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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96화 (696/712)

696화. 칠절고

감정은 말을 하면서 뜸을 들였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도 여유를 부리지도 않고 잔 속의 술을 다 마시더니 그제야 천천히 말했다.

“자네는 용맥의 령이 어떤 물건인지 아는가?”

허칠안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칠판을 두드리면서 ‘너희 미적분이 뭔지 아니!’라고 했던 말을 들은 듯했다.

‘알겠냐…….’

그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고, 뒤이어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기운과 지맥의 결합이요?”

종리 사저가 말한 적 있는 이는 용맥의 개념이었다.

감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용맥은 기운과 지맥의 결합으로 그건 기운과 다르네. 술사는 그걸 장악하는 데 극히 제한적이지. 이 역시 정덕이 용맥에 숨은 이유야. 세상에서 용맥을 장악할 수 있는 건 지서라는 지보뿐일세.”

‘그해 지종 도사가 지서를 기반으로 용맥 밑에 전송 법진을 세웠지…….’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고 동시에 그는 감정 말속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차렸다.

술사가 용맥을 장악하는 데 극히 제한적이라는 건 완전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감정은 계속해서 말했다.

“용맥의 령이 뿔뿔이 흩어져 중원 각지에 분산되었는데 이는 중원에 주인이 없다는 걸 상징하네. 오늘날 대봉은 공중의 누각처럼 용맥이라는 근간을 잃었네. 황조는 머지않은 미래에 흔들거리며 무너질 게야.”

‘이 표현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린 뒤 감정의 설명을 들었다.

“용기(龍氣)가 각지로 분산되었고, 용기를 얻은 자는 마음이 순수한 자로 한 세대 협객이 될 것이네. 심보가 삐딱한 자는 화를 초래하겠지. 예컨대 산림을 불러 모으거나 한 지역을 나누어 차지하는 것이지. 자고로 중원 황조의 운명이 다할 때 조정보다는 강호가 먼저 어지러워지는 법이거든.”

‘용기를 얻은 자는 보급형 버전인 나인 셈인가? 어쩌면 더 낮을지도…….’

허칠안은 감정의 말뜻을 아주 쉽게 이해하였다.

국운 절반의 기운을 지닌 자신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지금 이미 3품으로 명망이 최고조에 달한 허 은라가 되었다.

만약 용기를 얻은 자가 선량하다면 궐기한 후에도 좋은 일을 할 터였다. 만약 거칠고 고집이 세거나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기회를 틈타 궐기하여 분명히 나쁜 짓만 할 것이었다.

‘중원이 혼란스러워지겠군…….’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도 모르게 걱정하였다.

원경제는 21년간 도를 닦았고, 백성들의 생활은 본래 어려웠는데 지금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흥하든 망하든 백성들은 항상 괴롭다’라는 옛말이 들어맞았다.

감정은 갑자기 돌아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것이 자네의 인과네.”

허칠안은 문득 가슴이 철렁했다.

“자네가 정덕을 죽이고 용맥의 령을 격파함으로써 국운 절반이 자네 몸에 다 바쳐졌지. 대봉의 쇠약함은 자네의 인과와 너무 깊이 뒤엉켰네. 가령 언젠가 황조가 멸망하면 국운의 절반을 지탱하는 용기인 자네 역시 순국할 걸세. 물론 그때 가면 명색이 천명사인 내 결말도 자네보다 좋지는 않을 게야.”

감정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차분하게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보며 사건의 심각성과 진실성을 깨달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칠안이 미간을 문질렀다.

저채미는 그를 쳐다보더니 동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촉촉해진 큰 눈을 깜박이더니, 섬세하고 차디찬 손가락으로 그를 대신해 미간을 어루만져 ‘천(川)’자 주름을 펴주었다.

“뿔뿔이 흩어진 용맥의 령을 수집하여 다시 불러모은 뒤 경성으로 데리고 돌아가야 하네. 이 일은 반드시 자네가 가서 해야 해.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자네에게는 대봉 국운의 절반이 있지. 이는 용기와 합쳐지고자 하는 성질이 있어 서로 끌어당기지. 또한, 자네는 지서 파편을 지니고 있으니 자네가 목표 체내의 용기를 뽑아내는 걸 도울 수 있고 또 용기를 담을 수 있지. 이따가 내가 자네에게 지서 파편을 사용하여 용기를 뽑아내는 구결을 전수해줌세.”

“하지만 스승님, 그의 몸에 못이 박혔는데 그것들 먼저 뽑아내지 않고요?”

저채미는 허칠안의 가슴을 찔렀다. 그곳에 있던 못이 바로 심장을 뚫었다.

감정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건 불문의 지보 봉마정으로 억지로 제거하면 칠안 역시 살 수 없네. 특수한 비법이 필요해.”

허칠안은 이 말을 듣자 씁쓸하게 웃었다. 마음의 안녕이 순간 사라졌다.

사실 좀 생각해보면 합리적이었다. 이 물건은 신수와 맞서는 데 쓰였다. 그리고 신수의 지위를 고려했을 때 평범한 법기가 어떻게 그를 봉인할 수 있겠는가.

이는 분명히 아주 강한 법보일 것이다.

‘내 수련 경지가 아깝구먼…….’

허칠안은 탄식하였다.

“봉마정은 신수를 한동안 봉인할 수 있을 뿐이네. 짧게는 20년, 길게는 일 갑자면 신수는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렇지 않고선 그해 불문도 그를 대봉으로 보내 봉인하지 않았겠지.”

감정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으니 내가 자네에게 두 번째 일을 말하고자 하네.”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역시 감정이군. 후수가 많으니 사람이 안심되잖아’라고 말했다.

“내가 봉마정을 풀 수는 없지만 불문 사람은 가능하네.”

“불문 사람이 풀어줄 리가 없을 텐데요.”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감정의 시선이 그의 몸으로 향했다.

“신수가 바로 불문 사람 아닌가?”

허칠안은 마치 무언가를 파악한 듯 눈이 번뜩였으나 다시 또 불확실해졌다.

“말씀하시는 게…….”

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의 잔존하는 몸을 다 모아 그의 영혼을 전부 보강하면 그는 자연스레 봉마정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기억할 걸세. 이 역시 구미천호가 나서서 자네를 돕는 데에 대한 조건이네. 내가 사전에 자네를 대신해 승낙하였어. 자네 경성에 이렇게 오래 머물렀으니 나갈 때가 되었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였다.

“감정, 이건 저를 난처하게 하시는 겁니다. 지금 저는 수련 경지를 전부 잃었습니다. 경성을 나가는 건 사지로 들어가는 겁니다. 사람 구실 못하는 허평봉 개자식이 침을 흘리며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설령 제가 상대를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수련 경지가 없는데 신수의 잔존한 사지를 어떻게 수집하겠습니까?”

가장 암담한 점은 그에게는 다시 무도를 수련할 가능성조차 없다는 부분이었다.

수련 경지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신수의 잔해를 수집해야 하는데 잔해를 수집하려면 반드시 경지를 회복해야 하는 무한 루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종리가 걸어와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위로를 표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종 사저는 황급히 연약하게 변명하였다.

“약을 다 달였으니 약, 약을 마시게.”

“종리, 너는 그의 사저니 그를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다.”

감정이 웃으며 말했다.

종리는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에 가려진 눈동자가 약간 빛났다.

‘고모, 저 양과(*楊過: 중국 무협 소설의 주인공)예요…….’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렸다. 예전이었다면 그는 종리를 몇 마디 놀렸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용기를 수집하고, 신수의 잔해를 수집하는 건 전부 극도로 어려운 임무였다. 하필 그는 폐인인데 말이다.

이때 감정이 웃으며 말했다.

“기회와 인연은 늘 곁에 있네.”

감정이 말을 마치고 발을 들어 밟자 진문이 순식간에 밝아지면서 직경 3m의 진도(陣圖)가 퍼져나갔다.

진도에서 한 사람 형체가 부각되었다. 옅은 색의 유군을 입고 요즘 유행하는 소녀 머리에 밀색 피부인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입술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리나는 너무 아파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허칠안과 저채미는 리나의 처참한 모습을 보더니 동시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저채미가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감정은 제자를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함부로 무언가를 먹은 결과지.”

저채미는 굳은 얼굴로 작은 입을 약간 벌린 채 그곳에 멍하니 있었다.

감정은 만족스럽게 시선을 거두고 리나가 그의 앞에 둥둥 뜨도록 조종하였다. 그는 손가락 두 개로 리나의 배를 찔러 그곳에서 백옥 같은 벌레를 집어냈다. 다리가 여섯 개 있는 전갈 같은 형체였다.

그것은 감정의 손끝에서 몇 차례 거칠게 흔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이, 이런 것도 먹다니. 어쨌거나 머리를 떼어냈어야지…….’

저채미는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는, 복잡한 표정으로 리나를 바라보았다.

리나는 배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표정은 오히려 가뿐했다. 그녀는 해탈에 이른 듯했다.

“이게 뭐지?”

허칠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 이상한 벌레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벌레의 눈빛은 지혜가 충만해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감정은 옥색 벌레를 살폈다.

“일종의 최신 고충이네. 인위적으로 배양하는 것으로 이름은 이 낭자에게 물어봐야겠군.”

남강 고충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한 종류는 정상적인 집단에 속하여 불리는 이름이 있었다. 정상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고충으로 동물과 유사했다.

다른 한 종류는 인위적으로 배양하여 생긴 것으로 새로운 종이었다.

후자는 통상적으로 후대를 번식할 수 없어 무리를 이룰 가능성이 없었다.

감정 손에 있는 이 옥색 벌레는 후자였다.

“그건 칠절고라고 합니다. 제가 남강을 떠나기 전에 천고 할머니가 제게 주신 거예요. 천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칠절고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중원에 있다고 예견하셨대요.”

리나는 저채미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그녀가 나눠준 육포를 기분 좋게 먹으면서 말했다.

“할머니께서는 이 벌레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제가 그걸 배 속으로 삼킨 거고요. 평소에는 제 몸속에서 분수에 만족하며 기숙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갑자기 반란을 일으켰네요.”

‘말은 많이 했는데 칠절고가 뭔지 아직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았잖아…….’

허칠안은 비아냥거렸다.

감정은 손에 벌레를 쥔 채 웃으며 말했다.

“칠절고라. 벌레 같은 이름이군.”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리나를 대신해 설명했다.

“고족에는 7개 부락이 있는데 7대 유파에 따라 형성된 부락으로 각각 천고(天蠱), 역고(力蠱), 심고(心蠱), 정고(情蠱), 약고(藥蠱), 암고(暗蠱), 시고(尸蠱)가 있네. 모든 고파(蠱派)마다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네. 이 칠절고는 일곱 가지 유파를 융합한 것으로 고족의 힘을 한 몸에 모은 것이지.”

리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천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이건 그녀의 남편이 반평생을 들여 정련한 것으로 아직도 완벽하게 정련해내지는 못했다고 해요. 할머니께서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마침내 완성한 것으로 아주 대단한 고입니다.”

‘7대 고파를 모아 한 몸에 융합했다고? 아주 좋은데…….’

허칠안은 전갈 같은 옥색 칠절고를 주시했다.

“겉모습과 내재된 모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감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완전히 되살아나지 않았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이 여자아이는 이미 죽었을 게야.”

리나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이건 이제 자네 것이네.”

감정이 칠절고를 허칠안 앞에 내던졌다.

“저한테 주신다고요?”

허칠안은 경악하였다.

“당연히 자네에게 주는 것이지.”

감정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천고 노인과 제자가 손을 잡고 기운을 빼앗은 건 고신을 봉인하기 위함이었네.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제자가 만약 기운을 얻게 됐을 때 고신을 봉인하는 인과를 견뎌야 하네. 그럼 만약 그가 기운을 얻지 못했다면? 천고 노인이 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네. 따라서 그는 칠절고를 정련한 것이야. 만약 제자가 그 기운을 얻지 못한다면 이 인과는 칠절고를 통해 자네의 몸으로 전가될 것이야. 자네가 바로 천고 할머니가 말한 인연이 깊은 자네.”

허칠안은 침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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