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화. 반란 (1)
‘빌어먹을!’
송정풍은 속으로 욕하더니 얼굴에는 알랑거리는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혔다.
“주 은라, 저희 둘은 어젯밤에 당직을 서서 마침 돌아가서 휴식하려던 참입니다.”
주성주는 의아해했다.
“자네들이 어젯밤에 당직을 섰다고? 본 은라는 어째 모르는가.”
주광효는 바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젯밤에 당직 서라는 명령은 주성주가 하달했다. 이옥춘이 감옥에 들어간 바람에 주성주가 ‘친절’하게 그들 둘을 받아들였다.
아주 명백했다. 주성주는 일부러 그들을 괴롭혔다.
“네, 네, 네. 아마도 저희가 잘못 기억했나 봅니다.”
송정풍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굴하게 아첨했다.
“저희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주성주는 본래 이번에 이 두 놈을 훈계하고 싶었는데 송씨가 이렇게 비굴한 걸 보니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그는 다시 두 사람을 불러세워 여유롭게 말했다.
“오늘 밤 당직이네. 번거롭겠지만 자네 둘이 좀 수고해주게. 두 사람은 대봉의 영웅 허칠안과 좋은 벗으로 모두 솜씨가 출중한 선후배잖나. 유능한 사람일수록 일이 많은 법이지.”
‘이거 쉬지 못하게 하여 우리를 생고생하다가 죽게 하려는 건가?’
송정풍은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하였고, 얼굴은 살짝 경련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에게 미움을 살 엄두가 나지 않아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즉시 돌아서서 주광효를 데리고 관아 안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주성주가 비웃으며 하는 말이 들렸다.
“쓸모없는 놈.”
주위 야경꾼들은 송정풍이 남자답길 갈망했던 터라, 지금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한 방 먹이지 못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쌍방이 함께 희생할 그런 용기는 없었으면서도 다른 사람은 있길 기대했다.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그들의 분개하는 마음과 불만스러운 마음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바로 이때 관아 입구에서 ‘쯧쯧’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위엄이군, 주 은라.”
앞에 있던 송정풍과 주광효는 갑자기 굳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섰다.
주위의 야경꾼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주성주는 눈동자가 약간 움츠러들었다. 이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마치 가위눌리는 것처럼 그의 꿈속에 수없이 나타던 목소리였다.
그는 한편으로 몹시 원망하고 저주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고 풀이 죽었다. 그는 자신이 복수할 희망이 전혀 없다고 여겼다.
지금 그자가 그 뒤에 있었다.
그는 돌아설 용기조차 없었다.
발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졌고 주성주의 두 다리가 조금씩 떨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누가 알았겠는가. 발소리가 그를 지나쳐 송정풍과 주광효에게로 향했다.
허칠안은 청의를 입고 손에는 검 같기도 칼 같기도 한 무기를 쥔 채 송정풍과 주광효를 각각 한 번씩 발로 차더니 비웃었다.
“자네 둘 사는 게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구먼.”
주광효는 감격한 얼굴을 하면서도 눈시울을 붉혔다.
송정풍은 토라져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오열하며 욕을 퍼부었다.
“개자식, 자네 어째서 아직도 가지 않았는가. 명이 너무 길어 싫증 나는가?”
주변의 야경꾼들은 놀랍고 기쁘면서도 당혹스럽고 초조하였다. 허칠안이 아직 가지 않았고, 감히 야경꾼 관아로 돌아왔다. 주씨 부자가 이미 돌아온 걸 몰랐나? 원웅이 위 공의 자리를 이어받아 원 공이 되었다는 걸 몰랐나?
맞았다, 그는 몰랐다. 이 모든 건 전부 어제 발생하였다.
“허칠안, 자네 얼른 가게.”
누군가 인파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일깨웠다.
이 순간, 주성주는 어떠한 족쇄에서 벗어난 듯 다시 두 다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관아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이제 우려가 사라진 야경꾼들이 이러쿵저러쿵 권하기 시작했다.
“허칠안, 자네 돌아오면 안 되네. 얼른 가게. 빨리 성을 나가게.”
“칠안, 야경꾼 관아는 지금 원웅이 통솔하고 있네. 그가 주양 부자를 다시 임용하여 조 금라께서는 곧 배척당할 것이네.”
“지금 야경꾼 관아는 원웅과 주씨 부자의 천하일세. 주양은 4품이니 자네 속히 떠나게.”
허칠안은 다 듣고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송정풍과 주광효를 쳐다보았다.
“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건가? 내게 말해보지?”
“내가 네게 말해 주면 어떠한가?”
주양은 사람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대원 내, 사람들의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주양이 야경꾼 차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는 가슴에 금라를 수 놓은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몇 초 뒤, 주성주가 쫓아오더니 허칠안을 가리키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이 자식이 감히 관아에 돌아오다니요! 그를 죽이세요, 지금 당장 그를 죽이세요!”
주양은 움직이지 않고 허칠안과 잠시 대치하였고, 조 금라가 뛰어왔다.
‘내키지 않는데…….’
주양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조 금라, 자네가 나와 힘을 합쳐 이 도둑놈을 죽여야 원 공과 폐하께서 진정으로 자네를 중용할 것이네. 원 공께서 관성루 조망대에서 지켜보고 계시네.”
조 금라가 뒤돌아보자 먼 곳에 있는 호기루 7층 조망대에 비포를 입은 자가 고독하게 서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조 금라는 시선을 거두고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왜 힘들게 돌아왔는가?”
허칠안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빚을 독촉하려고 돌아왔습니다!”
이쪽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야경꾼이 점점 더 많아졌다.
4품 고수의 전투는 관아를 부술지도 몰랐다. 허칠안의 수련 경지가 어떤지 그들은 모르지만, 절대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여기는 어쨌거나 경성이었다. 두 금라가 힘을 합쳐 그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약 다른 곳에서 고수가 더 온다면 허칠안은 죽는 길뿐이었다.
“그가 어떻게 돌아왔지?”
“위 공께서 돌아가셨으니 누가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겠는가. 그는 폐하의 노여움을 샀는데 돌아와서 뭐 하려고.”
“어리석다. 허칠안이 돌아와서 뭐 하려고! 얄밉구나. 한때 동료였기에 정말 그가 죽는 건 차마 볼 수가 없어!”
“우리는 그저 보잘것없는 인간인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한들 또 어찌하겠는가. 자네는 가족들의 목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를 도울 수 있는가?”
“그러게. 조 금라가 타협하는 거 못 봤는가? 주양과 손을 잡고 허칠안을 상대할 작정이라고. 원웅이 호기루에서 보고 있다고 하잖나.”
“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바뀌는 법. 야경꾼도 마찬가지네. 위 공의 시대는 지나갔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걸세.”
야경꾼들은 전투를 피해 물러나면서 논의하였다. 그들은 탄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주양이 엄지손가락을 튕기자 패도가 낭랑한 소리를 내며 칼집에서 나왔다. 하늘에 눈부신 도광이 스쳤다.
자리에 있던 야경꾼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도광에 자극받아 손등의 솜털이 곤두섰다.
주양은 단걸음에 십여 장을 뛰어넘었고, 기세를 몰아 칼끝을 휘둘러 허칠안의 머리를 곧바로 겨누었다.
옥양관의 소문이 진짜든 아니든 지금 이 시각 허칠안의 수련 경지는 4품과 맞먹기에 충분했다. 그 혼자만으로 이 새끼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뒤에 조 금라가 따라붙어 두 사람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허칠안을 죽이는 일은 문제없었다.
허칠안은 손바닥을 뒤집어 뺨을 갈겼다!
퍽!
그는 머리가 마치 수박처럼 터져서 갈라졌다. 뼛조각, 뇌수, 혈육, 눈알이 뿜어져 나와 대원의 청석반 지면에 튀어 빽빽한 흔적을 남겼다.
주양은 몸을 비틀거리며 앞으로 몇 걸음 달려가더니 맥없이 쓰러졌다.
삽시간에 야경꾼 대원이 죽은 듯 고요해졌다.
‘주양의 동피철골이 그의 뺨 한 대를 막지 못하다니. 대충 날린 그 뺨 한 대를 나 역시 막지 못하니 나도 뺨 한 대에 죽겠구나…….’
조 금라는 갑자기 강한 빛을 쐰 듯 눈동자가 바늘구멍만큼 수축하였다.
‘4품 금라 주양이 이렇게 맞아 죽었다고? 그, 그가 옥양관에서 혼자 단칼에 수십만 적군을 죽였다는 게 사실이라고?!’
먼 곳에서 관망하던 야경꾼들은 단체로 실성하였다. 그들은 속세에 떠도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 실제 전적임을 문득 깨달았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과 자주 기루와 교방사를 출입하던 동료가 어느새 이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뺨 한 대로 4품 금라의 머리를 터뜨렸다.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수련 경지인가.
‘허칠안, 그, 그가 지금 몇 품이지?’
사람들은 마음속에 황당한 생각이 스쳤고 즉시 필사적으로 갈무리하여 티 내지 않았다. 이는 광기가 넘치다 못해 터무니없으면서도 사태를 뒤엎는 생각이었다.
주성주는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사람 전체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끊임없이 전율하였다.
그가 존경하는 부친, 그의 전적인 의지처이자 4품 무사인 부친이 이 자의 뺨에 맞아 죽었다.
이는 개미를 때려죽이기보다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공포가 주성주의 마음에서 폭발하였다. 그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혼탁하고 구린내 나는 액체가 그의 가랑이 쪽에서 흘러내렸다.
“물러가시지요. 본인은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다만 물러가지 않으면 주양이 당신의 말로일 겁니다.”
허칠안은 조 금라를 쳐다보았다.
조 금라는 공포를 억누르고 허리를 굽혀 공수한 뒤 빠르게 떠났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송정풍을 쳐다보더니 주성주를 가리켰다.
“저자는 자네에게 넘겨 주겠네.”
그는 말을 마친 뒤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나아갔다. 호기루를 향해 걸어갔다.
시선들이 그를 쫓아다녔다. 그들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허칠안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잇따라 고개를 돌려 송정풍을 쳐다보았다.
송정풍은 주성주 앞으로 걸어가 두 다리를 벌리고 말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이곳을 뚫고 가라.”
“뚫겠습니다, 뚫겠습니다…….”
주성주는 허둥지둥 무릎을 꿇고 쩔쩔맸다. 그는 옆을 기며 용서를 구하는 한편 송정풍 가랑이 밑을 뚫고 지나갔다.
곁에 있던 주광효가 갑자기 칼을 뽑더니 세차게 휘둘렀다.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주성주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응고되었으며 눈가에는 눈물이 반짝였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더니 결국에는 영원한 고요 속으로 돌아갔다.
“하하하하하하!”
송정풍은 얼굴을 감싸고 실성한 듯 울면서 웃었다.
그는 가슴 속의 울분을 토했다.
이때 누군가 호기루 높은 곳을 가리키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허칠안이 원웅을 죽이려고 하네…….”
별안간 모든 이가 그쪽을 쳐다보자, 7층 조망대에서 허칠안이 원웅의 멱살을 틀어잡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몸이 반쯤은 밖으로 눌린 상태였다.
* * *
“원웅, 아, 아니, 원 공!”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얼굴이 창백해지고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원웅을 주시했다.
“듣자 하니 원 공께서 피땀 흘려 위 공의 10대 죄악을 열거한 뒤 야경꾼 관아의 부패한 자들을 감옥에 가둠으로써 숙청하였다지요. 나라를 망친 죄신(罪臣)인 위 공의 실체를 까발리는 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요.”
원웅의 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허칠안, 본관은 조정이 임명한 관리로 정3품 대원이다. 너,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허칠안의 시선이 여전히 차가운 걸 보자 그는 형세를 잘 살피더니 재빨리 태도를 바꾸어 애걸하였다.
“폐하께서 내게 하라고 강요하신 것이네. 나는 선택권이 없어. 신하로서 어떻게 거절하는가? 나는 정말 선택권이 없었네. 이건 내 본래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야. 나를 용서하게, 허칠안. 나를 용서하는 게 어떻겠나.”
칠흑 같은 하늘빛, 마침 여명 전 가장 어두울 때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원웅은 온몸과 마음이 차가워졌다.
“자네 지금 바로 경성을 떠나게. 본관, 본관이 자네 대신 시간을 끌어주겠네. 늦었네, 이제 그 개자식들이 자네를 고발할 걸세. 성문이 닫히면 나가지 못하네.”
그는 목숨을 애걸할 기회를 포기하길 원치 않았다. 그저 우선 비굴하게 아첨하여 화를 피한 뒤 돌아가서 다시 폐하께 알려 이 새끼를 죽일 생각뿐이었다.
“원 공을 용서하는 건 위 공의 일이고, 제 임무는 원 공이 그를 만나러 가는 걸 배웅하는 겁니다.”
허칠안은 손을 뗐다.
원웅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굴렀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두 눈이 튀어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야경꾼들은 먼 곳에서 이 광경을 보더니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하지 못했다.
“허칠안, 그, 그가 반란을 꾀하려 한다…….”
한 3품 대원을 죽인다고 죽이다니. 이는 진정한 거물로 그 수준이 제공에 버금갔다.
“진작에 그들이 눈에 거슬렸네, 잘 죽였어.”
누군가 소리를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털어놓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잘 죽였네.”
“야경꾼은 위 공의 야경꾼이네. 원웅이 뭐란 말인가.”
“주씨 부자는 관아를 배반하여 진작에 파면되었어. 퉤, 잘 죽었네.”
그들은 어제부터 시작된 분노를 지금 와서야 전부 털어놓았다.
허칠안은 역시 허칠안이라 몹시 극악무도하였다. 그가 돌아오니 모든 원망과 분노가 연기처럼 사라져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