 세력이야.”

“왜?”

용여홍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백새벽이 용여홍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애쉬랜드 위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건, 규모가 가장 큰 몇몇 강도단이 아니라 바로 퍼스트 시티의 노예 포획대거든. 그들은 수시로 거점을 파괴하고, 그 안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잡아가 노예로 삼아.

퍼스트 시티가 점거한 광산 안이나 그곳에 지어진 공장 안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노예가 죽어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덧붙였다.

“강도단 중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 녀석들이 있어. 특히 자체적으로 광산을 점거하고 있는 녀석들이 더욱 그렇지.”

“퍼스트 시티의 노예 포획대가 강도단까지 잡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애쉬랜드에서 가장 흥하는 사업은 노예무역이었을 거야.”

백새벽은 뭔가를 떠올린 듯 돌연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보통 거점 안의 생산품만으로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없어. 그래서 그들은 거점을 떠나 황야에서 열매를 찾고, 야수를 사냥하고, 각종 물건을 주워서 교환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야 하지.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그들은 여전히 황야유랑민인 거야.”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일주일에 고기는 단 한 번밖에 먹을 수 없었고, 밤에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 수시로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생존에 위협을 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

황야유랑민들에 비하면 그는 그야말로 천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불쌍하다⋯⋯.”

감성에 젖은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백새벽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그래. 하지만 황야유랑자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마음이 물러져선 안 돼. 그들과 강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라고는 배고픈 정도, 갖추고 있는 무기, 그리고 충분한 준비의 유무 정도에 불과해.

난 황야유랑민으로 살았을 때 수시로 습격을 받기도 했고, 반대로 누군가를 습격하기도 했어. 황야유랑민의 눈에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어. 그저 삶과 죽음만 있을 뿐이지.”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장목화는 사력을 다한 끝에야 힘겹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목화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자,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난 감사할 줄 알고, 선의에 선의로 보답하려 하는 황야유랑자도 적잖이 만나봤거든.”

“예를 들면요?”

성건우의 질문에 장목화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예를 들자면, 백새벽이 딱 그렇지!”

벡새벽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팀장님, 물 끓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말했다.

“차에서 물 담을 부대 네 개를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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