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8화 (8/649)

8화. 성찬

“젖을 다 먹이고 나면 아이를 20분에서 30분 정도 똑바로 안아 세워야 합니다.

아이가 극도의 굶주림을 느끼기 전에 젖을 먹여야 합니다.”

설교하는 임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심도환을 비롯한 이들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일찍이 준비해온 종이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수시로 적었다.

성건우는 시종일관 처음과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임결을 주시했다. 다만 그 눈의 초점은 나가 있었다.

그로부터 2,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설교를 마친 임결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이상의 모든 이야기는 신령의 가르침입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심도환을 포함한 교도들이 입을 열기도 전, 성건우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를 안 듯 뻗은 두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흠칫 놀라 있던 다른 교도들도 끝내 건우처럼 팔오금을 살짝 접어 뻗은 팔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임결은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벙긋거리던 입을 결국 다물었다.

이어서 손목에 찬 오래된 전자시계를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가로등이 켜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과정, 성찬식을 진행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이 이모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여인과 함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이 다시 나온 것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앞뒤로 선 그녀들 중 한 명은 작은 사발과 큰 사발, 플라스틱 도시락과 자기 수저 등 각종 식기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검은색의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는 원통형의 큰 용기를 들고 있었다.

동시에 짙은 냄새가 건우의 코를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오른손을 든 그가 입가를 쓱 훔쳤다.

깨와 설탕이 섞인 냄새였다.

일반적인 디저트를 포함한 이와 비슷한 음식은 한 근당 60점으로, 돼지고기만큼이나 비쌌다.

그리고 고급 디저트의 경우 한 근당 무려 720점에 달하기도 했다. 건우가 매일 먹는 아침 식사의 가격이 8점에서 10점 사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건 어마어마한 고가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곧이어 이 이모는 사람들에게 식기를 나눠주었다. 한 손으로 반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를 안은 채 한 손으로는 국자를 든 임결은 그 안에 든 새카만 음식을 교도들의 그릇이나 도시락통에 한 국자씩 넣어주었다.

모든 사람에게 분배를 마친 후 임결이 말했다.

“이것은 오늘의 성찬, 검은깨죽입니다.”

성찬을 나눠 받은 사람들은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성건우는 신입이라 임결과 이 이모를 제외하고 가장 마지막에 성찬을 받았는데, 그가 받은 검은깨죽은 상당히 많았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사발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였다.

성건우 역시 그 누구보다 신실하게 호응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성찬을 나눠준 임결은 모종의 의미로 보자면 달지기 사명의 화신이었다. 그러니 ‘당신’이라는 단어는 사명을 가리키는 말이지, 임결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성건우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던 이 이모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감동 받았니?”

“네!”

건우는 한 손으로 사발을 들고 한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임결과 이 이모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대 가장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검은깨죽을 나눠 가진 그들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교도들은 그들에게 호응하며 성찬을 먹기 시작했다.

성찬은 만들어진 지 꽤 된 듯 약간 차가웠지만, 맛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고소하고, 달고, 깨 특유의 풍미도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한 입을 먹은 성건우는 잠시 멈칫했다가 빠르게 수저를 놀리기 시작했다. 검은깨죽은 끊임없이 그의 입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는 심지어 그릇에 묻은 것까지 놓칠 수 없다는 듯 모조리 핥아먹었다.

검은깨죽을 다 먹은 성건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 * *

성찬식이 끝나자 교도들은 입을 모아 12월을 주관하는 사명을 찬미하며, 줄을 지어 식기들을 이 이모와 임결에게 반환했다.

성건우의 차례가 되자 이 이모가 웃으며 물었다.

“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느낌이 어때?”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아주 맛있었어요.”

그 말에 표정이 살짝 굳은 이 이모가 다시 물었다.

“우리한테 건의할 건 없니?

주저할 것 없어. 교단에 가입한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고 가족 사이에 말하지 못할 건 없으니까.”

성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성찬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이모가 애써 웃으며 물었다.

이윽고 성건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미리 이를 닦아야겠어요.”

이 이모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이제 다들 가도 좋아요. 건우 너는 남아. 인도자가 할 말이 있대.”

심도환을 비롯한 이들은 속속들이 떠났고, 이 이모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식기들을 안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건우 앞으로 걸어온 임결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막 교단에 가입했으니, 최대한 빨리 기도와 관련된 지식을 파악해야 해.

걱정 마,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까. 우리의 주 사명은 세월을 관장하는 진정한 신령이야. 사명께선 이런 것들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니 허례허식 따위는 없지.”

그러자 성건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결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고정된 기도 시간은 없어. 하지만 가끔 이른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사명께 스스로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지.

우리는 갓난아이의 탄생과 죽은 자와의 이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식적인 제례나 종교의식은 아이가 태어난 지 꼬박 한 달이 되었을 때, 혹은 죽은 자를 묻을 때 치러질 뿐, 평소에 있는 설교는 그 시간도 고정적이지 않아.

음, 12월의 첫 번째 날에는 대제례가 있어. 우리 주 사명의 도래를 맞이하는 날이지.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날에도 대제례가 있는데 이는 우리 주가 신세계의 대문을 열어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야.

경례하는 방식은 너도 이미 배웠어. 아이를 안아 가볍게 흔드는 듯한 동작이야. 이때 할 수 있는 말을 주로 세 가지로 나뉘어. 사망과 서거에 관련된 상황에서는 ‘끝은 사명에게로 돌아갈지니’라고 하고, 생명의 고상함과 우리 주의 은혜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라고 해. 그리고 새 생명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새 생명은 태양과 같다’ 혹은 ‘생명은 가장 귀중하다’라고 말하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이게 다야. 그리고 성찬은 매번 달라져. 어떨 때는 검은깨죽이 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우유, 주스, 두유, 고기 수프, 채소 수프, 요구르트가 될 수도 있지. 이것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겠니?”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말했다.

“다 아주 맛있는 것들이네요.”

“⋯⋯.”

임결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설명했다.

“이 음식들은 전부 유동식이거나 유동식과 비슷해. 그리고 유동식은 새로운 생명과 곧 죽을 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야.”

성건우가 입을 열기 전, 임결은 문을 가리켰다.

“좋아, 이제 돌아가 봐.”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더니 걸음을 옮기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임 이모, 달지기는 총 몇 분인가요?”

“보통 사람들은 달지기의 정의를 파악하고 나서 그분들이 총 열두 명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임결이 웃으며 말했다.

“달지기는 총 열세 분이야. 그중 한 분은 윤달을 대표하시지. 하하, 윤달이 없는 상황에서는 한 해를 대표하시고.”

“그분의 존칭은요?”

성건우가 캐물었다.

그러자 임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잘 몰라. 우리가 믿는 분은 사명이니, 그 외의 다른 달지기에 대해 알 필요는 없어.”

성건우는 더 이상 질문을 하는 대신 곧장 A구역 35호를 떠났다.

* * *

랜턴의 빛에 의지해 B구역 196호로 돌아가기 시작한 성건우는 갈림길에 이를 때마다 심도환이 그랬던 것처럼 랜턴을 끄고 벽에 붙어서 지나갔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간 성건우는 싱크대 앞에 이르러 거의 납작해진 치약을 들더니, 갖은 힘을 다한 끝에 칫솔에 살짝 묻을만한 양을 짜냈다.

진지하게 이를 닦고 세수까지 마쳤지만 천장은 아직 어두웠다. 이내 탁자 앞에 앉은 성건우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 * *

뭇별들로 가득 찬 넓은 홀 안, 성건우의 인영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근처의 서늘하고 새카만 금속 벽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교과서에 나온 우주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빛들은 하나하나의 항성계를 이루었고, 하나하나의 항성계는 여러 개의 은하계를 이루었다.

은빛 강 같은 성단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했으나 그렇게 또렷하지는 않았다.

성건우는 일찍이 이곳에 몇 개의 은하가 존재하는지 헤아려 보았는데, 이때 또 한 번 그것들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열하나, 열둘, 열셋.

열셋이라⋯⋯.”

침묵하던 성건우의 인영은 점차 흐릿해지다가 뭇별로 찬 듯한 홀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성건우는 창밖이 순간 환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의 천장에 박힌 등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마침내 지하 건물의 날이 밝은 것이다.

여전히 암녹색 코트를 입고 있는 성건우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든 채 방 밖으로 나가 C 구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물자 공급 시장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 성건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용여홍을 발견했다. 용여홍 역시 일찍 일어나서 공용 화장실에 줄을 설 필요가 없는 모양이었다.

“오늘 직무 배정 결과가 나올 텐데.”

긴장감을 덜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리에 서서 성건우를 기다리던 용여홍이 말했다.

“맞아.”

이때, 전방을 바라보던 성건우의 시야에 방문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한 여인이 들어왔다.

순간 성건우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양, 말없이 살짝 혼란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용여홍은 그런 성건우를 힐긋 살피는 한편, 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물었다.

“너 왜 그래?

어젯밤에 악몽이라도 꿨어?”

성건우가 2초간 침묵하다가 답했다.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는 중이야.”

용여홍은 성건우의 대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사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한담을 나누며 함께 물자 공급 시장으로 향한 다음, 직원 식당이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곤 각자 8점의 공헌점수를 내고 삶은 달걀 하나와 잡곡빵 두 개, 그리고 절인 채소 한 접시를 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