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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703화 (703/712)

703화. 잠룡성(潛龍城) (2)

산꼭대기에 높이 있는 관성각에서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희현은 새로운 남색 장포로 갈아입고 산속에 깔린 돌계단을 따라간 끝에 마침내 정원에 이르렀다.

“현 소주!”

정원 밖에서 수비병이 허리를 굽히고 읍하였다.

희현은 빙그레 웃으며 시위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여유롭게 몇 마디 수다를 떨더니 그제야 작은 정원에 들어갔다.

희현은 정원을 지나 각루를 지나 작은 정원 밖에 멈춰 섰다. 문 입구에는 검은 옷차림의 시위가 두 명 서 있었다.

이는 그의 부친이자 잠룡성 성주의 흑영위(黑影衛)였다.

흑영위는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모든 흑영위의 수련 경지는 적어도 5품이었다.

두 흑영위가 공수했지만 알은체하지는 않았다.

그들 앞에서 희현은 웃음을 거두고 예의 바르게 읍하더니 계속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익숙한 길을 걸어 한 각루 앞에 이르러 공손하게 말했다.

“아버지, 국사.”

각루의 문이 저절로 활짝 열리더니 안에서 중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희현은 문턱을 넘어 대당으로 들어갔다.

촛불이 환하게 빛났다. 휘장이 낮게 드리운 대당 바닥에 값비싼 편직 돗자리가 깔린 게 보였다. 탁자 위에는 은은하게 단향을 내뱉는 네 다리 금수(金獸)가 놓여 있었다.

중년 남자는 자색 장포 차림으로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위엄 있는 눈빛으로 희현을 살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일곱째 아들이었다.

“아버지!”

희현은 곁눈질하는 대신, 허리를 굽혀 공수하더니 소리쳤다.

그런 뒤 그는 낮게 드리워진 장막을 쳐다보았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그 백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웃었다.

“국사!”

자색 장포의 중년이 천천히 말했다.

“용맥의 령이 이미 파괴되었고, 대봉의 근간이 또 일부 깎였네. 중원에 반드시 큰 혼란이 빚어지리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겠어.”

희현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버지, 국사, 대업을 이루시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백의는 책상다리를 한 채 묵묵히 있었다.

자색 장포의 중년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애석해했다.

“용맥이 파괴되었지만, 기운은 아직 뽑아내지 못했네.”

‘이건…….’

희현은 의외라는 기색을 보였고, 온화하고 친근한 얼굴에 다소 진지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국사께서 직접 나서도 안 됩니까?”

장막 뒤의 백의는 ‘헤’하고 소리냈다.

“안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경성에서 죽을 뻔했네. 내가 지금껏 감정을 얕잡아본 적은 없지만, 그를 얕보았거든.”

희겸은 이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국사조차 경성에서 죽을 뻔했다니, 그는 당시 전투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국사가 말한 그가, 경성에 있는 용기이자 자신의 사촌 동생인 허칠안을 가리키는 건가?

허칠안이 또 뭘 한 걸까? 국사의 말뜻을 들으니 그 때문에 골탕을 먹은 것 같은데!

그는 태어나자마자 용기로 쓰인 그 사촌 동생에게 줄곧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 혈통 사람은 그를 줄곧 남몰래 지켜보았다.

적자 희겸은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를 줄곧 지켜보던 중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는 외출하여 돌아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실질적으로는 도발하고 말썽을 일으켰다가, 결과적으로는 검주에서 허칠안에게 죽임을 당했더랬다.

허칠안이 타고난 천재라는 점은 모두가 다 알았다. 하지만 그가 국사의 계략을 깨트리고 국사를 좌절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실로 믿기 어려웠다.

휘장 뒤의 백의가 탄식했다.

“그는 이미 3품이었고, 진작에 내 신분을 알아차리고는 암암리에 안배했더군. 그와 감정이 손을 잡으면 세상에 그 두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네.”

‘3품이라…….’

희현은 자신의 천부적인 자질이 적자 희겸보다 더 뛰어나다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뜬 채 쯧쯧거렸다.

“내 이 사촌 동생이 구주 당대 제일인일까 두렵군요. 훌륭한 아버지 밑에 못난 자식은 없는 법이니까요.”

20대 초반의 3품 무사는 구주 전체에서 동년배 중에 극히 드물었다.

자색 장포의 중년이 말했다.

“수련 경지가 봉마정에 봉인되어 그의 무도의 길이 이미 끊겼네.”

희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막 안의 백의를 쳐다보았다.

허평봉이 말했다.

“불문에서 봉마정을 풀어주길 원하네. 도액 나한뿐이지만, 이는 그가 불문에 들어가서 불신을 빚어 출가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네. 불문 외에 봉마정을 풀 수 있는 건 신수뿐이야. 그는 아마 신수의 잔존한 몸을 찾을 것이네. 이는 필연적으로 불문과 충돌을 일으킬 테지.”

희현이 평가했다.

“애석하군요.”

자색 장포의 중년이 그를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현아, 이번에 너를 오라고 부른 건 너를 시험하기 위함이다.”

희현은 허리를 굽혔다.

“아버지, 말씀해주십시오.”

자색 장포의 중년이 천천히 말했다.

“용맥의 령이 뿔뿔이 흩어져 중원 각지에 흩날렸다. 나머지 자질구레한 용기는 관여하러 갈 필요가 없지만, 용기 아홉 가닥은 매우 중요하단다. 네가 강호에 가서 용기 아홉 가닥이 기숙한 사람을 찾아 그들을 굴복시키거라. 9인 중에 넷을 죽이고 다섯을 남겨라. 5인은 잠룡성으로 데리고 돌아와 우리 측 기운을 강화할 것이다. 4인은 대진(大陳)으로 연화하고 혈단으로 보조하여 네가 3품에 발을 들이도록 도울 것이다.”

자색 장포의 중년은 말을 하는 사이, 소매에서 자색 단향목 상자를 하나 꺼냈다.

희현의 시선이 그 상자로 향했다. 그는 이제 시선을 돌리기 어려웠다.

자색 장포의 중년이 상자를 열어 보니, 노란 비단 위에 흐릿한 빛깔의 새빨간 단환(丹丸)이 있었다. 단환은 달걀 크기만 했다.

“500년 전, 우리의 선조가 무종 황제에 의해 중상을 입고 죽음에 직면하였었다. 그건 4품에서 3품으로 승직하는 지름길이지만, 대기운이 있는 자만이 비로소 혈단의 배반을 감내할 수 있지. 국사께서 용기 네 가닥이면 네가 혈단을 연화하여 3품으로 승직하는데 충분하다고 계산하셨다.”

비록 혈단은 진귀했지만, 명색이 저력을 충분히 갖춘 정상급 세력이라면 이를 얻기는 어렵지 않았다. 3품 무사가 남긴 것 외에 백성을 연화해도 혈단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4품이 혈단을 삼키는 지름길을 걷고자 하면 거의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3품으로 혈단의 배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기혈을 강화할 수 있다거나, 특별한 대기운을 지닌 자여서 기운이 몸에 더해져야만 반작용을 견딜 희망이 있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진북왕이었으며,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허칠안이었다.

물론 허칠안은 대기운을 지닌 데다 육신은 신수 정혈을 약간 개조하기까지 하여 이중으로 보험을 들었더랬다.

희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두 손을 약간 떨며 뻗고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식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는 이를 양손으로 받았다. 엄청난 선물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승이었다.

부친은 지금껏 후계자를 지정한 적은 없었지만, 적장자인 희겸이 모두가 공인하는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다. 형제들은 서서히 행동을 개시하며 암암리에 겨루려 했다.

그는 부친이 그에게 이 비단 상자를 주며 시험을 하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희현은 비단 상자를 받은 뒤, 갑자기 이상함을 감지하여 침음했다.

“용맥의 령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비록 자신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사께서는 왜 직접 나서지 않으십니까?”

휘장 뒤의 백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기운의 배반을 당해 몸에 중상을 입어서 홀로 정진하며 수양이 필요하네.”

‘기운의 배반이라니, 허칠안 몸에서 기운을 뽑아내지 않았다고 한 거 아니야……?’

희현은 더 묻지 않았다.

“희현, 이해했습니다.”

자색 장포 중년이 말했다.

“내가 객경당(客卿堂)의 고수 몇몇을 파견해 너와 함께 용맥의 령을 찾게끔 할 것이니 3일 뒤에 출발하거라.”

“네!”

희현이 말했다.

자색 장포는 손을 흔들었다. 그는 희현이 내려간 뒤에 백의 술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희현은 다른 서자, 적자에 비해 재능이든 천부적인 자질이든 전부 뛰어나네. 더욱 보기 드문 건 그가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릴 줄 안다는 거야. 그가 속으로 무얼 생각하고 있든지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으니 미래가 기대되는군.”

백의 술사가 말했다.

“그 역시 자네 아들들 중에 명망이 가장 높잖나.”

자색 장포의 중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자네 진작에 그를 선택하였는가?”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술사는 용맥의 령을 뽑아낼 수 없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네만.”

백의 술사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 * *

희현은 단향목 상자를 품속에 밀어 넣고 각루를 나섰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개탄하였다.

“이 물건 정말 처리하기 어렵구먼.”

그는 잠시 걷다가 정면에서 자색 치마의 소녀를 마주쳤다. 그녀는 풍성한 검은 머리칼을 자색 비단 끈으로 묶어 정갈하면서도 고상했다.

“일곱째 오라버니!”

자색 치마의 소녀가 어색하게 웃더니 말했다.

“어머니가 오래요. 오라버니에게 물어볼 말이 있대요.”

“고모가 나를 찾으신다고?”

희현은 잠시 침음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알겠어. 수고롭겠지만 네가 길을 안내해주렴.”

* * *

두 사람은 정원을 돌아 작은 정원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자색 치마의 소녀 허원상(許元霜)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의 일을 묻고 싶대요!”

희겸은 웃었다.

“예상대로 요 몇 년 사이에 족인들이 고모에게 너무 모질게 얘기하더구나. 전부 듣기 좋지 않은 말들뿐이야. 하지만 나는 그해 고모의 행동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식을 아끼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니.”

허원상은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일곱째 오라버니는 제 부친이 금수만도 못하다고 은근히 지적하는 건가요?”

희현은 미소를 유지했다.

“국사께서는 그저 취사 선택을 했을 뿐이다. 원상 동생은 그 사람에게 무슨 태도를 갖고 있는 거니.”

허원상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건 제가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저한테 그는 어쨌거나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난 오라버니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대한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가 존재하지 않는 셈 치는 거죠.”

희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원괴(元槐)가 하는 말을 들으니 네가 그의 소식을 자발적으로 알아본다고 하던데.”

“…….”

허원상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이 빨개졌다.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잠시 말없이 걸었다.

* * *

휙휙, 휙휙!

마치 바람 소리의 기척이 전해지는 듯 휙휙 소리가 났다. 그들은 정원을 돌았을 때에야 한 소년이 창을 연습하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손에 9척 길이의 작은 창을 쥐고 늠름하게 사용했다.

그 창의 창대는 칠흑같이 까맸다. 창끝에는 금빛 찬란한 뱀 머리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창끝을 토해냈다.

그는 무정한 얼굴로 창을 휘두르며 휙휙 소리를 냈다. 뜰 안에 가벼운 바람이 불어 먼지가 일었다.

“원괴.”

창을 연습하던 소년이 갑자기 기세를 멈추고 곁눈질로 보더니 무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드러냈다.

“누이, 칠 형님.”

“원괴의 창법이 또 진보하였구나. 창의를 깨달았니?”

희현이 웃으며 말했다.

“좀 부족해요.”

허원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반 년 안에 4품으로 들어설 수 있어요.”

그의 표정은 무정하고, 어조 역시 냉담했다. 마치 4품으로 승직하는 것이 보잘것없는 일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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