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격전 (2)
경성 안, 비록 성문이 닫혔지만 성을 나갈 필요 없는 대부분의 백성들에게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도리어 오늘 아침 황성 문밖의 그 풍파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인상이 깊었다.
허 은라가 사람 머리를 내던지고 황성으로 갔다. 그는 혼자서 칼 한 자루 들고 황성에 난입하였다.
그리고 그가 전에 외쳤던 그 말, ‘필부가 분노하였으니 다섯 걸음마다 피가 튀기고 천하가 상복을 입을 것이다’라고 외쳤던 그 한 마디는 이미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아둔한 군주여, 십만 대군의 군량미를 끊고 간신과 함께 충신을 모함하다니. 이런 우둔한 군주가 있으니, 어찌 멸망을 걱정하지 않겠는가!”
“이, 이건 정말 너무 믿기 어렵네. 내가 허 은라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닐세. 그저 자네들은 위연이 야경꾼 관아의 대장임을 알아야 하네.”
“자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허 은라가 사리사욕을 위해 황제를 모독하는 그런 사람인가?”
“그러게. 허 은라가 이렇게 말한 이상 무조건 사실이지.”
전반적으로 백성들은 여전히 허 은라를 신뢰하였다. 조정과 원경제가 초주 백성 대량 학살 사건에서 경성 백성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어쨌거나 황제였다. 한 나라의 군주로, 지위가 숭고하며 대봉 전체가 그의 것이었다. 황제가 이렇게 적국과 내통하는 일을 벌이는 건 확실히 좀 상식적인 이치에 부합하지 않아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나중에 잠잠해졌네. 우리가 성 밖에서 오랫동안 힘들게 기다렸는데 성문이 닫히는 것만 봤을 뿐, 허 은라를 다시 보지는 못했네.”
“허 은라가 성으로 쳐들어간 뒤, 기척이 없네. 변고가 생긴 건 아니겠지.”
“가만히 지켜보자고. 비록 나는 허 은라를 아주 믿지만 이 일은 너무 크네. 나중 일을 조용히 기다리자고……. 나는 아직도 폐하께서 이런 일을 했을 거라고 믿지 않네. 그는 황제지 않나.”
시정, 주루, 기생집, 무릇 사람이 있는 곳에서라면 모두가 이 일을 논했다.
믿는 자들도 믿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모두가 관망하면서 진상을 기다렸다.
* * *
정덕은 허칠안과의 육탄전을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광란의 거센 바람이 그의 속도를 부추겼다. 본체가 잔영을 남기며 허칠안의 뒤까지 이르렀다.
허칠안은 위기에 대한 무사의 예감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건 정덕제 영혼의 포효였다.
십여 개의 법기가 전투 중에 거의 다 파손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원시적인 방식을 통해 이 저속한 무사에게 원신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무사가 2품 도겁의 정신 공격을 받으면서 잠시 교착 상태로 접어들었다.
진북왕의 둘도 없는 권의가 폭발하면서 허칠안의 가슴을 세차게 내리쳤다.
땅!
천지에 큰 종소리가 울렸다.
허칠안은 거꾸로 날아갔다. 그는 날아가면서 손바닥을 내밀어, 추격해오는 정덕제를 조준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금살생(禁殺生)!”
효과가 없었다.
“회두시안(回頭是岸)!”
효과가 없었다.
“자비위회(慈悲爲懷)!”
효과가 없었다.
불문의 계율은 도문 2품 고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신수는 그저 단수일 뿐이라 시전할 수 있는 불문 법술이 계율을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았다. 더욱이 나한 과위, 불문 법상 같은 것들을 그는 전혀 할 줄 몰랐다.
적어도 그는 이 팔은 할 줄 몰랐다.
띵띵!
검광 두 줄기가 내리쳤다. 갑자기 허칠안의 몸에서 위력이 크지 않은 불똥이 튀었다. 심검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영혼을 베어 죽였다.
하지만 이번에 심검은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왜냐하면 허칠안이 공중에서 양손을 합장하고 두 다리로 가부좌를 틀었기 때문이었다.
불문 6품, 선사!
불문의 중놈이 이 자세를 취하면 그들은 만법불침이었다.
선공(禪功)을 날렸다.
정덕은 요괴처럼 다가오더니 허칠안의 머리를 눌렀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경물이 환영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 허칠안은 딱딱한 물체에 등을 부딪혔다.
성벽이었다.
정덕은 그의 머리를 누른 채 그를 단숨에 경성으로 돌려보냈다.
성벽 전체가 흔들리고 벽체에 진문이 반짝이더니 무시무시한 타격을 상쇄시켰다.
변방 웅성에도 아직 진법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경성이지 않은가.
땅!
허칠안은 바로 박치기를 해 정덕을 날려 보냈다.
정덕은 미끄러지며 재빨리 물러났다. 그의 눈에서 전의가 타올랐다.
이 자는 지난번에 초주에 있을 때 혈단의 사분의 일을 삼켜 정혈을 태우는 비술로 힘을 2품까지 억지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그는 허씨 정혈 외에는 태울 혈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도문 법술의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여 공방전을 벌이면서 허칠안이 정혈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었다.
초주 때의 상황은 반복할 수 없었다.
또한 상백 아래의 이 부정한 물건은 비록 불문 사람이지만 불문의 진정한 핵심 능력인 나한 과위와 보살 법상을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허칠안은 그저 무사였으므로 두 사람의 능력이 겹쳤다.
돌이켜보면 그는 무(武)와 도(道)를 겸비한 완벽한 쌍체계였다.
검광이 허칠안의 몸에 닿자 눈을 자극하는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이 자식은 육체적으로 무적이었기에 인종의 검법 역시 그에게 아주 큰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정덕제는 허칠안에게 맞고 날아간 뒤, 바로 반격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검처럼 모아 검지를 하늘로 향하더니 말했다.
“어검!”
순식간에 웅웅거리는 진동 소리가 성안에서 들려왔다. 마치 메뚜기 떼가 끝없이 몰려오는 듯했다.
성벽 위 병사들은 방금 갑자기 닥쳐온 ‘지진’에 아직 휩싸인 채 용기를 내어 아래를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허 은라는 다른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싸우는 대상은 상반신은 알몸에 다부진 근육을 가진 중년 남자였다. 말단 병사들은 회왕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순간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고 순간 멍해졌다.
성안, 철검들이 둥둥 뜨더니 성 밖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마치 메뚜기처럼 그 수가 방대해 헤아릴 수 없었다.
“신, 신선이다…….”
병사들은 고개를 젖히고 중얼거렸다.
경성 안에는 고수가 부족하지 않았기에 진작에 성 밖의 기기 파동을 눈치챈 사람들이 있었다. 그자들은 수많은 검이 떠오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각지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르거나 용마루에서 도약하여 외성으로 달려갔다.
전투에 이끌린 이 고수들 중에 외성에서 온 자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이 내성과 황성에서 온 자들이었다.
‘그가 일부러 나를 경성으로 되돌려 보냈나? 금군 다섯 병영을 나서게 하여 승산을 더하고 싶어서?’
허칠안은 귓바퀴를 살짝 움직여서 ‘철기’가 웅웅 진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수많은 검이 허공에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은 병사들처럼 각자 자리로 돌아가 누군가는 검 자루가 되고 누군가는 검신이 되고 누군가는 검 끝이 되었다…….
60장 길이에 달하는 거대한 검 한 자루가 천천히 형태를 이루었다.
외성의 백성들은 고개를 들기만 하면 먼 곳의 성벽 위에 절반 정도 돌출된 무시무시한 거대한 검을 볼 수 있었다.
성벽 위, 무사들은 규칙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성벽을 올라 마도 위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먼저 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검에 겁먹고 나서야 누가 이렇게 대단한 신통력을 부렸는지 확인할 엄두가 났다.
보지 않으면 괜찮았으나 한번 보면 다들 아연실색하였다.
“회왕?!”
“진북왕이다!”
깜짝 놀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 순간, 더 많은 무사가 몰려오더니, 성벽을 기어 올라와 깜짝 놀라는 소리를 들었다.
‘회왕? 회왕은 죽지 않았나?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 때 죽지 않았나?’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은 채 성가퀴에 가까이 다가서서 거대한 검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회왕?!”
그들은 눈만 크게 뜬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회왕인가? 누군가 역용한 건 아니고? 왜 허 은라와 결투하고 있는 거지? 허 은라가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변한 건가? 잠깐, 허 은라가 언제 회왕과 맞붙을 수 있게 된 거지?”
누군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허칠안은 온몸이 칠흑같이 까맸으며 뒤통수에는 화염 고리가 떠 있었다. 위엄 있고 차디찬 기질은 신 같기도, 악귀 같기도 했다.
그 칼과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침묵을 유지하며 대답할 수 없었다. 회왕의 신분이 진짜든 가짜든 허 은라가 희한하게도 회왕과 대진하든, 이 문제들은 상식 범위를 뛰어넘은 게 분명했다.
이때 황성에서 달려온 몇몇 고품 무사와 어느 귀족 저택의 객경들이 느긋하게 말했다.
“잊었는가? 오늘 아침에 허 은라가 폐하를 꾸짖고, 천하가 상복을 입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잖나. 그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걸세.”
진상을 모르는 무사들은 이 말을 듣자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 그랬군. 나는 허 은라의 말을 믿지 않지만, 지금 회왕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걸 보니 갑자기 좀 확신이 서지 않는군.”
“우리 집 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날 회왕이 신비로운 고수에게 시체가 갈기갈기 찢겨 완전히 죽었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위 공께서 전사하고, 허 은라는 반역을 일으키고, 회왕은 다시 살아나고…….”
“직접 물어보자고!”
누군가 한 마디 내뱉더니 성가퀴를 짚은 채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허 은라,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겁니까? 대인과 맞붙고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정말 회왕입니까? 대인께서 오늘 아침 황성에서 한 말이 사실입니까?”
그 무사는 어쩌면 자신의 수련 경지가 괜찮다고 여겨서 이렇게 물은 걸 수도 있었다. 설령 개입할 수 없다고 해도 말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명쾌하게 입을 뗐다.
정덕제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적어도 5품은 될 고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수를 쓰는 기색도 기기도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고개를 내밀고 큰 소리로 물어본 고수가 갑자기 성벽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원신이 사라지더니 소리 소문 없이 죽었다.
성벽 위가 고요해졌다. 일반 병사들도 구경하던 무사들도 질서정연하게 뒤로 물러나 겁에 질린 채 ‘회왕’을 쳐다보다가 바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도 이 무시무시한 인물의 주의를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두 번째로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간 가련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허칠안, 네가 백성을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겠다고 허풍을 떨지 않았던가? 너는 대봉의 양심 아닌가? 네 한 사람의 명성과 인망이 조정보다 낫지 않나?”
정덕제의 눈빛은 질투, 분노, 증오, 경멸이 모두 배어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60장 길이의 거대한 검을 들어 올리더니 소리쳤다.
“네가 만약 감히 이 검을 피한다면, 이 검으로 성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아느냐?”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처음과 끝은 줄곧 정덕제의 마음속에서 제거할 수 없는 가시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혈단과 혼단 정제를 꾀했으나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 망했으며 회왕의 분신은 초주에서 죽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돌아온 꼴이 되었다.
이 정도면 악을 퍼뜨리는 ‘요도’가 미친 듯이 화를 내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허칠안은 오문에 난입해 칼로 국공을 베어 죽였으며, 백성들 앞에서 존귀한 제왕의 얼굴을 호되게 먹칠하기까지 했다.
보잘것없는 인물에게 이렇게 체면을 깎인 기분은 어떤가?
나중에 감정, 조위 그리고 문무백관이 죄기소를 쓰라고 압박하면서, 그는 낯짝이 다시 한번 까발려지고 호되게 밟혔다.
심사가 아무리 깊은 사람이라도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정도였다. 하물며 그는 지금껏 자신의 사념을 숨기지 않았다. 정덕제는 지종 요도처럼 사람의 본성이 본래 악하다는 점을 확고히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