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87화 (687/712)

687화. 천기 차단

‘훌륭해!’

허칠안은 남몰래 갈채를 보냈다.

양측은 대치할 수 없었다. 조위는 초대 감정을 완벽하게 꼼짝 못 하게 했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1품 살륜아고가 앞잡이에게 쫓겨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구제받을 수 있었다.

백의 술사는 진법이 파괴되는 걸 보자 당황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활짝 열린 향낭 안에서 법보를 하나 불러냈다. 정교한 팔괘동반이었다.

팔괘동반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조위 머리 위에 응집하였다. 어슴푸레한 청광이 쏟아지면서 팔괘대진이 다시 조위를 가두었다.

“이곳에서 법기 사용 금지를 시도해도 무방하네.”

백의 술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자네는 아성 유관을 사용할 수 없으니 내가 내친김에 베기가 좋거든.”

조위는 잠자코 있었다. 언출법수의 배반이 그가 연속으로 천지의 법칙을 바꾸게 허용하지 않았다.

‘현질한 게이머는 제명에 죽지 못하는군…….’

허칠안은 속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방금 생긴 일말의 희망이 순식간에 형체 없이 사라졌다.

술사라는 체계는 언뜻 보면 공격력이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진법과 법기 제련에 능했으므로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있기만 하면 현질할 수 있었다.

전력이 충분치 않으면 법기로 채웠다.

정말이지 구역질 났다.

백의 술사는 팔괘동반을 내던진 후에야 느긋하게 말했다.

“1품 술사는 ‘천명(天命)’이라고 하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지천명(知天命)!”

그가 다시 말했다.

“감정이 후방에서 전략을 세우고 암암리에 배치하는 이 모든 건 ‘천명’의 권력에 기인하네. 하지만, 천명은 아주 큰 단점이 있지. 감정은 영원히 암암리에 배치할 수밖에 없네. 직접 개입하거나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 내가 예를 들어보지. 예컨대 그는 오늘 내가 나서서 습격할 거라는 걸 알았어도 자네에게 알릴 수 없고 직접 나서서 자네를 도울 수 없네. 완곡한 수단으로 자네를 도울 수밖에 없지. 예를 들면 마승 신수를 자네 몸속에봉하는 것처럼 말이야. 사실 그 역시 그렇게 했네. 그저 세상 만물은 상생과 상극이니 내가 신수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 하지만 그를 자연스레 다스릴 사람은 있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주술사의 점술이 떠오르는군요.”

백의 술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사는 본래 주술사 체계에서 탈태한 것이니까.”

“하지만 이게 감정이 스승을 시해한 것과 무슨 관계지요?”

허칠안이 물었다.

백의 술사는 이 말을 듣자 탄식하였다.

“연기사가 천명으로 승직하는 조건은 한 나라의 기운을 단련하는 것이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자네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야.”

‘너 누구를 무시하는 거니…….’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 이해 가지는 않습니다.”

백의 술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더 알아듣기 쉬운 설명으로 바꿔보자면, 1품 천명이 즉위하여 나라를 세우고 황제라 불리도록 돕는 것, 이게 바로 2품 연기사가 1품 천명으로 승직하는 핵심이네.”

쿵!

허칠안은 마치 귓가에 천둥이 친 것처럼 두피가 저려 왔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러한 이유로 그해 감정은 무종 황제를 도와 불문과 손을 잡고 자신의 스승을 배반했다.

감정은 무종 황제를 도와 1품으로 성공적으로 승직하였다.

하지만 초대 감정은 ‘국가’를 잃었기에 1품에서 2품으로 떨어졌다.

어쩐지 술사가 조정에 종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중원을 통치하는 왕조가 술사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기에 초대는 감정이 만약 정덕을 죽이면 스스로 뿌리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한 듯했다. 하지만 그가 허칠안을 죽이면 기운의 배반만 감내하면 되기에 스스로 뿌리를 파괴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존하는 왕조에서 황자를 선택하여 그가 등극하는 걸 도우면 안 됩니까?”

허칠안은 상대방의 의사를 알아보았다.

백의 술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는 연기사를 승직시키기에 역부족이네.”

허칠안은 오랫동안 침묵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해 머리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왜 제자를 받았지요?”

‘고작 내 등을 찌르게 하기 위해 어렵게 고생하여 제자를 가르쳤단 말인가?’

백의 술사는 잠자코 있다가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금못을 허칠안의 몸에 찔렀다. 이로써 모든 못 박기가 끝났다.

신수는 완벽하게 봉인되었다.

“…….”

허칠안은 자신의 뺨을 갈기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만약 그가 손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말이다.

백의 술사가 탄식하였다.

“왕조 교체는 자연의 법칙이니 누구도 막을 수 없네. 한 왕조의 파멸을 반드시 감정의 몰락을 동반하지. 그렇기에 제자를 거두려는 것이네. 제자를 거두지 않는다면 술사 체계는 역사의 먼지가 될 게야. 말하자면 그해 무종이 반역을 꾀하여 다행이네. 비록 황실의 혈통이 바뀌었지만, 대봉은 여전히 대봉이니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저 수련 경지가 떨어졌을 뿐 육신이 죽고 도리를 잃은 건 아닐세.”

‘그래서 끊임없이 제자에게 칼이 꽂히는 게 술사 체계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운명이라고?’

허칠안은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해 그 혈통을 도와 제위 탈환을 시도하면, 다시 1품 위치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이는 확실히 쉬워 보이는 일이지.”

백의 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면 당대 감정이 2품으로 다시 떨어지면 그는 스승을 시해할 계획을 새롭게 짜는 건가요?”

‘사제 간에 무한대로 복수극을 반복한다고?’

백의 술사는 그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자네 무슨 유언이 더 있는가?”

허칠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백의 술사는 손을 내밀어 허칠안의 품에서 지서 파편을 꺼내 가볍게 문질렀다.

허칠안은 머리가 한동안 지끈지끈 쑤셨다. 자신이 지서 파편과 ‘주종관계’가 끊겼다는 걸 알았다.

그는 문득 가슴이 철렁했다.

백의 술사는 옥석경을 쏟아내더니 은은한 빛을 뿜는 물처럼 맑고 투명한 장검을 꺼냈다.

그런 뒤 그는 다시 지서 파편을 허칠안의 품에 쑤셔 넣었다.

‘나, 나한테 돌려준다고?!’

허칠안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저 자신의 월영검만 꺼낸다고?’

이 검은 희겸을 죽인 뒤 얻은 전리품이었다.

품질은 그의 태평도보다 못하지 않았지만, 기령(器靈)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절세신병 대열에 오를 수 없었다.

“자네는 4품 진법사의 참뜻을 아는가?”

백의술사는 손에 월영검을 들고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는 허칠안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진법은 사실 천지의 법칙이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불러내겠는가? 어떻게 천지의 힘을 빌려 쓰겠는가? 그러므로 내게 시간을 주기만 하면 나는 유가가 바꾼 천지 법칙을 깊이 깨달음으로써 파헤칠 수 있지.”

그가 말을 하면서 손바닥을 월영검에 문지르자 뒤틀린 심오한 주문이 나왔다.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이 주문들을 직시하면 두통이 생기고 현기증이 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입을 터였다. 이러한 감각은 그 용 이빨을 직시했을 때 기분과 같았다.

백의 술사는 월영검을 치켜들고 가볍게 베었다. 원장 조위의 ‘화지위뢰’가 바로 산산이 조각났다.

‘그가 나한테 이렇게 많이 말한 건 정말 시간을 낭비하려던 게 아니라 이 천지의 법칙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칠안은 마음속에서 깨달음이 솟구쳤고, 갑자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감정이 얼마나 무섭고, 초대 감정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런 사람과 싸우면 실수 허용치가 너무 낮아 부담이 너무 컸다.

이에 비하면 정덕은 상대적으로 반쯤 미친 만큼 정말 너무 상대하기 쉬웠다.

백의 술사는 느긋하게 월영검을 거두더니 안색이 다소 변한 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음, 하마터면 한 가지 일을 잊을 뻔했군. 내가 자네 천기도 차단해야겠네.”

허칠안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그는 천천히 말했다.

“검주에 있을 때 자네는 무림맹의 그 선조와 관계를 맺었지. 절반은 2품인 무사의 전투력은 조위보다 더 강하네. 하지만 무사는 무사일 뿐이지. 상대하기에 어렵지 않아. 내가 자네를 차단하기만 하면 그는 자네의 존재를 잊게 될 걸세.”

허칠안은 낯빛이 보기 좋지 않았다. 그는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소리 없이 입을 벌렸으나 더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백의 술사는 손을 들고 그를 향해 가볍게 문질렀다.

시야가 깜깜해졌다. 마치 무엇인가 가려진 듯했다.

백의 술사는 허칠안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가세!”

두 사람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역시나 전송해서는 안 되는 규칙을 이미 풀었다.

* * *

허평지는 관도 위에서 말을 채찍질하며 질주하던 중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자신이 지금 뭘 하러 가는지 알지 못하여 말고삐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뭘 하러 가려던 거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마침 그가 당혹스러워하던 사이, 뒤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허 대인, 뭐 하러 가십니까?”

허평지가 고개를 돌려 보니 운록서원의 장진이 바람을 몰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저도 제가 뭘 하려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망연하게 대답했다.

장진이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멀쩡하다가 어째서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시는지요? 대인의 처자식이 아직 서원에서 대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평지는 미간을 찌푸렸고,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맞다, 조카가 운주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그는 온종일 늘 울적했으며 딸 영월은 조카의 물건을 보며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

작은딸 허영음은 밤에 자주 울면서 깨어나 큰오라버니를 찾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그녀는 이따금 큰 오라버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 슬픔을 식사량으로 바꿔 다섯 그릇을 연속으로 먹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어도위 백부장직을 내려놓고 처자식을 데리고 검주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허평지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울적한 표정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칠안이 운주에서 전사한 후로 시도 때도 없이 정신을 잃고 알 수 없는 일을 하곤 합니다.”

‘칠안? 누구야…….’

장진은 어리둥절하더니 물었다.

“칠안이 누굽니까?”

허평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조카입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운주에서 전사했습니다.”

장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신년은 그의 학생이었지만, 그와 허씨 집안은 깊은 교집합이 없었다. 그는 이번에 학생 허신년의 부탁을 받아 허씨 집안 사람이 검주에 정착하러 가는 걸 배웅하는 참이었다.

* * *

초원진은 경성 교외에서 검 등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황제가 도리를 모르면 나라와 백성에게 재앙이 닥치는 법이나 마도를 제거하고 도리를 지키는 고단자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니면 우리 대봉의 600년 가업이 혼군의 손에 망가졌을 것입니다.”

항원 대사는 양손을 합장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애석하게도 고단자가 귀신처럼 왔다 가서 이름을 남기지 않고 옷소매를 뿌리치고 가더군요. 공로와 이름을 깊이 감추었습니다.”

이묘진은 비검 위에 서서 뛰어난 재기를 뽐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까닭 없이 겁이 났다. 자신이 뭔가 중요한 물건을 잃은 듯했다.

리나가 꼬르륵거리는 배를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일이 끝났으니 저도 운록서원으로 돌아갈 때가 됐습니다. 허씨 집안 사람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여기까지 말한 순간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이 왜 허씨 집안에서 묵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몇 초 뒤, 그녀는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맞다, 그녀가 경성에 온 뒤 허씨 집안 아가씨 허영음을 마주쳤으며 망망대해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를 발굴하였다. 그래서 리나는 그녀를 제자로 거두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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