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뿌듯한 하루
장목화는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오늘 오전에는 총을 익히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훈련을 할 거야.”
“그건 이미 다 배운 거잖아요?”
용여홍이 물었다.
그의 말대로 총기를 다루는 법은 기초 교육 과정에 포함되었다.
또한 대학에서도 전투와 사격 등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으며 다시 입을 뗐다.
“너희들은 회사에서 제작한 정식 무기만 다뤘잖아.
그 다음에는 내가, 아니, 새벽이가 여러 세력에서 생산한, 그리고 황야 내 여러 폐허에서 찾아낸 각종 무기를 설명해줄 거야.
외부로 작전을 나가면 무기를 분실하거나,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떤 총이라도 주워서 고치고, 어떤 규격의 총알이라도 주워서 그에 맞는 무기에 끼울 줄 알아야 하지. 이런 능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져.”
말을 마친 장목화가 손뼉을 쳤다.
“좋아, 일단 옆에 있는 작은 목욕탕의 탈의실에서 제복으로 갈아입고 15호로 모여.”
그녀의 손이 티 테이블 위에 놓인 몇 벌의 옷을 가리켰다.
* * *
647층 15호.
회색 제복으로 갈아입은 성건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 바짝 붙은 용여홍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각양각색의 무기였다.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은백색인 것도 있고, 검은색인 것도 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것도 있고, 벽에 걸린 것도 있었다. 마치 무기 박람회에 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사실 용여홍은 박람회라는 것을 책이나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가 박람회에 가깝다고 느꼈던 활동은 몇 년 전 내부 생태 구역에서 진행된 신 실험종 전시회가 유일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눈앞에 펼쳐진 이러한 광경이야말로 박람회라는 말에 부합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가에 서 있던 장목화가 성건우를 몇 번 훑어보더니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복을 입으니까 폼이 좀 나는데!”
안전부의 제복은 원래부터 상당히 아름답게 디자인된 편이었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한 편인 성건우는 그런 제복 덕분에 한층 더 멋스러워 보였다.
“제가 보기엔 별로인데요.”
성건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왜?”
곁에 있던 백새벽이 물었다.
이어서 장목화가 그녀를 말리듯 입을 열었다.
“저런 말은 무시하는 게 좋을 텐데⋯⋯.”
그와 동시에 성건우가 씩 웃으며 백새벽의 질문에 답했다.
“이런 차림으로는 골드코스트의 훌라춤을 출 수가 없잖아.”
“⋯⋯.”
백새벽은 할 말을 잃은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때로는 네가 농담을 하려 하는 건지,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장목화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그만 멍 때리고 저쪽으로 가. 수업을 시작할 테니까!”
이내 용여홍을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훑어보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까보다 훨씬 똑똑하고 멋져 보이네.”
용여홍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무시한 채 성건우에게만 집중하던 두 사람의 모습에 풀이 죽어있다가, 그 말에 힘을 얻은 듯 허리를 곧게 세우며 답했다.
“예, 팀장님!”
장목화가 가리킨 긴 테이블 앞에 이른 백새벽이 은백색 몸통에 미끄럼방지 처리가 된 검은색 손잡이가 달린 총 한 자루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건 유적 사냥꾼과 황야 강도들이 사랑하고 또 증오하는 총이야.
보이지? 총신이 매우 두껍고 긴 데다가 11.18밀리미터의 총알을 사용하는 총이야. 위력이 상당히 강해서 비교적 덩치가 큰 야수를 사냥할 때 쓸 수 있어. 이 옆에 있는 총들도 이것과 비슷한 종류인데, 그중 일부는 피톤이라고 불려.
이건 반동이 상당히 강해서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다룰 수가 없어. 음, 너희들은 다 유전자 개량을 받았으니 문제는 없겠네.
또한 이 총은 구세계의 도시 폐허에서 찾아낸 총을 원형으로 삼아 만든 것으로, 연합 공업의 최신 제품이기도 해. 모델 번호는 202. 단점이 있다면 다른 종류의 권총보다 불발하기 쉽기 때문에, 사용할 때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는 거야.”
백새벽은 손에 들린 연합202 권총의 대략적인 상황과 구조, 그리고 사용 경험 등을 감칠맛 나는 말솜씨로 건우와 여홍에게 알려주었다.
이 권총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녀는 그 다음으로 다른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색 권총을 집어 들었다.
“이 총에는 7.62밀리미터짜리 총알이 들어가. 위력은 비교적 강하지만 크기는 작고,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높지. 휴대하기도, 유지하기도 쉬워. 뭐, 손이 좀 큰 사람에게는 잘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딱 좋아. 현재 황야에서는 구세군에서 생산하는 우베이 6과 우베이 7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중 전자는 설계에 일정한 문제가 있어서 불발 확률이 연합 202와 비슷해. 그리고⋯⋯.
⋯⋯이 총에는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는 14.5밀리미터의 총알이 들어가. 원래는 아이언마운틴 시티의 유적에서 나온 총이지만, 지금은 오렌지 컴퍼니에서 복제하고 있어. 우리는 이 총을 대개 뚱보라고 불러. 하지만 저격용 소총 중에서 가장 쓰기 좋은 녀석이라 하기는 어려워. 난 호크아이와 신의 눈을 더 좋아하는데, 아, 저기에 있네⋯⋯.
⋯⋯가장 좋은 저격용 소총은 사실 가우스 소총과 플라즈마 소총이야. 하지만 여기에는 없어. 퍼스트 시티나 연합 공업과 같은 몇몇 대형 세력의 정예부대를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황야에서 그런 총들을 맞닥뜨리는 일은 없을 거야.
⋯⋯음,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관단총이야. 자라목이라는 별명이 있지⋯⋯.”
백새벽이 하나하나의 총기를 설명하는 사이, 성건우와 용여홍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수시로 총을 쥐어 그 느낌을 익혔다.
장목화는 백새벽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계속 듣다가, 상대가 마른 목을 축일 무렵 근처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금속 튜브를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이 무기가 뭔지 맞혀볼 사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용여홍이 튜브 위에 적힌 애쉬랜드 문자를 읽었다.
“임남 강철 파이프 공장.”
“하하.”
장목화가 가볍게 웃었다.
“이건 사실 개인 전투용 바주카포야. 다만 그 주요 부품은 구세군의 심리스 강철 파이프 공장에서 생산되지. 좋아, 새벽이의 설명을 이어서 들어보자고.”
* * *
저녁 6시 20분, 샤워를 하고 일상복으로 다시 옷을 갈아입은 성건우와 용여홍은 각자의 도시락통을 가지고 647층 2호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안전부의 각 소형 식당은 생활 구역의 직원 식당보다 20분 이른 6시 10분부터 문을 열었다.
“온몸이 쑤셔. 팀장님이 너무 세게 때려서.”
자리에 앉는 동안 멍이 든 곳을 부딪친 용여홍이 이를 악물며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오후에 진행된 격투 훈련에서, 장목화는 두 사람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성건우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버텼지만, 용여홍은 매번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무참히 쓰러져 버렸다.
“유전자 개량이 아주 잘 된 모양이야! 봐봐, 그 힘! 그 반응 속도! 그 협응력! 완전 괴물이라니까! 하, 너도 괴물인 것 같더라? 작은 괴물!”
여홍은 오늘에서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전에 받았던 격투 수업에서 실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건우는 그 괴물 같은 팀장과 그래도 몇 번의 합을 주고받은 바 있었다.
물론 그가 버틴 시간도 얼마 되지 않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몇 번이라도 공격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성건우는 빙그레 웃으며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넌 백새벽도 못 이기더라.”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진 용여홍이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걔는 규칙을 어겼잖아! 게다가 너도 몇 번밖에 못 이겼으면서.”
용여홍은 왜소한 여자인 백새벽보다 체격도 크고 힘도 좋은 자신이 당연히 상대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새벽에게 몇 번이고 패배하고 말았다.
배 속 태아였을 때부터 유전자 개량을 받은 그는 상대에 비해 체격, 힘, 반응 속도, 협응력, 균형능력 모두 우세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수년간의 격투 훈련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황야의 전투에 규칙 따위는 없어. 오직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
성건우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하긴, 걔가 쓰는 전투 기술은 다 무지 실용적이더라⋯⋯.”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도시락통을 내려다보았다.
감자가 섞인 쌀밥 위에는 검은색의 말린 나물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밥에는 이미 나물의 양념이 어느 정도 배어 있었다.
말린 나물 위에 얹힌 것은 두꺼운 비계와 얇은 살코기가 줄무늬처럼 한 겹 한 겹 교차되어 있는 고기였다. 그 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이건 용여홍이 공헌점수 1점을 내고 받은 고기반찬이었다. 그는 점심 식사를 할 때도 1점을 내고, 나물과 함께 쪄낸 돼지고기 1인분을 먹었었다.
“냄새 죽인다.”
용여홍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외근을 할 필요가 없었다면, 이곳이야말로 내가 꿈에 그리던 직장이야.”
“내일도 격투 훈련이 있어.”
성건우는 그런 상대를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히 제공되는 고기반찬 앞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성건우 역시 말린 나물과 함께 쪄낸 고기를 먹고 있었다.
“⋯⋯조용히 먹기나 해.”
용여홍의 안색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동시에 그는 팀장과 하루를 보내는 동안, 자신이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해졌음을 깨달았다.
성건우는 용여홍에게 더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고개를 잔뜩 숙이며 감자밥과 고기를 먹는데 열중했다.
* * *
저녁을 다 먹은 후, 각자의 도시락통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성건우와 용여홍은 495층의 C 구역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활동 센터에 들어가자마자, 소박한 원피스 차림에 큰 키와 예쁜 얼굴로 산뜻한 느낌을 풍기는 한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피원영, 날 찾아온 거야?”
용여홍은 곁에 있는 성건우의 존재마저 잊은 채 얼른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피어난 웃음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피원영이라 불린 여자가 살짝 놀란 듯 물었다.
“벌써 밥을 다 먹은 거야?
친구 물건을 돌려주려고 왔어.”
용여홍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작은 식당에서 먹고 왔어.”
“작은 식당? 어디로 배정받았길래?”
피원영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일반 부서의 직원은 작은 식당에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속한 오락부에서도, 작은 식당이 딸린 곳은 라디오 방송국뿐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용여홍이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안전부.”
흠칫 놀란 듯한 피원영이 점잖게 말했다.
“그럼 조심해야겠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걸음을 옮긴 성건우는 활동 센터의 주관자 진현오의 옆쪽에 놓인 스툴 위에 앉았다.
“어때? 어디에 배정받았냐? 내가 알고 있는 사람한테 너 좀 잘 봐달라고 얘기 해줘?”
진현오는 앞에 놓인 좌판 위의 물건들을 살피며 여유롭게 물었다.
“보안 사항입니다.”
성건우가 짧게 답했다.
“하⋯⋯.”
고개를 돌린 진현오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나가는 대신, 성건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