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화 (5/649)

5화. 뭇별

그렇게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활동 센터 옆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소수의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돌격 신호라도 받은 듯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자 공급 시장에서 울린 이 종소리는 식당이 문을 열기까지 3분 남았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직원 식당으로 이동하는 이웃들을 바라보던 용여홍이 옆쪽의 성건우를 힐끔 살피며 말했다.

“네가 임결 이모의 말에 찬성할 줄이야.”

성건우가 상대를 마주 보며 대꾸했다.

“질문 방식을 바꿔보지 그래?”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용여홍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여성들을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생육 센터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잘된 일 아냐?”

“⋯⋯.”

용여홍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이들 역시 물자 공급 시장 밖에 이르렀다.

시장에는 대문이 없기 때문에, 안쪽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왼편으로는 하나하나의 테이블과 하나하나의 카운터가 달린 시장이 자리해 있었다. 식당에서 식사하기를 원치 않는 직원들은 그 안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묵묵히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오른편에 자리한 직원 식당의 문과 창문에서는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의 대문이 열리자, 자신의 식기를 들고 있거나 빈손인 495층의 직원들이 질서정연하게 식당 안에 진입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성건우는 식당에 들어선 후 용여홍과 갈라져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목제 그릇 두 개와 쟁반 하나를 챙겼다. 그 후 식사 도구까지 챙긴 그는 고정된 길과 앞사람을 따라 각각의 창구로 향했다.

“고구마 밥 반 근, 배추 스튜 1인분이요.

잡곡빵 두 개요.

삶은 감자 1인분이요.”

네 개의 창구를 방문한 성건우의 그릇 두 개는 이미 꽉 차 있었다. 배추 스튜 위에는 삶은 감자와 노르스름한 빵 두 개가 얹혀 있었고, 고구마 밥이 든 다른 그릇은 거의 쪼개질 듯 갈라져 있었다.

이 정도의 식사를 하기 위해 성건우가 내야 하는 공헌점수는 14점이었다. 고구마밥 반 근은 5점, 잡곡 빵은 하나에 2점, 삶은 감자 1인분은 2점, 기름이 살짝 뜬 배추스튜는 3점이었다.

성건우의 발걸음이 마지막에 이른 곳은 짙은 풍미가 느껴지는 고기 창구 앞이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린 뒤 또 한 번 주위를 살피던 그가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돼지고기 조림 1인분이요. 소스도 좀 더 주세요.”

창구 안쪽의 남회색 제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주걱으로 손가락만 한 길이에 그다지 두껍지 않은 고기 세 조각과 유혹적인 붉은색 소스를 떠서 고구마 밥이 든 그릇에 덜어주었다.

붉은 소스는 빠르게 흘러내리며 밥을 적셨다.

“일찍 와서 다행이네. 조금 더 늦었으면 동이 났을 텐데.”

창구 안의 아주머니는 건우와 같은 거리의 거주민으로, 그에게 언제나 상냥하게 대해주는 이웃이었다.

“32점이야.”

그 말에 건우는 잠시 묵직한 고개 세 점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전자카드를 꺼내 기계에 긁었다.

그는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뒤 무료로 제공되는 멀건 국까지 쟁반에 받쳐 들었다. 그러고는 식당 안을 잠시 돌아다닌 끝에 찾은 용여홍의 맞은편에 앉았다.

“와, 사치스러워라.”

용여홍은 성건우의 저녁 식사를 보고 진심에서 우러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밥그릇에 든 소스를 한쪽으로 치워놓은 뒤 고기 조각 하나를 집어 살짝 베어먹었다.

성건우는 입안에서 잔뜩 흘러나온 고기의 풍미를 느끼며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고구마 밥 중 소스와 섞이지 않은 부분을 떠먹었다.

밥을 먹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세 조각의 고기를 다 먹어치웠을 때 고구마 밥과 배추 스튜는 반 정도밖에 안 남아 있었으며, 삶은 감자와 잡곡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성건우는 남은 배추 스튜를 소스가 묻은 밥에 쏟아버린 후, 그 모든 것을 싹싹 먹어치웠다.

“만족스럽네.”

건우와 맞은편에 앉은 여홍은 동시에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멀건 국까지 다 마셔버린 용여홍이 그를 보며 물었다.

“같이 활동 센터에 갈래?”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돌아가서 라디오 방송이나 들으며 좀 일찍 쉴래.”

용여홍은 그를 설득하려는 듯 입을 잠시 벙긋거리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자리에 잠시 앉아 있다가 쟁반을 들고 출구로 향한 성건우는 손에 든 모든 것을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식당 직원들에게 건넸다.

* * *

물자 공급 시장 밖의 천장에 간헐적으로, 동시에 질서정연하게 박힌 하나하나의 등은 다른 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밝히고 있었다. 나이와 성별이 각기 다른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활동 센터로 향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쉬지 않고 뛰어노는 그들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를 지나 빠르게 C 구역에서 벗어난 성건우는 벽에 낙서가 가득한 거리를 지나 방들이 더욱 밀집된 B 구역에 이르렀다.

이 지하 건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 구역에는 건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직원들이 거주하는 공간도 집이라기보다는 사실 방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내부 생태 구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본 실제 벌집과 이곳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줄을 지어 자리한 방 사이의 복도는 꽤 널찍한 편이었다. 매끄러운 유백색 벽돌이 깔린 이 복도는 적어도 대여섯 명이 나란히 서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회사의 강제 규정에 따른 결과였다. 긴급 상황이 벌어지거나 대피해야 할 때 길이 정체되지 않게 하려고, 복도를 넓게 설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참을 걷던 성건우의 시야에 마침내 그의 방이 들어왔다.

그의 방은 좌우와 맞은편에 자리한 방의 외형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새카만 벽은 유광이라 퍽 깊어 보였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고동색이었고, 그 옆쪽에는 크지 않은 네 칸짜리 창문이 자리해 있었다.

성건우가 이 방이 자신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문에 붙은 하얀색 숫자뿐이었다.

「196호」

495층 B 구역 196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성건우는 황동색 열쇠를 꺼내 같은 색의 자물쇠에 꽂아 넣은 뒤 살짝 돌렸다.

찰칵, 소리와 함께 그는 반대편 손으로 문고리를 돌린 후, 그 문을 앞쪽으로 밀어 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문은 반쯤 열린 후부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 뒤쪽에는 성건우가 쓰는 렌지대가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폭 2미터, 길이 3미터, 높이 4미터인 이 방 가장 안쪽에는 성건우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침대 하나가 가로로 놓여 있었다. 침대와 벽 사이에 남은 공간의 길이는 1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침대를 제외하고 다른 가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 박힌 여러 큰 못에는 단조롭고 단순한 양식의 옷 두 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 옆쪽으로는 비닐막으로 반쯤 가려진 한 칸짜리 싱크대가 자리해 있었으며, 싱크대 반대편으로는 후드가 딸린 찬장 겸용 렌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건우는 방 안에 설치된 이 두 가지 것에 대해 언제나 만족스러워했다. 이런 시설은 모든 방에 갖춰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지하 건물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층이 존재했으며, 그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는 엘리베이터에도, 통풍, 수도, 에너지공급 시스템에도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때문에 엘리베이터만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구역에 배치된 채 그에 대응하는 일정한 층으로만 통하는 게 아니라, 통풍 시스템도, 수도 시스템도 하나하나의 서브 시스템으로 나뉘어 있었다. 15층마다, 혹은 특정 층마다 하나의 서브 시스템을 공유하는 식이었다.

이런 체계가 갖춰져 있는 덕에 어딘가 고장이 나더라도 해당 구역에만 영향을 미칠 뿐, 빌딩 전체의 붕괴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그중 수도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회사에서는 나중에 지어진 대부분의 방 중 일부에만 배관을 연결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원은 어쩔 수 없이 거리에 설치된 공용 화장실로 가 줄을 서야 했다. 게다가 야간이나 이른 아침, 그러니까 에너지공급이 부족할 때 생활 구역 내 여러 층은 상당히 서늘했다.

그런 상황에서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불을 덮은 채 씻는 것은 수많은 직원의 꿈이기도 했다.

한편 문 건너편, 네 칸짜리 창문 아래쪽에는 그다지 튼실하지는 않은 붉은색 탁자가 자리해 있었다. 그 위에는 여러 권의 책과 검은색 만년필 한 자루, 그리고 검은색 잉크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문밖 거리 천장에 박힌 등불의 빛이 창문을 통해 탁자 위로 쏟아지며 책 표면의 글자를 비췄다.

그의 방 창문이 두 개의 등 사이에 자리한 탓에 조명 효과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성건우는 별도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불빛에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무 탁자에는 서랍이 딸려 있었고, 그 앞에는 고동색 페인트가 발려 있음에도 군데군데 녹이 슨 등받이 의자가 자리해 있었다. 등받이 의자 뒤쪽으로는 곧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스툴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덕분에 그 공간이 그나마 거실처럼 보였다.

이 거실 옆에는 바로 침대가 붙어있었다.

성건우는 방 안의 불을 켜지 않았다. 그에게 배급된 에너지가 많지 않아서 최대한 아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열쇠를 뽑아 들고 문을 닫은 성건우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어둑한 침대로 향했다.

곡물로 채워진 베개를 벽 쪽에 세운 그는 베개에 등을 기댄 채 반쯤 눕듯 앉았다.

이 자세로 앉은 성건우에게는 렌지대 위에 놓인 전기 프라이팬과 전기 밥솥이 한눈에 보였다.

표면이 얼룩덜룩하게 녹슨 그 물건들은 사용한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그 물건들은 성건우의 최초의 기억 속에도 자리해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안전부의 대외 임무에 참가했을 당시, 구세계의 어느 도시 유적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그것을 가져오기 위해 회사에서 분배한 다른 전리품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건우의 어머니가 결혼한 후 아주 오랫동안 모은 공헌점수로 소규모 장에서 사온 것이었다. 물자 공급 시장에서 파는 새 물건은 상당히 비싼 데다가 언제나 공급량이 부족했다.

다만 이 방은 성건우의 기억 속 그 집이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원래 집은 A구역 28호였다. 그 안에는 큰 방과 작은 방, 그리고 매우 협소한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었다.

덕분에 성건우는 어렸을 때부터 공중화장실 앞에 줄을 설 필요도, 끔찍한 그곳의 냄새를 맡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방은 아버지의 실종과 어머니의 사망 이후 회사에 의해 회수되어 이미 조건에 부합하는 직원에게 다시 배급된 상황이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이 방은 그가 대학에 입학하여 고아원을 나왔을 때 새로 받은 곳이었다.

나중에 지어진 이런 방들의 경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전자 도어록 대신 구세계 도시 유적에서 뜯어온 각종 일반 자물쇠가 붙어있었다. 이런 일반 자물쇠 중 일부는 내부 공장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성건우는 여유롭게 시선을 돌려 창가의 탁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 탁자는 그녀가 결혼했을 때 성건우의 아버지가 아끼고 아낀 돈으로 물자 공급 시장에서 목재를 사다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 탁자와 그 아래에 딸린 서랍에는 성건우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옷과 전자기기 두 대가 들어있었다. 이건 고아원에서 3년 동안 지내고 나온 성건우가 돌려받은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다신 저 서랍 안의 옷들을 입을 수 없었다.

눈을 감은 그는 오른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곤 이내 손을 내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안은 점점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졌고, 어둠도 점점 깊어졌다.

베개에 등을 기댄 성건우는 이미 깊이 잠든 듯했다.

* * *

눈을 뜬 성건우는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전방에 펼쳐진 드넓은 홀을 바라보았다.

물자 공급 시장보다도 훨씬 더 큰 공간이었다.

홀의 사방에는 금속의 광택으로 번득이며 서늘한 느낌을 풍기는 검은색 벽이 세워져 있었으며, 위쪽은 칠흑같이 어두워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 어둠 속은 셀 수 없이 많은 광점으로 차 있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광점들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한 줄기 한 줄기의 몽환적인 빛을 형성하고 있었다.

성건우는 이러한 광경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놀랐다.

그는 그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당시, 교수가 화면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준 우주의 사진만 연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본 우주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별무리 사이에 자리한 것 같았다.

커다란 홀 중앙에 떨어진 별빛은 하나의 흐릿한 인영으로 응집되었다.

이 인영은 두 팔을 바깥으로 뻗은 채 마치 저울처럼 정확한 대칭을 유지했다.

동시에 무수한 별들에 계시를 주는 듯한 그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하나의 대가, 세 개의 은혜.

하나의 대가, 세 개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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