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화. 고수 (1)
끼익…….
연신경 무사 둘은 돌문을 천천히 밀어젖혔다. 그들은 손에 횃불을 든 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공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한 동료들을 데리고 돌문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먼저 횃불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약간 어두워지기만 한 걸 보고선 원래 상태를 회복하더니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무너진 탓에 지하 궁전에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가득 차서 질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뒤이어 그녀는 횃불의 빛이 비치는 전방을 보고선 멍해졌다.
전방에는 길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상상하던 길이 없었다.
균열이 생긴 지면에 크고 작은 돌이 널려 있고, 자잘한 돌이 쌓여 있었다. 묘실이 아니라 자갈이 널브러진 광석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도 무너졌습니까?”
한 강호 무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등유 단지를 가져오세요!”
공손수가 족인 손에서 등유 단지를 받아 횃불을 단지 입구에 문지른 뒤에 힘껏 내던졌다.
펑!
단지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안에 있던 등유가 사방으로 튀어 눈부신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묘실 전체가 갑자기 밝아졌고, 사람들은 이 기회에 주묘의 상황을 똑똑히 보았다. 이곳은 확실히 무너졌다. 이 장소는 묘실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석굴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해 보였다.
주묘 안에는 어지럽게 쌓인 돌과 겹겹이 우뚝 솟은 돌벽 외에 다른 게 없었다.
공손향명은 갑자기 눈동자가 수축된 채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게 뭐지?”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먼 곳에 가부좌를 튼 검은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하지만 이때, 연달아 발사된 빛이 잇따라 떨어지고 어두워졌다.
공손수는 즉시 반응이 왔다. 그녀는 방향감에 근거하여 손에 쥔 횃불을 내던졌다. 횃불은 즉시 먼 곳으로 날아가 땅에 떨어졌으며 거기서는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튀었다.
그건 마침 검은 형체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그의 코에는 콧구멍 두 개만 남아 있었고,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건 아주 요원한 시대의 시체였다. 시체는 관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폐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강시? 아니야. 강시가 어떻게 좌선을 이해할 수 있지……. 아니면 일반적이지 않은 강시거나…….’
공손수는 대담하게도 넘치는 재간을 뽐내며, 마침 사람들을 이끌고 다가가려던 참이었다.
예상 밖에 그 강시가 스스로 먼저 눈을 떴다. 강시는 약간 공허한 눈언저리에 거무스름한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강시가 생명이 영토로 난입하는 걸 보자 거무스름한 눈동자에 붉은빛이 스쳤다. 강시는 입을 벌리더니 힘껏 들이마셨다.
삽시간에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쳤다. 강시의 입이 마치 소용돌이로 변한 듯 주변의 모든 걸 안으로 빨아들였다.
공손수를 포함한 열여덟 명의 무사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몸을 잡아당겨 조금씩 강시에게 다가가게 함을 감지했다.
‘매, 매우 무서운 강시다. 이건 일반인이 저항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공손수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녀는 공포, 충격, 후회 등 여러 감정이 다 들었고 뒤이어 무언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열심히 굴려 옆을 쳐다보다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 있던 한 동료가 피와 살이 빠르게 쪼그라들고 피부에 주름이 지더니 뼈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동료는 십여 차례 호흡하더니 강시로 변했으며 온몸의 기혈을 거의 다 빼앗겼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많든 적든 기혈을 잃었다. 공손수처럼 수련 경지가 강한 자는 한동안 버틸 수 있었다.
수련 경지가 낮은 자는 서른 번 호흡하기 전에 기혈을 완전히 빼앗겼다.
정혈의 보충을 받은 강시는 범이 날개를 얻은 격이 되었으며 소용돌이는 좀 더 강대해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점점 더 두려워졌다. 공손향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눈동자에는 핏줄이 가득했으며 몸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애써 저항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기혈은 미친 듯이 유실되었다.
그는 강호를 여러 해 거닐면서 지금껏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기이한 강시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러한 무력감과 공포를 겪은 적도 없었다.
그는 조금씩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걸 지켜보았다.
청곡 도사는 무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오의 최후방에 있었고, 요행으로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액운을 피하기 어려웠으므로, 단숨에 열 살이나 나이가 들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처럼 보였다.
‘여, 여기에서 죽는 건가……?’
공손수는 마음속에 절망이 솟구쳤다. 이때, 그녀는 갑자기 낮에 만났던 청의 남자가 떠올랐고, 그가 자신에게 지하 궁전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맞, 맞다. 그가 말했어. 만약 무덤에서 사라질 수 없는 위험을 맞닥뜨린다면…….’
공손수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안 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쩌렁쩌렁 외쳤다.
“그 사람과의 약속을 잊은 건가!”
이 말은 마치 어떠한 힘을 머금은 듯했다.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사라지더니 기혈이 더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는 무사 9명에 늙은 도사 한 명은 일제히 두 무릎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산, 산 건가?!”
공손향명은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그는 마음속에 구사일생했다는 기쁨과 망연함 그리고 당혹스러움이 솟구쳤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이 요상한 강시가 왜 갑자기 사정을 봐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정, 정말 소용이 있다…….’
공손수는 아름다운 눈을 크게 떴고, 믿기 어렵다는 생각만 했다.
“나와 약속했던 자는 많지 않지. 당대에서는 그자뿐인데 너는 그와 무슨 관계냐……. 그는 어디 있는가! 그가 내게 전해주라고 한 물건이 있지 않은가? 그가 내게 전해주라고 한 물건이 있지 않은가! 계집애야, 어서 내게 대답해!!!”
강시가 고래고래 호통 쳤다.
사람을 위협하는 위암감이 섞인 묵직한 포효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공손수는 전전긍긍한 마음에 입술이 떨려 차마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지는 이상하리만큼 민첩했고,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잘못 추측한 게 아니라면 이 강시가 말한 ‘그’는 아마 그 청의 남자이거나 청의 남자와 인연이 있는 인물일 터였다. 예를 들면 선조나 스승 문하의 어르신처럼 말이다…….
‘당대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강시와 약속을 했다. 이 강시는 무슨 신분이고, 그 청의 남자는 또 어떠한 신분인가. 그 속에는 분명히 아주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강시의 태도를 보니 어떤 물건을 아주 중시하는 듯한데 그는 청의 남자가 물건을 내게 준 줄 아는 건가? 하, 하지만 나는 없는데……. 바로 그에게 실제 사정을 알려준다면 쓸모없는 헛소리로 취급받아서 죽게 될까? 극도로 분노한 상황이라도 ‘그’와 관련 있으니 우리 모두를 전부 죽이지는 않겠지…….’
공손수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어떻게 대처하여 이 화를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고민하였다.
공손향명과 다른 무사는 그 속의 우여곡절을 알지 못했다. 조카이자 수 소저의 한 마디는 모든 사람을 구하고, 무시무시한 강시에게 명백한 감정 기복이 생기도록 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이 단순한 한 마디에 도대체 어떠한 심오함이 내포되어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공손향명은 초췌한 모습으로 몇 초간 숨을 헐떡이더니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고개를 돌리고 청곡 도사와 호수를 유람했던 중년 무사 몇몇을 쳐다보았다.
‘이 말을 수가 했던 거 같은데, 호수에서 우연히 만난 그 신비로운 고수가 한 말이라고…….’
공손향명은 눈만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청곡 도사와 무사 몇몇의 모습을 보더니, 즉시 자신이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순간 공손수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비록 자신과 일행의 밑천이 바로 드러나면 강시가 실망할 테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말할 작정이었다.
강시가 거짓말을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는 한, 솔직함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아직 돌이킬 여지가 있었다.
또한 그녀는 청의 남자가 이 말만 하고 다른 설명은 하지 않은 이상, 이 말이 틀림없이 강시에게 특별한 구속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마음속 깊이 믿고 있었다.
“어, 어르신…….”
공손수는 그다지 똑부러지지 않게 더듬거렸다.
“이 말은 제가 오늘 호수를 유람하다가 우연히 만난 한 고수가 한 말입니다. 제가 이 무덤을 탐색하려 한다는 걸 알고서는 만약 무덤에서 피할 수 없는 위기를 맞닥뜨리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경위를 간단히 말한 뒤에 조심스럽게 강시를 쳐다보며 그것의 반응을 관찰하였다.
강시는 그녀의 말을 다 듣더니 초췌한 얼굴에 인간적이면서도 실망한 표정을 드러냈다.
“하긴, 그가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설령 내게 돌려준다고 해도…… 이렇게 빠를 리는 없지. 내가 욕심을 부렸다.”
그는 멈칫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가 나한테 이 말을 전하라고 한 건 정혈을 약탈하여 봉인을 풀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날 그가 나를 이곳에 봉인하고 나와 약속했지. 이곳에서 고독과 쓸쓸함을 감내하며 영원히 기다리고 있든가. 아니면 죽든가! 허, 나는 구차하게 연명하는 걸 택했다.”
‘이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강시가 봉인됐다고? 그리고 그걸 봉인한 사람이 호수에서 우연히 만난 청의 남자라고? 선조도 아니고 사문(師門) 손윗사람도 아닌 그 청의 남자라니……. 그리고 이 모든 게 1년도 안 된 일이라고? 잠깐…….’
공손수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았다.
옹주성에서는 근래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덤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붕괴가 일어났다. 방금 강시가 한 말을 결부하니 공손수는 짐작이 갔다.
지난 1년 사이에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어느 시간대에 그 청의 남자가 지하 궁전에 왔다. 그리고 강시와 땅을 뒤흔드는 전투를 벌여 지하 궁전이 무너졌다.
‘세상에나…….’
공손수는 탄식하듯 숨을 내뱉었고, 가슴 속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도대체 어떤 신성(神聖)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건가…….’
점심에 2층 배에 있던 무사는 놀랍고 두려운 마음에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드디어 정오의 그 젊은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인물인지 깨달았다.
‘어쩐지, 어쩐지 그가 기후 현상을 예측할 수 있더라니. 이건 그저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수법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청곡 도사는 문득 깨달음과 동시에 경악하였다. 그는 그 청의 남자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신적인 인물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역시 상대를 과소평가했다.
“너희들은 운이 좋구나. 죽이지 않겠다.”
강시, 즉 미라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자네 그래도 왔구먼.”
미라는 성대가 썩은 듯, 목소리가 쉬어 듣기 좋지 않았다. 하필 미라는 괴상하게 킥킥 웃는 걸 좋아하여 그 목소리를 들으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왔다니? 누가 온 거지…….’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하여 잇따라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윽고 적색 빛이 뛰어오르더니 흐릿한 사람 형체를 비추었다. 그 사람 형체는 온몸이 흙투성이에 손에는 칼을 한 자루 들고 있었다.
“옹주를 지나치는 김에 너를 보러 왔다.”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 형체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공손수는 그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놀랍고도 기쁜 마음에 말했다.
“대, 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