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화. 필부의 분노
묘시 일각, 가을 추위에 서리가 내린 아침. 대다수의 백성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한 노점상이 길가의 조식 노점 앞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국을 들고 탁자 옆의 손님에게 걸어갔다.
어느 순간 그는 길가를 바라보았고 눈을 부릅뜨더니 손에 든 큰 사발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사발이 와장창 깨지면서 끓는 콩국이 바닥이 튀었다.
손님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어둑한 아침 햇살 속에 한 청의가 칼을 쥔 채 걸어갔다. 그는 왼손에 머리를 쥐고 있었다.
백 명 가까이 되는 야경꾼이 그의 뒤를 따랐다.
노점상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허 은라 아닙니까?”
“아, 그가 바로 허 은라?”
그들 중에는 허 은라의 실제 모습을 본 적 없는 사람도 있었다.
“맞, 맞네. 그야. 허 은라네. 그가 뭘 하려는 거지.”
“손에 머리를 쥐고 있네. 씁, 허 은라가 또 탐관오리를 죽인 건가?”
“뒤에 이렇게 많은 야경꾼이 따르고 있다니…….”
길가의 노점상, 일찍이 성에 들어온 행상 그리고 타지로 일하러 가는 일부 백성들이 다행히 이 광경을 보았다.
백성들은 주 도로를 따라 황성 방향으로 걸어가는 허 은라를 발견했을 때, 이를 옆에서 목격했다. 그들은 서로 교류하는 일을 참을 수 없었다.
“허 은라가 손에 든 머리가 누구지?”
“누가 알겠는가. 분명히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고선 허 은라가 그를 죽일 리 없네. 나는 그가 지난번에 채시구에서 국공 둘을 벤 일을 기억하네. 애석하게도 그때는 내가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갑자기 목소리가 멈추었다.
몇 초 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따라가세, 따라가서 보자고.”
백성들은 본래 이상히 여기기만 했다가 갑자기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즉시 벗을 불러 저 멀리 야경꾼 뒤를 따랐다.
행인들은 걸어가는 내내 수군거리며 서로 알아보았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자네들 야경꾼들을 따라가서 뭐 하는가?”
대오 속에 있는 백성이 말했다.
“앞장서는 사람이 허 은라네. 알아보지 못했는가? 자네들 눈이 삐었구먼.”
“헛소리하지 말게. 우리도 모르네. 따라가서 구경하면 되지. 잊지 말게. 허 은라가 지난번에 이렇게 군중을 동원했을 때는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라고.”
백성들은 아연실색하며 대오에 합류하였다.
* * *
황성, 성벽 위에서 우림위가 남문에 주재하며 지키던 중 저 멀리 널찍한 주도로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 있는 것은 전부 사람 머리였다.
앞에 선 사람은 청의였으며 뒤에는 야경꾼 백 명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어수선한 백성들이었다.
천 명 가까이 되는 행렬이었다. 경성은 번화하고 물자가 풍부하여 백성들은 보편적으로 게을러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더욱이 가을 정취가 깊어지고 날씨가 추워졌다. 생계 압박을 받는 가정이 아니면 이때는 여전히 따뜻한 이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꿈나라에 있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천 명 가까이 되는 행렬이 모이는 건, 이 시간엔 이미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우림위들은 빠르게 백성들을 무시하고, 야경꾼 백 명을 잠시 살피더니 곧바로 앞장선 청의를 특정 지었다.
전 은라였던 허칠안이 허리에 사람 머리를 매달고 있었다.
우림위 남성 통솔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분부하였다.
“화포를 예열하고 화살을 준비해라. 내 명령을 들어라…….”
이 포악한 자를 마주하였으니 아무리 중시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더욱이 근래에 정세가 긴박하였고, 조정은 위연의 죄를 다스리고자 했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허칠안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자였다.
이 우림위 통솔자는 성벽 위에 서서 소리쳤다.
“황성은 요충지로 한가한 사람은 걸음을 멈추라.”
그는 말을 하면서 손을 들었다. 성벽 위의 우림위가 포구를 조정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성격의 조준을 했다.
혹은 군노를 들고 강궁(强弓)을 당겼다.
그들은 장관(長官)이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 청의는 역시나 멈춰 섰다.
우림위 통솔자는 이 모습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 공이 죽었으니 포악하고 오만한 이 젊은이도 어쩔 수 없이 난폭한 성질을 버려야 했다.
이때 그는 허리춤에 있는 머리를 받아 높이 들어 올리더니 크게 소리치는 허칠안을 보았다.
“21년 전에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산해관에 출정하였다. 요족 및 오랑캐, 남쪽 오랑캐 그리고 무신교와 산해관에서 결전하여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다. 이 전쟁에 만약 위연이 없었으면 대봉도 없다. 그런데 공이 너무 큰 나머지 군주 자리에 위협을 느낀 황제가 용납하지 않아 강제로 수련 경지를 버리고 병권을 빼앗겨 조당에서 참고 견뎠다.”
뒤에 있는 야경꾼들은 분개한 얼굴을 하고 위 공을 위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백성 중에 젊은이는 크게 감명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많은 자들은 허 은라가 한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우림위 통솔자는 눈을 가늘게 떴으며 손은 여전히 치켜든 상태였다.
“21년 후인 지금,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무신교에 출정하였다. 아둔한 군주만이 유일하게 그가 개선하여 제압하기 어려울까 두려워 간신을 엮어 십만 대군의 군량과 마초를 끊었고, 정산성에서 무신교와 손을 잡고 위연을 죽이고 군대를 전멸시켰다. 후에 간신 원웅과 공모하여 그의 이름을 먹칠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하여 십만 대군의 목숨과 맞바꾼 승리를 짓밟았다.”
우렁찬 목소리가 백성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신교에 출정했던 대군은 그 사상자 수가 참혹할 정도였다. 이는 최근에 성 전체에 떠들썩하게 전해진 이야깃거리로 천민들조차도 한데 모여 쉬면서 차를 마실 때 환관이 나라를 망친다고 몇 마디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같은 일이 허 은라의 입에서 나오니 완전히 다른 문제처럼 들렸다.
‘황제가 간신과 결탁하여 대군의 군량미를 끊었고…… 무신교와 연합하여 군대를 통솔하는 총사령관을 죽였다…….’
거리 위 백성들은 이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야경꾼들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슬픔이 아니라 분노였다.
허칠안의 이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이는 참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활을 쏘거라!”
우림위 통솔자가 세차게 소리쳤다.
활시위가 진동하는 소리, 포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휙휙 소리를 내는 화살과 포탄을 몽땅 허칠안에게 쏘아보냈다. 일반 백성의 사활은 고려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 몸을 피할 곳을 찾았다.
쿵쿵쿵!
포탄과 화살이 허공에서 터졌다. 마치 무형 대기권에 가로막힌 듯했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선조의 600년 가업이 아둔한 군주와 간신의 손에 망가지는 걸 참을 수 없다…….”
허칠안은 우뚝 서서 꿈쩍도 하지 않고 원웅의 머리를 힘껏 던지더니 천둥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필부가 분노하였으니 다섯 걸음마다 피가 튀기고 천하가 상복을 입을 것이다!”
성벽 위, 화포와 상노가 소리에 맞춰 폭발하였다.
청의는 머리를 내던지고 황성을 지나 성문을 부수고 황궁으로 쳐들어갔다.
* * *
“개—같—은—황—제!”
금란전 안, 귓가를 진동하는 포효에 따라 태평도가 휙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스쳐 황포를 용의 위에 못 박아 두려 했다.
제공들의 눈빛은 도광을 쫓아 조당에서 40년 가까이 내려다본 그 군왕을 향했다.
원경제가 손을 뻗어 절세신병의 칼끝을 잡는 모습만이 보였다.
태평도는 도기를 내뿜으며 윙윙 진동하였지만 새하얀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너는 짐이 21년 동안 도를 닦았는데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느냐?”
원경제는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허칠안을 쳐다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백성들과 괴리되어 있는 신령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대전을 사이에 두고 눈빛을 교차하였다. 허칠안은 정덕과 원경이 융합했다는 걸 알았다.
일기화삼청, 세 사람이 한 사람이자 한 사람이 세 사람으로 분리할 수도 합할 수도 있었다.
“너는 내가 너를 죽이러 온 게 그저 분노했기 때문인 줄 아는가?”
허칠안 역시 그를 차분한 어조로 대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선황 정덕!”
“네가 뜻밖에 짐의 신분을 알다니!”
원경제는 다소 놀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웅!
태평도가 도기를 뒤흔들어 노란색 비단이 깔린 탁자를 깨부수더니, 금계(金階)에 칼자국이 생겼다. 어느 도기는 정교한 팔괘동패를 잘게 부쉈다.
팔괘동패가 눈을 자극하는 청광이 되었고 다음 순간 원경제와 태평도가 금란전에서 사라졌다.
전송법기!
황제를 시해하려는 사람은 원경제뿐만 아니라 정덕도 있었다.
정덕은 도겁 고수였으며 허칠안 자신 역시 3품이었다. 그는 경성 안에서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됐다.
그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백만 백성이 사라질 터였다.
허칠안은 대전 안의 제공들을 훑었다. 그들은 표정이 경직되었으며 눈빛이 망망하였다.
“황제가 극악무도하여 내가 오늘 벌할 것이니 제공들께서는 대전 안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며 잘 계십시오.”
그는 말을 마친 뒤 정교한 팔괘동패를 꺼내 으스러뜨렸다.
청광이 그를 감싸더니 사라졌다.
* * *
오문 광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호각 소리와 북소리가 황궁에 널리 퍼지고 궁중 시위들이 오문으로 몰려들었다.
침전 수비가 약해진 틈을 타 회경은 심복 시위대를 거느리고 원경제가 거주하는 경양전(景陽殿)으로 직행했다.
“포박하라!”
도도하고 고귀한 황장녀가 손을 흔들었다.
수련 경지가 높고 깊은 시위 스무 명이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침전 밖의 궁중 시위를 제압했다.
회경은 품에 손편지를 숨기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홀로 원경제의 침전으로 들어갔다.
회경은 높은 문턱을 넘고 어서방으로 내달리던 중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듯 침거실(寢居室)로 방향을 틀었다. 바닥에 그려진 진법과 허공에 떠 있는 구슬이 보였다.
또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조금씩 비집고 나오는 금룡이 보였다.
‘지하 금룡…… 용맥? 이게 바로 아바마마의 계획인가? 그는 무얼 하고 싶은 거지?’
회경은 마음속에 많은 의문이 스쳤다. 그녀가 막 다가가려는데 구슬 안에 그 눈알이 돌아가더니 자신을 그윽하게 주시였다.
이 눈알이 주시하자 회경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와 동시에 연신경이 갈고닦은 무사의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냈다.
회경은 예지롭고 결단력 있는 여인이었기에 조금도 미련을 남기지 않은 채 돌아서서 나와 어서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탁자 위에 친서를 한 통씩 펼치고 옥새를 찍었다.
친서 내용은 두 종류였다. 첫 번째는 성문을 굳게 닫으라는 명령이었으며 두 번째는 금군을 배치하라는 명령이었다.
친서에는 이미 내각의 국새가 찍혀 있었기에 황제의 옥새를 찍기만 하면 경성의 모든 성문을 닫고 경성 안의 금군을 성안에 죽 눌러 놓을 수 있었다.
그날 지서 단체가 의논한 뒤 천지회 구성원들은 황제를 시해하는 데는 반드시 두 가지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나, 전투는 성안에서 벌어지면 안 됐다.
둘, 원경제가 직접 통솔하는 금군 5병영이 이 전투에 개입해서는 안 됐다.
금군 5병영은 각각 선진 화포, 차노, 상노를 장악한 신기영(神機營), 뛰어난 장비로 불같이 질주하는 기병영(騎兵營), 중장기병으로 구성된 충봉영(衝鋒營), 중장보병으로 구성된 백전영(百戰營) 및 수군 조직이었다.
이는 대봉의 최고 정예 부대로 전투 능력, 장비 그리고 군의 고수 모두 출중하였다.
만약 이 군대가 총동원될 수 있다면, 대봉 관내는 둘째 치고 구주라고 해도 이에 맞설 수 있는 군대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들이 존재하는 의의는 경성을 수호하고 한 나라의 수도가 함락되지 않도록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옥새를 다 찍은 회경은 침전에서 달려 나와 시위장을 불러 말했다.
“속히 금군영으로 가서 이 친서 다섯 통을 각 병영 통솔자에게 전하거라. 나머지 친서는 다른 이를 시켜 내각 왕 재상에게 전하도록 하거라.”
그녀는 조리 있게 명령을 하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