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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7화 (7/649)

7화. 설교

그러자 심도환도 웃었다.

“그럼 같이 가자. 조심해서⋯⋯.”

그는 말을 맺는 대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조심해야 한다는 뜻을 표현했다.

생활 구역의 각 층에는 감시카메라가 달려 있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중요한 갈림길이나 실내 공용 장소에만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부 생태 구역이나 공장 구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수는 훨씬 더 많았지만, 그 역시 연구 구역이나 관리 구역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심도환을 따라 전방의 갈림길을 바라보던 성건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꺼져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심도환은 성건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답했다.

이는 회사 내부에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전부터 고장이나 쓸모가 없는데도,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놓아둔 시설물들이 꽤 많았다.

소문에 따르면 이는 구세계가 파괴되던 시기 운 좋게 살아남은 인간들이 황급히 지하 건물에 진입했을 당시의 혼란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신력을 세기 시작한 지도 벌써 46년이 되었으니, 각종 설비가 고장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산라인에서 나오는 자원의 결핍과 기술 유실, 자료 부족 등의 원인은 줄곧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장 난 설비를 교환하고 수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회사에서는 종교에 관한 문제를 아주 엄격하게 관리하니까.”

심도환은 당부의 말을 덧붙이며 랜턴을 쥔 채 전방으로 향했다.

* * *

사거리에 이르렀을 무렵, 랜턴을 꺼버린 심도환은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건우는 그런 상대의 뒤를 따라, 재차 천장에 붙은 감시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빨간색 불빛 하나가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든 성건우는 양 볼을 꼬집으며 혀를 죽 빼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두 볼을 꼬집느라 랜턴에 눌렸던 얼굴 근육을 만지작거리며, 심도환을 따라 벽에 붙어 이동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방향을 튼 심도환은 A구역 35호 앞에 멈춰서더니 들어 올린 왼손으로 문을 가볍게 세 번 두드렸다.

“새 생명은 태양과 같다.”

방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낮게 깐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심도환은 목을 앞으로 빼며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생명은 가장 귀중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사이로 어스름한 노란빛이 흘러나왔다.

“이쪽은?”

문을 연 여인이 심도환의 뒤쪽에 붙은 성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삼십 대로 보이는 그녀는 유전자 개량을 받은 듯 눈썹이 곧고 진했으며, 콧대는 높고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아름다우면서도 개성이 느껴졌다.

이내 성건우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진심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참가하는 건 처음입니다. 심도환 아저씨가 안내해주셨어요.”

살짝 찌푸렸던 미간을 푼 여인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말했다.

“새 교우였군.”

좌우를 한 번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곧 한쪽으로 비켜섰다.

“얼른 들어와.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심도환은 성건우의 신분을 알고 있는 여인을 보고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으며,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면서 랜턴을 껐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성건우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방 안의 광경을 살폈다.

이 방은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컸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안쪽에는 문도 하나 달려 있었다. 안방, 화장실, 혹은 작은 주방이 딸려 있는 모양이었다.

성건우는 저도 모르게 이전에 살던 집을 떠올렸다. 이만한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부 모두 D4 이상이거나, 그중 한 명이라도 D7 조장급이라는 의미였다.

바깥방의 폭은 대략 2.5미터 정도였고, 길이는 5미터에 달했다. 가장 안쪽 벽에는 옷장 하나와 장식장 하나가 세워져 있었으며, 두 가구 사이에는 2인용 침대가 가로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대 발 쪽을 지나야 했다.

침대 앞쪽으로는 등받이 의자와 벤치, 스툴, 티 테이블, 책상, 천 소파가 놓인 작은 거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티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촛불이 밝혀진 채 어스름한 노란색 빛을 발했고, 그 주위로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성건우는 그들의 수까지 자세히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방안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규모로 볼 때 적어도 열 명은 될 것 같았다.

“건우야, 일단 등록부터 해.”

좀 전에 문을 열어준 여자가 어디에서 났는지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성건우는 펜을 받아들자마자 빈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저를 아세요?”

성건우가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웃으며 답했다.

“네 부모님이 이쪽에 살았을 때는 이웃이라고 할 수 있었던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넌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이 이모라고 불러.”

“예, 이 이모.”

성건우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바로 그 말에 응했다.

“그래, 이제 가서 앉아. 인도자의 설교가 곧 시작될 거야.”

이 이모가 비어있는 낮은 스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모는 어디에 앉으세요?”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난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면 돼.”

이 이모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성건우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몇 걸음 움직여 빈 의자에 앉았다.

* * *

그로부터 2, 3분이 지났을 무렵, 안쪽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낯설지 않은 상대는 어제저녁 건우가 활동 센터에서 만났던 전략위원회의 D3급 직원, 임결이었다.

임결은 여전히 테릴렌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하의는 회색 긴바지로 바뀌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았는데도 아직도 아름다운 얼굴의 표정은 성스럽고도 단정했다.

그녀는 침대와 옷장, 장식장 사이로 걸어오며 방 안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건우?”

임결의 시선이 꼿꼿하게 앉아있는 성건우에게 닿았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성건우가 앞으로 두 걸음 나가 인사를 하듯 말했다.

“임 이모, 전 방금 등록했어요.

심도환 아저씨와 함께 왔죠.”

뭔가를 고민하듯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던 임결이 순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랬구나. 넌 이미 검사를 통과했어. 앉으렴.”

성건우가 다시 자리에 앉자, 임결은 다른 사람들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교우가 참석했으니 이 교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죠.”

짝짝짝!

성건우가 열정적으로 손뼉을 쳤다.

심도환을 비롯한 이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틀어, 흠칫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성건우의 성격이 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임결 역시 살짝 놀란 듯하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이건 회사의 회의가 아니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성건우가 손뼉 치는 걸 멈추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우야, 이곳에 앉은 모두는 사실 회사를 떠나본 적도, 진정한 대지를 밟은 적도 없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애쉬랜드의 상황은 오직 회사의 방송과 교과서의 설명, 주위에 있는 안전부 직원의 설명에만 국한되어 있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보안을 위해 사전에 미리 선별돼.

그러니 우리는 애쉬랜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적 없는 하늘처럼.”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이 성건우의 얼굴에 닿았다.

“우리는 구세계가 파괴된 후, 아주 오랜 혼란과 분쟁의 시간을 겪던 인류가 마침내 일부 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고 신력을 세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또

한 우리는 애쉬랜드에 여전히 어둠이 드리워져 있으며 질서의 땅은 교과서에 나오는 드넓은 바다 위의 섬처럼 혼란 지대, 무인 지역, 각종 황야와 산 사이에 자리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오염과 변이, 기근은 파도처럼 계속해서,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어.

가장 치명적인 건 교과서에는 짐승처럼 변하는 수화병(獸化病)이라고 나오는 무심증(無心症)이야. 여태까지 우리는 그 병의 발병 메커니즘과 전파방식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와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어쩌면 하룻밤 만에 진정한 야수처럼 퇴화되어, 더 이상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사냥본능만 남게 될지도 모르지.”

임결은 느릿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건 뭘까?

구세계가 어떻게 파괴되었으며,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다시 세워졌느냐는 거야.

애쉬랜드 위의 여러 인류 사이에는 이런 소문이 돌지.

‘구세계의 어떤 행위가 신령을 분노케 했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시험에 통과하여 구원받았다’.

이 소문의 일부는 진실이지만, 일부는 거짓이야.

진실은 이 세계에는 분명 한 무리의 신령들이 존재한다는 거야. 그들은 함께 세월을 관장하고 각기 다른 달을 맡아 관리하지. 그래서 그들은 달지기라고 불려. 물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지인(至人), 세월의 신, 창백한 신, 구세주, 과거의 화가, 현세의 주제(主祭)라고도 부르지만.

거짓은 달지기들이 분노했기 때문에 구세계를 파괴한 게 아니라는 거야. 그건 아주 정상적인 발전이자 필연적인 결과였지.

생명은 숭고하고 신성하지만 결국에는 스러져. 세계도 그래. 한 해가 마침내 연말을 맞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생명 제례’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교단이 믿는 것은 달지기 중 가장 특수한 한 분, 12월을 관장하는 ‘사명(司命)’이야. 그분은 연말이지만 새로운 한 해의 강림을 상징하기도 하지. 또한 그분은 구세계의 종결자이자, 신세계를 시작한 분이기도 해.”

이 대목에서 성건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두 팔을 뻗더니, 갓난아이를 안은 것처럼 팔을 가볍게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끝은 사명에게로 돌아갈지니.”

묵직하지만 또렷한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진 채 방 안을 울렸다.

임결은 건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신세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어. 지금은 신령들이 중생을 시험하는 단계야. 사명을 진심으로 믿고 자신을 사명에 바쳐야만 신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세월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교도들은 또 한 번 팔을 가볍게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건우도 그들의 동작을 따라했다.

“당신의 관용을 찬미합니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임결이 화제를 전환했다.

“좋아요, 그럼 정식으로 설교를 시작해볼까요.

우리 생명 제례 교단은 생명을 숭배하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새 생명과 장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죠.

오늘 설교의 주요 내용은 새 생명입니다.”

성건우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주위의 다른 이들처럼 진지하게 설교를 들었다.

임결의 목소리는 점차 온화해졌고, 표정은 성스러워졌다.

“우리는 아이를 뉘어 재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낮에는 놀고, 밤에는 자는 습관이 들게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잠들 때 콧노래로 자장가를 불러줘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의 우는 소리를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짧지만 묵직하고, 때로는 높아졌다가 때로는 낮아지는 소리는 배고프다는 뜻입니다. 격렬한 소리는 화가 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우면서도 크고 날카롭다가 한동안 멈추더니 평탄하고 슬픈 느낌으로 바뀐 소리는 아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먹은 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안을 때 아이의 뒤통수를 받쳐줘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유 수유를 해야 합니다.”

성건우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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