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화. 황제 (3)
허칠안은 가뿐하게 영룡의 등 위로 올라탔다. 오른손에는 진국검을 들고 왼손으로는 유가 성인 조각칼을 쥔 채 영룡을 밟았다.
“불가능해! 이건 불가능해!”
정덕제의 표정이 아주 흉측하게 변했다. 그는 부릅뜬 눈이 살짝 떨렸다.
“네가 무슨 근거로 영룡을 부리고, 네가 무슨 근거로 진국검을 사용하지?!”
그는 세상에게 배신당한 듯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느낌은 마치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그의 가슴을 세차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진국검은 선조 황제가 물려준 물건으로 령(靈)을 지녔기에 황실 구성원만 이를 알아보았다. 영룡은 더욱이 황실에 의지하여야만 상서로운 기운을 삼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에 그를 선택한 건 없었다.
정덕제 뿐만 아니라 경성 안의 어떤 이들도 더욱 충격받았다. 예컨대 태자, 회경, 4품 무사들, 황실 종친이었다.
* * *
황궁의 태자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오문 성벽에 올랐다. 성벽 위에서 조망하니 요원한 하늘가에 격투를 벌이는 양측이 어렴풋이 보였다.
“왜, 왜 진국검은 허칠안을 선택했지? 왜 영룡이 허칠안을 선택했지?”
태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본 태자에게 알려줄 건가? 누가 본 태자에게 알려줄 거지?”
더욱이 태자는 어릴 때 영룡에 타는 걸 가장 좋아했다. 그리고 영룡은 황실 구성원하고만 친근했기에 득의양양하며 스스로 기쁨에 젖었더랬다. 이는 황실 구성원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종실에게는 이런 특권이 전혀 없었다.
군주, 세자 및 훈귀 자제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안가에서 부러워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무엇을 보았는가? 영룡이 기꺼이 ‘평민’의 신분이 되어 그를 위해 피 흘려 싸우길 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허칠안이 영룡을 타고 한 나라의 군주와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태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곁에 있는 문무백관의 표정은 복잡했으나 그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렇다. 왜 영룡이 허칠안을 선택했는가?
왜 폐하께서 진국검을 불렀는데 진국검은 허칠안을 선택했는가?
허칠안은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일련의 물음표가 군신들의 머릿속에 스쳤다.
허칠안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신분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선 영룡과 진국검이 어떻게 폐하가 아닌 그를 선택하겠는가!
“그, 그는 도대체 누군가? 설마…… 폐하의 사생아?”
어떤 문관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위의 관원들은 다 듣더니 오히려 사색에 잠겼다.
태자는 가슴이 갑자기 철렁했다.
“아니, 허칠안은 스무 살이 되었는데 폐하께서는 도를 닦은 지 이미 21년일세. 정확하게 말하자면 21년 반이지.”
“그럼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태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방금 그렇게 이성을 잃은 이유는 사실 마음속으로 같은 추측을 했기 때문이었다.
“폐하께서는 극악무도하기 때문이네!”
사람들이 목소리를 따라 보니 왕 재상이 있었다.
왕 재상은 모든 신하를 둘러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
“허칠안이 황성 밖에서 한 말은 전부 사실이네. 폐하께서 무신교와 결탁하여 대군의 군량미를 끊고 무신교와 힘을 합쳐 위연을 죽였네. 황제가 극악무도하니 허칠안이 이를 벌하는 것이지.”
군신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 재상의 이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그들은 폐하께서 절세 수련 경지를 지녔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참이었다. 그리고 진국검과 영룡의 선택 역시 이 얘기를 뒷받침했다.
황실만 인정하는 신병과 영수가 전부 허칠안을 선택하였다.
이는 어떤 증거보다도 쓸모 있었다.
‘아둔한 군주!’
제공들의 마음속에 이 단어가 스쳤다.
* * *
경성 교외, 낙옥형은 단검에 걸쭉한 액체를 베어버리고 냉소를 지었다.
“어떠합니까?”
흑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에는 악의와 광기가 있었지만, 더 많은 건 두려움이었다. 그는 목숨을 건 전투를 더는 하지 않았다. 그저 엉겨붙었다가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였다.
‘그의 기운은 역시나 강성하군. 영룡도 진국검도 모두 그를 선택했어…….’
낙옥형은 입을 오므렸고, 웃음기가 더 깊어졌다.
* * *
마찬가지로 경성 교외, 다른 곳에서 초원진은 검 등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먼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파동은 아주 미약하게 전해졌으나 네 사람은 놀라고 겁이 나 벌벌 떨었다.
“이게 바로 그의 비장의 패인가?”
초원진이 옆에 있는 천종 성녀를 쳐다보았다. 장원랑은 더없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는 도대체 정체가 뭔가?”
일찍이 그는 삼호가 허신년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삼호가 색마 허칠안인 걸 알아차렸다. 지금 허칠안은 여전히 허칠안이었지만, 초원진은 허칠안이 허씨 집안의 허칠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나.”
이묘진은 눈을 희번덕였다.
그녀는 허칠안의 신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허칠안이 정덕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뜻밖의 사고가 생길지 생기지 않을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정말 불가사의해, 정말 불가사의하단 말이야…….”
초원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덕제는 극악무도하니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는 걸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영룡과 진국검이 허칠안을 선택하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리석고 극악무도한 군왕은 어디에나 있었으나 두 존재가 이렇게 적극적인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문제는 아무래도 허칠안에게 있었다.
리나가 진지한 분위기 속에 한 마디 중얼거렸다.
“너무 배고파.”
* * *
“무슨 근거로? 네가 이미 뭇사람에게 버림받았으니 영룡과 진국검이 대봉이 아니라 나를 선택한 것이다.”
허칠안은 힘을 다 비축한 뒤 조각칼로 냉정하게 찔렀다. 목표는 원경제의 미간이었다.
유가 성인의 조각칼, 천지일도참, 심검, 사자후, 양의가 하나가 되었다.
옥쇄!
눈부신 청광이 폭발하면서 눈을 자극했다.
궁지에 몰린 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므로,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기보다는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게 나았다.
이 칼은 피할 수 없었다.
땅, 바람, 물, 불이 네 가지 색으로 합쳐져 돌고 돌았다. 다소 탁해 보이는 보호벽이 조각칼 앞을 막았다.
용맥의 령의 입, 투명한 구슬 안에서 무신의 눈알이 검은빛을 내뿜었다.
“후!”
영룡은 대량의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어 조각칼에 주입하였다. 그렇게 상서로운 기운과 청기가 어우러지게 했다.
검은빛이 조각칼에 부딪혀 흩어졌다.
땅, 바람, 물, 불의 힘이 뿔뿔이 흩어졌다.
정덕제와 허칠안의 이마에 차례차례 균열이 생기고 피가 흘러나왔다.
“아!”
정덕제는 비명을 질렀다.
양신이 중상을 입었다.
허칠안은 물러설 곳이 없었지만, 황제를 시해할 수는 있었다!
허칠안은 이마에 흐르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국검을 치켜올렸다. 영룡이 고개를 돌려 다시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기운이 검신을 휘감았다.
진국검이 윙윙대며 진동하였다.
“영룡!”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영룡은 포효하면서 금룡과 원경제에게 달려들었다. 허칠안은 이 영수를 몰면서 진국검을 휘둘렀다.
옥쇄!
또 한 번의 옥쇄였다.
검은빛이 연이어 반짝였다. 무신의 눈알은 끊임없이 검은 빛을 쏘아댔지만, 허칠안의 의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영룡이 내뿜는 상서로운 기운을 상쇄시킬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었다.
정덕제의 양신이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 순간, 땅, 바람, 물, 불이 합쳐진 사상지력(四象之力)을 다시 부릴 힘이 없어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고 권의를 날렸다.
퍽!
진국검은 검은빛을 무시했으며, 허칠안은 주먹에 완강히 저항하여 칼끝으로 정덕제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마치 손에 긴 창을 쥔 기병처럼 적을 높이 치켜올렸다.
허칠안의 가슴에 피가 흘렀다. 마찬가지로 관통상을 입었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칼자루를 눌렀다. 진국검이 더욱 깊숙이 박히며 검기가 3품 무사의 생기를 갉아먹었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 21년간 도를 닦으시면서 꿈속에서 백성들이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정덕의 목덜미를 잡고 진국검을 뽑더니, 정덕의 두 발을 잘랐다.
정덕제는 중상을 입어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양신이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지풍수화를 응집하여 사상지검(四象之劍)으로 합친 뒤 허칠안의 가슴을 찔렀다.
“폐하, 신이 위 공과 팔만 장병을 대신해 빚을 독촉하겠습니다.”
그가 비웃었다.
진국검이 다시 오른팔을 잘랐다.
“이 역신 같은 놈을 봤나!”
정덕제는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웠고 더욱더 굴욕감에 시달렸다. 60년 동안 조당을 좌지우지하다가 오늘 한 필부에 의해 조상 대대로 전해진 진국검에 찍힌 채 대놓고 비난을 받았다.
그는 남은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허칠안의 관자놀이를 세차게 내리쳤다.
땅!
거대한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허칠안은 순식간에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렸다. 뒤통수의 화염 고리가 하마터면 꺼질 뻔했다.
진국검은 정덕제의 마지막 팔을 베어버렸다.
사지가 전부 절단되었다.
허칠안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천천히 괴이한 웃음을 지었다.
“네게 말한다는 걸 잊었군. 임안과 나는 이미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너를 죽이고 내친김에 제위에 올라 네 자리를 대체하고 네 손녀에게 장가들 것이다. 음, 명목상으로는 네 딸이지. 네 모든 건 전부 내 것이다. 오늘 온 경성 사람들이 내가 너를 죽이는 걸 지켜보고 있다!”
정덕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두덩 안의 눈동자가 떨렸다.
굴욕, 분노, 원망……. 갖가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는 두 시대를 살며 찬란한 일생을 보냈고 지고지상한 권력을 누렸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렇게 굴욕적인 방식으로 결말이 날 줄이야!
허칠안은 검을 그의 목에 대고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했다.
“이번에 내가 네 몸을 망가뜨려 네가 다시 살아나기 어렵게 하겠다.”
그가 한 번 그으니 사람 머리가 굴러떨어졌다.
양신이 구멍에서 나와 재빨리 도망치자 정덕이 큰소리로 외쳤다.
“자!”
용맥의 령이 하늘로 올라와 입을 크게 벌리더니 정덕의 양신을 배 속으로 삼켰다.
“허칠안, 짐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짐은 모든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너를 죽일 것이고,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죽여 대대손손 평안치 못하게 할 것이다.”
금룡 몸속에서 정덕의 원망하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용맥은 기운의 일종에 속했기에 허칠안은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조각칼과 진국검 역시 그걸 벨 수 없었다. 영룡이 기운을 삼킬 수는 있지만, 용맥의 령은 순수하게 상서로운 기운이 아니었다.
그는 용맥의 특수성이 자신의 마지막 보호막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육신이 다 망가졌지만, 양신이 존재하는 한 그는 여전히 2품이었다.
바로 이때 허칠안의 품에서 지서 파편이 튀어나오더니 약간 구부러진 용 이빨이 거울 안에서 나왔다. 표면에 새겨져 있는, 머리가 아찔해지고 눈이 어질어질해질 만한 주문이 빛났다.
용 이빨은 휙휙 소리를 내며 가더니 용맥의 령을 손쉽게 따라잡아 그것을 관통하였다!
“안 돼!”
정덕제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용맥의 령이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튀더니 흐르는 빛이 되어 지평선 끝으로 사라졌다.
정덕의 양신은 더는 의지할 것이 없었다. 용 이빨의 공격을 받아 그의 양신이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허칠안은 영룡을 타고 달려왔다. 조각칼이 정덕의 미간을 매섭게 찔렀으며 진국검은 가슴을 찔렀다.
눈부신 청광과 검기가 퍼져나갔다.
양신은 마치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단단한 얼음처럼 재빠르게 녹았다.
“정덕, 죽을 때가 되었구나.”
“허칠안…….”
내키지 않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 사이로, 음신이 거의 사라졌다.
60년 동안 조당을 굽어본 이 제왕은 종적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