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2화. 황제 (2)
“와앙……!”
귀를 진동하는 용의 울음 사이로 금빛 용 한 마리가 경양전 지붕을 뚫고 나갔다. 황궁 사람들은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용, 용?!”
깜짝 놀란 소리가 사방에서 일었다.
용맥의 령(靈)이 지하를 떠나 대봉을 벗어났다.
이 금룡은 입에 구슬 한 알을 머금은 상태였다. 구슬 안에는 소용돌이처럼 그윽한 눈알이 하나 감추어져 있었다.
황성 어느 호수, 영룡은 검은 단추 구멍 같은 눈으로 하늘에서 어슬렁거리는 금룡을 뚫어지게 보았다. 영룡은 이를 드러내고 입을 일그러뜨렸다. 극도로 분노한 듯 보였다.
* * *
상백, 개국 황제의 조각상이 손에 쥔 황동검에서 귀를 자극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 * *
“보게, 교룡인가?”
“모두 어서 보게. 하늘에 교룡이 있네.”
행인들은 이 순간 잇따라 고개를 들어 경성 상공에서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며 이따금 용의 울음을 내뱉는 금룡을 쳐다보았다.
일반 백성은 교룡만 알았다. 북방 요족의 교룡은 시시때때로 화본에서 사악한 악역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아주 생동감 넘치는 인상을 지녔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방금 그 검들은 어찌 된 일이지?”
“모르겠네. 조정에서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자고. 모두 방이 붙는 곳에 가서 기다리게.”
사람들은 갖가지 심상치 않은 전조와 방금 본 용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했으며 위압감에 시달렸다. 모든 생명이라면 그 위압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감정은 관성루에 용맥의 령이 나타난 순간 결국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말라버린 옛 우물 같은 잔잔한 두 눈에서 눈부신 청광을 내뿜었다.
감정은 손을 들고 금룡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는 금룡과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살륜아고는 손에 양몰이 채찍을 쥔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봉에서 내가 비록 자네 상대는 아니지만, 자네를 저지하는 일쯤은 할 수 있지.”
감정은 잠자코 있었다.
* * *
정덕제는 하늘로 뛰어올라 큰소리로 말했다.
“자!”
금룡은 부름을 받고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구름을 몰고 왔다.
정덕은 용 머리를 밟고 고공에서 허칠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높이 서서 뭐 하게?”
허칠안은 허공에 떠서 정덕제와 멀리 대치했다.
용맥의 령을 밟고 있는 정덕제는 기운이 몸에 더해졌다. 또한 그는 무신의 힘이 동반하여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대봉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짐은 몸에 기운이 더해진 한 나라의 군주다. 허칠안, 너는 뭘 가지고 나와 싸울 것이냐? 네게 유가 성인의 조각칼이 있다면, 짐에게는 진국검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레와 같이 세찼다.
이 순간 경성 각지에서 들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먼 곳 하늘의 금룡을 멀리 바라보았다. 비록 용 머리 위의 사람 형체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정덕제가 방금 한 말은 확실히 제대로 들었다.
“저 사람이 자기를 ‘짐’이라고 칭했네. 저 사람이 폐하라고?”
“그가 허 은라와 싸운다니…….”
대봉에서 자신을 감히 ‘짐’이라고 칭하는 자는 한 명뿐이었다.
“뭘 가지고 너와 싸울 거냐고?”
허칠안은 똑바로 앞을 주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떤 일들을 네게 말해줘야겠군. 네가 분명히 알고 죽을 수 있도록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정덕제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성 안의 백성들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한 청력이 없었다.
정덕제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낙옥형이 왜 너와 쌍수하길 원치 않는 줄 아느냐?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가 나이기 때문이다.”
정덕제는 코웃음을 치더니 냉소를 지었다.
“약 올리는 것이냐? 어리석기는. 만약 네가 이 천박한 말로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다면 계속해도 무방하다.”
허칠안은 일 갑자 동안 용의에 앉았던 황제를 불쌍히 바라보았다.
“너는 나와 이렇게 오래 맞붙었는데 나 역시 심검을 할 줄 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느냐?”
정덕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초원진과 나는 벗이지만, 그는 인종이 기명한 제자로 검술을 제멋대로 밖에 퍼뜨리지도 않을 것이고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검주에 있을 때 나는 부적으로 낙옥형을 부른 적이 있었고, 그녀는 당연히 와야 했다. 그녀의 남자가 위험에 빠졌으니까. 그렇지 않고선 영보관에 20년간 틀어박혀 좀처럼 외출하지 않고, 좀처럼 나서지 않는 그녀 성격으로 아무런 까닭 없이 나서겠는가?
그리고 너는 그녀가 우리 사이의 전투에 개입하는 게 새로운 군주가 제위에 오르는 걸 돕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느냐? 만일 내가 그녀가 나 때문에 나서는 거라고 말한다면?”
허칠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정덕의 안색이 계속 어두워졌다.
그는 낙옥형을 오랫동안 탐냈기에, 20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와 쌍수하고 싶어했으나 매번 거절당했다.
그런데 지금 허칠안이 그에게 그녀가 자신을 거절한 이유가, 뜻밖에도 그를 흠모하여 그와 쌍수하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건가?
설령 정덕이 낙옥형에 대해 그저 나쁜 마음을 품었다고 해도,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참, 한 가지 일이 더 있다.”
허칠안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왕은 내가 죽였고, 상백 밑의 봉인물이 내 몸속에 있다는 걸 이미 알겠지. 그렇다면 왕비의 행방도 아주 잘 알고 있겠군.”
정덕제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허칠안은 여유롭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 내 별가에 있다.”
혈기가 단숨에 얼굴로 치솟았다. 낙옥형이 그저 체면만 깎았다면, 허칠안이 왕비를 거두었다는 말은 그에게 적나라한 치욕으로 작용하며 그의 존엄을 짓밟았다.
왕비는 그의 여인이고 그의 후궁의 여인이었다. 설령 나중에 진북왕에게 보내긴 했다고 해도 진북왕 역시 그 아니던가?
그는 명색이 한 나라의 군주로서 이런 치욕을 단연코 견딜 수 없었다.
“허칠안, 짐이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
정덕제는 완전히 폭주하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포효하였다.
“검이여, 오라!”
초주에 있을 때 그 신비로운 고수가 진국검을 든 적이 있었다. 정덕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스러웠는데 허칠안의 신분이 완전히 까발려지자 그제야 문득 모든 걸 깨달은 듯했다.
마치 상백 밑의 마승이 감정에게 천기를 차단당했듯이, 그날 허칠안이 진국검을 쥘 수 있었던 것도 반 이상은 감정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황실 외에 진국검을 들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날의 회왕은 친왕이고, 지금의 그는 진짜 제왕이었다.
게다가 그는 용맥의 령을 밟고 있는 한 나라의 군주였다.
대봉 전체에서 이런 기운은 유일무이했다.
감정은 이때 살륜아고에게 붙들려 더는 나서서 막을 수 없었다.
쿵!
상백, 영진산하 사당이 폭발하고 황동검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흐르는 빛이 되어 날아갔다.
이 흐르는 빛은 고개를 든 사람들의 눈동자와 하늘을 가로질렀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유광(流光)을 쫓아갔다.
대봉의 지보 진국검이었다!
그해 산해관 전역 때 황제가 영진산하 사당에서 진국검을 꺼내어 진북왕에게 맡겼더랬다.
이 미담은 아주 널리 퍼졌다.
진국검은 대봉 황실의 상징으로 이는 평범한 백성들도 아는 상식이었다.
* * *
경양전 밖, 회경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진국검…… 큰일났다!”
“진, 진국검…….”
태자 전하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왕 재상을 바라보았다.
지금 벌어진 이 모든 일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갑자기 하늘로 솟은 금룡, 갑자기 경이로워진 부황……. 그리고 황실을 상징하는 대봉의 절세신병인 진국검!
큰 재난이 눈앞에 닥쳐왔다.
“왕 재상!”
왕 재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신중을 잃지 말라는 의사를 표했다.
* * *
내성, 어느 소원에서 수수한 치마를 입은 여인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지붕 위로 올랐다.
그녀는 하늘가를 조망하고 있었다. 전투하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이따금 천둥소리와 같은 폭발음만 몇 차례 들릴 뿐이었다.
‘이 날이 조만간 올 거라는 걸 나는 알았지. 위연이 죽은 뒤 나는 자네가 황제를 시해할 거라는 걸 알았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하네.’
* * *
경성 교외, 기운이 극도로 쇠약해진 흑련 도사는 다시 한번 몸을 회복했다. 그는 거칠고 안하무인인 절세 미녀를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낙옥형, 들었느냐? 진국검은 무사의 육신을 전문적으로 부수지. 감정이 손을 내밀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경성 관내, 아니 대봉 관내에서 정덕이 무적이야.”
‘무적?’
낙옥형은 ‘허’ 하고 소리 냈다.
“본 국사가 당신이 조금 더 살도록 허락하지요.”
그녀는 즉시 고개를 돌려 경성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전투 이후, 자네는 내 사람일세.’
그녀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 *
감정은 팔괘대 옆으로 걸어가 상백에서 시작되어 경성 절반을 가로지른 유광을 바라보았다.
살륜아고는 손에 쥔 양몰이 채찍을 꽉 쥐었다.
두 1품은 맞붙지 않았지만, 서로의 영역에서 이미 소리 소문 없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 * *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유광을 쫓았다. 이 전봉 대결에서는 진국검이 핵심으로, 전체적인 승패에 영향을 미쳤다.
허칠안의 눈동자에 진국검에서 발사된 빛이 비쳤다. 그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더니 멍하게 변했다. 주의력이 분산되어 공허함이 드러났다.
그의 머릿속에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때 지푸라기처럼 하나씩 쓰러져 간 백성들이 스쳤다. 그는 진북왕을 죽인 뒤 공수하며 경례한 성벽 위 병사들이 떠올랐다. 경성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녔으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쓸쓸한 뒷모습의 정흥회가 떠올랐다. 눈을 감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은 그가 떠올랐다.
채시구의 숭배하고 존경하는 눈빛들이 떠올랐다. 옥양관 밖, 고향 수호를 갈망하며 적군을 격퇴한 대봉 병사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청의를 떠올렸다.
명성이나 자신이나 모두 그 사람이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평생 두 가지를 위해서만 살았다. 하나는 사랑, 하나는 신념이었다.
전자는 자신, 후자는 나라와 백성이었다.
‘나는 평생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는 손을 뻗어 소리쳤다.
“검이여, 오라!”
그 유광이 휙휙 소리를 내며 오더니 허칠안의 손에 떨어졌다.
그는 지금껏 궤적을 바꾼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은 허칠안을 선택했다.
이 절세신병이 선조의 혈통을 버리고 외부인을 선택하였다.
‘진국검이 허칠안을 선택했다…….’
이 광경을 본 자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칠안은 황동검을 쥐고 정덕제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소리쳤다.
“영룡!”
아오오오!
황성 및 황궁에서 수많은 사람이 영룡의 포효 소리를 들었다.
영룡은 파도를 헤치고 나와 구름과 안개를 몰고 하늘을 날았다. 영룡은 콧구멍에서 조금씩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었으며, 그 비늘은 자줏빛이 감돌았다.
영룡의 골격이 ‘철컥철컥’ 낭랑한 소리를 내며 놀랄 만한 변화를 일으켰다. 비늘 아래 근육이 하나씩 돌출되더니 용의 몸뚱이가 길어지면서 더 길고 힘차게 변했다.
머리 위에 뿔이 갈라지고 목덜미 쪽에 촘촘한 갈기가 자라났으며, 발톱과 송곳니가 더 날카로워졌다.
검은 단추 구멍 같은 두 눈동자는 움츠러들었다가 길어지더니 세로 눈으로 변했다.
그는 점점 더 진정한 의미의 용처럼 변했다.
영룡은 구름을 부리며 아주 빠른 속도로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주인’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