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화. 비가 오다
다른 한편, 전 과정을 목격한 공손수의 눈에 기이한 빛이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여러분, 그가 방금 어떻게 손을 썼는지 누가 알아봤나요?”
저속한 무사 몇몇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방금 그 광경을 주시하지 않았다. 모두가 박학다식하다고 해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염소 수염을 기르는 늙은 도사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아가씨께서 묘사하시는 걸 들으니 그건 아마 고족 암고부의 수법인 듯합니다. 빈도가 왕년에 남강을 돌아다닐 때 그들의 수법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림자에서 솟구쳐 나오는 데에 능하여 신출귀몰하니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지요. 연신경 무사만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
공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족의 수법이 밖으로 전해질 수 있나요?”
“당연히 안 되지요.”
“그자는 남강 사람이 아닙니다.”
공손수가 말했다.
청곡 도사가 어리둥절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혹시 제 추측이 틀렸습니까?”
공손수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뜻하지 않게 고단자를 만났으니 소녀가 가서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편히 계시지요.”
그녀는 젓가락 두 개를 쥐고 손을 털어 내던졌다.
젓가락 두 개가 호수에 박혔다가 다시 천천히 떠올랐다. 공손수는 2층 선실에서 뛰어나갔다. 그녀는 무게가 나가지 않는 깃털처럼 아주 가뿐하게 호수 위를 나는 듯이 스쳐 지나쳤다. 그녀가 발끝을 두 젓가락에 가볍게 대니 젓가락이 살짝 가라앉으면서 잔잔한 물결만 일었다.
그리고 그녀는 힘을 빌려 수십 장을 스쳐 ‘왕기어방’의 갑판 위에 가볍게 착지하였다.
먼 곳, 가까운 곳, 무릇 이 광경을 본 여행객은 잇따라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허칠안 역시 이 광경을 주목했으나 그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이 여인이 그를 찾아왔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굳이 틈을 내어 평가하였다.
“훌륭하군, 훌륭해. 5품 화경 중에서도 대단한 편이야. 솜씨가 아주 뛰어나.”
한편 왕비는 이렇게 날아다니는 능력이 아주 부러웠다.
만일 그녀에게 이런 수단이 있다면 말을 타지 않을 것이고, 엉덩이도 시큰시큰 아플 리가 없었다.
공손수는 선실로 들어가 선내의 식객들을 훑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재빨리 허칠안이 있는 탁자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와 대범하게 읍하며 말했다.
“소녀 공손수, 귀하의 존함을 여쭙습니다.”
허칠안은 그녀를 살피면서 대답하였다.
“서겸(徐謙)이오.”
그는 허(許)를 서(徐)로 바꾸고, 칠안(七安)을 ‘겸(謙)’으로 바꾸었다.
공손수가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도 귀하를 알게 되어 소녀는 매우 기쁩니다.”
‘너무 이른데…….’
허칠안은 괜히 불쾌해하며 빈정댄 뒤 자신의 욱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말했다.
“공손 소저께서는 무슨 볼 일이오?”
공손수가 기세를 몰아 말했다.
“개의치 않으신다면, 서 형께서 공손가의 2층 배에 방문하시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녀는 ‘공손’ 깃발이 걸린 큰 배를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마침 공손 가문의 탐색이 미라의 봉인 해제를 도울까 걱정하고 있던 찰나였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는 돌아서서 왕비에게 말했다.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모남치는 보잘것없는 자태의 공손수를 흘겨보더니 시선을 거두고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공손수가 대봉 제일 미인에 의해 ‘보잘것없는 자태’라는 꼬리표를 단 채 생긋 웃더니 더없이 아름답게 말했다.
“가시지요!”
* * *
두 사람은 선실을 나왔고, 공손수가 말했다.
“제가 지금 바로 작은 배를 보내오라고 할게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평범한 외모의 청의 젊은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대는 알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되오.”
공손수 역시 군말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한번 잽싼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발끝을 젓가락 두 개에 대고 거위 깃털처럼 아주 가뿐하게 수십 장을 스쳐 2층 배의 간판 위에 순조롭게 돌아왔다.
그녀는 착지하자마자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한 검은 형체가 뚫고 나오더니 청의를 입은 젊은이로 변하는 걸 보았다.
‘정말 고족 사람인가?’
공손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서 형 수법이 좋군요.”
허칠안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공손수의 안내를 받아 선실로 들어가 2층 조망청에 이르렀다.
응접실은 크지 않았고, 장식은 고풍스러웠다. 원형 탁자에는 혈기왕성한 사내 다섯이 앉아 있었고, 낡은 장포를 입은 늙은 도사가 한 명 있었다.
6인은 곁눈질하거나 고개를 돌려 그를 살폈다.
공손수가 웃으며 모두에게 허칠안을 소개하였다.
“서 형은 어느 지역 인사요?”
연기경의 사나이가 물었다.
“경성 사람이오.”
허칠안이 말했다.
본래는 그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던 무사들이 눈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허 은라를 만난 적이 있소?”
허칠안은 자리에 앉아 대답했다.
“몇 번 본 적 있소.”
공손수는 이 말을 듣더니 매우 흥미를 느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허 은라는 아주 기품이 넘치고 세상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남자라던데요.”
그녀는 허 은라의 사적과 전설은 이미 너무 많이 들었다. 공손수는 명색이 아직 출가하지 않은 여인으로서 그 전기적인 인물의 외모에 더 호기심이 생기고 더 관심이 갔다.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더니 감개가 깊어 탄식했다.
“그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외모가 가장 뛰어난 남자였소. 매번 그를 볼 때마다 하늘의 불공평함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소.”
‘외모가 가장 뛰어나다라…….’
공손수는 속눈썹을 떨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기이한 사내군요.”
‘빌어먹을, 허풍 떠는 이 못된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다니. 지서 파편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잊으면 안 돼…….’
허칠안은 속으로 자기반성을 했다.
뒤이어 허 은라를 둘러싼 추켜세우기가 이어졌다. 모든 무사가 명성이 높은 허 은라를 지극히 동경하고 우러러보았으며, 그가 없으면 대봉도 없다고 직언했다.
그가 황제를 시해한 행위는 이미 경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옹주까지 전해졌다.
공손수는 여운이 남았지만, 곧 대화를 마치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서 형, 옹주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요즘 떠들썩한 묘지 일에 대해 들으신 적이 있나요? 공손가에서는 함께 무덤에 내려가 탐색할 능력 있는 뛰어난 인사를 소집하고 있습니다. 소녀가 서 형의 출중한 솜씨를 보니 함께 묘지를 탐색하는 일에 서 형을 모시고 싶습니다.”
탁자에 가득한 무사들은 여기에 이견이 없었으므로 침묵을 지켰다. 묘지는 아주 위험하여 부담을 분담할 사람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실력이 강하다면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 실력이 좋지 않으면 무덤 안에서 죽어도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침음하며 물었다.
“여러분은 지하 묘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소?”
공손수가 생동감 있게 얘기하였다.
“맨 처음에 그 무덤을 발견한 건 산속의 사냥꾼이었습니다. 그가 얼결에 무너진 동굴에 뛰어들어 산허리 안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런 뒤 옹주성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실 공손가가 남산을 봉쇄하기 전에 이미 적잖은 강호 인사들이 무덤에 내려가 탐색하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지요. 공손가는 이 소식을 들은 뒤 무덤에 내려갈 인원을 꾸렸는데 마찬가지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가능성이 희박한 듯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무덤이 청강석(靑岡石)을 쌓아 만든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규모가 매우 크고 안에는 틀림없이 귀중한 보물이 있다는 걸 발견하였지요.”
‘그 안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이미 가져가서 천년 묵은 미라밖에 남지 않았거든…….’
허칠안이 말했다.
“이 무덤은 매우 불길하오. 무사는 감여, 풍수, 진법을 알지 못하니 경솔하게 안으로 들어가봤자 십중팔구 좋지 않을 것이고, 소저는 심사숙고하시오.”
공손수는 웃더니 말을 하지 않고, 청곡 도사를 쳐다보았다.
늙은 도사가 수염을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빈도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 무덤은 까마득한 옛날에 지어진 것으로, 매우 끔찍한 붕괴가 일어났소. 안에는 진법이 있었는데 파괴되어 뒤죽박죽이 되었지. 어쩌면 아직 위험이 좀 남아 있을 수도 있소. 앞서 몇 무더기의 사람들은 아마 그 얼마 되지 않은 위험에 죽었을 것이오. 그러므로 이번에 공손 세가가 앞장서서 우리가 함께 무덤에 내려가게끔 구성하였고, 모두가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도 있소.”
허칠안은 아름다운 자태의 공손 소저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언제 무덤에 내려가 탐색할 작정이오?”
공손수가 말했다.
“오늘 밤입니다.”
‘오늘 밤이라, 딱 좋다. 이들이 먼저 길을 살피고 미라의 상황을 탐색하게 해야지. 그것이 실력을 몇 퍼센트 회복했는지 봐야겠어…….’
허칠안은 자신의 몇 마디만으로는 무덤에 관한 강호 인사들의 동경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술잔을 비비며 일부러 망설이는 척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소생이 학문이 얕고 식견이 부족한 터라 이 판에는 끼지 않겠소. 소저의 환대에 감사하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에게 한 마디 더 권하고 싶소. 이 무덤은 위험하니 만약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맞닥뜨리면 반드시 큰 소리로 ‘너는 그 사람과의 약속을 잊은 것이냐!’라고 말하십시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공손수를 다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소저가 나를 데려다주시오.”
공손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작은 배를 준비하여, 왕기어방으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게끔 안배하였다.
허칠안은 일어나서 자리를 떠나 계단 입구까지 걸어간 뒤 돌아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비가 내릴 것이오. 가을비가 계속해서 내릴 것이니 오늘 밤에 무덤을 탐색할 때 꼭 우비를 챙기십시오. 여러분, 이만 가보겠소.”
그는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쿵쿵쿵 발소리 사이로 연기경 무사가 입을 삐죽이더니 비웃었다.
“소저께서 이번에는 잘못 보셨습니다. 겁쟁이 자식을 청하다니요.”
“겁쟁이인 주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있어 보이게 꾸며대다니. 무슨 약속이고, 무슨 비란 말입니까. 전부 체면을 만회하려는 핑계지요.”
무사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으며 야유와 조소가 섞인 평가를 했다.
무서우면 무서운 거지. 하필이면 이 자는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체면을 위해 아무것도 아닌 걸 있어 보이게 꾸며대는 말로 사람들을 농락하였다.
공손수는 고개를 젓더니 잔을 들었다.
“술 마시지요.”
그녀 역시 실망뿐이었다. 방금 그자의 말투나 태도, 기질은 평범한 강호 인사들과 달랐다.
모두가 이 일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툭툭’하는 소리가 빽빽하게 전해졌다. 공손수를 포함한 무사들은 경악하여 호수를 쳐다보았다.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조밀하게 일었다. 폭우가 솨아아 내리고 가을 공기는 쌀쌀했다.
‘이건…….’
공손수는 눈을 크게 떴다.
조망청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