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65화 (665/712)

665화. 허칠안이 소생하다 (3)

이날, 위연이 공을 탐해 무모하게 돌격하여 팔만 대군이 적국에 묻혔다는 소식이 마침내 민간에 전해졌다.

백성들은 이에 아주 격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요족·오랑캐를 지원하면 안 된다고 말했거늘. 요족과 오랑캐는 우리 대봉 백성을 먹고 변방을 어지럽혔는데 왜 요족·오랑캐를 지원해야 했는가. 이번에 조상을 노하게 하여 폐하께서 벌을 내리신 걸세. 이제 잘 됐어. 무려 팔만 장병이 죽었잖나. 우리 대봉은 20년 동안 이런 패배를 맛본 적이 없었네.”

“내가 말하건대 전부 이 빌어먹을 위연 때문이네. 그가 공을 탐해 무리하게 돌격하지 않았다면 어찌 패배했겠는가?”

“천벌 받을 개자식. 일개 환관이 군대를 통솔하다니. 이게 어린애 장난인가? 황제 폐하께서 사람을 잘못 믿으셨네.”

“나쁜 놈들, 위 공께서 자네들이 함부로 모욕해도 되는 사람인가? 20년 전, 이 환관이 없었다면 자네들에게 지금의 태평성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느 노인이 나서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르신, 못 들으셨습니까? 위연은 탐관오리입니다.”

“흥, 누가 그러던가?”

“조정에서 그랬습니다.”

“조정에서 회왕이 영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정에서 초주는 요족과 오랑캐가 도살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결국에는? 이 몸은 일찌감치 조정을 믿지 않았네. 차라리 허 은라를 믿는 게 낫지.”

사방이 고요해졌다.

초주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겪은 뒤, 경성 백성, 나아가 대봉 각 주의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불가피한 의심이 생겼다.

“그, 그런데 허 은라도 말을 하지 않았잖습니까!”

* * *

늙은 태감은 황궁에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침상 옆에 멈춰서고 허리를 굽힌 뒤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재상 대인이 만나뵙길 청합니다.”

원경제는 눈을 감고 좌선하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만나지 않는다!”

늙은 태감이 목소리를 낮추고 덧붙였다.

“재상 대인이 밖에서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오늘 만나지 못하면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원경제는 비웃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늙은 태감은 감히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아 본분을 지키며 옆에 서 있었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갔고, 순식간에 한 시진이 흘렀다. 늙은 태감은 아직 좌선하는 원경제를 쳐다보더니 종종걸음으로 침전을 나섰다.

늙은 태감이 가자마자 원경제는 눈을 뜨고 부들방석에서 일어나 침전 안에 섰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손바닥을 땅에 붙였다.

몇 초 후, 원경제의 귓가에 처절한 포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직 부족해, 아직 부족해!”

원경제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몸속에서 어떤 전음이 들려왔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무신교 전역이 실패했다고 선포하면 된다.”

원경제가 웃으며 말했다.

* * *

다른 한편, 늙은 태감이 침전에서 나오니 높은 계단 아래 비포를 입은 왕 재상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재상 대인, 구태여 왜 이러십니까? 말해봤자 대인과 폐하의 체면상 모두 좋지 않습니다.”

늙은 태감은 허리를 굽히고 노파심에 거듭 충고하였다.

“돌아가십시오. 노비는 폐하를 반평생 모셨습니다. 폐하의 성정을 노비는 잘 알고 있지요. 설령 여기서 꿇다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폐하의 결심을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접으십시오.”

왕 재상은 얼굴이 창백해졌으며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었다. 그는 언제든지 실신할 것만 같았다.

그는 이 나이에 한 시진을 꿇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력이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이해했네. 일깨워주어 고맙네, 공공.”

왕 재상 눈의 빛이 점점 꺼지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휘청이더니 비스듬히 쓰러졌다.

“아이고, 조심하십시오. 재상 대인의 몸은 대단히 귀하시거늘 만약 문제가 생기면 누가 폐하를 대신해 근심을 덜겠습니까.”

늙은 태감은 황급히 그를 부축하였다.

왕정문은 숨을 들이쉬더니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의관을 바로잡은 뒤 어서방을 향해 깊이 읍하였다. 뒤이어 그의 행동에 늙은 태감은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왕정문이 관모를 벗어 계단 위에 살짝 두었다. 일어섰을 때 그의 눈은 빛났다. 왕정문은 일어서서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 그는 관직을 내려놓으니 홀가분했다.

* * *

관성루에 마차 두 대가 천천히 달려왔다. 마차는 전부 단향목으로 제작한 것으로 옥 조각이 가장자리를 감싼 데다 노란 비단으로 치장하였다. 마차는 관성루 밖의 광장에 멈췄다. 준마를 탄 시위 두 대열이 이에 따라 말고삐를 잡아당겨 마차와 함께 멈췄다.

차문이 활짝 열렸고, 찻간 안에서 각각 한 여인이 나왔다. 백색 궁군을 입은 설산의 각시서덜취 같은 도도하고 교만한 미인, 그리고 붉은색 궁군을 입고 봉관을 쓰고 옥잠 등 값비싼 장신구를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마치 한 마리 고귀한 금사조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미모와 어여쁨은 이 사치스러운 장신구를 완벽하게 소화하였다. 그녀처럼 타고난 자태를 지닌 내재미가 있는 여인은 화려하게 치장해야 옳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두 공주는 시위를 내버려 두고 관성루로 들어갔다.

“회경, 왔어요!”

저채미는 1층 대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친한 벗을 기분 좋게 맞이하였다.

임안은 공주의 몸가짐은 신경 쓰지 않고 치맛자락을 든 채 ‘쿵쿵쿵’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몇 걸음 뛰다가 갑자기 반응이 왔는지 돌아서서 소리쳤다.

“그가 몇 층에 있지?”

“7층!”

저채미는 대답하더니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회경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사슴 가죽 보따리에서 육포를 꺼내더니 말했다.

“먹을래요?”

회경은 고개를 저었다.

임안은 발을 동동 굴렀다.

“길을 안내하지도 않다니!”

* * *

저채미는 두 공주를 데리고 7층에 이르렀다. 침실 문을 밀어젖히니 방 안이 온통 약 냄새였다. 임안의 시선이 순간 침상 위에서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도화안이 갑자기 물안개로 물들었다.

“그, 그가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지. 그는 아직도 위험한 거니…….”

임안은 오열했다.

회경은 말을 하지 않고 저채미를 바라보았다.

“언제 깨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도착했을 때, 진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죠. 몸에 성한 곳이 없었거든요. 성을 지킬 때 그가 유가의 법술을 사용하여 부작용이 온 거예요. 그리고 허리의 상처도 아주 번거로워요. 오래 지났는데도 아물지 않더라고요.”

왕눈이 소저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더니 설명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그의 의(意)가 너무 난폭하대요.”

회경이 물었다.

“그의 의(意)가 뭐야?”

저채미가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서 상대는 물론이고 자신도 다쳐서 둘 다 함께 화를 입었다고만 말씀하셨어요.”

‘둘 다 함께 화를 입었다라…….’

회경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칠안은 4품으로 승직할 때 도대체 어떤 상태에 처했던 것이며 또 어떤 심경이었기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임안은 이미 침상 옆에 앉아 손에 손수건을 쥐고 눈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허칠안을 부르고 흔들어 깨우고 싶었지만, 또 이렇게 하면 그에게 좋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울 수밖에 없었다.

임안은 훌쩍이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그에게 관직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는데도 그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다니. 위연의 뛰어난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그가 깨어나서 알면 얼마나 상심할까. 아바마마께서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몰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비록 위연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한 일이 대단하다는 건 알아. 위 공.”

“위, 위 공…….”

임안이 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안은 뜻밖의 일로 매우 기뻐하였고, 회경과 저채미 역시 한 걸음 나아가 침상 옆으로 다가갔다. 허칠안은 얼굴이 창백했고 입술은 갈라졌지만 이 순간 두 눈은 확실히 뜨고 있었다.

“이야, 드디어 깼네.”

저채미는 기뻐하며 외치더니 말했다.

“내가 네게 자양하는 환약을 좀 가져다줄게.”

그녀는 웃음꽃이 가득 핀 얼굴로 황급히 방을 뛰쳐나갔다.

허칠안은 시선을 집중하여 각기 다른 아름다운 자태를 띤 두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사천감입니까?”

임안이 황급히 대답했다.

“응응!”

그녀의 긴 속눈썹은 젖어 있었으며, 희고 보드라운 뺨에는 눈물 자국이 두 줄 걸려 있었다.

허칠안은 그녀를 보고 웃었고 바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숨을 내뱉었다. 보아하니 이묘진이 그를 구해 돌아온 듯했다.

‘비록 목숨을 건져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너무 위험하다. 내가 그동안 줄곧 생사의 갈림길에서 계속해서 왔다갔다했구먼.’

그는 속으로 말했다.

만군 수풀 속에서 노이혁가를 죽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그는 대군을 뚫고 쌍체계 4품 전봉을 베어 죽여야 했다. 어떠한 체계의 4품 고수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노이혁가는 주술사 체계를 겸하여 수련하였기에 통제 수단을 매우 많이 지녔다. 그는 옥쇄 버전 천지일도참이 성공할지 아닐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보호 역할을 하는 이묘진의 금단이 필요했다.

결국에 유가 법술의 사용 방식이 관건이었다. 그가 언출법수를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의 전봉 상태가 된 건, 사실 ‘원신 열 배 증강’보다 대가가 훨씬 작아야 했다.

천인간 전쟁 때, 그는 바로 혼비백산하였기에 요행히 죽지 않고 목숨을 건졌다. 곁에 마침 천종의 미녀 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은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상대는 임안과 회경이 아니라 산파와 다음 생의 생부였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채미는 나무 쟁반에 잡다한 일용 용기를 받치고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깼으니 됐어. 네가 깨어날 수 있다는 건 네 생기를 소멸시킨 그 두 힘이 이미 철저하게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고, 지금 4품의 신체와 정신으로는 2~3일이면 완쾌할 수 있겠어.”

저채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허칠안이 중상을 입고 침상에 누워 지내는 동안 그녀는 어포를 먹어도 맛있지 않았고 매일 울적하였다. 그녀는 한 끼에 두 그릇밖에 먹지 못해서 사람이 수척해졌다.

지금 허칠안이 다시 깨어났으니 그녀는 다시 즐겁게 맛있는 음식을 향유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저채미의 지도 아래 환약을 몇 알 먹었다. 그는 복부가 포근해지고 가로막혔던 기기가 다시 경맥에서 운행하는 듯했으며 혈색이 많이 밝아졌다.

게다가 그는 배 속의 배고픈 감각도 사라졌다.

그는 임안이 건네준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또 그녀의 ‘시중’을 받으며 침상에서 일어나 베갯머리에 기댄 채 뒤에는 푹신한 베개를 깔았다.

“저 방금 임안공주마마가 위 공이라고 말한 걸 들었습니다만…….”

임안은 즉시 회경을 보더니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회경은 잠시 침음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폐하께서 위 공에게 사후 명성을 주길 원치 않으시네. 있다고 해도 아마도 악시(惡諡)겠지.”

허칠안에게 마음을 쓰는 임안은 언니 회경이 부황을 호칭할 때 ‘폐하’라는 두 글자를 쓴 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악시(惡諡)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는 시호였다.

시호는 이 시대의 신하들에게 한평생의 공적이며, 품성에 대한 개관사정(蓋棺事定)이었다.

악시는 위연의 한평생에 ‘악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서에 기재되어 더러운 이름을 천추에 남기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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