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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66화 (666/712)

666화. 음모를 파헤치다 (1)

회경은 요 며칠간 벌어진 일을 허칠안에게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렇군요. 의외면서도 사리에 맞는 일입니다.”

허칠안은 아주 침착하게 한마디 하더니 침묵에 빠졌다.

한참 뒤 그가 말했다.

“위 공께서 정산성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점은 매우 다행입니다. 어찌 됐든 자기 편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허나 그가 만약 죽지 않았으면 사방에서 설치고 다니는 소인배들이 감히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일생도 참 고단했습니다. 본적은 예주로, 젊은 시절 가족이 무신교에게 도살되었지요. 경성에 교분이 있는 집안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그 집안의 소저와 서로 연모하는 바람에 사사로이 도망쳤다가 실패하여 거세당했지요. 사랑하는 소저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는 걸 보면서도 자신은 그녀 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남자에게 이건 가장 큰 치욕이지요. 그는 평생 자식 없이 의지할만한 사람 없이 지냈는데 결국에 이렇게 그를 대하다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허칠안은 눈을 붉히며 억지로 웃었다.

“회경 마마께서 저를 도와 정덕 사건과 위 공의 일을 초원진에게 소상하게 알려주십시오. 내일 전에 경성으로 돌아오길 원하는지 아닌지도 물어봐 주세요.”

그는 다시 임안을 쳐다보더니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문질렀다.

“마마, 저를 도와 갈고 닦으세요.”

“아!”

임안은 옆에서 전부 다 들었다. 알 듯 말 듯했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 일은 확실하고 분명했기에 그녀는 지금 매우 괴로웠다.

허칠안은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탁자에 앉더니 붓을 들어 서신을 썼다.

그는 한참 뒤, 서신을 다 쓰고 봉투에 담더니 저채미를 보며 말했다.

“묘진이 아직 관성루에 있소?”

‘묘진…….’

임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이 호칭이 과하게 친밀하다고 생각했으므로 듣기에 좀 편치 않았다.

“있어. 내가 그녀를 불러줄게.”

저채미는 즉시 문을 나섰다.

* * *

이묘진은 이 순간 자신의 침실에서 좌선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깨어났다는 걸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문을 밀어젖히자 선녀처럼 매우 고운 외모의 공주 둘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비연 여협객은 희색을 거두고 차분하게 탁자 옆의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깨어났으니 됐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

허칠안은 서신 봉투를 그녀에게 건네곤 다소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서신을 무림맹의 선조에게 보내주시오. 그는 무림맹 뒷산에 견융이 수호하고 있는 돌문에 있소. 갈 때 반드시 그에게 직접 전해야함을 기억하시오. 아무에게도 부탁해서는 안 되오. 현임 맹주 조청양을 포함해서 말이오. 기억하시오, 반드시 직접 늙은 맹주의 손에 건네야 하오. 내 이름을 대면 되오. 조청양이 그대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갈 것이오.”

“내가 볼 수 있는가?”

천종 성녀는 거침없이 물었다.

‘네 생각엔?’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보면 안 되오.”

“아.”

이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허칠안은 두 공주를 쳐다보더니 양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받치고 아주 허약하게 일어났다.

“두 마마께서는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저 감정을 좀 뵈러 가겠습니다.”

* * *

허칠안은 장포를 걸치고 홀로 팔괘대에 이르렀다.

스산한 가을바람은 마치 가느다란 칼처럼 얼굴을 찔렀다.

그가 대봉 수호신의 뒷모습을 다시 보니 예전에 여유롭게 탁자 앞에 단정히 앉았을 때와는 달랐다. 이번에 감정은 뒷짐 지고 팔괘대 가장자리에 서서 황궁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네의 ‘의(意)’가 무엇인가?”

감정이 물었다.

“옥쇄입니다!”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옥쇄라…….”

감정은 이 두 글자를 천천히 음미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일도참의 특성과 부합하는군. 내가 이 절학을 자네에게 선물한 보람이 있네.”

‘이 약삭빠른 인간아…….’

허칠안은 진작에 이 일을 짐작하였지만, 처음으로 감정의 인정을 받았다.

감정이 다시 말했다.

“자네는 《천지일도참》의 내력을 아는가?”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한 1품 무사로부터 비롯되었네. 그 1품 무사는 손에 쥔 칼로 천지의 감옥을 부수고자 시도했다가 몰락하였지.”

감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그가 무기를 잘못 썼다는 의미잖아. 도끼로 바꿨으면 성공했을지도 모르겠군…….’

허칠안은 설령 이렇게 엉망인 상황에 놓였어도 여전히 참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빈정댔다.

“1품 무사의 이름이 뭔가요?”

그는 기회를 틈타 지식을 보충하고자 가슴속의 호기심을 물었다.

감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해 유가 성인이 경계를 구분하여 각 체계를 9품으로 나눴을 때 유독 1품 무사만 여백을 남기고 이름을 짓지 않았네. 재미있는 건 무사 체계의 초품을 유가 성인이 무신이라고 이름을 지었네. 더 재미있는 점은 신마 시대가 끝난 이래로 1품 무사는 매우 드물지만, 십여만 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둘씩 나타난다는 거지. 유일하게 무신만 아직까지 나타난 적이 없네.”

‘이건 확실히 좀 재미있네. 이미 나타난 품계는 유가 성인이 여백을 남기고 나타난 적 없는 품계는 유가 성인이 무신이라고 명명하다니.’

허칠안의 머릿속에 일련의 물음표가 스쳤다.

동시에 그는 감정이 《천지일도참》을 그에게 선물한 이유가 뭔지 헤아렸다. 그가 단칼에 천지 감옥을 쪼개길 바라는 건 안 되지 않는가.

‘내가 반고(盤古)도 아니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정덕의 일에 관해 얘기 좀 할 수 있습니까? 좀 궁금해서요.”

“그에 관해 얘기해 뭐 하는가, 흥 깨지게!”

감정은 고개를 저었고 길거리에서 개똥을 밟은 행인 같은 어조로 소리쳤다.

“제기랄!”

그런 뒤 싫다는 듯 가버렸다.

감정이 손을 흔들자 유백색의 단환(丹丸)이 허공을 가로질러 허칠안의 앞에 떴다.

“이 단환을 먹으면 자네의 상처가 아주 빠르게 완쾌할 수 있을 걸세.”

허칠안은 단환을 받아 삼킨 뒤 앞으로 몇 발 나아가 말했다.

“감정, 저는 감정께 한 가지 요구만 있을 뿐입니다.”

* * *

운록서원에 청광이 반짝이더니 백의 형체가 허칠안을 데리고 산기슭에 이르렀다. 이 백의 형체는 돌계단을 향하면서, 뒤통수는 허칠안을 조준했다.

“감사합니다, 양 사형.”

허칠안은 허세왕에게 진지한 감사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시간 되면 기루에 가서 술 마십시다.”

“전혀 그럴 필요 없네!”

양천환은 콧방귀를 뀌더니 번쩍하고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번쩍하고 나타나더니 뒤통수로 허칠안을 이글이글 노려보았다.

“만약 자네가 병이 깊어 완치될 가망이 없는 교방사 기녀를 찾을 수 있다면 내가 고려해볼 수 있네.”

‘왜 하필 병이 깊어 완치될 가망이 없는 교방사 기녀지…….’

허칠안은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양 사형에게 이렇게 기괴한 버릇이 있었던가?

그가 병자에게 침놓는 일을 좋아하나?

양천환은 그가 말하지 않는 걸 보자 그가 대답했다고 여기고 머리를 뒤로 두 번 젖혀 동의를 나타낸 뒤 다시 사라졌다.

“양 사형은 항상 이상하단 말이지. 뇌 회로가 보통 사람이랑은 좀 달라.”

허칠안은 중얼거렸다.

그는 그러다 매일 일을 꾸밀 생각만 하는 어느 연금 미치광이, 벌벌 떠는 어느 가련충, 어느 미식가를 떠올리자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졌다.

허칠안은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산을 올랐다.

그가 막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고개를 돌리니 돌계단 옆에 있는 정자가 보였다. 정자에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흐트러지고 빛바랜 유삼을 입은 늙은 유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원장 조위였다.

“왔는가!”

조위가 웃으며 말했다.

허칠안은 말을 받지 않고 정자 옆에 앉아 생각하더니 말했다.

“원장께서는 선황 정덕의 일을 아십니까?”

조위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했다.

“출정하기 전에 위연이 내게 이 일을 언급했었네. 그때 그는 확신이 없었지.”

‘위 공께서는 이 일에 관해 역시나 생각이 있으셨다. 실증하지는 않았지만, 추측이 적지 않았어. 그리고 이렇다고 해도 그는 자기 고집대로 총단을 공격하여 무신을 봉인했다……. 그가 서신으로 이 일은 초품 이상이 연관된 비밀이라고 말한 적 있었지…….’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위 공께서 왜 무신을 봉인하신 겁니까?”

조위는 그에게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남강 고족 사이에서 퍼지는 고신에 관한 전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가?”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머릿속에 즉시 리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천고부의 예언자가 고신이 조만간 소생할 거라고 예언했다. 그때 가면 구주 세계에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칠 것이고, 구주 전체가 고신의 세계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허칠안은 깜짝 놀라 소름이 끼쳤다. 현재 그는 무신 역시 유가 성인에게 봉인되었고, 고신 역시 유가 성인에게 봉인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고신의 전설에 따라 해독하면 무신이 봉인을 해제해도 비슷한 재난을 가져오는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위 공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무신을 봉인하려고 한 이유인가…….’

허칠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돌아서서 물었다.

“원장께서는 정덕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나는 청운산에 은거하여 여러 해 동안 수행하였기에 선황의 일은 많이 알지 못하네. 위연은 정덕이 아직 살아있음을 눈치챘지만 미처 조사할 여유가 없었지.”

조위가 멈칫하더니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행동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 그 목적을 추측할 수는 있었네.”

허칠안이 손사래를 쳤다.

“제가 그에 관해 아는 게 어쩌면 원장님보다 더 깊을지도 모릅니다. 정덕의 모든 목적은 전부 장생을 위함입니다. 아니, 아마 장생하는 제왕이 되는 것이겠죠. 위 공께서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전쟁은 기운을 흔들고 국본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패전을 거듭할수록 기운 유실이 점점 더 심각해져 망국(亡國)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치를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국가가 줄곧 패전을 거듭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며 영토가 침략당하는데 이게 오래오래 지속되면 당연히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조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이어받았다.

“정덕이 무신교와 결탁하여 위연을 죽이고 십만 대군을 전멸시키려고 한 게 대봉 기운을 소멸시키기 위함이었군. 염국과 강국 두 나라의 대군이 상식에 맞지 않게 옥양관을 친 것 역시 상주, 형주 그리고 예주를 휩쓸어 대봉 기운을 소멸시키기 위함이었고. 현재 그가 위연에게 사후 명성을 주길 원치 않는 진정한 목적 역시 고작 사후 명성이 아니네.

그는 이 틈에 전쟁을 참패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네. 이번 전쟁에서 대봉이 졌고 십만 대군이 거의 전멸하였다고 말이야. 천하에 알리기만 하면 백성은 진짜라고 믿을 테고 이 역시 국가 기운을 흔드는 셈이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는 견유(犬儒) 원장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제게 한 가지 의혹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에 제가 물어야 할 문제도 있지요. 기운이 일정 정도 약화되면 ‘기운이 몸에 붙은 자는 장생할 수 없다’라는 천지의 법칙을 상쇄할 수 있는지요?”

“나는 자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네. 만약 단지 소량으로 기운을 오염시킨다면 천지 법칙의 제한을 받지 않겠지. 하지만 정덕은 안 되네. 대봉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한 나라의 군주로 그의 수명은 반드시 끝이 있을 걸세. 평범한 사람보다 장수할 리가 없어.”

조위는 상당히 침착한 어조로 답을 주었다.

‘그렇구나. 그럼 한없이 약해지는 나의 그 기운이 천지 법칙을 깬다는 추측은 성립하지 않는군…….’

허칠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왕 이렇다면 그는 도대체 뭐를 하고 싶은 걸까요? 음, 황실 구성원 모두가 기운을 가지고 있고, 정덕은 명색이 제왕으로서 기운이 가장 왕성합니다. 그는 나라를 멸망시키고 종족을 멸함으로써 기운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가요? 하지만 이는 원경제가 드러내는 권력에 대한 갈망과 미련과는 상호 모순됩니다.”

두 사람은 이내 침묵에 빠졌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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