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용맥을 아는가?
경성, 남원에서 수풀 밖에 새겨진 진법이 반짝이더니 황포를 입은 원경제가 나타났다. 그는 손에 태평도를 쥔 채 차가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고작 훑어봤을 뿐이었지만 바로 이곳이 황실의 사냥터임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260리의 광활한 임야로 전쟁터로서는 확실히 적합했다.
원경제는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서 깊은 악의를 내뿜으며 손을 털더니 태평도를 내던졌다.
그곳에서 청광이 반짝이더니 허칠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띵!
금색 빛이 폭발하면서 태평도가 튕겨져 날아간 뒤 기분 좋게 주인의 손에 들어갔다.
원경제는 참지 못하고 눈을 가늘게 뜬 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3품인가? 이해했다. 어쩐지 그날 위연의 혈기가 2품에 못 미치더라니. 알고 보니 후수를 남겼구나. 쯧, 만약 그를 너무 잘 알지 못했다면 짐은 어쩔 수 없이 네가 그의 사생아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그는 지종 도수에게 오염된 현재, 자신의 질투를 숨기지 않았다. 악의는 살의로 변했다.
질투는 인성의 가장 악한 감정 중 하나였다. 20년 동안 수양하여 보통 사람에서 2품 도겁으로 승직하여 구주 전봉이 된 황제는 이 젊은이를 진심으로 질투하였다.
그는 큰일을 위해 치욕을 참았지만, 상대방은 단숨에 높이 뛰어올라 명예와 이익을 얻고 위연조차도 기꺼이 그를 위해 길을 터줬다.
고작 1년 사이에 보잘것없는 땅강아지 한 마리가 3품 무사가 되었다.
허칠안은 칼을 칼집에 거두고 힘을 비축하면서 냉소를 지었다.
“만약 내가 네게 회경과 사황자가 그의 혈통이라고 말한다면 믿겠는가?”
원경제는 서서히 표정을 가라앉히고 차갑게 말했다.
“네가 짐을 도발하는 것이냐.”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허칠안의 거리낌 없는 칼이었다.
눈부신 도광이 쪼개졌다.
태평도, 천지일도참, 심검, 양의, 그리고 불문의 사자후!
빛이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졌다!
원경제는 이 칼의 강대함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허칠안의 형체가 사라졌다가 재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원경제의 노란 형체도 그를 따라서 번쩍하고 나타났다가 다시 번쩍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어떻든지간에 이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양손을 뻗자 손바닥 한가운데 금빛과 검은빛이 감돌더니 칼날을 잡았다.
피슉…….
작은 소리와 함께 도광이 사라졌다.
도문 음신은 불후법신(不朽法神)이라고 칭하는데 만법이 침투하지 않는 특성의 금단이 승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1품 육지신선 경지에 들어서면 양신과 육신이 다시 합쳐지고 심지어는 무사와 육탄전을 벌일 수도 있었다.
물론 확실히 공격력과 지속성은 무사만 못했다.
허칠안은 원경제의 뒤에 나타나 칼을 휘둘렀다. 그는 4품의 ‘의(意)’가 2품 도겁 고수를 단박에 죽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의(意) 역시 수련해야 했다.
무사의 의는 2품일 때 한층 강화할 수 있었다. 3품은 불사의 몸으로 4품의 의(意)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마치 유가의 4품과 3품 역시 별다른 관계가 없듯이 말이다.
허칠안이 원하는 건 이 칼을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상대에게 중상을 입히는 일이었다.
원경제는 머리를 젖히고 소리 없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허칠안은 머리가 ‘웅’하고 진동하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한 증세가 나타났다. 주변 수십 리 안에 있던, 작게는 벌레부터 크게는 사불상(四不像), 멧돼지가 전부 죽었으나 몸뚱이는 아무런 손상 없이 온전했다.
원경제는 그의 원신이 흔들리는 틈을 노려 소매에서 광채를 내보냈다.
조신경(照神鏡), 상대의 원신을 빨아들여 통제를 연장했다.
초혼번(招魂幡)이 음광(陰光)을 골라내어 원신을 공격하였다.
혼을 씹어 삼키는 못 세 개가 발사되어 상대 머리 곳곳의 혈을 꿰뚫으려 했으나 무사의 신체와 정신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튕겨 나갔다.
구리 고리 두 개가 허칠안의 양 손목을 속박했다.
도문 7품은 식기라고 하는데 비검을 포함한 법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다. 원경제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한 번에 여러 가지 법보를 손쉽게 부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도문 역시 술사 외에 극소수로 법기를 제련하는 능력을 갖춘 체계였다. 다만 술사처럼 정통하지 않을 뿐, 어떠한 법기든 거의 다 제련할 수 있었다.
원경제는 법기를 부려 공격하면서 청봉(靑鋒)을 소환했다. 그가 검을 내밀자마자 찬란한 검광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가 수련한 건 인종의 수행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인종 2품의 공격력은 낙옥형에 뒤지지 않았다.
인종은 도문 3종에서 가장 공격력이 뛰어났다.
무사와 비교해도 인종의 공격력은 훌륭했다. 인종의 검법은 무사의 동피철골을 전문적으로 파괴했다.
도광 아래 금강 신공이 몇 수 버텼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고 검이 심장을 관통했다.
짙고 검붉은 선혈이 허칠안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원경제는 미친 듯이 검기를 촉진해 신예 3품의 생기를 소멸시켰다. 그는 눈에 지종 요도와 똑같은 악의가 서려서는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3품에 막 들어선 무사가 짐과 맞붙을 자격이 있는가?”
그는 2품으로 들어선 지 여러 해 지났다. 이렇듯 거국적인 자원으로 수행하였는데 어찌 3품에 막 들어선 애송이가 맞설 수 있겠는가.
“잡았다.”
허칠안은 간계를 달성했다는 웃음을 짓더니 포효했다.
“신수!”
한없이 깊으며 위엄 있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허칠안의 몸속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미간에는 불꽃 같은 마문(魔紋)이 떠올랐고, 피부는 재빨리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으며 머리 뒤에는 화염 고리가 떠올랐다.
허칠안은 기운이 폭발하더니 3품 초기에서 순식간에 3품 전봉이 되었다.
이는 신수 혼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가 된 힘이었다.
쿵!
법기 동경이 폭발하였다.
초혼번이 터졌다.
구리 고리가 갈라졌다.
“제가 주도하겠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는 현재 이미 진정한 고품 무사로서 화경의 능력을 장악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다른 체계의 고수를 연달아 죽일 수 있었기에 더는 신수 승려가 주도하게 둘 필요가 없었다.
“좋네!”
그의 몸속에 신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수는 강요에 못 이겨 깨어났을 뿐이었다. 최강자의 깊은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최강자뿐이었다.
허칠안은 그날 소생한 뒤, 감정에게 한 가지 요청만 했다. 그 요청은 바로 그를 도와 신수를 깨우는 일이었다.
허나 감정은 당시 거절했으며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먼저 허칠안더러 운록서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허칠안은 원장 수중에서 위연이 그에게 남긴 혈단을 받은 뒤에야 감정의 의도를 알았다.
신수는 먹여도 배부른 줄 모르는 밑 빠진 독이었다. 그가 만약 깨어 있으면 위연의 혈단은 공연히 신수에게만 이익이 되었다.
다음 순간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 같은 타격이 원경제를 때렸다. 겹겹이 쌓인 충격파가 폭발하였다.
원경제는 사방팔방 온 천하가 전부 적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오는 빽빽한 타격을 피할 수가 없었고 반항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고품 무사의 능력이었다.
푹!
허칠안은 양손을 합쳐 원경제의 가슴을 뚫더니 힘껏 찢었다.
피가 시커먼 몸통에 튀었다.
이 순간 원경제는 정식으로 사망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사망이었다.
그러나 곧 금빛과 검은빛이 서로 뒤얽힌 형체가 도주하더니 허공에 우뚝 서서 음침한 얼굴로 허칠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선황 정덕이었다.
허칠안이 말없이 바닥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릿속에 지난 일이 스쳤으며 원경제의 위엄 있고 쌀쌀맞은 형상이 스쳤다.
또한 이 제왕이 용의에 높이 앉아 있는 모습이 스쳤다.
비록 그는 진작에 이미 정덕에 의해 대체되었고, 지난날의 그 황제는 줄곧 선황 정덕이긴 했다. 그럼에도 허칠안은 여전히 강렬한 통쾌감이 솟구치는 듯했다.
그가 직접 이 개 같은 황제를 죽였다. 지금부터 원경제는 역사가 되어 더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정덕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원경의 신체는 비록 수련 경지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실질적인 목숨이었다.
일기화삼청, 한 사람이 세 목숨을 지녔다.
그는 일각 동안 교전한 뒤 목숨 하나를 손해 보았다.
정덕제는 기탄하며 신 같기도, 악마 같기도 한 그 모습을 살피면서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는 허칠안을 가리키며 포효하였다.
“알고 보니 너로구나, 알고 보니 너였어. 네가 바로 그날 초주에 나타난 신비로운 인물이구나! 상백 밑의 봉인물이 네 몸에 있지!”
그는 허칠안을 몹시 원망하고 증오하였다.
알고 보니 그였다. 진북왕을 죽인 자가 허칠안이었다.
“진작 너인 줄 알았다. 그날 네가 경성으로 돌아온 뒤 짐이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였어야 했다. 짐은 후회한다. 짐이 너를 죽일 기회를 여러 번 놓쳤구나. 네가 짐을 속일 수 있었던 건 감정이 너 대신 천기를 차단하여 짐이 그것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정덕제는 화가 난 나머지 마음가짐이 흐트러졌다. 그는 직접 이 보잘것없는 인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았다. 호랑이를 키워 화근을 자초하였다. 이 보잘것없는 인물이 한 걸음씩 성장하는 일을 용인하였다.
그는 지금이 되어서야 자신의 다른 분신을 죽인 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허칠안은 그의 분신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시체를 가지고 경성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날뛰며 국공을 죽이기까지 했으며, 백성들의 앞에서 그를 호되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남을 너무 업신여겼다, 남을 너무 업신여겼어!’
정덕제는 놀라면서도 분노하였고, 독기가 미친 듯이 솟구쳤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나는 네게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허칠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원경은 이미 죽었으니 오늘 이후, 대봉 황위의 주인이 바뀌었다.”
정덕제는 이 말을 듣더니 의기양양하면서도 방자한 웃음을 지었다.
“네 말이 옳다. 오늘 이후 대봉은 확실히 주인이 바뀌어야겠지. 대봉은 장차 무신교의 속국이 될 것이다.”
‘역시나 선황의 목적은 대봉을 무신교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살륜아고를 모방하고 싶어 해…….’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 작정이지?”
정덕제는 천지의 영기를 삼키어 상태를 회복하였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내보이려는 듯 두 팔을 벌렸다.
“너는 용맥을 아는가? 왕조가 중원을 통치하는데 통치하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라 영토까지다. 인심은 기운을 응집하고, 용맥은 기운과 영토가 응집한 정수다. 내가 용맥의 령(靈)을 뽑아내어 무신에게 바치기만 하면, 중원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용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봉기는 성공할 수 없지. 하지만 무신교가 중원 용맥을 장악하면 하늘의 뜻이 귀속되어 중원의 통치자가 되는 건 쉽다.”
“그래서 무신교에게 위 공을 죽이는 걸 도와달라고 했나?”
허칠안은 용맥을 알지 못했지만, 기운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있었다. 대봉은 기운의 절반을 잃은 후 요 몇 년간 국력이 나날이 쇠퇴하였다. 여기저기서 가뭄이 들거나 저기서 수재가 발생하였다.
대봉은 여러 해 동안 순조롭지 않았다.
하지만 기운을 얻은 자신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항상 전화위복할 수 있었다. 뜻밖의 만남이 줄줄이 이어져 고작 1년 만에 3품으로 승직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어떤 대빵의 은혜를 입은 듯이 보였지만 사실 이 자체가 기운이 몸에 더해졌다는 표현이었다.
그가 용맥을 만약 무신교에게 뺏겼다간 결과는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