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화. 각개전투 (3)
쿵!
진북왕 몸의 갑옷과 투구가 갈라지면서 리나는 선이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무사의 난폭한 기세는 식은 죽 먹기로 항원 대사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리나의 두 팔은 비틀리고 구부러졌다. 뼈가 살을 찌르고 나와 그 자리에서 전투력을 상실하였다.
처음부터 천지회 사람들의 임무는 회왕을 죽이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결코 현실적이지 않았다.
우선 항원이 모셔온 이는 그해 나한의 영혼이었다. 실력은 분명히 진짜 형체보다 못할 터였다. 설령 나한의 진짜 형체가 직접 온다고 해도 3품 전봉의 무사를 죽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 영혼은 일각만 유지할 수 있었다. 일각 동안 추악하고 억센 고품 무사를 죽이겠다고?
마지막으로 3품과 4품은 천지 차이로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상대는 수없이 실수해도 괜찮지만 자기 편이 한 번 실수하면 자멸이 될지도 몰랐다.
회왕은 마음이 독하고 수법이 악랄한 자였다. 남이 병든 틈을 타 사람 목숨을 빼앗는다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상대가 일개 아녀자라고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는 이 기회에 리나를 해치우고자 했다.
항원 대사는 양손을 합장하였다.
“살생을 저지르면 안 됩니다.”
회왕의 권세(拳勢)가 멈췄다. 그는 다시 주먹을 내밀기 어려웠다.
이묘진은 기회를 잡고 손바닥으로 리나를 조준하더니 힘껏 뿌리쳐 그녀를 멀리 날려 보냈다.
그녀는 리나의 상처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역고부의 고수는 방어력이 무사처럼 비정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강한 회복력을 지녔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죽지 않기만 한다면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상처가 재생하는 시간은 상처의 중증도에 따라 결정되었다.
예전에 리나가 지하 궁전에서 음물(陰物)에 의해 중상을 입었었다. 치명상이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처음처럼 무탈해졌다.
천지회 넷 중에 한 명이 빠져 세 명만 남았다.
초원진과 이묘진 역시 천지회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한 사람은 인종 심법으로 수백 자루의 비검을 부렸으며 한 사람은 초혼번, 섭혼종(攝魂鐘) 등의 법기를 내던져 회왕을 진에 가두었다.
양측은 항원을 주축으로 하여 맹렬한 기세로 싸웠다.
격전을 벌이다 보니 쇳덩어리로 부서지거나 쇳물로 녹는 바람에 수백 자루의 비검을 다 써버렸다. 이묘진이 종문에서 가져온 법기 역시 마침내 바닥났다.
회왕의 기운은 이미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정도 경지의 무사에게 이는 그저 반 각 동안 토납하면 회복할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손실이었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초원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들 넷의 임무는 회왕을 일각 동안 지체시켜 그의 전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나한 사리자가 있으니 일각을 늦추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회왕에게 중상을 입히는 건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만약 회왕이 전봉 상태로 정덕을 지원하면 허칠안은 이자합일(二者合一)로 여지없이 패할 것이었다.
3품 전봉 한 명과 3품 고수 한 명이 융합하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회왕은 차가운 눈빛으로 청삼 검객을 주시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초원진, 멀쩡한 장원을 내팽개치고 무슨 검을 수련한다고? 이렇게 여러 해 수련했는데 미적지근한 자수 바늘만 한 더미 연마했구나. 짐이 두 왕조를 겪고 근 60년 동안 조당을 굽어보았다. 너처럼 자신이 의지와 기개가 있는 서생인 줄 아는 자를 너무 많이 만났지. 서생이 으스대는 게 가장 쓸모없는 짓이다. 관직에서 물러나 검을 연마하는 건 소탈해 보이지만 사실 어리석은 일이지. 네가 요 몇 년간 뭘 연마해냈느냐? 네가 짐이 도를 닦는데 불만을 품어봤자 또 어찌할 수 있겠느냐? 네 손에 있는 그 3척 청봉(靑峰)으로 나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할 수 있느냐?”
그해 이 사람은 남다른 재주로 장원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득의만면했다. 그는 애석하게도 사소한 일로 한 나라의 군주에게 원한을 품은 채 관직에서 물러나 검을 연마했더랬다.
지금 그는 완전히 힘을 상실한 군중일 뿐이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회왕은 말을 하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였다.
3품 고수에게 일대일로 찍힌 건 어떤 기분일까?
초원진은 이를 실감하였다.
그는 어깨에 마치 산 두 개를 짊어진 듯하여 그곳에 멍하니 섰다. 지금 그는 솜털이 곤두서고 손발이 살짝 떨렸다.
회왕이 ‘슉’하는 소리를 냈다. 4품과 3품의 차이는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와 같았다. 그는 책을 버리고 검을 연마한 이 장원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아미타불!”
항원 대사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불문 사자후를 시전했다.
“악인을 죽인다!”
살적과위(殺賊果位)!
그의 체내에 녹아있던 나한이 떠올라 하늘에서 금강노목법상이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빛이 법상 표면에 심오한 도안을 구축해냈다.
지극히 강하고 지극히 사나운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했다.
돌연 법상이 두 눈에서 금빛을 쏘아 회왕을 그 속에 가두었다.
회왕은 이미 위기를 예감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저주에 걸린 듯 피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그의 눈알이 튀어나왔다. 얼굴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은 구멍이 두 개 생겼다.
그의 콧구멍, 입, 귀에서 동시에 피가 흘러나왔다.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회왕은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이마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뒤로 젖혀지더니 비틀거리다가 벌렁 나자빠졌다.
이 일격 이후에 사리자는 사라졌으며, 항원은 기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는 여력을 전부 소모하여 더는 싸울 힘이 없는 게 분명했다.
회왕은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며 포효했다. 그는 이 일격으로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얼굴을 감싼 채 등을 구부렸다.
이묘진은 비검에서 내려와 항원을 향해 급강하하여 그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한 사리의 견제를 잃고서야 3품 무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았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회왕은 다섯 손가락으로 그녀를 힘없이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건대 그가 다섯 손가락을 단단히 쥐었으면 천종 성녀는 뼈도 못 추렸을 터였다.
초원진은 눈을 부릅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가 강호를 떠돌던 이래로 지금껏 칼집에서 나온 적 없던 등 뒤의 청봉검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왕이 이묘진을 ‘쥐고 죽이려’던 참에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청봉검의 떨림은 이미 극에 달했다.
“오? 초원진 너도 검을 뽑고 싶은가?”
회왕이 비웃으며 물었다.
“애송이, 감히 짐에게 검을 들이대느냐?”
4품이 애송이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초원진은 갑자기 손발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동자가 풀어지더니 지난 일이 연기처럼 떠올랐다. 과거의 기억이 마음속에서 어지러이 솟아올랐다.
초원진은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맡겨져 길러졌다. 그 부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한 대유 밑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의 이상, 학식은 전부 금란전에서 기둥에 부딪혀 죽은 그 대유에게서 비롯되었다. 스승님의 학식은 일류였지만, 애석하게도 벼슬아치 노릇을 할 줄 몰랐다. 그는 고집이 아주 센 나쁜 성격이라 조당에서 곤경에 처했다.
그가 평소에 초원진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바로 ‘나를 따라하지 말거라’였다.
원경 27년, 과거에 초원진은 좋은 성적으로 장원에 급제하였다. 은사는 학업을 전수하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가 어깨를 툭툭 치며 한 첫 마디는 여전히 ‘나를 따라하지 말거라’였다.
역대 장원은 전부 전도유망한 자들이었다. 좀 교활하게 굴고 흘러가는 대로 살기만 한다면 앞으로 포부를 펼치기 어려울까 걱정하겠는가?
초원진은 스승을 교훈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아니니 마음속이 열정으로 가득 찼다.
같은 해, 옹주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의 농사가 쫄딱 망했다. 조정은 구휼에 순조롭지 못했고, 도처에 굶어 죽은 사람이 널렸다.
하필 이때 원경제는 용광로를 건설하여 단약을 정제하였다. 한 계절에 대단(大丹) 하나로 은 이십여 만을 소모했다.
동료에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비웃음을 당한 그 지식인이 금란전에서 칼 같은 한 마디 한 마디로 원경제를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런 뒤 그는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죽었다.
황제 왈, 경이 정의를 좇아 목숨을 버렸다. 빠르도다.
감히 돕는 이가 없었다.
죽기 전, 학업을 전수한 은사는 초원진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나를 따라하지 말거라…….”
하지만 초원진은 그래도 갔다. 조당을 떠났다. 이때부터 청삼은 검을 들고 강호를 떠돌았다.
이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초원진이 큰소리로 말했다.
“칼집에서 나와라!”
‘쨍’하는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3척짜리 청봉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 검이 드디어 칼집에서 나왔다.
오늘 그대에게 보여주니, 누구 불공평한 일이 있는가?
쿵!
지면이 솟구치더니 흙덩이, 모래, 자갈이 잇따라 하늘로 솟구쳤다. 청봉검을 따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간, 초원진 뒤에 백 장 길이의 토룡(土龍)이 나타나더니 곧장 하늘로 솟구쳤다. 용머리가 바로 청봉검이었다.
검이 일어난다는 건 바로 이런 패기였다.
“가라!”
초원진은 검처럼 검지와 중지를 겹쳐 회왕을 향해 내질렀다.
그 토룡이 드높은 기세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던 중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주인 옆으로 돌아와 세 바퀴를 돌았다. 그러더니 휙휙 소리를 내며 회왕을 향해 돌진했다.
회왕은 이미 이 검의 강대함을 깨달았다. 초원진이 검지를 내밀 때 그는 재빨리 후퇴하여 우왕좌왕했다. 도깨비처럼 빨랐다.
청봉검은 ‘용신(龍身)’에서 벗어나 번쩍이더니 사라졌다가 다시 번쩍이더니 나타났다. 먼 곳에서 온 힘을 다해 피하던 회왕이 멈추더니 가슴에 난 큰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번에 심장을 꿰뚫었다.
초원진은 십 년 동안 배양한 서생의 의지와 기개를 오늘 전부 토해냈다.
진북왕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극한의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는 듯했다.
3품 무사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를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슴에 난 큰 구멍은 오랫동안 아물지 않았다.
회왕의 기운이 마침내 3품 전봉에서 떨어졌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다시 강호로 나와 여기저기서 날뛰며 원수를 맨손으로 때려죽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4품 애송이 몇몇과 싸워 힘을 다했다.
그 애송이들 때문에…….
진북왕은 가까스로 고통을 참으며 고개를 돌려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검은 점 같은 몇몇 형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애송이들은 흥분하며 도주했다.
이 상처들은 기껏해야 반 시진이면 회복할 수 있다지만, 그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어서 ‘자신’을 지원하러 가야 했다.
* * *
감정이 관성루에서 웃으며 말했다.
“허칠안이 정덕을 죽이는 데 얼마나 걸릴지 내기해도 무방합니다.”
살륜아고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를 상대하면서 정말 이렇게 자신만만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