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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93화 (693/712)

693화. 한 수 더 높았다

백의 술사는 한 손의 손가락을 비틀곤 나지막이 말했다.

“일어나라!”

돌판이 ‘우르르’ 진동하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절세 대진이 수축하더니 스스로 수리하고 복원하여 간소화 버전의 ‘절세 대진’을 이루었다.

비록 방금 그 진법의 강대함에 미치지는 않지만, 기진맥진한 무사가 한숨 돌린 것처럼 불완전한 상태와 비교했을 때 기운이 더 강해지면서도 원만해졌다. 전송, 속박 등 이미 잃은 능력들이 이 순간 전부 회복되었다.

고품 술사에게 망가진 진법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마치 승려가 좌선하고, 도사가 신유(*神游: 몸은 움직이지 않고 혼이 날아가 노닐다)하는 것처럼 체계 내 기본기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백의 술사는 냉정하게 손을 뻗어 손바닥을 자신에게 향한 뒤 나지막이 말하는 조위를 보았다.

“이 세계에서는 진법을 사용하면 안 되네.”

그가 말을 내뱉자마자 허공에 뜬 돌판이 빠르게 갈라지면서 진법이 소멸하고 신력을 잃었다. 고작 이 한 마디로 소형 절세 대진이 다시 절반은 약화되었다.

백의 술사는 더 이상 돌판이 허공에 뜨게끔 조종하기가 어려웠다. 돌판과 그 위의 허칠안이 함께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무쌍한 도의가 백의 술사 뒤에서 그의 등을 세차게 베었다.

백의 술사는 끙끙 신음하였다. 그의 등에서는 피와 살이 갈라져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그가 나타난 이래로 드디어 드디어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이는 무사의 도의로 살상력이 같은 단계의 다른 체계보다 더 강하고 더 무시무시했다.

백의 술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허칠안과 거리가 벌어졌다. 이때 그는 이미 구미호의 꼬리를 다시는 직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의가 한 줄기씩 허공에 떠올랐다. 무림맹 노필부는 무덕(武德)을 따지지 않고 세력이 약해졌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자 했다.

조위는 이 모습을 보더니 숙부의 어깨를 잡아당겨 그가 달려들어 조카를 살피는 상황을 막았다. 그는 숙부를 데리고 재빨리 멀어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 천을 물리치고 자신은 팔백을 잃는 것이네.”

조위가 되받아쳤다.

앞서 그가 시전한 파진 수법은 사실 언출법수가 아니라 위연의 합도지의(合道之意)에 무임승차한 것이었다. 그가 입으로 내뱉어 조각칼과 유관이 돕게 한 이유는 언출법수의 힘을 가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순전히 백의 술사를 조롱한 것이었다.

이 보잘것없는 한 수가 지금 승부를 결정 짓는 한 수가 되었다.

조위는 속으로 탄식하더니 위연이 출정 전에 홀로 청운산을 찾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위연은 아성전 안의 돌비석을 보았고, 그때 위연은 자신의 일부 혈단을 남겼다. 또 그때 위연은 그와 협력하여 그가 ‘파진’의 뜻을 기록하게 했다.

당시 위연은 백의 술사의 음모를 완전히 꿰뚫어 보지 못했으며, 심지어 허 대랑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양자 간의 인과가 너무 작아 위연이 천기술에 의해 차단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허칠안과의 갖가지 만남을 복기하였다. 또한 그는 책사의 직감으로 허칠안이 앞으로 큰 곤경에 처하리라고 예측하였다.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네. 내가 언제나 그를 보호할 수는 없네. 새끼 독수리도 언젠가는 날개를 펼치고 높이 날 때가 있겠지.”

조위는 귓가에 당시 위연이 했던 말이 울리는 듯했다.

위연은 이 자식을 위해 갖은 애를 다 쓴 셈이었다.

저 멀리 백의 술사는 향낭에서 치료하는 단약을 꺼냈다. 그는 한편으로는 침착하게 발걸음을 내디뎌 겹겹이 쌓인 도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도산(刀山)’의 포위에서 멀어졌다.

무림맹 선조가 베어낸 도의가 이 순간 목표를 잃은 듯했다.

백의 술사 허 대랑은 자신을 차단했기에 무림맹 선조도 잠시 그를 잊었다.

그는 단약을 먹은 뒤였기에 약효가 몸속에 퍼지는 걸 감지하면서 사방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도의를 제거하였다. 그는 허칠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신수와 만요국의 관계를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네. 비록 만요 공주가 나서는 방식이 의외였지만, 그녀 같은 적에게 나는 대비책이 있네. 아들은 어쨌거나 아들이구먼. 아버지와 싸우고 싶어도 멀었어.”

그가 말을 하는 사이 천기 차단 효과가 지나갔다.

천기를 차단한 후, 당사자는 외부인 앞에 나타나면 안 됐다. 그렇지 않으면 이 천기 차단술은 저절로 효력을 잃었다.

이 ‘외부인’은 각각 적, 수많은 방관자 그리고 세 사람 이상의 친인척 혹은 인과가 지극히 깊은 사람이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은 그와 인과 관계가 지극히 깊은 상대거나 적이었다.

그렇기에 천기 차단술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었으며, 중복 사용이 불가능했다.

허공에서 도의가 다시 나타나 백의 술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천지가 본래의 빛을 잃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본래의 빛을 잃었다. 모든 색이 이 순간 바래면서 흑백으로 변했다. 허칠안, 조위 등 그리고 백의 술사도 포함이었다.

빛을 잃은 이 세계에 한 사람만이 자신의 색을 지녔다.

흰색 가사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이 무성한 여자 보살이었다.

“무……색……법……상…….”

조위는 아주 느린 속도로 이 말을 내뱉었다.

불문 9대 법상 중 하나이자 9대 보살 과위 중 하나였다.

무색법상(無色法相)!

“X, X, X, X, 허, 대, 랑…….”

허칠안의 머릿속에 국가적인 욕 한 마디가 천천히 스쳤다.

그는 신체와 사고가 전부 진흙 구덩이에 빠진 듯한 듯했다. 한 마디는 오랫동안 뇌리를 떠돌다가 비로소 떠올랐으며,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불문이 나섰다……. 불문이 역시나 나섰다……. 백의 술사가 봉마정을 빌려왔다는 건 틀림없이 이미 신수의 존재를 불문에게 알린 것이다. 불문과 신수의 관계에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허칠안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천천히 스쳤다.

그런 뒤 그는 허공에서 전해오는 상스러운 말을 들었다. 그는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로 검주 방언을 사용하여 천천히 욕을 퍼부었다.

무림맹 노필부 역시 참다 못 해 저속한 말을 내뱉었다.

‘조위 원장도 지금쯤 분명히 화가 나서 속으로 욕하는 중이겠지…….’

허칠안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분노에 차면서도 느린 조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XXX!”

‘무슨 뜻이지!’

허칠안은 너무나 상스러워 순간 알아듣지 못했다.

“자네가 나를 속이지 않았군. 신수가 역시 그의 몸속에 있었어. 좋아, 아주 좋아.”

여자 보살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아 기복이 없었다.

“자네는 자네에게 속한 기운을 도로 가져가고, 나는 신수를 데리고 가겠네. 하지만 허칠안 이 자는 죽으면 안 돼. 그와 우리 불문은 인과가 아주 깊네. 오늘날 대승과 소승불법의 충돌을 해결한 핵심 인물이거든.”

그녀는 손을 들어 가볍게 손바닥을 문질렀다.

백의 술사는 색채와 더불어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도 회복하였다.

“기운을 뽑은 뒤 그는 죽을 것이다.”

맨발의 여자 보살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지금 기운을 뽑으면 안 되네. 나를 따라 불문에 다녀오자고. 내가 그 대신 불신을 새로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기운을 가져가게.”

‘엇, 들어보니 내 결말이 그다지 비참하지는 않은 것 같군…….’

허칠안은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백의 술사는 말없이 침음하였다.

여자 보살은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신을 새로 만든 뒤에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아 추구하는 바가 없고 속세와도 끊음으로써 자네에게 보복하지 않을 걸세.”

‘미친, 엿 같네!’

허칠안은 깜짝 놀랐고, 위기감이 다시 솟구쳤다. 듣자 하니 그는 불문 제자가 되면 결말이 죽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아 추구하는 바가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백의 술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여자 보살은 고개를 돌리고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꼬아 불광(佛光)을 튕겨냈다. 옅은 금색의 불광이 흑백 세계를 누비며 허칠안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비현실적인 여우 꼬리가 푸른 연기를 휙휙 내뿜었다. 마치 햇빛을 만난 흰 눈 같았다.

“허!”

허공에서 부드럽고 매력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치 그를 하찮게 여기는 듯했다.

“감정, 대어가 낚였는데 아직도 뭘 기다리나요?”

부드럽고 매력적인 여자 목소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 형체가 저 멀리 하늘에서 또렷하게 나타났다.

눈처럼 흰옷, 흰 머리, 흰 수염.

그는 마치 이 세계를 주재하는 신령처럼 높은 하늘에 우뚝 서 있었다.

‘감정이 드디어 왔다…….’

허칠안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유리(琉璃)!”

감정의 어조는 차분했다. 그가 밀려오는 천둥소리처럼 우렁차게 말했다.

“허락을 거치지 않고 우리 대봉 관내에 들어오면 참수다!”

이 순간 그는 마치 어둠 속의 규칙과 연결을 확립하여 규칙의 인정을 받은 듯했다.

그는 대봉 수호신이라는 명분으로 나섰다. 천기를 누설하는 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감정은 손을 뻗어 허공에서 청동반을 하나 잡았다. 이 청동반 뒷면에는 일월산천(日月山川)이, 그리고 정면에는 천간지지(天干地支)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막 나타나자마자 온 세상이 들끓었다.

무색계 영역이 와르르 산산이 부서졌다.

여자 보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백색 가사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여자 보살에게 맞서는 감정이 있었지만, 백의 술사는 여전히 그들을 막을 능력이 있었다. 기껏해야 이전 형세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는 더는 싸울 수 없는 조위, 상태가 좋지 않은 무림맹 노필부 그리고 불광 세례를 받은 구미호를 직면했다.

그리고 이 순간 감정이 나서고 천기반이 출현하면서 조위가 정해놓은 규칙을 강제로 깨트렸다. 그는 법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진법도 시전할 수 있었다.

백의 술사 발밑에서 진문이 반짝이더니 허칠안에게 바짝 접근했다.

허칠안은 무색계의 속박에서 벗어난 만큼 자유롭게 활동하는 능력을 회복하였다. 그는 백의 술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운 배반의 맛을 보고 싶으십니까?”

백의 술사는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의 발밑에서 진법이 퍼지더니 하나씩 하나씩 다시 허칠안을 뒤덮었다.

그는 법기를 부려 봉신, 속발, 연화 등의 효과를 중첩시켰다.

전부 모조리 허칠안의 몸에서 알력을 일으켰다.

하지만 허칠안은 그보다 더 빨랐다. 그는 입에서 네모꼴로 겹쳐진 종이를 한 장 내뱉어 손가락에 끼운 뒤 자신의 복부에 힘껏 쑤셔 넣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앞뒤가 환하게 뚫린 큰 구멍이 생겼다.

주살술!

허칠안의 생기가 급속도로 약해지면서 죽음에 가까워졌다.

주살술은 두 가지 형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목표의 피와 모발, 나아가 입은 옷과 물품을 획득하여 이를 매개로 주살을 발동하는 것이었다.

3품 경지에 이르면 어떠한 매개 없이 원격 주살을 걸기에 충분했으나 효과는 확 떨어졌다.

다른 형식은 자신의 피와 살을 대가로 목표에 주살을 거는 것이었다.

전제는 얼마 전에 적이 당신에게 충분한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다.

백의 술사는 후자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푹!

백의 술사는 미친 듯이 피를 내뿜었다. 코와 입에서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중상을 입었다.

그의 무덤덤한 얼굴에 드디어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

허칠안은 쉰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본래 이 수는 당신을 죽이는 데 쓰려던 것인데 저는 줄곧 참으면서 쓰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손 쓸 계획이었지요. 당신과 불문의 보살이 결탁하였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쉽군요. 제가 구미천호를 소환한 데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습니다. 바로 그녀가 제 행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었고, 이렇게 해야만 제가 주살술을 시전할 수 있거든요.”

그전에 그는 백의 술사에게 몸이 묶여 완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대기운을 지닌 자의 주살술을 맛보고, 기운의 배반을 맛보십시오. 사람 구실 못하는 짐승 같은 자식아.”

허칠안은 제멋대로 비웃었다.

백의 술사의 발밑에 진문이 나타나더니 그를 데리고 연속적으로 전송하여 줄행랑을 쳤다. 구미천호가 덤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마치 죽음의 위협을 감지한 듯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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