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664화 (664/712)

664화. 허칠안이 소생하다 (2)

“이옥춘!”

“초홍하!”

“민산!”

“당유덕!”

“…….”

은라가 하나씩 대열에서 나왔다. 그들은 무장이 해제되고 금군에 의해 두 팔이 등 뒤로 비틀려 양손이 줄에 묶였다. 눈 깜짝할 사이 자리에 있던 은라들이 거의 절반은 가버렸다.

그 은라들은 무표정이거나 냉소를 짓거나 침을 뱉었다. 공교롭게도 두려워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자는 없었다. 명단에 동라는 없었다. 그들은 야경꾼 밑바닥으로서 통상적으로 보자면 동라는 어느 편에 설 자격이 없었다. 물론 그것이 원웅이 그들을 처리하지 않으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기세가 드높은 우도어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야경꾼 관아가 격변을 맞이해 자리가 많이 비었다. 본관은 이 위기의 순간에 관아를 인수하여 수하에 마침 사람이 부족하여 충성스러운 자를 등용하고자 한다. 내일 날이 밝기 전, 너희들 중 뇌물을 받거나 횡령했거나 백성을 갈취한 동료를 고하는 서신을 쓰는 자가 있다면 본관이 그를 등용할 것이다.”

그들은 속셈이 사악했다.

자리에 있는 야경꾼들은 무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원웅은 질투와 야심의 씨앗이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싹텄다는 걸 알았다.

이 동라들에게 승직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상응하는 수련 경지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공적도 있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는 이미 연신경의 동라지만 질질 끌며 승직을 하지 못했다.

무릇 야심이 있고, 진취적인 마음이 있다면 누가 출세하고 싶지 않겠는가? 지금 야경꾼 관아가 불안정하게 동요하였다. 야심이 있는 자나 승직을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원웅은 더 이상 풀이 죽은 야경꾼들을 쳐다보지 않고 돌아서서 주양과 조 금라를 바라보며 웃었다.

“두 금라는 본관을 따라 호기루에 가서 한 차례 감상하자고.”

그는 그곳에 들어가 위연의 자리를 대신하기를 더할 나위 없이 갈망하였다.

조 금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야경꾼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전부 흩어졌습니다.”

주광효는 귓가에 송정풍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숙이게, 어서 고개를 숙이고 여기를 떠나자고…….”

낙담한 주광효는 다소 어리둥절하더니 본능적으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동료들을 따라 연무장 밖으로 걸어갔다.

그가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라!”

모두가 잇따라 걸음을 멈추었고,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바라보았다.

큰소리로 제지한 건 주성주였다. 애당초 은라로 자리에 있는 야경꾼들은 거의 다 그를 알았다.

주성주는 다른 사람은 상대하지 않고, 송정풍과 주광효를 가리키며 입을 벌리고 웃더니 말했다.

“너희 둘 나와라.”

송정풍은 가슴이 철렁해서, 눈 딱 감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주 은라, 주 은라의 복직을 축하드립니다. 주 은라께서는 무슨 일로 소인을 부르셨는지요?”

그는 본래 처세술에 능했기에 아첨하는 말을 할 때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주성주는 악의가 충만한 웃음을 드러내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원 공,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이 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은 걸 소직이 직접 보았습니다.”

송정풍은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원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주 조카에게 맡길 테니 처리하게.”

그는 멈추지 않고 두 금라와 계속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조 금라는 주양을 쳐다보더니 선의로 일깨웠다.

“그 두 사람은 허칠안의 절친한 벗이네.”

이는 주양에게 경고하는 것이면서도 주광효와 송정풍 두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했다.

원웅은 주양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입을 떼고 담담하게 말했다.

“위연이 죽었으니 뒤를 봐주는 이가 없어졌네. 자네는 허칠안이 얼마나 더 날뛸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주양이 따라서 웃었다.

조 금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쪽에서 송정풍이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굽히며 용서를 구했다.

“주 은라, 전의 일은 소직이 옳지 않았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저 같은 소인배와 똑같이 구시면 안 됩니다.”

주성주는 마치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물었다.

“자네가 뭐가 옳지 않았다는 거지?”

송정풍은 멍해졌다. 그는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답게 즉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했다.

“저 송정풍이 평생 한 가장 큰 잘못이 바로 허칠안과 사귄 것입니다. 애당초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후회스럽습니다.”

그는 주성주와 원한이 없었기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허칠안이 밉기에 주변 사람까지 미움을 받는 꼴이었다.

이럴 때 그는 기회주의자의 태도를 보이기만 하면 됐다. 연약하고 만만할수록 주성주의 화를 누그러뜨리기에 쉬웠다. 그가 애당초 허칠안과 친분을 맺은 건 상대가 위연의 총애를 받았기에 아첨하기 위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쌍방에 깊은 우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나 주성주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가 다음으로 내뱉은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라면 내 사타구니 밑을 뚫고 지나가거라.”

주성주는 다리를 벌리더니 악의가 충만한 웃음을 지었다.

“뚫고 지나가면 자네와 허칠안의 옛 친분을 더는 따지지 않겠다.”

방관하던 야경꾼들이 잇따라 송정풍을 쳐다보았다. 쏟아지는 시선 사이로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주 은라, 이, 이건, 정말 농담하길 좋아하시는군요…….”

탁!

그는 사람들 앞에서 뺨을 갈겼다.

송정풍의 뺨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주성주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격하게 내뱉었다.

“농담? 내가 지금 너와 농담하는 걸로 보이나? 나는 자네에게 기회를 줬다.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렸고. 나는 네게 셋을 셀 동안의 시간만 줄 것이다.”

송정풍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가 또 풀었다가 다시 꽉 쥐었다.

그는 결국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댄 채 천천히 주성주 사타구니 밑을 뚫고 나왔다. 주성주는 미친 듯이 웃었다.

그는 돌아서서 주광효를 쳐다보았다.

“네 차례다. 감옥에 들어가겠는가 아니면 이 공자님의 사타구니 밑을 뚫고 지나가겠는가.”

방금 그 순간 그의 일그러진 마음에 아주 큰 만족감을 얻었다.

주광효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런 치욕은 견딜 수 없었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그 대신 하겠습니다…….”

송정풍이 아첨하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주 은라의 가랑이를 파고드는 걸 좋아합니다. 소직이 오늘 조상의 무덤에서 푸른 연기를 피웠나요? 이런 대우를 누릴 수 있다니요.”

“역시나 기회주의자구나. 처음에도 이렇게 허칠안의 환심을 샀는가?”

주성주가 모욕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송정풍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주성주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갔다.

“좋다. 이 자식 재미있네. 이 몸은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걸 좋아하는 자를 처음 보았구나.”

주성주는 송정풍의 얼굴을 툭툭 치더니 냉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신중하지 못하게 벗을 사귄 결과다.”

그는 더 이상 이 비열한 놈을 상대하지 않고, 부친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참 뒤, 연무장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주광효와 송정풍만이 남았다.

“개자식,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다니!”

송정풍은 ‘퉤’하고 소리 내더니 주광효를 쳐다보고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자식, 허칠안과 오래 지내면서 능력은 습득하지 못하고 도리어 못된 성질만 키웠구먼. 자네, 연말에 혼사를 치를 텐데 이 결정적인 시기에 감옥에 갇힌다면 죽지 않더라도 크게 다칠 걸세. 결국에는 파면당하겠지. 그때 가면 무슨 수로 낭자에게 시집오라고 할 텐가? 사람이 한평생 장가들고 싶은 낭자를 만나고, 자네에게 시집오길 바라는 낭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네. 허칠안 그 개자식은 매일 교방사를 들락거리면서 이런 낭자를 만나지 못하지 않았는가?”

주광효는 눈물을 글썽였다.

송정풍은 침을 뱉더니 언짢아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고집을 부려봤자 뭐 하는가. 나는 교활하게 구는 데 익숙해졌네. 가랑이 밑을 기는 건 둘째 치고, 그자를 아버지라고 불러도 상관없네. 자네가 봐도 모두가 ‘송정풍은 할 수 있다’라는 표정 아니었나? 자네였다면 아마 사람 구실할 면목이 없었을 걸세.”

그는 손사래를 치더니 말했다.

“가게. 나 혼자서 잠시 앉아 있겠네.”

주광효는 짙은 비음으로 ‘응’하고 대답하더니 돌아서서 떠났다.

연무장에 더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송정풍은 얼굴을 감쌌다. 그는 양어깨를 부들부들 떨더니 순식간에 억눌렀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는 크나큰 치욕이었다!

* * *

이튿날, 조회에서 원웅은 위연의 10대 죄악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중에는 부하의 횡령을 종용하고 백성을 갈취했으며 공을 탐해 무턱대고 뛰어들어 팔만 장병을 타향에 묻히게 했다는 등등의 내용도 포함되었다.

원경제는 조회에서 제공 및 대전 내 문무백관 앞에서 위연이 나라를 망쳤다고 호통쳤다. 조정과 재야가 진동하였다.

* * *

좌도어사 류홍의 부, 서재에서 류홍은 너무 분노한 나머지 골동품 꽃병을 던져서 깨부쉈다. 흑발에 흰머리가 다소 뒤섞인 정3품 대원(大員)은 분개하며 욕을 퍼붓고 큰소리로 포효하였다.

“파렴치한 소인배! 이 몸은 원웅과 양립할 수 없다, 양립할 수 없어!”

널찍한 서재 안, 어사 장항영, 병부상서 그리고 전 위당 핵심 인물이 몇몇 앉아 있었다.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조당에서 젊고 기력이 왕성하며,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황제와 팔씨름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더욱이 이 황제 휘하에는 그를 위해 적진으로 깊숙이 돌격하길 원하는 사냥개가 매우 많았다.

“일이 이미 이쯤 되었으니 우리만으로는 대세를 만회하기에 어려울 듯하네.”

한 핵심 구성원이 탄식했다.

장항영은 비통함을 감추기 어려운 얼굴로 말했다.

“위 공께서는 조당에서 20년 동안 관직을 맡으며 전전긍긍하셨네. 그가 권리로 사욕을 도모하고 무자비하게 재물을 착취하였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그가 호기루에서 20년 동안 살았다는 걸 누군가는 알겠지. 경성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의 집은 어느 곳에도 없었네. 요 몇 년간 그는 시시때때로 우리와 새로운 정치에 대해 논의하며 혁신을 꾀해 국력이 날로 쇠퇴하는 조정을 구제하고자 했네. 그는 자식도 없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모든 정력과 심혈을 조정에 헌신하였네. 위 공이 없었다면 폐하께서 이 20년 동안 이렇게 안정적으로 도를 닦을 수 있었겠는가? 왜 폐하께서는 사후 명성조차 그에게 주길 원치 않는 건가?”

무겁고 비통한 분위기가 서재에 만연하였다.

병부상서가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우리가 지금 고려할 건 자신을 보전하는 것일세. 위 공의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 위당 구성원을 숙청할 차례네. 허, 진원도가 또 내 위치를 눈독 들이기 시작하겠군. 위 공의 사건이라면 우리가 쓰러지지 않는 한, 우리 중 누군가 버텨내기만 한다면 장차, 앞으로 자연스레 사건을 뒤집을 기회가 생길 걸세.”

한순간의 성패는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바뀐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원경제를 바꿀 수 없는 이상, 새로운 군주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역사상,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억울한 사건, 잘못 푼 사건들이 전부 십여 년, 수십 년 뒤에야 밝혀지곤 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겠군.”

류홍이 탄식하더니 바로 말했다.

“다만 태자께서 앞으로 제위에 오르면 위 공을 대신해 사건을 뒤집을 거란 보장은 없네.”

“참, 허칠안은?”

병부상서가 갑자기 물었다.

장항영은 눈가를 비비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며칠 전에 파견을 보냈었는데 허부 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사람이 다 떠났더군. 칠안 그는 아마 이미 경성을 떠난 듯하네.”

류홍이 쓴웃음을 지었다.

“가는 것도 좋지. 그가 가지 않으면 누구도 그를 보호할 수 없네. 우리 역시 그를 보호할 수 없지. 아, 아마 조정에 철저하게 실망하였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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