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97화 (697/712)

697화. 남몰래 달콤한 사랑 (1)

감정이 말했다.

“칠절고를 수용하면 자네는 단기간 내에 보통 사람을 초월하는 전투력을 지닐 수 있네. 이렇게 해야만 자네가 비로소 강호를 떠돌며 용맥을 수집하고 신수의 잔존한 몸을 찾아 봉마정을 뽑을 수 있지. 또한 천고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 있네. 이는 세상에 극히 드문 것으로 망기술을 누르는 수법이지. 그건 자네가 강호를 떠도는 동안 허평봉에게 추적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네. 자네에게 유일한 위협은 행자법상을 지닌 유리보살이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내가 서역으로 내쫓아버렸지. 물론, 자네 역시 이 선물을 거절할 수 있네. 자네에게 강요할 자는 없으니까.”

‘내가 거절할 수 있다니? 그게 지금 나의 유일한 희망인데. 공공연한 모의 앞에서 모든 음모는 하찮은 일이지……. 감정이 서역의 여자 보살과 약조한 게 내가 강호를 떠돌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건가? 아, 이 약삭빠른 인간이 내게 안정감을 가득 채워주었군…….’

허칠안은 잇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 사람의 물건이 그 사람 대신 일을 처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감정은 그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피를 떨어트려 주인을 확인해보게.”

허칠안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니 제게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 * *

이른 아침, 운록서원.

허칠안은 허씨 집안이 머무는 소원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지팡이를 짚고 집 안에 서서 숙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숙부, 저희 검주에 갈 필요가 없게 됐어요. 시간이 좀 지나면 저택으로 돌아가세요.”

지금 황제가 죽었다. 경성에서 가장 큰 잠재적인 화가 이미 배제되었다. 태자를 포함한 다른 인물은 그와 직접적으로 이익이 충돌하지 않았다. 심지어 태자는 지금 그에게 우승기를 선물해 감사를 표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게다가 아둔한 군주를 베었다는 명목이 있는데 누가 감히 허 은라를 건드리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숙부 가족은 아주 안전했고 검주로 피난 갈 필요가 없었다.

숙부는 ‘음’하고 소리 내더니 그를 쳐다보며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숙모를 바라보며 품속에서 은표 한 뭉치를 꺼내며 말했다.

“숙모, 요 몇 년간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고 성격이 충동적이었어요. 타박하지 마셔요. 은표는 제 일부 저축이니 잘 챙겨두세요. 온 가족이 먹고 입는 용도니 숙모께서 맡아서 관리해주세요. 지금부터 저 당분간은 경성을 떠날 겁니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숙모는 입을 오므렸고, 은표를 받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표는 내가 너 대신 남겨둘 테니 장차 아내를 맞이할 때 쓰거라.”

‘그럼 이걸로는 부족하지. 내 마누라가 얼마나 많은데…….’

허칠안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더니 돌아서서 허영월을 쳐다보곤 웃으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가 이번에 경성을 떠나면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란다. 짧게는 일 년 반, 길게는 3년 이상 걸리겠지. 생각건대 그때면 영월은 이미 시집갔겠구나. 네 축하주를 마시지 못해 애석해.”

허영월은 입술을 깨물었으며 아름다운 눈에는 눈물을 머금었다.

18살의 소녀는 마치 6월의 맑은 물 위에서 흔들리는 연꽃처럼 청아하면서도 맑고 깨끗했다.

허씨 규방에서 자란 연약한 꽃은 큰 오라버니가 곧 떠날 거라는 사실에 유달리 슬퍼했다.

뒤이어 허칠안은 손을 뻗어 콩알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큰 오라버니가 좀 안아보자. 지금껏 너를 제대로 안은 적이 없구나…….”

허영음은 큰 오라버니의 목을 감싸 안고 큰 소리로 선포했다.

“큰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 돌아올 때까지 제가 닭다리 잘 숨겨놓을게요.”

‘또 신발 속에 감추려고? 그럼 먹을 수 있나? 먹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거 아니야……?’

허칠안은 감동하여 어린 여동생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웃었다.

“신발 속에 며칠 동안 숨겨놓은 뒤에 사부님한테 먹으라고 주렴. 알겠니?”

허영음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응!”

허칠안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소원을 나서서 산 계단을 따라 홀로 산을 내려 갔다.

“큰 오라버니!”

뒤에서 허영월의 외침이 들려왔다. 첫째 여동생이 헐레벌떡 쫓아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저 영보관에 가서 수행하고 싶어요. 저, 저는 큰 오라버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허칠안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하산하였다.

* * *

방 안, 허칠안이 간 뒤 숙모는 손에 든 은표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리, 저 생각났어요. 칠안의 생모가 그를 낳은 뒤에 갔잖아요. 가기 전에 제게 반드시 그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언니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요. 상냥하고 단정하고 함께 지내기 편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녀가 그해 제 손을 쥐고 칠안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어요. 정말 간절하게 말이죠……. 저는 그녀가 그해 칠안을 포기하는 데 고충이 있었다는 걸 알아요.”

숙모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나리, 제가 그 아이를 이렇게 오랫동안 키웠어요. 그는 제 아들이에요. 지금 그 사람이 돌아와서 그 아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니 저, 저는 너무 괴로워요…….”

숙부는 가슴이 미어졌다.

* * *

허칠안은 영보관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문을 지키는 꼬마도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국사를 뵈러 왔다.”

그는 오기 전에 감정에게 국사와 지종 도사가 맞붙은 상황을 알아보았다.

감정은 양쪽이 모두 손해를 봤다고 말한 뒤 ‘허’하고 소리를 냈다.

“업화가 몸을 태웠다.”

꼬마도사는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도사께서 만약 허 공자님이 그녀를 찾아오면 안으로 들여도 된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영보관이 이미 나한테 거침없이 출입하는 권한을 개방했나? 그럼 낙옥형은?’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영보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으슥한 소원에 이르러 익숙한 길을 따라 정실 문을 밀어젖혔다. 부들방석 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아름다운 미모의 여도사가 보였다.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선량한 이모, 엄마 친구, 이웃집 누나 등 일련의 이미지를 보았다.

이는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낙옥형은 그녀의 ‘매혹’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스스로 가라앉힐 수 없는 듯했다.

2품 고수에게 이는 명백히 좋은 일이 아니었다. 업화가 몸을 태우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자네도 봤을 테지. 내 상태가 아주 엉망이네.”

낙옥형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벌렸고, 목소리에는 숙녀만이 지닌 아리따움이 배어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허칠안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오기 전에 목욕했습니다.”

그가 이번에 온 건 낙옥형의 상황을 살피는 것 외에도 사실 ‘값을 흥정’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낙옥형이 며칠 기한을 늦추어 그가 칠절고를 받아들인 뒤에 만약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약속을 실행하길 바랐다.

낙옥형의 상황이 이 정도까지 엉망일 줄 어찌 예측했겠는가.

낙옥형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 오해했네. 나는 그저 분신이니 3일 내에 사라질 걸세. 본체는 이미 홀로 정진 중이네.”

순간 허칠안은 자신이 기쁜 건지 실망한 건지 분간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몸 상태로 쌍수를 강행하면 어쩔 수 없이 ‘이모가 자발적으로 해주세요’라고 하는 꼴이 될 터였다.

그랬다가는 분명히 대적할 자가 없다는 인상에 부합하지 않을 테니, 낙옥형이 그를 깔볼 터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정말 너무 매력적이었다.

낙옥형의 분신이 계속해서 말했다.

“쌍수는 일정한 주기가 필요하네. 한 번에 적어도 7일이지. 지종 도사와 교전한 뒤 본체가 이미 업화를 억제하기 어려워졌고, 또 자네 상황이 도대체 어떠한지 모르니 스스로 구하기 위해서는 홀로 수행하며 업화를 강제로 없애는 수밖에 없네.”

‘한 번에 적어도 7일이라니, 한 번에 적어도 7일이라니…….’

허칠안은 머릿속에는 온통 이 말뿐이었다.

그는 좀 놀랐다.

낙옥형이 말을 이어갔다.

“이번 이후에 본체는 아마 자발적으로 업화를 억누르기 어려울 걸세. 따라서 쌍수는 피할 수 없는 추세지. 업화가 매달 한 번 발작하니 다음 달 오늘 그녀가 자네를 찾아갈 걸세.”

그녀가 말을 하면서 소매를 휘두르자 탁자 위에 삼각형으로 접은 노란 종이 부적이 생겼다.

“이건 위치 측정 부적이니 잘 챙기게. 한 달 뒤에 본체가 알아서 자네를 찾으러 갈 걸세.”

분신은 말을 마치고 저절로 사라졌다.

‘부끄러운 건가?’

허칠안은 삼각형 부적을 집어들고 말없이 거두었다.

보아하니 군주를 시해한 뒤 낙옥형은 완전히 그를 인정하여, 그와 도려를 맺기로 결정한 듯했다.

전에 줄곧 자신과 쌍수할 지 말지 망설였던 건 아직 그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도려는 평생의 일로 낙옥형이 그를 신중하게 대하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그가 산해관에 가기 전에 수련 경지는 고작 5품이었다. 2품 고수에게 확실히 좀 부족했다.

지금 허칠안은 3품이었다. 그는 대봉에서 손에 꼽히는 3품 무사로 낙옥형의 신분과 지위에 아주 걸맞았다.

‘하긴, 한 달 뒤라면 나도 준비됐겠지…….’

허칠안은 영보관을 나서서 황궁을 향해 갔다.

* * *

소음궁 규방에는 숯을 피우는 데 쓰이는 수많은 지룡(地龍)이 깔려 있어 늦가을의 실내가 봄처럼 따스하였다. 공기 중에는 단향과 연지, 물분 냄새 그리고 여인의 은은한 체취가 가득했다.

어느 순간 비단 침상 위에서 움츠리고 자던 여인이 갑자기 놀라서 깨더니, 몸을 돌리고 앉았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했다.

“홍, 홍수(紅袖)…….”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침상 옆에 엎드렸던 궁녀가 바로 일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임안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물, 물 마실래…….”

궁녀는 즉시 탁자 옆으로 걸어가 젖혀져 있거나 바르게 놓여 있는 술주전자들을 가볍게 치우더니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한 컵 따라주었다.

임안 마마는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고주망태가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술주정 부리지 않고 탁자에 엎드려서 슬피 울었다.

궁녀들은 잘 알았다. 공주는 술을 빌려 근심을 털어버리려는 했다.

어제 밤에 태자 전하가 사람을 보내 임안 마마에게 무신교가 폐하의 심복 우도어사 원웅 및 병부 시랑 진원도와 결탁하였다고 알렸다.

그들이 주술로 폐하를 다스리면서 대군의 군량미를 끊고 팔만 장병과 위연을 정산성에서 죽였다고 말이다.

허 은라는 화가 난 나머지 경성 밖에서 폐하의 목을 베었다.

마마는 이 말을 다 듣더니 완전히 멍해졌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동궁에 가서 태자를 찾아가 대질하는 듯했다.

임안은 아주 늦게야 돌아왔고 뒤이어 끝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 과음하더니 대성통곡하였고, 다 울고 나서는 계속해서 마셨다.

궁녀들은 이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들은 임안 마마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시중들면서 그녀가 이렇게 슬퍼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생각건대 그녀를 가장 총애했던 폐하가 붕어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그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홍수는 마마가 허 은라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마께서 아직 약혼하시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사랑의 상처를 입다니! 아마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슬퍼할 것이었다.

그녀들은 임안을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비는 노비일 뿐인데 어디 감히 주인의 일에 참견하겠는가.

“마마, 차 왔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홍수는 조심스럽게 차를 건넸다.

임안은 차를 혼이 나간 듯 마셨다. 지난날 생기 있던 눈동자는 탁하고 빛이 없으며 암담했다.

그녀가 막 차를 다 마시자 궁녀가 규방 밖에 이르러 방문을 두 차례 살짝 두드리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마, 허 은라가 왔습니다…….”

홍수는 즉시 임안을 쳐다보았다. 마마의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였으나 1초 뒤 천천히 꺼졌다.

임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그를 보지 않겠다!”

“네, 노비가 지금 바로 답하겠습니다.”

“잠깐…….”

그녀는 또 갑자기 궁녀를 불러세워 몇 초간 침묵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게 해.”

방문 밖의 궁녀는 즉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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