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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14화 (14/649)

14화. 아름다운 산림

성건우와 백새벽, 용여홍은 같은 카모플라주 배낭을 메고 장목화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목화는 자신의 전자카드를 긁고 650층 버튼을 눌렀다.

몇 초 후, 상행을 마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650층은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에서 지면에 가장 가까운 층이었다. 이곳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은백색의 금속 벽과 묵직한 문들로 격리된 복도, 그리고 무기를 쥔 채 보초를 서는 안전부의 직원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장목화는 자신의 전자카드를 연거푸 긁으며 하나하나의 묵직한 금속 문을 열었다.

그렇게 성건우를 비롯한 팀원들을 데리고 긴 복도를 가로지른 후, 장목화는 650층의 어딘가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나친 몇 개의 문은 카드소지자의 홍채와 몸을 스캔하며 신분 위조 여부를 확인했다. 심지어 마지막 문을 지나기 위해서는 비밀번호까지 입력해야 했다.

마지막 문 너머의 복도 끝에는 엘리베이터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중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카드를 긁은 목화는 ‘지면 구역’이라는 금속 단추를 눌렀다.

느릿하게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팀원들은 드넓은 광장을 볼 수 있었다. 위쪽에 금속으로 이루어진 돔형 지붕과 철제 골조가 설치된 광장이었다.

“주차장이야.”

장목화가 웃으며 짧게 설명했다.

이곳에는 각종 자동차뿐만 아니라 탱크와 미사일 차 등도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에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은 깊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내 장목화는 얼른 자신에게 배정된 자동차를 찾았다. 녹회색의 사륜 지프차는 자동차 섀시가 높고 바퀴가 커서 상당히 든든해 보였다.

곧장 트렁크를 연 장목화가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이번 야외 야영 훈련에 쓸 무기야. 회사 제식 9밀리미터 권총이고, 이름은 아이스모스야. 퍼스트 시티의 레드리버를 모방해서 만든 제품으로, 이 총에 들어가는 총알은 가장 흔한 데다 보급받기도 아주 쉽지.”

아이스모스는 전체적으로 은백색을 띠고 있었으며, 손잡이 부분에는 미끄럼방지 패턴이 들어가 있었다.

장목화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 사람당 한 자루씩이야. 연합202도 한 사람 앞에 한 자루씩 돌아가고.

이 두 자루의 총은 돌격 소총이야. 알고 있겠지만, 회사의 제식 총인 이것의 이름은 베르세르크고, 5.56밀리미터의 총알이 들어가.

그리고 이건 오렌지 소총. 스코프가 달려있어서 저격용 소총으로 쓸 수도 있어.

이건 폭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류탄이고.

여기 있는 건 다 무기와 총알이야. 너희도 일단 권총이랑 탄창을 챙겨.”

각종 무기에 더 이상 익숙해질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성건우와 용여홍은 침착하게 아이스모스와 연합202를 챙긴 뒤 허리띠에 걸었다.

장목화는 이번엔 오른편의 종이 상자를 가리켰다.

“군용 통조림, 에너지바, 압축 비스킷. 우리의 보급품이지.

이걸로는 하비스트 마을까지 가는 데 못 버텨. 그러니 야외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해. 이것도 훈련의 일부야.”

“예, 팀장님!”

팀원들은 이에 대해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답했다.

“좋아, 차에 타.”

장목화가 아주 호방하게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 * *

성건우와 용여홍은 아직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여자가 앞 좌석에 앉아 번갈아 가며 차를 몰기로 했다. 그들은 탁 트인 구역에서 두 남자에게 운전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4인승 지프는 주차장 안의 검문소와 철책문을 하나하나 통과했다.

잠시 후, 장목화가 턱짓으로 전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지막 문이야.”

거대한 은백색의 짝문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는 20명 가량의 안전부 직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마지막 검문까지 마친 후, 지프는 금속 대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때 저도 모르게 긴장한 성건우와 용여홍은 숨까지 꾹 참았다. 지표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난생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지프가 가까이 다가가자, 은백색 대문은 천천히 뒤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금색으로 물든 빛이 맹렬히 파고들었다. 가로등만큼 희지도, 촛불만큼 노랗지도 않은 빛이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동시에 몸을 웅크리며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

처음 마주한 빛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 * *

지프가 은백색 대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비로소 바깥의 빛에 적응해 손을 내린 성건우와 용여홍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최초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그들의 눈에는 파랗고 깨끗한 하늘과 각양각색의 흰 구름, 끊임없이 대형을 변화시키며 나는 새들, 그리고 햇빛 아래 옅은 금빛을 번득이는 옹벽이 들어왔다.

“해, 해다!”

용여홍이 높은 하늘에 떠오른 채 주황빛으로 작열하는 거대한 불덩어리를 향해 외쳤다.

그는 말을 하면서 태양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프도록 시린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그는 태양에서 조금도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저런 상태의 해를 똑바로 봐서는 안 돼! 눈이 다친다고! 굳이 보고 싶다면, 자.”

장목화는 차를 운전하면서 콘솔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 뒷좌석의 용여홍에게 건넸다.

그러자 용여홍은 유리창에 바싹 붙어있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장목화가 건넨 물건이 바로 알이 검은 안경이란 걸 확인했다.

“⋯⋯선글라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학교에서 배웠던 이 물건의 이름이 떠올랐다.

“네가 안 쓰면 내가 쓴다.”

그 사이 이쪽을 돌아본 성건우가 말했다.

상대에게로 시선을 돌린 용여홍은 언제든 눈물을 흘릴 것처럼 붉어진 성건우의 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너도 해를 본 거냐?”

용여홍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성건우는 그에 응수하듯 낚아챈 선글라스를 냅다 썼다.

“야⋯⋯.”

분노해야 할지 반성해야 할지 고민하던 용여홍이 건우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던 그때였다.

“여기 하나 더 있어.”

보조석에 앉은 백새벽이 선글라스를 건넸다.

그녀가 내민 선글라스는 장목화의 것보다 더 정교해 보였다. 나란히 연결된 하트 모양 안경알의 색은 마냥 새카맣지 않고 약간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망가뜨리면 안 돼. 어마어마한 대가를 주고 교환한 거니까.”

백새벽이 당부하듯 덧붙였다.

“고마워.”

용여홍은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받아든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장비를 갖춘 그는 덕분에 해를 더욱 세심하게 관찰하며, 실물과 프로젝터를 통해 보았던 사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해구나⋯⋯.”

얼마나 지났을까. 감개무량한 듯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선글라스를 벗어 백새벽에게 건넸다.

성건우 역시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장목화의 선글라스를 콘솔 박스에 돌려놓았다.

“무슨 생각해?”

용여홍이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디에 가면 선글라스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선글라스는 소수의 프로젝트팀에 소속된 이를 제외한다면 지하 건물 안의 사람들에게는 아예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물자 공급 시장에서도, 495층의 활동 센터에 열리는 소규모의 장에서도 선글라스를 볼 수 없었다.

운전 중인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상한 데에 관심을 두고 있을 줄 알았다.”

백새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따가 황야유랑민들의 거점 지역을 지날 때 잠깐 들러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압축 비스킷 하나를 좋은 선글라스로 교환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맞아, 내 것도 그렇게 교환한 거야.”

장목화가 동조했다.

“근데 새벽이 넌 왜 그렇게 많은 대가를 들인 건데?”

“제 것은 어느 여성 유적 사냥꾼으로부터 얻은 거예요. 당시 그 사람은 이 예쁜 선글라스를 본인이 쓰고 싶어 했고, 가지고 있는 물자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어요.”

백새벽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다시 차창에 기대어 바깥을 응시했다.

길의 양쪽에 자리한 것이라고는 거대한 나무와 이따금씩 뛰어다니는 갈색 다람쥐뿐이었지만, 그들은 아주 흥미로워하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상상했던 애쉬랜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똑바로 세운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네가 상상했던 애쉬랜드는 어떤데?”

장목화가 거친 길 위로 지프를 몰며 물었다.

용여홍은 알맞은 말을 생각해내기 위해 애썼다.

“그, 그러니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성건우가 친구를 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둡고, 차갑고, 축축한 곳이라고 생각했겠지. 하늘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햇빛은 먹구름에 가려져 도처가 흐릿하고 먹먹하기만 할 거라고.”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

용여홍이 완전히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들이 배운 교과서는 애쉬랜드의 환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상태와 오염, 질병, 기근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애쉬랜드의 환경에 대해 좋지 못한 인상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표면 위로 나가보았던 직원들은 보안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가끔씩 어느 지역의 햇빛이 아름다웠다고, 환경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주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무시했다.

핸들에 팔꿈치를 얹은 채 전방을 주시하던 장목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구세계가 파괴되었을 때는 그랬지만 빠르게 호전되었는지도 모르지. 일부 지역만 아직도 그런 상태에 처해있을 수도 있고.”

“그건 위험과 오염, 질병과 변이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옆에 앉은 백새벽이 덧붙였다.

“그렇구나⋯⋯.”

용여홍은 재차 차창에 찰싹 달라붙어 햇빛에 잠긴 아름다운 산림을 감상했다.

성건우도 그와 똑같이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목화는 룸미러를 통해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몰래 웃으며 어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네 개의 문에 달린 유리창이 한꺼번에 아래로 내려갔다.

그에 화들짝 놀란 용여홍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이, 이게⋯⋯ 이게 이렇게 내려가기도 해요?”

“바깥 공기도 쐬어야지.”

장목화는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닌 척 대꾸했다.

성건우는 조금의 변화도 없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착 달라붙은 유리창이 아래로 스르륵 내려가는 느낌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내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보았다.

“어때?”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성건우는 아주 진지하게 밖을 내다보며 답했다.

“신선한 똥 냄새가 나요.”

“⋯⋯.”

장목화는 성건우의 예민한 후각을 인정했지만, 상대의 말에 대꾸를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차창을 연 장목화의 행동을 방관하던 백새벽은 모종의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팀장님, 팀장님은 몇 년도에 태어나셨어요?”

“신력 23년. 왜?”

장목화가 말했다.

“저보다 3살 어리시네요⋯⋯.”

백새벽이 살짝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용여홍도 덩달아 놀란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팀장님, 우리보다 겨우 2살 더 많았던 거에요? 그런데 벌써 D6이라고요?”

“그게 바로 안전부 직원의 이점이지. 위험하긴 하지만 승급은 정말 빨라. 너희들의 상사, 예컨대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잠시 뜸을 들이던 장목화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난 이전에 어느 정도의 공헌을 하기도 했거든.

아, 알려주는 걸 깜빡했네. 공기의 색을 관찰하는 건 아주 중요해. 색을 보고 미리 방독면을 착용해야 하는 때도 있거든.”

그 후 30분 동안 지프는 덜컹거리며 숲 사이를 내달렸다. 그 사이 어린아이처럼 바깥의 광경을 눈에 담던 성건우와 용여홍은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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