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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95화 (695/712)

695화. 사후(事後) (2)

숙부는 지친 얼굴로 운록서원의 소원으로 돌아왔다.

그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숙모와 딸들도 다시 서원으로 돌아와 그를 기다렸다.

“나, 나리…….”

아리땁고 농염한 숙모가 그를 맞이하였다. 그녀는 다소 보기 좋지 않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 저 예전에 많은 걸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그해 나이 든 수재인 숙모의 부친이 그를 숙부에게 시집 보낸 이유는, 그녀의 심성이 단순하고 저택 내 다툼에 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허씨 집안은 그해 부유한 집안으로 숙부의 형이 높은 지위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다.

나이 든 수재는 인간 세상의 속물 같지 않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딸의 미모를 등에 업고 그녀를 허씨 집안의 둘째인 허평지에게 시집을 보냈다.

하지만 숙모는 이 일을 자신이 요 몇 년간 잊고 지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허평지의 큰형이 어디 무슨 산해관전역의 병사였던가! 그는 분명히 조당 제공들 중 하나로 권세가 대단한 거물이었다.

숙부는 아내를 쳐다보더니 뼛속까지 지친 기색을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잊으면 잊는 거지. 잊는 게 더 좋소. 어떤 것들은 생각하면 사람을 다치게 할 뿐이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면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오.”

숙모의 아리땁고 정교한 얼굴이 망연해지더니 입을 벌리고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이때 허영월이 방에서 뛰쳐나왔다. 열여섯 살의 소녀는 까치발을 들고 끊임없이 뒤를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큰 오라버니는요? 우리 큰 오라버니는요…….”

“그는 사천감에 있단다. 지금은 괜찮아.”

숙부는 딸을 한 마디 위로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경성을 떠날 필요가 없는 듯하구나.”

* * *

관성루, 침실 안에서 초원진, 리나, 이묘진, 항원 대사 네 사람은 네모난 탁자에 둘러앉아 말없이 차를 마셨다.

그들은 이미 허칠안이 나중에 당한 일을 알았다. 또한 그들은 허평봉의 존재와, 그가 아들을 그릇으로 삼아 아들을 죽이고 기운을 뽑으려 했던 일도 알았다.

허칠안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쯤 되니 사실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정덕제는 이미 죽었고, 부자 두 사람은 패를 깠다. 모든 게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는 내가 바로 기운의 아들이라고 패를 깠다.

물론 허칠안은 이 일을 제멋대로 떠벌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장 친한 동료에게 알리는 건 전혀 문제없었다.

“정말 믿기 어렵군. 알고 보니 그의 정체가 이렇게 예사롭지 않고 이렇게 불안한 거였어.”

초원진이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항원 대사는 갖은 고생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다니, 인간 세상의 참사입니다. 허 대인의 신세에 탄식이 나오는군요.”

이묘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찻잔을 쥔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동정하는 동시에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내비쳤다.

“호랑이가 제아무리 사나워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던데. 이 몸이 조만간 허평봉을 찔러 죽이겠어!”

천종 성녀의 청춘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 남강의 한 부락도 이래요. 아들이 성인이 된 후에 만약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면 아버지에게 도전할 수 있어요. 이기면 생모를 포함한 아버지의 모든 걸 계승할 수 있고, 지면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만약 어느 아들이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도전장을 내밀어 정정당당하게 아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보장하는 거죠.”

리나가 발랄하게 말했다.

부모와 자식간의 도리를 아는 부락이었다.

초원진 등 세 사람은 그녀를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남강의 여러 부락은 모두 야만적인 생활을 하는 미개한 상태에 놓였기에 온갖 기이한 풍속이 다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대봉으로 삼강오륜이 있었다.

허칠안의 신세는 그들에게 각별한 동정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나를 상대하지 않네…….’

리나는 볼이 불룩해졌다. 그녀가 기분이 좀 좋지 않아져서 마침 말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 리나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너, 너무 아파, 너무 아파……. 칠, 칠절고……!”

* * *

달은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 밤에 관성루 팔괘대 위, 간간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허칠안은 담요를 두르고 탁자에 앉아 손에는 탕약 한 그릇을 들었다.

종리는 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 대신 약을 달였다. 저채미는 전심전력으로 그의 상처를 봉합하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연고를 발랐다.

송경은 친한 벗이 중상을 입고 죽어간다는 얘기를 들어, 그를 도와주러 오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크게 필요 없는데…….’

허칠안은 그를 내쫓았다.

허칠안은 감정의 단약을 복용하고, 탕약을 몇 그릇 마셨다. 그런 뒤 저채미가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억지로 봉합해 주니 마침내 한숨을 돌렸다. 그는 비록 비실비실했지만 상처는 확실히 호전되었다.

옥양관 시기와 비교하면, 그는 아마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봉마정은 여전히 그의 몸속에 있고 뽑아낼 수 없었다.

못을 뽑아내지 않으면 그의 수련 경지는 신수와 함께 봉인되는 셈이었다.

“‘유리’라고 불리는 보살이 죽었습니까?”

허칠안은 뒤통수로 사람을 대하는 백의를 쳐다보았다.

감정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1품을 죽이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 그녀에게 중상을 입혔을 뿐이지. 적어도 2년 안에는 서역을 나오지 못할 걸세.”

허칠안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 보살은 살륜아고보다 좀 약한 것 같더군요.”

그는 저채미의 몸에서 진한 고기 찐빵 냄새를 맡았다.

‘배고파…….’

“1품이 될 수 있다면 약할 수가 없어. 각자 장점을 갖고 있지. 1품 사이의 싸움은 그 승패가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와 우월한 지리적 조건 그리고 사람 간의 화합에 달렸네. 대봉 관내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초품뿐이야. 허나 지금은 대봉 국력이 쇠약해져 1품 둘이 오면 나를 제압할 수 있네.”

감정은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살륜아고와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한 건 순전히 경성 백성에게 화를 미치고 싶지 않아서네. 게다가 자네와 자네 아버지의 일은 내가 개입하기가 곤란하거든.”

‘곤란하다고? 네 제자가 내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데 여전히 곤란하다고?’

감정은 허칠안이 질문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은 채 변명하였다.

“천명은 천기를 누설해서는 안 되네. 어쩔 수 없이 우회적으로 암암리에 안배할 수밖에 없어. 성패는 하늘이 정하는 법.”

‘감정의 말뜻은 그가 천명의 수단을 이용하여 허평봉의 계략을 꿰뚫어 보았는데 이는 천기를 꿰뚫어 본 것과 다름없으므로 억지로 개입하거나 천기를 누설해서는 안 되다는 것이군……. 그리고 그가 나서서 여자 보살을 물리친 건 천기누설과는 전혀 관계없이 순전히 외부 적을 물리친 거고…….’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은 기색을 보였다.

그는 바로 물었다.

“감정께서는 그 여자 보살이 올 거라는 걸 진작에 알았습니까?”

감정은 탁자 위의 술잔을 쥐고 단숨에 들이킨 뒤 만족스럽게 숨을 내뱉었다.

“유리 보살은 양대 보살 과위를 지니고 있네. 오색유리법상(五色琉璃法相)과 행자법상(行者法相)으로 후자는 서역 모정산(暮靖山)을 유람할 수 있지.”

‘그래서?’

허칠안은 감정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감정은 웃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자네에게 두 가지 일을 얘기할 걸세. 이건 아주 중요해.”

허칠안은 경건한 태도로 단정하게 앉더니, 진지한 얼굴로 경청하였다.

* * *

“리나…….”

이묘진은 깜짝 놀라면서도 리나의 팔을 부축하여, 그녀의 머리가 땅에 곤두박질치는 걸 막았다.

그녀는 리나의 손을 꽉 잡고 맥을 짚으며 상황을 살폈다.

맥박이 아주 격하고 혼란스러웠다. 리나의 몸속에 감춰진 혼란스러운 기운이 언제든지 폭발할 것 같았다.

“칠, 칠절고…….”

리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예쁜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간헐적으로 헐떡이며 말했다.

“아주 대단한 고(蠱)인데 천고 할머니가 제게 맡긴 거예요. 제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그, 그걸 삼켰거든요. 이 고가 이렇게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다른 고와는 달라요.”

초원진과 이묘진 그리고 항원 대사는 복잡한 표정으로 리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아무거나 다 배 속으로 쑤셔 넣는구나!’

항원은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갔다.

“저는 송경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니, 양천환을 찾으러, 아니, 찾…….”

대사는 말을 하다가 좀 망연자실했다.

초원진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아무 백의 술사나 찾으십시오.”

항원 대사는 문득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밀고 갔다.

아무 백의 술사를 찾는 게 감정이 몸소 가르친 제자들을 찾는 것보다 더 믿을 만했다.

이내 젊은 백의 술사가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다. 이 순간 리나는 이미 너무 아픈 나머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때로 그녀는 배가 부풀었다가 때로는 꺼지는 게 마치 끊임없이 공기가 채워졌다 새는 고무공 같았다.

젊은 백의 술사는 허리를 굽혀 리나의 맥을 짚더니 안색이 변했다.

“어떠합니까?”

초원진이 물었다.

“이 낭자의 몸속에 있는 무언가가 지금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제때에 꺼내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백의 술사는 전문적인 각도로 의견을 냈다.

“대인께 폐를 좀 끼치겠습니다.”

이묘진은 공수하였다.

“아, 이건 제 능력 밖입니다.”

백의 술사가 손을 놓았다.

“저는 아직 《해부경》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이 학문은 송 사형의 수준이 가장 높으니 배우고 싶다면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송 사형을 필두로 한 연금술사들은 머리에 광범위하게 문제가 있지요.”

백의 술사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더니 아래턱을 치켜들고 비웃음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저는 제 머리를 그들처럼 도려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그들은 가는 길이 달라요.”

이묘진과 초원진은 송경 패거리의 태도를 회상하더니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이 술사는 송경 등의 행위를 ‘부끄럽게’ 보는 것 같았다.

‘사천감에 그래도 정상인이 많이 있네…….’

두 천지회 구성원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초원진이 물었다.

“사천감에도 다른 파벌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백의 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정 스승님이 몸소 전수한 제자는 전부 스승을 대신해 제자를 거두어 제자들 지도를 책임집니다. 음, 채미 사매는 제자를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제자들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초원진과 이묘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쪽은 누가 가르쳤습니까?”

젊은 백의 술사가 이 말을 듣고는 아래턱을 치켜들더니 돌아서서 뒤통수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양—사—형— 안녕히 가세요!”

초원진과 이묘진은 그 사람을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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