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화. 놀이
‘이미 충분히 무섭거든…….’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세 번째 한계도 추측해보았는데 확신할 수는 없어서요. 차라리 제 의문을 풀어주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백의 술사의 태도는 상관하지 않은 채 거리낌 없이 말했다.
“만약 제가 지금 가족 앞에 나타나거나 경성 백성들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들이 저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천기 차단술이 저절로 효과를 잃을까요?”
“이게 중요한가?”
백의 술사는 말을 하면서 허공에 진법을 새겼다. 청광으로 이루어진 문자 부호가 응집되더니 허칠안의 몸속에 침입하여 기운의 연화를 가속화했다.
“중요합니다. 만약 제 추측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당신이 경성 상공에 나타나 사람들의 시야에 잡힐 때 천기 차단술은 저절로 효과를 잃을 것이고, 제 숙부가 형을 떠올릴 겁니다.”
백의 술사는 오랫동안 침묵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또 있는가?”
허칠안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감정에게는 총 여섯 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천감 술사들과 그렇게 오랫동안 왕래했는데 지금껏 그들의 입에서 대제자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상식적인 이치에 맞지 않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유일한 설명이 바로 그가 자신을 차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감정의 대제자가 바로 운주에 있을 때 나타난 고품 술사이며 배후의 진범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지요. 저는 아직 술사 1품과 2품 사이의 근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약 2품 술사가 1품으로 승직하는 데에는 반드시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에 모든 진상을 파헤쳤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는 허씨 집안의 대문장가 때문에 쩔쩔매지도 않았을 터였다.
허칠안은 마치 노련한 베테랑 형사처럼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형세가 반전된 듯했다. 줄곧 담담했던 백의 술사가 묵묵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허칠안은 도마 위 물고기로 전락했지만, 계속해서 차분하고 느긋하게 말했다.
허칠안은 이미 백의 술사의 존재를 알았다. 그가 자신의 기운이 그의 선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안 이상 어떻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는가?
자신의 생사와 안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는 없었다.
“본래 이 상황에 근거하여 계속 조사했다면, 저는 조만간 제가 직면한 적이 감정의 대제자임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제가 검주에서 희겸을 맞닥뜨렸고, 황족 혈통의 입에서 아주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오백 년 전 그 혈통의 존재를 알았고 초대 감정이 아직 살아있다는 정보를 알았지요. 모든 게 합리적으로 어떠한 논리적 허점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정보 활용이 부족한 덕에 저는 초대 감정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믿었습니다. 당신의 목적은 저와 감정을 이간질하여 제가 그에게 거리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죠. 왜냐하면, 희겸이 제게 기운을 빼면 제가 죽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틀림없이 억지로 기운을 빼앗는 감정에게 대비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가졌겠지요. 하지만 사실 희겸이 그 당시 말한 모든 건 전부 당신이 제게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었지요. 예상대로 당신은 그 당시 검주에 있었습니다.”
백의 술사는 진문 새기는 걸 멈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사실이네. 나는 자네를 속이지 않았어.”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을 인정하고선 말했다.
“사실 희겸은 당신이 일부러 제게 죽이라고 보낸 것이지요. 저와 감정을 이간질하는 건 그저 목적 중 하나였고, 가장 주요한 건 용 이빨을 제 손에 보내 제 손을 빌려 용맥의 령을 물리치려는 것이었죠.”
백의 술사는 묵인한 채 잠시 멈칫하더니 탄식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네. 초대 손에 죽는 게 어쨌거나 친부모 손에 죽는 것보다 낫잖나. 나는 이런 사실을 자네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네. 하지만 자네는 결국에 내 정체를 밝혀냈구먼.”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제가 어찌 태산과도 같은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말하자면 저는 정덕을 조사하는 과정에 비로소 당신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원경 10년과 원경 11년의 기거 기록에는 기거랑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지요. 이는 빈틈없는 한림원에서 거의 있을 수 없는 오류입니다. 저는 그 당시 이것이 원경제의 허점인 줄 알았는데 이 단서를 따라 조사하다 보니 그 기거랑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원경 10년의 과거를 조사했고, 탐화랑의 이름이 지워졌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 탐화랑은 나중에 조당에서 당을 결성하였고, 그 세력은 막강했습니다. 왜냐하면, 횡령죄로 참수당한 소항이 바로 이 당의 핵심 구성원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조국공의 밀서에 이름이 지워진 당파가 적혀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지워진 글자는 아마 ‘허당’이겠지요!”
그는 백의 술사를 쳐다보더니 상대방이 반박하지 않는 걸 보자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일찍이 감정이 나서서 그 탐화랑의 존재를 지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추측을 부정했지요. 동기가 부족합니다. 감정은 조당 다툼에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당쟁은 그에게 그저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에 불과하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관점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그 기거랑의 존재를 지운 자가 바로 그 본인이라면? 이 모든 게 합리적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는 가설일 뿐, 증거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거랑이 왜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 한 걸까요? 그는 지금 또 어디로 갔을까요? 저는 홍안지기가 제게 남긴 서신을 받기 전까지는 시종일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허칠안은 잠시 멈추더니 말을 잇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운주가 허주라고 불리는 겁니까?”
백의 술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도운 그 황족이 내 후손을 이성왕(*異性王: 당대 황족 외에 왕작에 봉해진 자를 일컬음)에 봉하겠다고 약조했네. 대사를 성사시키면 운주는 허주로 이름을 바꾸고 허씨 가문에 속할 거야. 물론, 나는 이 한 주(州)에 개의치 않네. 허, 내 후손이 자네만 있는 것도 아니니. 자네가 내가 감정 대제자 신분이라는 걸 알아맞힐 수 있었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네. 하지만 자네는 내가 바로 자네의 부친이라는 걸 어떻게 단정했는가?”
허칠안은 비웃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지요, 천기 차단은 혈육의 논리에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스스로 혼란스러운 논리를 수정하여 자신에게 합리적인 변명을 합니다. 예컨대 허평지는 줄곧 산해관전역에서 그를 대신해 칼을 막은 사람이 그의 큰형이라고 여기고 있지요.
또 예를 들면, 허씨 집안의 정신이 흐리멍덩한 그 장로는 허씨 집안의 대문장가가 허씨 집안 대랑이라고 한결같이 생각했지요. 하지만 허씨 집안의 대문장가는 신년이고, 저는 일개 무사이지요. 여기서 논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주 명백하지요. 상태가 온전치 않은 그 장로가 말한 허씨 집안 대랑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었습니다.
진짜 제가 당신의 신분을 깨닫게 된 건 신년이 북경에서 전해온 소식 덕이었습니다. 그가 허평지의 그해 전우를 만났는데 그 전우가 허평지가 사람 구실을 못 하고 배은망덕하다며 화를 냈다더군요. 왜냐하면, 그날 허평지를 대신해 칼을 막은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주씨 성의 병사였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모든 단서가 연결되었고 저는 드디어 제가 마주한 적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당시 허칠안은 서재에 오랫동안 앉아서 진심으로 슬퍼했다. 허평지와 원래 주인을 대신해 슬퍼했더랬다.
“허나 어떤 일들은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일개 술사인데 어떻게 탐화랑이 되었습니까?”
허칠안은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백의 술사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말했다.
“이건 시험이었네. 만약 부득이하게 압박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스승님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네. 그해 내 생각은 자네와 같았어. 현존하는 황자 중에 황위에 오를 한 사람을 돕고자 했지.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포괄적이었네. 나는 황자가 제위에 오르는 걸 도우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내각에 들어가 재상에 임명되어 황조의 핵심을 장악하고자 했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였어. 기운을 응집하여 어쩌면 내가 1품에 들어서서 천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지. 그래서 허당이 생겼네.”
허칠안은 비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실패한 건 감정이 동의하지 않아서였습니까?”
백의 술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동의했고, 나와 간단하게 규정을 정했네. 술사의 수단을 당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됐네. 당쟁은 당쟁일 뿐, 재상에 임명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부 내 개인의 능력에 달렸던 게지.”
허칠안은 불 난 데 부채질하였다.
“그래서 조당 싸움에서 당신이 졌고 그래서 조당에서 물러나 오백 년 전의 그 혈통을 돕기로 했습니까?”
백의 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 당시 허당은 지금의 위당처럼 세력이 막강하였네. 각 당에서 함께 들고 일어나 공격하였지. 하지만 내가 마주해야 할 적은 이들에 그치지 않았네. 원경과 전임 인종 도사가 있었지.”
‘이게 무슨 말이지…….’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금세 그는 깨달았다.
백의 술사는 비웃음을 띠었다.
“인종 도사는 당시에 자신이 도겁에 절망적이라는 걸 스스로 알았네. 하지만 그는 딸 낙옥형에게 길을 터줘야 했으나 한 나라의 기운에는 한계가 있어. 동시에 천명 둘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 가능하다고 해도 업화를 가라앉히는 여분의 기운을 낙옥형에게 제공할 수 없었네. 이렇기에 인종 전임 도사는 나를 적으로 삼았네.
원경에 관해서라면, 아니, 정덕, 그가 암암리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네는 잘 알겠지. 그는 기운을 흐트러뜨리려고 했네. 어떻게 천명이 더 탄생하는 걸 용인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판국에 내가 어찌 승산이 있겠는가? 그 당시 나는 거의 궁지에 몰렸었네. 스승님은 시종일관 싸늘한 눈으로 방관하였지. 개입하지 않았고 지지하지도 않았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부향 서신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끼 독수리는 온갖 괴롭힘을 당했지만, 늙은 독수리는 싸늘한 눈으로 방관하였다. 새끼 독수리가 화를 내며 푸른 하늘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더니 그 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랬군…….’
“나는 궁지에 몰렸을 때 생각했네. 문득 왜 그해 스승님이 한 혈통을 도와 곁붙이가 자리에 앉게 했던 걸 흉내 내면 안 될까? 마치 그해 무종의 청군측처럼 말일세. 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제어하기 어려웠네. 나의 모든 안배와 계략은 전부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한 것이네. 자네는 정덕이 왜 무신교와 협력하였고, 내가 왜 용 이빨을 자네의 손에 보내려 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왜 그가 용맥의 령을 뽑아내려는 걸 알았을까?”
백의 술사는 웃는 듯 마는 듯 얘기했다.
이 모든 건 전부 그해 꿍꿍이속을 품은 한담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금 정덕의 모든 계략을 선동하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