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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88화 (688/712)

688화. 의구심을 품다

황궁, 소음궁에서 임안은 미친 듯이 서재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그녀가 거친 동작으로 서적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서적에 부딪힌 화병이 바닥에 떨어져 빠직 하고 부서졌다.

“마마, 마마, 뭘 찾으십니까?”

수행 궁녀는 다급했다.

임안은 멈추고 멍하니 섰다. 그녀는 눈물이 뽀얀 뺨에 넘쳐흐르도록 흐느껴 울며 말했다.

“내, 내가 무슨 중요한 물건을 잊었어…….”

두 궁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들은 이공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임안은 어지럽게 흩어진 서적 사이 난잡하게 흩어진 바둑돌을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뭘 잊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바둑돌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웅크리고 앉아 바둑판을 꼭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둑판 위, 검은색 묵적이 쓰여 있었다. 초하한계(*楚河漢界: 쌍방의 경계)!

* * *

황궁 어느 곳에서 사황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회경, 아바마마께서 서거하셨다. 태자도 결국에는 시련에서 벗어나는군. 하, 하지만 나는 달갑지 않다…….”

그는 위연이 죽은 뒤 가장 큰 버팀목을 잃었기에 정당한 명분이 있는 태자를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신비로운 고수가 아바마마를 베어 죽였으니 반드시 조당 정세에 동요가 일 것이었다. 제공들은 이 결정적인 시기에 분명히 즉시 태자를 추대하여 제위에 올려 정세를 안정시킬 터였다.

사황자는 앞날이 캄캄했다.

이때 그는 회경의 표정에 생기가 없으며 눈에는 슬픔이 배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회경, 아바마마의 죽음으로 많이 상심한 거 안다. 하, 하지만 아바마마는 극악무도했기에 분노에 찬 절세 고수를 건드린 게야.”

사황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태자가 등극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 반드시 이 오라버니를 도와야 해.”

회경은 가슴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그녀는 마치 가슴이 텅 빈 것처럼 마음이 너무 아팠다.

* * *

모남치는 어느 소원 지붕에 앉아 볼을 괴고 인생을 헤아렸다.

마당 문이 열리더니 장 아주머니가 황급히 들어와 외쳤다.

“모 낭자, 지붕에 앉아서 뭐 해?”

모남치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장 아주머니,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말을 내뱉자마자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비음이 심했다.

장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웃 사람들이 말하길 경성이 망했다네. 황제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대. 그들은 경성에서 도망칠 계획이라던데 낭자는 안 가? 낭자 남자를 불러서 같이…….”

장 아주머니는 갑자기 괴이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모 낭자, 왜 울어?”

모남치는 어리둥절하다가 얼굴을 만졌다.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제, 제 남편이 죽었어요.”

그녀는 몹시 슬퍼했다.

“어? 언제?”

장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모르겠어요. 잊, 잊어버렸어요…….”

* * *

경성 교외, 어느 곳.

낙옥형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표정은 약간 힘겨워 보였다.

“허, 허칠안, 허칠안…….”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무언가에 대항했지만, 이를 저지할 수 없었다.

* * *

허칠안 눈앞의 장면이 바뀌었다. 뚜렷해질 때까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 뒤 그는 자신이 어느 산골짜기 어귀에 있다는 걸 알았다. 산골짜기는 시들시들한 화초와 민둥민둥한 수목뿐이라 쓸쓸하면서도 조용했다.

허칠안은 눈을 감고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감지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경성 기후와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는 초대 감정이 그를 데리고 대봉을 벗어나지 않았거나, 최소한 변방으로 데려왔다는 의미였다.

무사 외에 대다수 고품 수행자들에게 수십 리와 수백 리는 한 걸음 차이에 속했다.

백의 술사는 손을 들어 중지를 엄지손가락에 받치고 핏방울을 튕겼다. 핏방울이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자 공기가 흔들리며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이곳은 내가 그해 적잖은 정력을 쏟아 만든 비밀 기지네. 오직 나 혹은 나의 혈통만이 들어올 수 있지. 감정이라고 해도 들어올 수 없네. 억지로 난입하면 이곳을 산산 조각낼 뿐이야.”

백의 술사는 허칠안을 들고 결계로 들어섰다.

허칠안은 얇고 투명한 공기층을 뚫었다. 눈앞의 경물이 완전히 바뀌었다. 산골짜기는 여전히 산골짜기였지만 초목이 사라지고 각종 주문이 새겨진 거대한 석판만 있을 뿐이었다.

석판은 직경 10장에 달하여 거의 산골짜기의 모든 땅을 뒤덮었다.

석판을 보자마자 허칠안은 다시 익숙한 두통과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마치 임신한 여인처럼 구토하고 싶은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진법은 내가 30여 년 동안 간헐적으로 새긴 것이네. 총 108개의 진법이 하나로 합쳐져 공격과 방어에 제일이지. 1품인 감정을 제외하면 이곳을 뚫기는 어려울 걸세.”

백의 술사는 온화한 어조로 설명했다.

‘왜 그의 비밀 기지가 경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까…….’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으며 이런 의구심을 품었다.

허칠안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이 진법 속 가부좌를 튼 한 미라에게 닿았기 때문이었다.

미라가 입은 옷은 비교적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았다. 그 옷은 천과 짐승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허리에는 고운 색채의 돌이 매달려 있었다. 미라는 머리에 땀모자를 겹겹이 썼다.

남강 사람?

미라는 전형적인 남강 옷차림이었다.

“그, 그가 천고부의 전임 우두머리?!”

허칠안은 마음속의 추측을 말로 내뱉었다.

“맞네, 그가 바로 나와 함께 대봉 기운을 빼앗은 천고 노인이네.”

백의 술사는 질의응답에 있어 초연하였다. 그는 마치 모든 걸 전부 통제하는 듯했다.

“그가 어째서 여기에서 죽었습니까?”

허칠안은 초대 감정의 모자이크한 얼굴을 주시하면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치 ‘너희 내분이 생겼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본래 명이 길지 않았네. 나와 대봉 기운을 탐한 뒤 배반을 당해 산해관전역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하였네.”

초대 감정은 탄식했다.

“국운을 훔치면 당연히 배반당하게 되네. 지금 자네의 기운을 뽑아내는 것 역시 같아. 나는 배반을 당할 것이야. 이건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대가지.”

‘리나가 천고 노인이 대봉 기운을 꾀한 목적은 유가 성인의 조각상을 수리하고 복원하여 다시 무신을 봉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 있지…….’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가 기꺼이 남을 위해 희생할까요?”

이러한 강자가 자신의 수명과 몸 상태를 모를 리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백의 술사는 허칠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진법 가운데의 그 미라를 바라보았다.

“이 선물은 대가를 치러야 하네. 바로 무신 봉인이지. 이건 나와 그의 인과이니 자네는 신경 쓸 필요 없네.”

허칠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가 꼭 죽어야 합니까?”

백의 술사는 말이 없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리고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는 이 기운이 탐나지 않습니다. 이건 본래 당신의 물건이니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백의 술사가 천천히 말했다.

“자네가 2품으로 들어서서 합도 무사가 된다면 기운을 떨쳐내는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어. 위연이 죽었고, 정덕이 죽었으며 용맥이 흩어졌네. 이것들은 모두 시류로, 연기사는 조류에 순응하여 일을 처리해야 하네.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자네가 2품으로 승직해봤자 때는 지나가는 걸세.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시기를 잘 잡아야 하네. 자네는 이해할 게야.”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탄식했다.

“게다가 자네가 합도 무사가 되면 내가 자네를 다시 제압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지.”

허칠안은 눈에 슬픔이 스쳤지만 즉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감정을 속이고 기운을 내 몸에 뒀습니까?”

이 문제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감정은 1품 술사로 그보다 기운을 더 잘 아는 자는 없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초대가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기운이 그의 몸에서 20년간 깊이 잠들게 한 걸까.

백의 술사는 미라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내 능력이 아니라 천고 노인의 솜씨네. 애당초 같은 방법으로 감정을 속이고 성공적으로 기운을 빼앗았지.”

‘무슨 방법…….’

허칠안은 잠시 기다렸으나 백의 술사는 설명하지 않았다.

“결자해지, 자네의 기운을 뽑아내려면 그의 도움과 이 대진이 필요하지.”

백의 술사는 허칠안을 들고 대충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절묘한 계책으로 그를 어느 곳에 두었다. 미라와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가 기운을 뽑아내려면 이 진법의 도움이 필요하다. 30년 전부터 도모하기 시작했구나…….’

허칠안은 속으로 감탄하고야 말았다. 약삭빠른 인간의 일 처리는 결코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저항할 힘도 없었기에, 얌전히 뒤에 서서 물었다.

“천기를 차단하면 제 이름을 지울 수 있는지 매우 알고 싶습니다만.”

백의 술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왜 이걸 묻지?”

허칠안은 별다른 표정 없이 웃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입니다. 한 사람을 차단할 때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습니까? 그를 철저하게 세상에서 지워버리나요? 세상이 다 아는 한 사람을 차단하면 세상 사람은 어떤 반응입니까? 예컨대 황제나 저 같은 사람이요. 세상 사람은 저를 완벽하게 잊습니까, 아니면 기억에 혼란이 생깁니까? 만약 천기를 차단당한 사람이 다시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난다면 무슨 상황일까요? 차단당한 자의 혈육과 옆 사람은 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백의 술사는 그를 쳐다보면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만약 이 일을 사전에 종이에 적는다면, 만약 혈육이 기억과 맞지 않는 내용을 본다면 또 어떨까요?”

* * *

경성 교외, 허평지는 관도 위에서 말을 채찍질하여 운록서원 방향으로 달려갔다. 대유 장진은 한걸음에 3장씩 여유롭게 말과 나란히 갔다.

전방에 청기가 감돌며 유관을 쓰고 낡은 유삼을 입은 소탈한 형체가 나타났다.

“원장님?”

장진은 어리둥절하여 매우 뜻밖이라는 어조로 말했다.

“어째서 여기에 계십니까?”

원장 조위는 그를 무시했고, 품에서 종이 세 개를 꺼내 그중 한 부를 펼쳤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만약 내일 (공백) 구하는 걸 잊는다면, 두 번째 종이를 허평지에게 건네십시오.>

중간에 공백이 있는데 누구를 구한다는 거지? 이 부분은 종이에는 쓰여 있지 않았다. 혹은 쓰여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다.

“이게 무슨 뜻이지?”

장진은 종이 위의 내용을 바라보았다가 전에 없던 조위의 진지한 표정을 보았다. 그는 원장에게 무슨 성가신 일이 생긴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허평지는 말 등 위에 앉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역시 조위가 펼친 종이를 보았다. 허평지는 비록 공부한 적이 없지만, 공직에 몸을 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황실 밥을 먹었으니 평소에 서적과 문자를 항상 접하곤 했다. 그도 글자를 하나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는 종이 위의 글자를 대부분 알아보았지만 두세 글자만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방금 한 차례 대전을 치렀는데 누구와 맞붙었는지 생각나지 않네. 맞붙은 이유는 더욱이 생각나지 않고. 내가 몸에서 이 종이 세 장을 발견했을 때까지 말일세.”

조위는 말하면서 두 번째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숙부, 저를 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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