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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92화 (692/712)

692화. 술사의 약점

조위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고 또 한 번 유가 성인 조각칼을 휘둘렀다. 아성 유관은 물결 모양 같은 청광을 쏟아내어 조각칼에 힘을 더했다.

조위가 말했다.

“파진(破陣)!”

‘당신이 규칙을 바꾼 이상, 나도 진법을 바꿀 수 있지!’

조각칼은 마치 뙤약볕이 된 듯했다. 청광이 거의 백색광에 가까워질 정도로 짙어져 재빨리 나아가자 진법이 층층이 흩어졌다.

108개 진법으로 구성된 절세 대진은 머리에 유관을 쓰고 손에 조각칼을 쥔 3품 대유를 막을 수 없었다.

설령 진법의 주인이 2품 술사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백의 술사에게 화력을 전부 가동한 3품 대유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여전히 시간을 끄는 일이었다. 허칠안 몸의 기운이 이미 절반은 뽑혔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도광이 허공에서 떠올라 진법 부문(符文)을 하나씩 부쉈다.

무쌍한 도의였다.

백의 술사가 텅 빈 공간을 누르자 어딘가의 진문이 번쩍이더니 공기벽을 이루어 도광 앞을 막아섰다.

도광이 공기벽을 내리찍자 함흥차사처럼 사라졌다.

전송!

그는 도광을 전송해 갔다.

“이곳은 전송 금지네.”

조위는 냉정하게 대응책을 내놓았다. 진법이 뿔뿔이 흩어짐에 따라 유가 언출법수의 힘이 이곳에 한 발짝 더 침입하였다.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더니 도광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 빛은 막아낼 수 없는 세찬 기세로 진문을 베었다.

이로써 조위는 더 쉽게 나아갔고 바로 들이닥치고자 했다. 그때 갑자기 천고 노인 시체의 눈알 없이 흰자위만 있는 그 두 눈이 은은하게 빛났다.

조위는 순간 목표를 잃고 망연하게 멈추었다. 전방은 휑했다. 허칠안과 백의 술사가 사라졌다.

이는 ‘알려지지 않은’ 수법으로 허칠안과 백의 술사를 숨김으로써 시간을 끌었다.

조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들어 유관을 움직였다.

유관이 진동하더니 물결 같은 청광이 흔들렸다. 어둠 속, 조위 몸을 감싼 힘이 말끔히 씻기면서 허칠안과 백의 술사의 형체가 다시 나타났다.

“충분하네!”

백의 술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이미 허칠안 체내의 기운을 철저하게 연화한 뒤였다.

“저는 숙부가 이곳을 아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때 허칠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백의 술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핏줄인 그의 얼굴에는 곧 큰 화가 닥칠 것에 따른 절망과 공포가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침착하였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조위와 무림맹 선조에게 제 희망을 완전히 걸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뜻대로 되었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감정이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거라고 여깁니까?”

“망할, 뭘 더 기다리는 거야!”

허칠안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허칠안 뒤에서 털이 수북한 비현실적인 여우 꼬리가 자라났다.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치듯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러웠다.

여우 꼬리 아홉 개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허칠안의 뒤에서 펴지더니 천천히 움직였다.

이 여우 꼬리는 만요국 공주 구미천호에게서 나왔다.

처음부터 원장 조위와 무림맹 선조는 그저 허칠안이 공개적으로 깐 패였다.

그에게는 아는 자가 아무도 없는 비장의 패인 만요국 공주가 있었다.

허칠안은 만요국 공주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수련 경지가 강한 이 여인은 그의 인식 속에 그저 사서에 나타났던 이름일 뿐이었다.

하지만 만요국 공주는 그를 지켜주는 존재 중 하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당초 만요국의 첩자가 신수를 몰래 그가 사는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분명했다. 만약 구미천호가 자기 의도를 알리지 않았다면, 첩자가 감히 이렇게 하겠는가?

만요국 잔당의 목적은 그의 몸속의 기운을 빌려 신수의 단수를 온양하는 데 있었다. 그와 신수는 영예와 치욕을 함께 누리지 않았나.

구미천호는 어쩌면 그의 생사를 개의치 않을지도 몰랐지만, 신수가 봉인되고 불국에게 다시 휘둘리는 사태를 좌시할 리는 절대 없었다. 만요국이 고생스럽게 도모한 상백 사건이 뭘 위해서겠는가?

물론 이는 어쩔 수 없이 모두의 이익이 같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허칠안이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지금껏 나타난 적도 지금껏 연락한 적도 없는 요녀에게 맡길 리가 없었다.

그가 만요국 공주가 나설 거라고 확신하고 그녀를 자신의 비장의 패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부향의 이야기였다.

허칠안이 이 사람의 관포지교를 무시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부향의 신분과 지위로 정말 그해 감정 대제자의 옛일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자신에게 남긴 서신에 이렇게 암시가 뚜렷한 이야기를 적었을까?

답은 아주 간단했다. 이는 만요국 공주의 암시였다. 한편으로 이는 그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암시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나설 의도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허칠안이 고작 이렇다고 해서 그녀를 자기 비장의 수단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날 사천감에서 소생하여 운록서원에 조위를 만나러 가기 전에 감정이 그에게 우윳빛 단약을 한 알 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약이 배 속에 들어갔을 때 허칠안은 부드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웃음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이내 사라졌지만 말이다.

허칠안은 감정과 구미천호가 어떻게 결탁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똑똑한 자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드디어 나왔군…….’

허칠안은 꼬리뼈가 이상함을 눈치챈 순간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그가 구미천호를 욕한 이유는 상대방의 악랄한 성격을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더 일찍 나설 수 있었지만, 굳이 결정적인 순간까지 머물렀다. 허칠안은 자신의 목숨을 보장하는 비장의 패가 작동하지 않는 줄 알고 하마터면 깜짝 놀라 오줌을 지릴 뻔했더랬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생에 복 받은 아이로 환생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그는 생부가 사람 구실을 하는 부귀한 집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그것들이 나타나자마자 백의 술사는 마치 정신술(定身術)에 걸린 듯 잠시 굳었다.

아홉 개의 여우 꼬리는 이 틈을 타, 마치 촉수처럼 일부는 무형의 방대한 기운에 달라붙어 그들을 제거하는 백의 술사를 저지하였다.

다른 일부는 백의 술사를 세차게 후려쳤다.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기기 파동을 내뿜지 않았으며, 장관을 이루는 이상 현상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백의 술사는 무의식적으로 반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아주 꺼리는 듯했다.

“흥!”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구미천호의 출현에 놀라고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구미천호와 신수 사이에 복잡한 사연이 있는 만큼 상대가 나서서 방해하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구미천호가 이런 방식으로 기습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망기술에 정통한 전봉 술사 앞에서는 대부분의 비밀 수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걸 알아야 했다. 세상에서 2품 술사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은닉 수법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백의 술사는 이런 수법을 낱낱이 알았지만, 구미천호가 시전한 건 그도 지금껏 본 적 없는 은닉 수법이었다.

백의 술사는 당황했으나 흐트러지지 않고 발을 굴렀다. 나머지 진법들이 동시에 눈부신 청광을 터뜨려 몸에 방어 장벽을 덮었다.

웅웅웅!

여우 꼬리 여섯 개가 장벽 위를 두드리자 청광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기기가 겹겹이 폭발하였다. 백의 술사는 연신 뒤로 물러났으며, 안하무인으로 흉악하게 날뛰었다.

다른 여우 꼬리 세 개는 그 방대한 기운을 휘감아 허칠안의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기운이 다시 몸으로 돌아왔다.

후……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우는 정말 대단해!

무림맹 선조와 원장 조위는 이 모습을 본 순간 기회를 잡아 허공에서 더 많은 도의를 몰아냈다. 2품에 가까운 3품 전봉의 도의가 유가 성인 조각칼과 어우러져 진법을 없앴다. 그는 마치 천군만마를 뚫고 소진을 뚫는 것처럼 적장의 목을 바로 취했다.

백의 술사는 세 사람의 협공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당분간 기운을 뽑을 수 없는 걸 보자 결단력 있게 허칠안을 포기하였다.

향낭이 저절로 열리더니 생명을 부여받은 듯한 법기가 떠올랐다. 상노, 화포 같은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법기가 아니라 쓰임이 더 기이한 법기였다.

어떤 건 구리 거울이고 어떤 건 날카로운 이빨이었으며 어떤 건 청동 도장, 어떤 건 영롱한 보탑이었다…….

이것들의 역할은 봉신(封神), 기기 관통, 속박, 연화였다…….

수많은 법기가 주위를 감돌았다. 허칠안의 육신은 아무 탈이 없었지만 원신이 ‘웅’하고 흔들리더니 마치 무수한 파편으로 갈라진 듯 잠시 의식을 잃었다.

흉악하게 날뛰는 촉수 같은 여우 꼬리가 법기의 영향을 받아 활동성을 잃고 목표를 잃은 듯 다소 망연하게 꿈틀거렸다.

백의 술사는 손을 뻗어 허공에서 허칠안의 머리 위를 눌렀고, 이미 그에 의해 연화된 방대한 기운을 다시 뽑아냈다.

“이곳은 법기 사용이 금지되었네.”

조위가 나지막이 말했다.

백의 술사의 절세 대진이 당대 대유와 반보 2품 무사의 힘을 합친 맹렬한 공격에 절반이 사라졌다. 그는 이제 유가의 언출법수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띵띵!

공중에서 춤추던 법기가 잇따라 추락하였다.

아성 유관과 유가 성인 조각칼 역시 스스로 봉인하고 빛을 거두었다. 지식인은 양아치가 아니라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자였다. 언출법수의 힘은 자기편에게도 똑같이 효력을 발휘했다.

조위는 끙끙 신음하였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허풍 대법이 배반했다.

정상적인 상황에 같은 경지의 적을 마주했을 때, 만약 언출법수의 힘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라면 그는 세 번밖에 시전할 수 없었다.

더 많으면 호연정기가 법술의 배반을 방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언출법수의 힘이 돕기 위함이거나 자신에게 힘을 주는 거라면 횟수의 제한이 없었다.

‘이 지역은 전송 금지네’, ‘법기를 사용하면 안 되네’ 는 모두 적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힘에 속했다. 3품 전봉의 실력으로는 설령 유가 성인 조각칼과 유관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자신보다 한 품계 높은 술사에게 맞서기가 어려웠다.

여우 꼬리 아홉 개가 순간 거칠게 파동을 일으키더니, 하늘로 솟구쳐 제멋대로 춤을 추며 꼬리를 마구 휘둘렀다.

백의 술사는 다시 물러났다. 근거리 전투는 술사의 약점이었다.

비현실적인 여우 꼬리가 기운에 달라붙어 다시 기운을 허칠안에게 집어넣었다.

“적 팔백을 무찌르고, 자신은 천 명을 잃는군.”

백의 술사는 비웃었다.

그가 비웃은 상대는 조위였다. 아성 유관과 유가 성인 조각칼이 스스로 봉인하고 세 번의 언출법수도 끝났다. 다가올 전투에 이 대유가 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은 이미 미미하였다.

무림맹 선조에 관해서라면 저속한 무사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처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그 노필부(老匹夫)는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직접 나서서 적을 죽일 수 없었다.

술사에게 이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허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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